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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Production Note] <벽을 뚫는 남자> 제작기 [NO.114]

사진제공 |쇼노트 정리 | 이민선 2013-03-04 5,141

평범한 인생들을 향한 찬가        

     
2006년과 2007년 두 차례 공연한 후, 관객들의 기대와 바람 속에 재공연된 <벽을 뚫는 남자>는 지난겨울 많은 이들의 마음의 온도를 한층 올려놓고 막을 내렸다. 주인공 듀티율은 뜻밖의 초능력을 갖게 된 후에도 여전히 소박하고 사랑스러운 이웃으로 남는다. 몽마르트르 언덕에 흐르는 듀티율의 노래를 전하기 위해 임철형 연출가가 기울였던 그간의 노력들을 전한다.

 


 

 

 

 

성인들을 위한 동화가 되도록                             
과거 배우로 참여했던 <벽을 뚫는 남자>는 내가 큰 애착을 품은 작품이다. 2012년 재공연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 작품은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15분, 듀티율이 벽에 갇힌 후 관객들이 그에게 느낄 연민의 감정을 더욱 효과적으로 이끌어내려면, 그 전에 관객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공연을 봐야 하지 않을까. 성인들을 위한 동화 또는 만화처럼 보이되, 진지한 메시지를 던지는 데 집중하고 싶지는 않았다. 관객들이 최대한 웃으면서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각 캐릭터들이 의미심장한 대사를 내뱉을 때도 분위기가 어두워지지 않게 슬쩍슬쩍, 툭툭 내려놓게 하고 싶었다. 과거 공연에서는 듀블과 검사에게 코믹한 요소가 집중됐다면, 이번 공연에는 모든 캐릭터에게 웃음 포인트를 고루 분배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핫이슈가 된 캐스팅                             
듀티율 역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배우가 임창정과 이종혁이었는데, 모두 섭외에 성공했다. 이종혁은 학교 동기로 무척 잘 아는 친구인데, 지금은 조금 물이 들었지만 학교 다닐 때부터 정말 착했다. 듀티율은 착한 사람이고, 연기로 접근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인성이 착한 사람이 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잘 몰랐던 이종혁이 선뜻 출연을 수락할 리 없었다. 한편, 또 다른 절친인 임형준에게 임창정 캐스팅 중개를 부탁했다(임형준은 임창정 캐스팅의 일등 공신이었다). 임창정의 뛰어난 가창력이나 연기력은 물론, 그 특유의 귀엽고 편안한 인상이 이 역할에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보낸 음악과 영상을 보기만 한다면 분명 출연하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한참 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이 작품에 완전히 반한 채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종혁은 지인들의 게릴라성 작품 홍보와 임창정의 출연 소식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듀블 역의 임형준과 고창석도 이번 공연의 큰 수확이었다. 임형준은 과하지 않으면서 받아들이기 편한 코미디에 능숙하다. 고창석은 이전부터 움직임 연기나 노래에 능통한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현재 무척 핫한 배우가 아닌가. 그가 과연 출연할까 반신반의했는데, 어렵잖게 출연 의사를 전해 받았다. 고창석은 연출가가 뭘 원하는지 무척 잘 알았고, 바로바로 표현해냈다. 오히려 내가 그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잘하리라 믿었지만, 관객 반응이 그 정도로 좋을 줄은 몰랐다. 등장하기만 하면, 그가 아무것도 안 해도 관객들이 웃으니, 연출이 뭐라 더 할 말이 있겠는가.

 

 

 

 

 

돈독한 팀워크                          
듀티율이 마냥 순수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워낙 완벽을 기하며 꼼꼼하게 일하다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소외되는데, 뜻밖의 능력이 생긴 후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고 베푸는 모습을 봤을 때, 그도 기본적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함께 잘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처음에 그는 무척 소심하고 세상과 소통하길 어려워했다. 그런 듀티율을 보여주기 위해 이종혁에게 주문한 사항은 절대 어깨를 편히 풀지 말고, 늘 긴장한 채로 움츠리고 있으란 것이었다. 그가 멋있어 보이면 안 되니까. 그는 종종 ‘내가 원래 멋있는 걸 어떡하냐’는 농담을 했지만, 소심하면서도 귀여운 듀티율을 표현해냈다. 임창정에게는 채플린의 느낌이 났다. 어둡거나 진지해 보이지 않도록 조언하며, 채플린처럼 보이도록 요구했다.


<벽을 뚫는 남자>에서 주인공은 혼자서 또는 다른 누군가와 둘이서 등장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리고 각 캐릭터들을 위한 장면이 고루 분배돼 있다. 그래서 연습 초반에는 각각 개인 연습을 한 후, 순차적으로 다른 동료들을 만나게 했다. 그렇게 만나자 그동안의 연습량을 확인하며, 아직도 대사를 못 외웠느니, 가사를 틀렸느니, 서로 놀리며 즐거워했다. 이번 공연의 배우들은 연출가가 특별히 지시하고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모여서 더욱 멋진 장면들을 만들어내곤 했다. 무척 단합이 잘됐고, 그 덕에 거의 매일 연습 뒤풀이가 이어졌다. 고창석이 한 턱 내면, 그다음 날엔 이종혁과 임창정이 내는 식이었다. 하지만 임형준은 잘 안 쐈다. 그런 뒤풀이 자리에선 으레 ‘너 왜 그랬느냐?’ 하는 식의 다툼이 일기도 하는데, 이번 팀은 그런 일도 전혀 없었다. 다들 서로를 격려하고 다독였다.

 

 

 

 

 

공연 개막                       
이 작품의 정서에 어울리도록 수채화 또는 만화 같은 무대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파스텔 톤의 세트나 재밌는 의상 등 잘 구현된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화가가 등장해 그림을 그리다 공연의 막이 오르기 때문에 프로시니엄 아치를 액자 틀처럼 만들고 싶었지만 조명의 위치가 걸려서 포기해야 했다. 공연장 조명 상황 때문에 곤란했던 게 또 있다. 팔로우 조명이 무대 뒤까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조명이 무대 앞쪽만 닿고, 무대 안쪽은 비추지 못해서 충분히 공간을 활용하기 어려웠다. 배경이 되는 오르샹 거리를 표현하기 위한 세트가 여러 개였는데, 공간이 협소해 세트를 이동시키는 것도 어려웠다. 세트의 전환에 따라 관객들의 시선을 끌 만한 요소가 적었지만, 배우들의 움직임을 활발히 하고 무대 양쪽에 라이브 밴드를 위치해 보완할 수 있었다.


듀티율이 벽을 드나드는 마술적 효과에 대한 시행착오도 많았다. 프랑스처럼 기본적으로 밴딩 처리된 막을 드나드는 방식을 취했다. 회전문을 이용하기도 했다(일본에서는 지퍼를 열고 닫으며 통과하기도 하더라). 배우가 밴드 막을 지나가는 순간, 조명을 이동함으로써 순간 이동한 듯이 보이게 했다. 배우가 통과할 때 흔들리는 밴드 막 사이로 빛이 새어들어 효과를 반감시키지 않도록 밴드 막 뒤에 흑막을 세우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막을 통과하는 방식이 유치해 보일 것이다. 첨단 기술을 써서 좀 더 감쪽같은 마술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동화 같고 소박한 이 작품에 그런 효과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도 그런 이유로 아날로그 방식을 택한 게 아닐까.


관객들이 <벽을 뚫는 남자>를 맑고 따뜻한 작품으로, 또는 재미만 기대하고 오리라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여성 관객들이 많이 울더라. 엔딩에서 그런 진한 연민과 감동을 느낄 줄이야. 커튼콜 후에, 유치하리만치 순수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 듀티율에게 ‘여러분의 인생이 아름답길 바랍니다’는 멘트와 함께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극이 끝났는데, 어떤 날은 듀티율이 말을 꺼내는 순간 객석에서 ‘준수 아빠 파이팅’ 같은 환호가 들려오기도 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노래를 시작하면 이내 차분한 분위기가 조성됐고, 우리의 듀티율은 물론이고 모든 배우들이 진심으로 관객들의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인생을 바랐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4호 2012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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