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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라카지> 이지훈 [No.134]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2014-12-08 6,221
버티는 싸움



이지훈을 본격적인 뮤지컬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한 연출가는 그를 두고 왕자의 이미지가 떠올라서  캐스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6년 전, 고독한 왕자로 무대에 올랐던 이지훈이 크고 작은 산을 넘어서 게이 클럽의 전설적인 디바이자 모성애 넘치는 엄마 앨빈을 연기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잘할 수 있는 것만 하면서 안일하게 가려고 하면 밋밋해지는 것 같아요”



어제가 <라카지> 첫 연습이었죠? 연습은 어땠어요?


전 지난 시즌에 했던 사람들이 첫 리딩을 할 줄 알았어요. 옆에서 어떤 톤인지 들어보자 하고 있는데, 연출님이 새 멤버인 저를 시킨 거예요. 그러니 그게 뭐 잘 굴러가나. 처음엔 엄청 헤매다 중간부터는 그냥 했어요. 연출님이 “너 대본 달달 외워오라니까 뭐했어, 뭐했어!” 구박하셨는데, 아, 나 진짜 너무 바빴어요.  
참, 이번에 ‘에스’로 가요계에 컴백하죠? 가수 활동은 계획돼 있던 거였어요?


네, 에스 활동이 먼저 잡혀 있었어요. 8월부터 녹음을 시작해서 10월에 미니 앨범을 발표하자고 얘기돼 있던 상태에서 뒤늦게 <라카지> 콜이 들어왔죠. 저 <라카지> 초연을 진짜 재밌게 봤거든요. 어떤 캐릭터가 욕심난다, 이런 걸 떠나서 작품이 정말 좋았어요. 밝고 경쾌하고 그 안에 감동도 있고.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근데 제안받고서 고민 되게 많이 했어요.  
뭐 때문에 망설였어요?


<라카지>는 올인해야 하는 작품이거든요. 이거 하나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고민됐죠. 처음에 제작사한테 그랬어요. 10월에 활동 스케줄이 있어서 부담스럽다고. 게다가 함께하는 분들이 다들 엄청난 선배님들인데 그걸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요. 이지나 연출님께도 “선생님 어떡해요, 나 모르겠어요” 했더니 “그냥 해, 나만 따라와” 그러시더라고요. 뭘 보고 그렇게 얘기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뭐, 믿는 구석이 있으셨겠죠. 우리 연출님은 안목 있는 양반이고, 그 안목에 내가 채택된 거니까(웃음) 믿고 가보자 싶었어요. 
초연 멤버가 그대로 참여하는 재공연에 합류한다는 사실도 부담이 됐겠죠?


부담됐죠. 더 부담은 (정)성화 선배나 (김)다현이가 앨빈을 정말 잘했다는 거죠. 그런데 그런 부담감은 작년에 <엘리자벳> 때도 있었어요. 그때도 과연 내가 초연 루케니들처럼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컸죠. 근데 그런 고민에 부딪치면서 새로운 루케니를 만들어가려고 했던 게 좋은 결과로 나타난 것 같아요. 잘할 수 있는 것만 하면서 안일하게 가려고 하면 제가 좀 밋밋해지더라고요. 약간 게을러지기도 하고. 이번에도 부담이 좋은 자극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전작 <프리실라>도 그렇고 이번 작품에서도 여장을 해야 하잖아요. 연달아 비슷한 작품에 출연하는 데 대해 걱정하는 시선은 없었나요? 


퀴어 작품을 한다는 데 대한 시선이요? 작품 성향에 대한 부담은 크게 없어요. 오히려 이런 작품을 하면서 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구나, 저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어요. 그리고 <프리실라>하고 <라카지>, 두 작품은 색깔이 달라요. 제가 맡은 캐릭터의 성격도 다르고. <프리실라>의 틱이나 <라카지>의 앨빈이 둘 다 게이라고 해도 틱은 아빠고, 앨빈은 엄마인걸요. 틱은 남성적인 면이 강하지만, 앨빈은 스스로 여자라고 믿어요. 완전히 다르죠. 
그래도 이지훈이 <프리실라>를 한다고 했을 때 좀 놀랐어요. 이지훈이 무대에서 드래그퀸 의상을 입다니.


작품을 선택할 때 제 자신한테 항상 질문해요. 이번엔 어떤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전 저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에서 탈피하고 싶은 마음이 크거든요. 솔직히 멋있는 멜로물 하고 싶죠. 하지만 원래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그런 쪽에 가까우니까 관객의 시선을 바꾸고 싶은 욕심이 더 크달까. 그래서 좀 더 자극적인 도전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그걸 제대로 못 해냈을 땐 엄청난 후폭풍이 따르지만. (웃음) 어쨌든 당분간은 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어요. 
두 작품을 동시에 했던 건 <위키드>하고 <프리실라> 때가 처음이었잖아요. 그건 어땠어요?


<위키드>가 장기 공연이다 보니 한 작품을 계속하면서 조금 지칠 때가 있었어요. 여기서 자극을 ‘팡’ 주지 않으면 끝까지 못 갈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마침 <프리실라> 초연이 올라간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됐죠. <프리실라> 해외 공연 영상을 쭉 봤는데 정말 신 났어요. <위키드>는 내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고 <프리실라>는 세 멤버가 주인공인 작품이니까, 두 개를 같이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초연은 흥행 결과에 따라 다시 안 할지도 모르니까 더 하고 싶기도 했고요. 근데 해보니까 다신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정말 절실하게 느꼈어요. (웃음)
솔직히 <위키드>를 한 것도 뜻밖이었어요. 피예로가 남자 주인공이긴 해도 비중이 큰 캐릭터가 아니다보니 배우들이 잘 안 하려고 한다, 이런 얘기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이지훈이 1년 동안 피예로를 한다는 게 좀 의외였죠. 그땐 전작 <엘리자벳>으로 확실히 인정받은 다음이기도 한데.  


글쎄요. 남자 배우로서가 아니라 작품 전체를 봤을 때 <위키드>는 배우들이 선망하는 뮤지컬이잖아요. 배우들이 하고 싶어 하는 뮤지컬. 거기 동참한다는 데 의의를 뒀어요. 한국에서 처음 하는 공연의 멤버가 된다는 것도 좋았고. 그리고 솔직히 작품할 때 분량은 별로 신경 안 써요. 주연이든 조연이든 그런 건 별로. 제가 잘하면 그건 언제 어디서든 드러나게 돼있어요. 
역할의 크기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요? 


네. 왜냐면 만날 주연만 할 순 없는 건데, 그럼 차라리 좋은 주연과 조연을 오가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요. 그게 다양한 작품을 소화하기에도 좋고, 그래야 더 오래 가지 않을까, 저는 그런 생각이에요. 아, 제가 <위키드> 하면서 가끔 매니저를 화장실에 보냈어요, 쉬는 시간에. 가서 관객들이 뭐라 그러는지 들어보라고. (웃음) 사람들이 이지훈이 저렇게 노래를 잘했어? 멋있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더래요. 하하. 역할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뭘 하든 사람들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남게 하는 게 중요한 거구나 싶었죠. 뭐, 어떤 사람들은 피예로가 무대에 너무 안 나오니까 ‘쩌리 남주’ 이런 얘기도 하던데, (웃음) 저는 <위키드>를 한 1년이라는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아요. 1년 동안 반복되는 시간이 저한테는 굉장히 큰 훈련이었어요. 
어떤 훈련이 됐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극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어요. 솔직히 그 전엔 스트레칭 안 하고 공연하는 작품도 있었어요. 근데 그게 습관화돼더라고요. <위키드>는 그런 게 진짜 철저했어요. 공연 중에 애드리브도 절대 안 되고. 매일 공연을 찍어서 브로드웨이(프로덕션)로 보낸다는 얘기가 있어서 진짜 정해진 약속대로만 해야 했죠. 기본에 충실하면서 그 안에서 조금씩 뭔가를 찾아가려고 한 게 많은 배움이 된 것 같아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흔들리지 말고 뚝심 있게 해봐야죠”



이번에 엄마를 연기하는 건 어떨까요? 그것도 스무 살 남자 아이의 엄마를. 


심지어 아들 하는 배우들이 실제론 저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요. (웃음) 음, 전 미혼이고 앞으로도 엄마가 될 일은 없겠지만, 어쨌거나 가족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앨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웃음) 벌써 이런 역을 맡는 게 시기적으로 좀 빠른 것 같긴 해요. 근데 말이 될진 몰라도 매도 빨리 맞으면 좋다고, 중년 캐릭터를 빨리 하면 연기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어지지 않을까요? 지금까진 주로 이십대 후반, 삼십대 초반, 이런 역할을 하다 보니 깊이에 대한 갈증이 있었거든요. 이번 작품에선 결혼도 했는데, 그냥 부부도 아니고 정말 오래 같이 산 부부를 연기해야 하니까 연기에 대해 뭔가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라카지>는 우리나라에서 게이들의 이야기보다 가족애가 강조된 면이 있잖아요. 그래서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아들의 상견례 자리에 삼촌으로 참석하기로 했던 앨빈이 현장에서 자신이 장 미셀의 엄마라는 걸 밝힐 때 어떤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장 미셀의 친엄마가 상견례에 못 오는 상황이니까 본인이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지가 강했겠죠. 앨빈은 자신 있지 않았을까요. 내가 엄마로 20년을 살아왔으니까 그 자리에서도 엄마로서 가족, 그리고 아들에 대한 사랑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거라고요. 그리고 (여장 남자라는 게) 안 걸릴 줄 알았겠죠. (웃음)
<라카지>에선 뭘 얻고 싶어요?


얻고 싶은 거 많아요. 연기에 대한 깊이도 얻고 싶고, 대중의 사랑도 얻고 싶고, 뮤지컬  팬들의 사랑도 좀 얻고 싶고. (웃음) 아까 낮에 지나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너는 티켓 파워도 없고, 그렇다고 뮤지컬 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홍보나 많이 나가. 하하. 아, 지나 선생님은 원래 세게 말씀하세요. 정말 직설적으로. 그걸 아니까 뭐라 하셔도 상처는 안 돼요. 어쨌든 저 이제 좀 뮤지컬 관객들한테 사랑받을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웃음)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지난 출연작들을 짚어보면 잘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하고 같이 뮤지컬을 시작했던 배우들이 성장해 있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나도 한길만 걸었으면 조금 더 빨리 어떤 위치에 올랐을까. 그런데 더디게 가는 것에 대한 초조함은 안 느끼려고요. 지금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 이번에 <라카지> 하는 동안엔 성악을 배워보려고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흔들리지 말고 뚝심 있게 해봐야죠. 뭐든 결국엔 오래 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니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4호 2014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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