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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No.71] <스프링 어웨이크닝> 일본 공연의 조상웅, 옥혜숙

글, 사진|정세원 |사진제공|극단 시키(촬영 시모자카 아츠토시,下坂敦俊) 2009-08-31 8,387

 

우리에게는 뜨거운 가슴이 있다

 

 

조상웅과 옥혜숙은 권위의식에 사로잡힌 어른들과 충돌하는 10대 청소년들의 성장통을 그린 <스프링 어웨이크닝> 일본 공연에서 모리츠와 안나 역으로 출연 중이다. 초연 오프닝 공연에 외국인 배우를 세우는 일이 거의 없는 극단 시키에서 두 번째 행운을 거머쥔 조상웅, 앙상블로 출연하다 5월 26일에 비로소 안나 역으로 데뷔한 옥혜숙. 두 사람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스프링 어웨이크닝> 일본 공연 개막을 하루 앞둔 5월 1일이다. 프레스 리허설을 무사히 마치고 극장을 빠져 나오는 두 사람과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누다가 일정을 앞당겨 근처 카페에 자리를 마련했다. 일반 관객들과의 첫 만남을 하루 앞두고 설레는 마음을 감추기가 쉽지 않은 듯,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조상웅과 옥혜숙은 벅찬 감격에 눈물을 보이며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두 사람이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무대에 오른 지 어느새 3개월여의 시간이 흘렀다. 수화기를 통해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마지막 공연일이 9월 5일로 결정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왔다. 공연이 끝나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관객들과 함께 공연의 감동을 느끼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다음은 조상웅, 옥혜숙과 세 차례에 걸쳐 나눈 대화의 기록들이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참여하는 한국 배우가 두 사람뿐이라 그런지 무척 친해 보여요.


옥혜숙 (이하 혜숙):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 시절부터 함께 지냈어요. 열아홉 살에 만났으니까 벌써 8년째네요. 일본까지 같이 와서 많은 의지가 되는 친구예요.

 

조상웅 (이하 상웅): 특히 이번 프로덕션에는 한국 배우가 혜숙이와 저뿐이라 서로 많은 힘이 되고 있어요. 근데 신기한 건 말이죠, 그렇게 오래 붙어 지내다보면 스캔들 한번쯤 날만도 한데 혜숙이와는 어찌된 영문인지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가 않더라고요.(웃음)

 

하하. 어쩌다 일본까지 같이 오게 된 건가요?


혜숙: (오)나라 언니한테 극단 시키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대학 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두 번째 오디션에서 간신히 붙었죠. 두 달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길래 떨어졌나보다 했는데, 아사리 게이타 대표님이 <라이온 킹> 한국 공연 배우 면접이 있어서 한국에 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직접 만나 뵀죠. 다음 달에 일본으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고 갑자기 오게 됐어요.

 

상웅: 전 먼저 입단한 여자친구 때문에 오게 됐어요. 군대 제대하고 복학한 지 얼마 안 됐을 땐데 <라이온 킹> 한국 공연 오디션을 꼭 봐야한다면서 저를 부추겼어요. 운 좋게 심바 역에 캐스팅돼서 1년간 공연했는데, 그때 마침 배우 오디션이 있어서 다시 오디션을 보고 2007년 12월에 입단했죠.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바쁘게 지내느라 아직 한국에 한 번도 다녀오지 못했어요.

 

극단 시키에 입단하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요? 처음엔 고생도 많이 했을 것 같은데요.


혜숙:
입단만 하면 계속 무대에 설 수 있고, 매일 연습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었어요. 4학년 때 서울에서 오디션도 많이 봤는데 키가 작아서 대부분 안 됐거든요. 근데 일본에 오니까 오히려 득이 돼서 여러 역할 공부를 할 수 있게 됐어요. 너무 힘들어서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가도 그런 것 때문에 참게 되더라고요. 많은 작품을 통해 공부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상웅: 군대 2년보다 여기 2년이 더 힘든 것 같아요. 시스템도 좋고 다 좋은데 자유 시간이 없거든요. 아침 9시에 오디션을 본다니까요. 그러면 배우들은 5~6시에는 일어나야 해요. 오디션 보고 10시부터 발레 수업 듣고 30분 밥 먹고 또 연습하고, 다들 퇴근하는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일본어 수업 듣고.

 

혜숙: 대학 4년 동안 발레 수업을 들으면서도 안 되던 다리찢기가 여기 와서 2달 만에 됐어요. 매일 훈련을 받는다는 게 보통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상웅: 그래서 ‘배우는 하루라도 쉬면 안 된다’는 얘기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상웅: 한국 캐스팅이 11월쯤 발표되었는데 시키는 1월에야 오디션이 있었어요.

 

혜숙: 저는 후쿠오카에서 <라이온 킹> 할 때 오디션 연락을 받았는데, 이미 극단 측에서 먼저 이미지와 조건이 맞는 배우들을 어느 정도 선발한 후더라고요.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는 오디션은 아니었어요.

 

상웅: 700여 명의 배우들 중에서 1983년 이후에 태어나고, 남자는 키 170센티미터, 여자는 키 160센티미터 이하의 배우들한테 오디션 기회가 주어졌어요. 근데 나중에 듣기로는 배우 선택의 범위가 너무 좁아져서 지원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결정된 60~70명의 배우들이 본격적인 오디션 테스트를 받았어요. 저는 작품은 잘 몰랐지만 음악이 좋아서 오디션을 봤어요. 물론 여자친구의 권유도 있었죠.

 

혜숙: ‘Mama Who Bore Me’를 준비했는데 다들 너무 조용하게 부르는 거예요. 미리 계산된 연기를 하지 말고 자유롭게 하라고 해서 잠시 고민은 했지만 그냥 제가 느끼는 대로 과감하게 불렀는데 다행히 그게 가산점이 된 것 같아요.

 

상웅: 오디션에 붙긴 했지만 아직 첫 공연 때 무대에 설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요. 또 한국 배우들이 오프닝 무대에 서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거든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정말 피를 말려요.

 

 

본격적인 숙제는 오디션에 합격한 이후였다죠? 대사가 결코 적지 않은 작품이라 언어에 대한 부담도 컸을 것 같아요.


상웅:
처음에 무척 막막했어요. 일본 온 지 1년 반밖에 안됐는데, 일본어 대본을 던져줬으니. 저희가 대화는 되는데 읽기가 아직 안 되거든요. 작품 내용도 잘 몰랐고. 그래서 친구가 대본을 읽어주면 그걸 듣고 외웠어요.

 

혜숙: 연습하면서 독일의 역사, 『파우스트』 등 관련 자료를 찾아 읽어야 했는데 그것도 당연히 쉽지 않았어요. <스프링 어웨이크닝> 한국 공연 홈페이지가 많이 도움 됐죠.

 

 

상웅: 대본 듣고 따라 읽으면서 다 받아 적었어요. 그러기를 반복하다보니 나중에는 오기가 생겨서 무대에 못 서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시키에서 활동하는 한국 배우들은 일본 배우들의 수십, 수백 배의 노력을 해야 해요.

 

혜숙: <라이온 킹>은 한국 배우들이 많아서 편한데, 저는 시키 소속 외국인 배우로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연극으로 데뷔를 했거든요. 대사가 두 마디였는데 그것도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하지만 그 한마디를 정확히 하기 위해 얼마나 연습했는지 몰라요. 일본어 선생님과 매일 기 싸움 하고 화장실 가서 울고. 이를 악물고 했죠.

 

상웅: 그 두 마디 하려면 스무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하거든요. 저는 혜숙이가 없었으면 모리츠로 무대에 못 섰을지도 몰라요. 발음에 집중하다 보면 연기가 어색해지니까 둘이서 계속 체크하면서 연습했어요. 처음에 캐스팅 표 나왔을 때 A팀, B팀도 아니고 저는 괄호였어요. 모리츠가 세 명이었거든요. 안 되겠다 싶어서 죽어라 연습했죠. 외국에서 음악감독과 안무가가 왔을 때가 저희한테는 기회였어요. 그들도 일본어를 모르다보니 정확한 대사 전달보다는 감정 전달에 더 많은 신경을 썼어요. 언어는 문제될 것이 아니라는 걸 그때 깨달았죠.

 

혜숙: 한국 배우가 상웅이 밖에 없으니 위에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감정을 실은 연기를 보여주는데 집중을 했어요. 결과적으로는 그게 캐스팅되는데 큰 도움이 됐던 것 같고요.

 

상웅: 괄호가 없어지던 날 주먹을 불끈 쥐었어요. 하지만 극장까지 와서도 계속 불안한 건 일본어 공연이라는 점이에요. 하루 종일 일본어 생각을 해요.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그래도 덕분에 ‘아시아의 첫 번째 모리츠’로 무대에 설 수 있어 정말 기뻐요.

 

 

모리츠는 매력적이지만 무거운 아픔을 안고 가는 어려운 역할이기도 하잖아요. 첫 공연을 마치고 작가 스티브 새이터와 한참을 얘기하던데 무슨 얘기를 나눴나요?


상웅:
모리츠는 모든 순간을 ‘가슴’으로 느끼고, 노래하고, 연기하라고 하셨어요. ‘가슴’이 없으면 안 된다고. 무대에 오르기 전에 그의 당부를 다시 생각하고 늘 ‘모리츠가 되자’고 주문을 걸어요. 그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왜 그런 고민을 하고 죽음으로까지 갈 수밖에 없었는지. 관객들에게 좀더 진실하게 전달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공연을 하면 할수록 제가 받는 느낌이 달라지고 마음도 더 무거워지고. 요즘은 매일 슬픈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하다보니 잠이 잘 안 와서 걱정이에요. 모리츠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데, 멜키오를 연기하는 일본인 배우도 비슷하더라고요. 서로 공연 끝나면 ‘수고했다’는 한마디 인사만 해요. 그래서 노래할 때는 진짜 모리츠가 된 것처럼 무거웠던 마음을 모두 폭발시키게 되는 것 같아요. 더 힘을 실어서. 이렇게 좋은 작품을 하고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고 느껴요.

 

 

5월 26일에 안나 역으로 첫 무대에 올랐다죠? 늦었지만 축하해요. 안나를 직접 연기해보니 어때요?


혜숙:
연습할 때 안무 선생님이 안나는 멜키오와 비슷한 사상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셨거든요. 그래서 나오는 신이 별로 없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마르타 신’에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인물이라 고민도 많이 했었는데, 직접 무대에 서보니 너무 얽매여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캐릭터를 생각하기 전에 보통의 여자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니 같다고 해도 안나 역시 16세 소녀잖아요. 무대 위에서 많이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는 게 하루하루 지날수록 더 많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더블 캐스트이다 보니 공연마다 상대 배우가 달라서 신선하기도 해요.

상웅: 혜숙이와 같이 공연을 하니까 정말 좋아요. 의상도 무척 잘 어울리고. 무대에서 살아 숨쉬려고 애쓰는 게 느껴져서 저 역시 자극을 받아요.

 

 

 

아쉽게도 마지막 공연 일정이 확정됐더군요.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두 사람에게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나요?

 

혜숙: 모든 작품이 그렇겠지만, 함께 하는 배우들과의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 작품이에요. 매 공연 끝날 때마다 관계의 소중함을 더 느끼고. 공연을 보신 분들이 다른 건 몰라도 따뜻한 공연으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안나였다고.

 

상웅: 무대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끼게 해준 공연이요. 끝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공연이 주는 다양한 메시지들을 나눠가졌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무대 위에서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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