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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2000년의 인물, 남경주 [No.70]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09-07-20 6,756

 

 

그땐 무기력을 걷고 있었다

 

90년대부터 ‘뮤지컬 배우’ 하면 남경주, 최정원을 꼽았다. 그만큼 이 둘은 뮤지컬 배우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더뮤지컬을 발행하기 시작한 2000년의 인물로 남경주를 선정했지만, 그것이 그 한해에만 국한된 의미는 아니었다. 그 이전도 그랬고 그 이후도 남경주는 뮤지컬계에서 빼놓을 없는 인물이다. 2000년에도 남경주의 활약은 눈부셨다. <렌트> 초연 공연과 <듀엣>, <태풍> 등에 참여했고 세 작품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다. 뮤지컬이 서서히 붐을 타고 있던 때인지라 남경주를 찾는 손길이 많았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때가 자신에게 위기의 순간이라고 말한다. 2000년을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했는데 그때가 자신에게는 슬럼프였다니 의외였다.

 

 

안정이 위기를 부른 
2000년 남경주에게 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위기가 없었기 때문에 찾아왔다. 계속 하는 공연들은 잘 됐고 여기저기서 찾는 손길이 많았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공연은 재미있었지만 거기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고 우울증도 찾아왔다.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는데 바로 그것이 이유였다. 90년대 이후 정상의 자리가 계속 지속되다보니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극을 느낄 수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배우들이 많지 않았고 경쟁심을 느낄 만한 후배들도 그때까지는 등장하지 않았다. 외부적인 자극이 없다 보니 스스로 자만에 빠지게도 되었다. 이러다가 자멸하겠구나 싶은 위기감까지 느꼈다. 안정된 자리를 오래 유지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무기력증에 빠진 것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는지 당시 한 언론의 글에서는 “남경주가 지쳐 보인다.”라는 말이 들리기도 했다. 또한 뮤지컬 시장이 커지면서 한해 올라가는 작품 수가 많아지자 그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왔고 그만큼 열심히 활동한 것인데,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대한민국 배우가 남경주, 최정원밖에 없냐는 비아냥 섞인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다. 외부의 목소리에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었다.


내적 갈등을 다스리게 된 것은 내적 수양을 통해서였다. 그때부터 책을 붙잡고 열심히 읽기 시작했고 운동을 통해 몸을 건강하게 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삶이 단순해지면서 보다 분명해졌다. 한때는 몸이 지칠 정도로 작품에 욕심을 부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 머리가 단순해지니까 그런 것에서도 자유로워졌다. 지금까지도 연기가 막히거나 하면 책을 들여다본다. 이런 혼란의 시기를 겪고 나서 좀더 강해진 느낌이다. 현재 공연하고 있는 <아이 러브 유>처럼 장기공연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치는 것이 당연하죠. 하지만 그것과 싸우고 싶고, 그 상황을 이겨내고 싶어요.” 

 

뮤지컬 성장과 함께 한 대표 배우
한국 뮤지컬 역사와 함께 한 그였기에 2000년대 뮤지컬 시장의 성장을 몸으로 느꼈을 것 같다. “<렌트>가 큰 흥행을 했고 창작뮤지컬인 <태풍>까지 대박 흥행을 이루는 것을 보면서 시장이 변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뮤지컬 시장이 막 성장하려는 시기에 남경주, 최정원은 많은 작품을 함께 했고, 그래서 둘이 부부인 줄 아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최정원 씨는 예전 더뮤지컬과의 인터뷰에서 ‘남편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며 둘의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너무 같은 파트너와만 해서 변화를 주고 싶지는 않았을까? “그 당시에는 워낙 호흡이 잘 맞아서 그런 생각이 안 들었어요. <듀엣>을 할 때는 정원이와 하려고 마음 먹고 제작사에 이 작품을 제안하기도 했으니까.”


남경주는 아직까지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배우 베스트에 속한다. 최근에는 연예인들이 뮤지컬에 참여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또 뮤지컬 배우들이 TV나 영화에 참여하는 경우가 늘었다. 남경주는 90년대 초반 이러한 과정을 모두 거쳤다. “뮤지컬이 생소한 장르라서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었고, 나도 좀더 대중적인 배우로 남고 싶었어요. TV에 출연하면 꼭 앞에 뮤지컬 배우라는 호칭을 넣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죠. 실제로 얻는 것도 많았지만 잃는 것도 있었어요. 방송을 통해 뮤지컬을 알린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요.” 대표적인 뮤지컬 배우로서 뮤지컬을 알리는 역할 역시 그의 몫이었다.


무대에 서는 뮤지컬계 거의 최고 선배급에 해당하는 지금 그는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선다.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뮤지컬 교육을 하는 해피뮤지컬 스쿨이나 서울문화재단 또 문화관광부에서 지원하는 뮤지컬 스쿨에도 명예교사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가 되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에요.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면서 과정에서 서로 협력해야 하는 일도 발생하고 다 만들고 나면 성취감도 생기잖아요. 그런 과정과 관계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또 예술은 기본적으로 진선미를 추구하는데 예술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의 감성이 많이 성숙해질 것이라고 믿어요.” 해피뮤지컬 스쿨에 다녔던 고3 학생 세 명이 모두 대학교 뮤지컬 학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들의 졸업 공연을 보면서 남경주는 그 어떤 공연보다도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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