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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ARTNERS] 구윤영 조명디자이너, 정재진 영상디자이너 [No.130]

글 |배경희 사진 |배임석 2014-08-11 6,749
여자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법 

공연계에서 여성 조명디자이너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25년 차 디자이너 구윤영 감독. 뒤늦게 공연계에 뛰어들어 이름을 날리고 있는 10년 차 영상디자이너 정재진 감독. 2012년 창작뮤지컬 <서편제>로 최고의 호흡을 보여준 두 사람은 차분히 각자 빛나는 이력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공연계 진출을 꿈꾸는 여자 후배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 될지도 모르는 두 사람의 한바탕 유쾌한 수다를 지면에 옮긴다. 



다른 듯 닮은 두 사람 

두 분의 첫 작품은 <바람의 나라> 2006년 공연으로 알고 있어요. 혹시 첫 작업 전에 다른 인연이 있었나요?
정재진    아니요, <바람의 나라>로 감독님을 처음 뵙게 됐어요. 그런데 그 작품은 협력 디자이너로 참여했던 거라서 감독님과 직접 부딪칠 일이 별로 없었어요. 그땐 주로 멀리서 감독님이 작업하시는 걸 봤죠. 가슴 떨려하면서! (웃음) 빛으로 미장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정말 쇼크였죠. 조명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감독님께 진지하게 상의해보려고 공연이 끝나면 매번 스태프실 앞에서 대기했는데, 어쩐지 좀 무서워서…. (웃음) 
구윤영    여기서 이야기 잘해야 해. 나를 무서운 사람으로 만들면 안 돼. (일동 웃음)
정재진    감독님의 카리스마에 눌려 선뜻 말을 못 꺼내기도 했지만, 확신 없이 무턱대고 조명하고 싶다고 얘기해도 되나 망설이다 결국 공연 기간이 끝나버렸어요. 그러고 나서 한참 후에 <에비타>(2011)로 감독님과 제대로 만나게 됐죠. 저는 정말 구 감독님의 팬이었기 때문에 파트너로 다시 만나게 돼서 무척 기뻤어요. (갑자기 생각난 듯) 감독님, 제가 그때 ‘선생님을 만나 뵙게 돼서 정말 기뻐요’ 하고 쓴 카드 있잖아요? 그 카드 몇 년 전에 써두었던 거예요. 
구윤영    정말? 솔직히 카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요. 그런데 카드를 받고서 무척 놀랐던 건 생각나요. 이 친구는 대단한 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심지어 해외 출장을 가서도 엽서를 보내요. 오늘도 얼마 전에 외국 출장을 갔다 왔다면서 선물을 사왔어요. 빅토리아 시크릿 속옷으로! (웃음) 저는 성격상 사람들에게 살갑게 못하거든요. 항상 고맙죠. 

감사 카드를 쓰는 후배라니. 안 예쁠 수가 없었겠네요.
구윤영    그것도 그렇지만, 저는 정 감독이 예뻐서 좋았어요. (일동 웃음) 개인적으로 예쁜 사람을 참 좋아하거든요. 뭐,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게다가 저희는 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니까. 사실 처음엔 정 감독이 이 험한 바닥에서 버틸 수 있을까 조금 걱정했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여린 겉모습과 달리 의외로 강한 면이 있더라고요. 알고 보면 악바리에, 엄청난 욕심쟁이죠. 무대 셋업 때 시간 아깝다고 밥도 안 먹는 사람이니까. 저는 오전 11시 55분(점심시간 5분 전)이 되면 무조건 팀 애들한테 “얘들아, (일) 털어, 밥 먹으러 가자” 그러는데. 가만, 네가 만날 베지밀만 마시면서 일하니까 이런 몸매를 유지하는 거구나? (일동 웃음) 



정재진    살 빼려고 굶는 건 아니고, 밥 먹는 시간이 극장에서 유일하게 혼자 작업할 수 있는 때라서요. 그리고 저희 팀은 작업 시간이 부족해서 셋업 때 전혀 쉴 수가 없어요. 제가 구 감독님을 좋아했던 이유는, 감독님은 이쪽 계통에서 오랫동안 작업해온 성공한 여자이기 때문이에요.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공연계에서 여성 디자이너로서 이 위치에 올랐다는 건 정말 존경할 만한 일이죠.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살아남는 구윤영 감독님만의 노하우가 있던가요?
정재진   현장에서 항상 소리를 지르시는 것? (웃음) 저는 감독님과의 첫 작업 <바람의 나라> 하면, 인터컴(공연 중 전체 스태프가 공용으로 쓰는 무선 통신 장비)으로 오퍼레이터에게 소리 지르는 감독님 목소리가 제일 먼저 생각나요. 다른 파트 감독님들께 “감독님 잠깐만요” 하고선 조명 크루에게 “으아! 너 정신 안 차리니, 죽을래?” 하고 외치는 감독님의 그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요. 사실 여자 스태프들 대부분 다 소리 지르는 스타일이에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면이 있죠. 저도 2년 차가 되니까 현장에서 큰 소리를 내게 되더라고요. 
구윤영    저는 일을 시작할 때부터 소리를 질렀어요. (웃음) 나이 스물넷에 디자이너가 됐는데, 오퍼레이터들이 저보다 다 나이 많은 남자들이었으니까 제가 얼마나 애처럼 보였겠어요. 이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많은 무시를 당했죠. 근데 저는 오퍼레이터가 제 말을 안 들으면, “오빠, 잠깐 내려오세요” 하고 불렀어요. 제가 디자이너니까 제 말대로 하기 싫으면 집에 가라고 그랬죠. 그렇게 세게 안 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어요. 뭐, 원래 욱하는 성질이기도 하고요. 정 감독한테도 처음에 조언했던 게 현장에서 소리를 질러서라도 상대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저희는 어떻게 보면 전문가를 데리고 일하는 게 아니라, 전문가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실수 없이 공연을 진행하려면 오퍼레이터를 계속 긴장하게 만들어야 해요. 요즘엔 현장에서 소리 지르는 게 일종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서, 극장에서 조용히 있으면 피디나 연출이 우리 작품에 열정이 없는 거냐고 물어봐요. (일동 웃음) 그런데 어떤 때는 나이 먹고 이게 뭐하는 건가 싶기도 하죠. 
정재진    구 감독님은 현장에서 거친 이미지 때문에 ‘기 센 여자’라는 편견이 있어요. 근데 제가 상남자라면, 구 감독님은 상여자예요. 알고 보면 엄청 여리신 분이죠. 수줍음이 많아서 연애도 잘 못하시고요. (웃음) 

일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 센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좀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네요. 그런데 두 분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공연계 여성 스태프 대부분이 싱글인 것에도 일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정재진    네, 활발히 활동하는 여자 스태프들 대부분이 싱글이잖아요? 그게 개인이 눈이 높아서만은 절대 아니에요. 일단 이쪽 일을 하면 개인 삶을 누릴 만한 여유가 없어요. 잠 잘 시간도 없는걸요. 게다가 라이프 스타일 패턴 자체가 달라서 일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하고 어울리기도 힘들고요. 근데 그래도 남자 스태프들은 가정을 꾸릴 수 있어요. 아내가 그만큼 서포트 해주니까. 하지만 아내가 일주일에 몇 날 며칠씩 밤을 새우고 집에 안 들어오고, 지방 출장이다, 해외 출장이다, 장기간 집을 비우는 일이 많다고 했을 때, 그걸 이해해주는 남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구윤영    저는 사실 한 번 갔다 돌아온 사람이에요. (웃음) 가정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던 큰 이유도 상대가 가정에 충실할 수 없는 상황을 힘들어했기 때문이에요. 캠퍼스 커플에서 결혼까지 골인했던 거라서 제 일을 많이 이해해줬던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힘들어하더라고요. 이쪽 사람들은 대부분 일에 미쳐 사는 사람들인데, 그걸 이해받기가 정말 쉽지 않아요. 

소통할 수 있는 파트너  



공연에서 영상과 조명은 특히 밀접한 협력이 필요한 파트일 거예요. 아무리 영상을 잘 만들어도 조명이 제대로 비추지 못하면 그 느낌을 살릴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두 분의 호흡이 돋보이는 것 같아요. 영상과 조명의 컬러 매치가 훌륭하죠.
구윤영    네, 영상과 조명은 컬러 매치가 정말 중요해요. 색이 안 어울리면 따로 노는 느낌이이 들죠. 그런데 저희는 희한할 정도로 색을 잘 맞춰요. 언젠가 한번은 작업 기간이 너무 촉박해서 서로 얘기를 거의 못하고 작업했던 적이 있어요. 근데 둘이 비슷한 색으로 작업을 했더라고요. 그럴 때 우리가 작품을 보는 시각이 비슷하구나 하고 느끼죠. 그리고 저희는 서로 많이 맞춰주려고 해요. 이 장면에선 조명으로 힘을 주고 싶다, 그럼 이 친구한테 부탁해요. 미안하지만 여기선 이런 걸 하고 싶으니까 양보해달라고. 반대로 영상이 돋보여야 하는 장면에서는 제가 좀 빠져주고요. 예전엔 조명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내 것만 고집했어요. 근데 일을 할수록 느끼는 점은 조명은 공연의 한 부분이라는 거예요. 그건 영상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이 친구하고는 그런 커뮤니케이션이 참 잘돼요.  
정재진    구 감독님은 영상의 에너지가 뭔지 잘 아세요. 영상 활용 포인트를 아시니까 공연에서 영상을 적절히 잘 살려주시죠. 아이디어도 많이 주시고요. 작품을 맡았을 때 조명디자이너가 구 감독님이라고 하면 굉장히 안심이 돼요.  

많은 사람들이 두 분의 호흡이 빛났던 작품으로 <서편제>(2012)를 꼽을 것 같아요. <서편제>는 한국적인 영상미가 잘 살아난 아름다운 무대였죠.
정재진    저도 <서편제> 때 가장 큰 전율을 느꼈어요. 그 전율을 느끼기까진 무진장 고생했지만요. (웃음) <서편제>는 앙코르 공연에서 저만 새롭게 합류했던 거라 부담이 엄청났거든요. 감독님이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이지나 연출님이 회의 첫날 스태프들 앞에서 저보고 영상을 잘못하면 매장시킬 거라고 하셔서 압박감에 만날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러면서 작업했어요. 영상에 쓴 수묵화가 300장 정도 되는데, 그거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며 다 손으로 그린 거예요. 그때 다크서클이 얼굴 끝까지 내려왔어요. 그렇게 고생하고 나서 첫 공연이 올라가는데 눈물이 저절로 나더라고요.
구윤영    이지나 연출님은 원래 말씀을 세게 하세요. 저나 정 감독이나 욕심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아시기 때문에 센 말로 저희를 자극하시는 거죠. 그래서 이지나 연출님과의 작업은 정말 너무 힘들어요. (웃음) 저는 작업 끝날 때마다 선생님께 그래요. 너무 힘들어서 연출님하고 더는 작업 못하겠다고. 근데 왜 또 마약같이 이지나 연출님과 작업하게 되냐면, 막상 작품을 올려보면 그만한 작품을 만나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텔 미 온 어 선데이>, <에비타>, <광화문연가>…, 연출님과 같이했던 작품은 한 번도 실패했던 적이 없어요. 아, 제가 살면서 딱 한 번 제 자신을 칭찬해줬던 적이 있는데, 그것도 연출님과 했던 작품이에요. <바람의 나라> 전쟁 신, 그 장면은 지금 봐도 내가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싶을 만큼 멋있어요. (웃음) 

이건 정말 최고였다 싶은 상대의 작업은 뭔가요?
정재진    구 감독님이 베스트로 꼽은 <바람의 나라>가 감독님 최고의 작품 아니었나 싶어요. 전쟁 신은 저도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라고 생각하고요. 사실 이번 <바람의 나라>(2014) 재공연에서 전쟁 신에 영상으로 끼어들어 보려고 했다가 바로 포기했어요. (웃음)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영웅>의 조명 디자인도 좋아해요. 제한적인 세트 안에서 빛으로 공간을 깊이 있게 표현한다는 게 대단한 것 같아요. 요즘 창의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독창성을 좇다 정작 중요한 기본을 놓치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존경하는 분들은 항상 기본이 중심에 서 있어요. 그래서 어떤 작품을 해도 흔들림이 없죠. 구 감독님도 그런 분이시고요. 
구윤영    제가 정 감독을 추천할 때 항상 하는 말이 창의적인 소스를 만들어낼 줄 아는 디자이너라는 거예요. 이 친구는 기존에 있는 이미지를 변형해서 쓰는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그림을 다 그려요. 그리고 정 감독은 순발력이 좋아요. 현장에서 연출이 뭘 요구하면 그걸 빠르게 해내죠. 이 친구의 그런 장점이 가장 돋보였던 작품이 <서편제>고요. <서편제> 영상은 정말 아름답지 않았나요? 정 감독이 아까 <서편제> 때 무척 고생했다고 얘기했는데, 저는 정 감독이 고생한 덕분에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웃음) <서편제>의 빈 무대를 영상이 많은 부분 채워주니까, 전 편했죠. <서편제>는 이지나 연출님, 박동우 감독님(무대디자이너), 저, 정 감독, 이렇게 네 사람의 합이 가장 잘 맞았던 작품 같아요.



함께 나누는 고민 

지금보다 더 오래도록 디자이너로 살아가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세요?
구윤영    저는 어려서부터 평생 조명디자이너로만 살고 싶었어요. 교수 같은 직책 맡지 말고 오로지 디자이너로만 살자, 그렇게 다짐했어요. 왜냐면 저는 제가 월급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제 스스로 절실하지 않으면 절실한 빛이 안 나올 것 같아서요. 이십몇 년 동안 용케 살아남은 걸 보면, 죽도록 열정적으로 일했던 거죠. 그런데 3년 전인가, 4년 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작품을 망치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요. 어떤 작품을 맡으면 두려워야 하잖아요? 근데 두렵지 않으니까 노력을 덜 하게 되더라고요. 이 정도만 하면 되겠다, 그 선을 아는데 죽을 듯이 노력을 하겠어요? 점점 게을러지는 거죠. 정형화된 틀에 갇혀 새로운 걸 못 찾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 이건 일만 그런 게 아니라 요즘 제 인생 전반이 그런 것 같아요. 남자 문제만 해도, ‘남자는 다 똑같잖아?’ 이러고 말거든요. 그러니까 연애를 못하죠. (웃음)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정상을 지키는 대단한 분들을 보면 항상 자기 안의 벽을 깨고 새로운 걸 얻잖아요. 저도 뭔가 도전하긴 해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재진    와, 저는 감독님의 그런 고민이 부러워요. 전 아직 제 색깔을 갖는 것도 한참 멀었는데. 감독님이 말씀은 이렇게 하셔도, 항상 뭔가를 얻기 위해 노력하세요. 극장에서 틈날 때 책 읽는 사람은 구 감독님밖에 없을걸요? 
구윤영    아니, 요즘엔 책도 잘 안 읽어요. 애니팡과 캔디 크러쉬(모바일 게임)에 빠져서. (일동 웃음)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서 후배 정재진 감독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구윤영    지금 정 감독 눈에는 일밖에 안 보일 거예요. 그 나이 대엔 저도 그랬으니까. 그땐 나 혼자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일에만 몰두했어요. 근데 일을 할수록 제가 할 수 있는 건, 전체의 오십 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디자인을 완성시켜주는 건 오퍼레이터니까요. 왜냐면 제가 아무리 디자인을 잘했다고 해도 현장에서 작동이 제대로 안 되면 그 느낌을 못 살리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사람이 재산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팀이 잘 돌아가기 위해선 각 크루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끌어주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현장에선 야단을 많이 치게 되니까 나중에 그걸 푸는 시간이 필요해요. 저희 팀원들은 대부분 남자니까 저는 주로 술로 회포를 풀어요. 공연 끝나고 술 한잔하면서 ‘내 마음 알지?’ 그러는 거죠. 너희가 나한테 날개를 달아주지 않으면 나는 날 수 없다면서. (웃음) 회포를 푸는 데는 아무래도 술이 최고인데, 정 감독은 채식주의자에 술도 안 마신단 말이죠. 자기 사람을 챙기는 정 감독만의 방법을 찾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하나. 예전엔 후배들에게 장애물을 비켜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줬어요. 힘들 땐 이렇게 피해 가라고 알려줬죠. 근데 부딪칠 거 다 부딪쳐봐야 깨달음을 얻고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엔 후배들한테 그래요. 뭔가를 당해야 한다면 당하라고. 대신 다시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고요. 정 감독도 어차피 당해야 할 일이라면, 멋지게 기꺼이 맞섰으면 좋겠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0호 2014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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