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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오페라의 유령③ - 크리스틴과 유령의 의상 [No.226]

글 |안세영 사진 |에스앤코 2023-07-26 2,050

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프리마돈나로 성장하는 크리스틴과 그의 비밀스러운 음악 스승 유령. 이들의 캐릭터는 벨 에포크 시대의 화려함을 재현한 매혹적인 의상으로 완성된다.

총 220여 벌에 달하는 <오페라의 유령>의 의상은 이 작품의 무대와 의상을 모두 디자인한 마리아 비욘슨의 유산이다.

마리아 비욘슨의 어시스턴트로 시작해 35년째 <오페라의 유령>의상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협력 의상디자이너 질 파커에게 크리스틴과 유령의 의상에 숨은 디테일에 대해 들어보았다.

 

 

▲ 협력 의상디자이너 질 파커(Jill Parker)

 

 

“<오페라의 유령>의상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리아 비욘슨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의 창의적인 디자인은 의상의 심장이라 할 수 있죠. 의상에 사용되는 천 가운데 일부는 초연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유령의 테일 슈트와 크리스틴의 푸른 버슬 드레스에 사용되는 천이 그 예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더 나은 천을 찾아 대체하기도 합니다.

<오페라의 유령>의 의상은 계속 이런 식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제가 마리아와 함께 일하면서 얻은 가장 소중한 가르침은 <오페라의 유령>에 참여하는 뛰어난 장인과 제작자의 의견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오페라의 유령>의 의상이 수십 년이 흘러도 오리지널의 탁월함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살아 있는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의상 제작자의 자율성을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페라의 유령>의 의상을 제작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 자부심이 의상에 반영되어 무대에서 스펙터클한 장관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Think of Me

 

크리스틴은 총 11벌의 의상을 입는데, 그중 첫 번째가 오페라 <한니발>의 무대 의상입니다. 리허설 도중 프리마돈나 칼롯타가 극장을 떠나자 발레 단원이었던 크리스틴이 칼롯타를 대신해 무대에 서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크리스틴이 ‘Think of Me(생각해 줘요)’를 부르면서 발레 단원 의상 위에 화려한 치마를 덧입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앞서 칼롯타가 입은 것과 같은 디자인의 이 치마에는 다양한 인도산 천과 수술이 사용됩니다. 앞치마와 허리 뒤로 늘어트린 워터폴 백은 인도의 전통 의상 사리로 만들고, 밑단은 각양각색의 인도산 천을 모아 꿰맨 뒤 주름을 잡아 완성합니다. 빨강색, 초록색, 금색의 선명한 색감과 정교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이 의상은 따뜻한 빛깔의 조명과 만나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The Phantom of the Opera

 

유령이 처음으로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그는 검은 슈트에 망토를 두르고 있습니다. 이 의상은 유령이 자신의 흉측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는 가면과 더불어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완성합니다. 완벽하게 재단된 테일 슈트는 유령의 까다로운 성격을 반영하죠. 저는 이 슈트가 유령에게 자신을 숨기는 또 다른 가면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망토는 질 좋은 양털로 만들어지며 고풍스런 흑옥 구슬을 수놓아 장식합니다. 흑옥 구슬은 19세기에 매우 인기 있는 장식 소재였고, 특히 상복에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흑옥 구슬의 검은 광택은 어둡고 복잡한 유령의 캐릭터와 잘 어울립니다.

 

 

 

 

All I Ask of You

 

전통적인 18세기 오페라를 모방한 <일 무토>의 가볍고 코믹한 분위기는 위협적인 유령의 실체와 대조를 이룹니다. 크리스틴은 이 오페라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는 소년 역할을 맡지만, 그의 스승 유령의 계략으로 공연 도중에 주인공 백작 부인으로 역할이 바뀝니다. 이에 따라 크리스틴은 18세기 로코코 시대에 유행했던 좌우로 넓게 부풀린 파니에 스커트로 의상을 갈아입습니다. 백작 부인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기 전, 크리스틴은 오페라 하우스 옥상에서 라울과 함께 ‘All I Ask of You(바람은 그것뿐)’를 부릅니다. 분홍색, 파랑색, 은색이 어우러진 부드러운 색조의 드레스는 이 장면의 로맨틱한 분위기와 잘 어울릴 뿐 아니라 크리스틴이 곧 오페라 무대에서 보여줄 우아한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Masquerade

 

붉은 망토와 해골 가면이 인상적인 유령의 가장무도회 의상은 ‘적사병The Red Death’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적사병은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소설 『적사병 가면』에 나오는 허구의 전염병입니다. 유령이 왜 위협적인 해골 가면을 쓰고 나오는지 이제 아시겠죠? (편집자 주: 소설 속에서 귀족들은 적사병으로 죽어가는 백성을 외면하고 외딴 사원에서 호화로운 가장무도회를 즐긴다. 하지만 피에 젖은 옷을 입고 시체처럼 기괴한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남자가 등장하여 모두를 공포에 빠트린다. 남자의 정체는 적사병 그 자체로 밝혀진다.) 가스통 루르가 쓴 뮤지컬의 원작 소설에도 유령이 적사병 분장을 하고 가장무도회에 등장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뮤지컬 속 유령의 가장무도회 복장은 원작 소설의 묘사에 기반합니다.

 

 

 

 

Masquerade

 

가장무도회 장면에서는 다양한 색과 패턴을 조합하는 데 뛰어났던 마리아 비욘슨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어릿광대의 의상에는 약 100여 개의 천이 사용되었죠. 달과 별로 장식한 크리스틴의 가장무도회 의상은 이 순수한 소녀의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 즉 그가 꿈을 이뤄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드레스의 몸통 부분인 보디스는 파랑색과 분홍색으로 옴브레 염색(색채의 농담을 이용해 사염하거나 날염하는 것)을 한 실크 새틴 위에 손으로 일일이 구슬을 달아 완성합니다. 치마 역시 파랑색과 분홍색 튤을 겹겹이 두른 형태이며, 그 위에 옴브레 염색을 하고 구슬을 단 오간자 스커트를 덧입습니다. 화려하게 치장한 군중 속에서도 크리스틴은 남다른 존재감을 뽐내는데, 의상 자체가 빛을 발하듯 관객의 시선을 잡아끌도록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Twisted Every Way 

 

크리스틴이 극장 매니저 사무실에서 ‘Twisted Every Way(모든 것이 엉망)’를 부를 때부터 아버지 묘소에서 ‘Wishing You Were Somehow Here Again(다시 돌아와 주신다면)’을 부를 때까지 착용하는 드레스입니다. 크리스틴의 의상 가운데 드물게 오페라 무대 의상이 아닌 평상복으로,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파리의 전형적인 복식을 보여줍니다.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코르셋 달린 보디스와 허리 뒤쪽을 풍성하게 부풀린 버슬 스커트가 특징이죠. 이 드레스에는 넝쿨 식물을 연상시키는 플로럴 트렐리스Floral Trellis 패턴의 푸른 실크 천이 사용되는데, 이 천은 1986년 런던 초연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여전히 초연 때와 같은 제작소에서 만들어진 천을 사용하고 있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6호 2023년 7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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