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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눈앞에 자막이 둥둥…장벽 허물기 위한 국립극단의 새로운 도전

글 |이솔희 사진 |국립극단 2023-12-22 819

지난 10월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당신에게 닿는 길>은 기후 위기로 인해 인류의 종말을 맞이한 연극 작가의 이야기다. 2023 오늘의 극작가상, 2022 제40회 대한민국연극제 희곡상을 수상한 한민규 극작/연출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1막에서는 기후 위기를 주제로 작품을 집필하던 작가가 점차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깨닫는 2023년의 상황을, 2막에서는 급격한 기온 상승으로 인해 종말이 눈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도 마지막까지 연극을 선보이는 2043년의 상황을 보여주며 관객이 기후 위기를 감각할 수 있게 했다. 위기에 빠진 지구를 더 이상 외면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일깨워주는 동시에, 차별, 연대, 공생, 동물권, 연극의 존재 이유 등 다양한 키워드를 무대 위에 꺼내 놓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당신에게 닿는 길>이 공연된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은 무대 및 객석의 자유로운 배치가 가능한 블랙박스형 공연장이다. <당신에게 닿는 길>도 가로로 길게 뻗은 무대의 양 끝에 곡선형의 벽면을 설치하고, 그 양편에 객석을 설치한 독특한 구조로 공연장 내부를 꾸며 관객과 한층 가까이서 호흡했다. 마주 보고 있는 객석 구조 특성상 자연스럽게 맞은편 관객에게도 시선이 갔는데, 곳곳에 독특한 생김새의 안경을 착용한 채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들이 이 ‘독특한 안경’을 착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안경의 정체는 ‘스마트 글라스’다. 스마트 글라스는 공연 대사, 음향 효과 등 공연을 관람할 때 관객이 습득해야 하는 정보를 한글 자막으로 표기해 청각, 언어장애인의 공연 관람을 돕는 안경 형태의 기기다. 안경을 착용하면 오른쪽 렌즈에 자막해설 화면이 띄워지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당신에게 닿는 길>은 국립극단이 제작한 작품인데, 스마트글라스의 도입은 국립극단 입장에서도 새로운 시도였다. 스마트글라스 도입을 주도한 국립극단의 강현정 프로듀서, 김나래 하우스매니저는 “이번이 첫 시도였지만, 추후 좋은 서비스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자신한다”고 입을 모았다.

 

자막 서비스를 운영하는 방식은 크게 개방형과 폐쇄형으로 나뉜다. 공연장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자막을 송출해 관객 모두가 자막을 볼 수 있는 형식이 개방형, 태블릿 등의 기계를 개개인에게 제공해 제한적으로 서비스하는 형식이 폐쇄형이다. 국립극단은 주로 개방형 방식을 주로 사용 해왔다. 하지만 <당신에게 닿는 길> 무대 구조의 특성상 어느 위치에 모니터를 설치하든 시야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다른 방안을 찾던 도중 김나래 하우스매니저가 우연히 부산에서 공연된 한 연극에서 스마트 글라스를 도입한 적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 길로 즉시 스마트 글라스 전문 업체를 찾아 나섰다.

 

 

스마트 글라스는 원래 AI를 기반으로, 음성을 인식해 이를 텍스트로 구현해 주는 기계다. 하지만 공연 진행 시 배우의 목소리와 음향 효과가 겹쳐 대사가 자막으로 제대로 옮겨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와 배경 음악, 효과음 등을 자막으로 표기해 관객에게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합쳐져 결국 스마트 글라스용 자막해설 스크립트를 별도로 제작해 기기에 프로그래밍하고, 이를 공연 중 재생하는 방법을 택했다. 스마트 글라스의 기본 세팅은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처럼 텍스트가 화면 가득 보이는 형식이었지만 가독성을 높이고 눈의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영화 자막처럼 최대 두 줄을 넘지 않게 조정했다. 스마트 글라스 이용 관객이 최상의 컨디션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글자 크기, 색깔 등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부분도 여러 차례 손보는 등 서비스를 도입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는 것이 강현정 프로듀서, 김나래 하우스매니저의 설명이다.

 

청각 정보를 텍스트로 설명해 준다는 점도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다. <당신에게 닿는 길>은 폭풍, 폭우 등 자연 현상의 소리,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 등 재난 상황에서 접할 수 있는 여러 소리를 생생하게 구현해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은 자막해설을 통해 이와 같은 음향 효과를 재치 있게 구현했다. 비가 내리는 장면에는 음향 효과를 뜻하는 스피커 모양 이모티콘과 비를 뜻하는 우산 모양 이모티콘을 함께 표기하는 식으로 말이다. 대사와 음향 효과를 동시에 표기하는 방식을 통해 스마트 글라스 이용 관객이 공연을 한층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번 공연에서 스마트 글라스를 통해 자막해설 서비스를 제공하는 ‘접근성 회차’는 삼 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됐지만, 두 사람은 유의미한 시도였다고 자평했다. “자막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공연과 자막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용자분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셨다. 스마트 글라스 제공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장애인 관객도 자신의 편의에 맞춰 좌석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오기까지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연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안할 예정이다.”(김나래 하우스매니저)

 

“장애인 관객도 어떠한 제한 없이 원하는 날에, 원하는 컨디션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연 관람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 국립극단 역시 그 변화에 일조할 수 있도록 노력을 이어갈 계획이다.”(강현정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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