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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뮤지컬 VS 뮤지컬영화③ - <영웅> 한국 뮤지컬영화의 가능성 [No.221]

글 |최영현 사진 |CJ ENM, 에이콤 2023-03-09 1,986

<영웅> 
한국 뮤지컬영화의 가능성

 

지금까지 국내에서 제작된 뮤지컬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로 그 편수가 적다. 게다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빠르게 잊히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에서 동명의 창작뮤지컬을 영화화한 <영웅>은 한국 뮤지컬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창작뮤지컬에서 뮤지컬영화로


창작뮤지컬 <영웅>은 하얼빈 의거를 단행한 안중근 의사의 생애 마지막 1년을 조명한 작품으로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되었다. 2009년 초연된 <영웅>은 그즈음 인기를 끌었던 대극장 창작뮤지컬과는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었다. 당시 대극장 창작뮤지컬은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나 영화를 뮤지컬화한 무비컬이 주를 이뤘다.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화성에서 꿈꾸다> <남한산성> <이순신> 등이 있었지만 <영웅>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영웅>은 많은 제작비를 투입해 창작뮤지컬에서 볼 수 없었던 무대 연출로 차별화를 꾀했다. 독립군과 일본 경찰의 추격 장면을 안무로 표현하고, 실제와 비슷하게 제작된 기차 세트와 영상을 결합해 생동감 넘치는 장면을 연출해 호평받았다. 요즘은 영상을 활용한 연출이 흔하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연출 방식이었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인간적인 고뇌를 부각해 미화 논란을 낳았다. <영웅>은 재연을 거듭하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장면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 결과 초연 이후 지금까지 아홉 차례나 공연되어 대극장 창작뮤지컬로서 롱런 중인 몇 안 되는 작품이 되었다. 


뮤지컬영화 <영웅>은 <해운대> <국제시장>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윤제균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영웅>은 윤제균 감독의 첫 뮤지컬영화일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 역사상 창작뮤지컬을 뮤지컬영화로 만든 첫 사례다. 주인공 안중근 역할은 원작 뮤지컬의 초연부터 참여한 정성화가 맡았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목격한 궁녀 설희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김고은이 캐스팅됐다. 영화는 2019년 하반기에 촬영을 마치고 이듬해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2022년 12월에 개봉했다. 영화 각색은 윤제균 감독이 직접 맡았는데, 인물 서사에 디테일을 더해 행동의 개연성을 살렸다. 대표적인 인물이 설희다. 뮤지컬에서는 설희가 이토 히로부미의 곁에 머물면서도 그를 살해하지 않는 이유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윤제균 감독은 설희에게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가는 이유를 알아내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이를 위해 설희는 이토 히로부미 곁에서 독립군을 위한 정보를 수집하며 때를 기다린다. 하얼빈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목적이 한일합병이라는 것을 알게 된 설희는 비로소 그를 향해 칼을 든다. 이러한 설정은 독립군 정보원으로서 설희의 목표를 뚜렷하게 만들었고, 관객이 설희의 행동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안중근은 부연 설명이 더해졌다.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의 입을 빌려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행적을 짧게 언급하고,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참여했던 전투 장면을 추가해 군인 안중근의 모습을 보여준다. 둘 다 뮤지컬에 없는 장면이다. 이와 반대로 이토 히로부미는 뮤지컬보다 단편적인 인물로 바뀌었다. 뮤지컬의 이토 히로부미는 종종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조선을 얕잡아보면서도 ‘조선은 무시하기엔 큰 나라’라는 이중적인 발언도 한다. 또 설희가 자신을 살해하려다 실패했을 때는 오히려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 산다. 하지만 영화는 논란의 여지를 차단하려는 듯 설정을 단순화하여 한일합병에 대한 야욕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각색이 인물의 재발견이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영화 속 인물의 설정이 바뀌었다기보다 부연 설명이 추가된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명사수 조도선은 러시아인과 결혼해 세탁소를 운영하지만, 이야기 진행에는 큰 차이가 없다. 안중근도 마찬가지다. 뮤지컬보다 설명이 덧붙여졌지만 인물의 본질에는 변화가 없다. 이와 달리 흥미로운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도 있다. 바로 왕웨이, 링링 남매다. 뮤지컬에서 둘은 독립군을 돕는 중국인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영화에서는 안중근의 독립군 동지 마두식과 마진주 남매로 바뀌었다. 윤제균 감독은 이들의 국적을 바꾼 가장 큰 이유로 언어 문제를 꼽았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뮤지컬과 달리, 한국어와 일본어가 사용되는 영화에서 중국어까지 등장하는 것은 혼란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남매의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뮤지컬과는 다른 인상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왕웨이가 죽기 직전 끝까지 안중근을 배신하지 않겠다며 부르는 ‘흔들림 없는 태산처럼’을 영화에서는 마두식이 일본 경찰에게 고문받고 죽기 직전에 부르는 노래로 연출해 독립운동가들의 꺾이지 않는 의지를 보여준다. 뮤지컬에서 링링은 안중근을, 유동하는 링링을 각각 짝사랑하는데, 영화는 마진주와 유동하가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바꾸고 개인의 행복을 꿈꿀 수 없는 비극적인 시대의 아픔을 보여준다. 

 

같은 장면, 새로운 화면


시각적인 측면에서 영화는 뮤지컬에 비해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장점을 활용했다. 사실적인 장면을 위해 1900년대 초 러시아 건축 양식이 그대로 보존된 라트비아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또 하얼빈역은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세트를 짓고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입혀 당시 모습을 그대로 살려냈다. 실제 눈 쌓인 자작나무 숲에서 펼쳐지는 ‘단지동맹’,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벌어지는 추격 장면, 성당에서 마두식의 죽음을 추모하다 광활한 설원으로 순식간에 공간을 이동하는 ‘영웅’,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으로 출발하기 전 일본군이 대규모로 집결한 ‘출정식’ 장면은 뮤지컬에서는 볼 수 없는 사실적인 미장센과 큰 스케일을 보여준다. 또 설희가 하얼빈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마지막으로 ‘내 마음 왜 이럴까’를 부르는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잡아내 극적으로 연출하고 기차 밖의 풍경을 CG로 처리해 뮤지컬에서 볼 수 없는 영상미를 보여준다. 이와 반대로 대부분의 솔로곡은 인물의 감정선에 집중하기 위해 롱테이크와 클로즈업으로 촬영했다. 안중근이 하얼빈 의거 하루 전날 부르는 ‘십자가 앞에서’와 사형 집행장에서 부르는 ‘장부가’가 대표적이다. 특히 이 두 장면은 인물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잡아내며 비장미를 더했다. 


<영웅>은 롱런 창작뮤지컬을 영화로 옮긴 만큼 이전의 뮤지컬영화와 비교해 뮤지컬적인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기술적으로도 뮤지컬영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것이 녹음 방식이다. <영웅>은 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처럼 노래를 현장에서 녹음했는데, 이는 한국 뮤지컬영화 최초의 시도다. 흥행 성적도 역대 최고다. 2022년 개봉 첫날에만 10만 명을 동원했고, 2023년 1월 22일 현재 누적 관객 270만 명을 넘어섰다. 뮤지컬영화로서는 좋은 성적이다. 뮤지컬영화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영웅>은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며 한국 뮤지컬영화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Film vs Musical

 

 

국내 진공 작전
영화에는 안중근과 관련해 뮤지컬에 없는 두 장면을 추가했다. 하나는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전투에 참여한 장면이다. 영화는 초반에 안중근이 국내 진공 작전을 수행하는 모습을 추가하고 짧지만 강렬한 전투 장면으로 그가 군인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안중근이 풀어준 일본군 전쟁 포로 때문에 독립군의 위치가 노출되어 큰 피해를 보았던 실화도 반영했다. 또한 독립군을 쫓는 일본 경찰 치바를 안중근이 풀어준 일본군 전쟁 포로로 설정해 두 사람의 악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대 향한 나의 꿈
영화에서 새롭게 추가된 노래다.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 귀족을 모아 놓고 조선을 발판 삼아 만주를 손에 넣으려는 자신의 야망을 노래하면, 곧바로 설희가 부르는 ‘그대 향한 나의 꿈’이 이어진다. 이 노래는 자신의 꿈을 잃어버렸다는 설희의 고백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앞서 이토가 자신의 야욕을 당당하게 드러낸 것과 상반된다. 또 독립군 정보원의 임무를 위해 이토의 측근이 된 설희는 이 노래를 부르며 궁녀였던 과거는 잊고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를 내비친다. 설희의 상상처럼 표현된 이 장면은 특수 효과를 활용해 색다른 장면을 연출했다.

 

 

그날을 기약하며
뮤지컬의 1막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곡이다. 이토가 하얼빈을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안중근과 독립군 동지들은 곧바로 암살 계획을 세우고 ‘그날을 기약하며’를 부른다. 독립운동가들이 거사를 앞두고 사진을 찍었던 것처럼 안중근과 동지들도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장면이 마무리된다. 영화는 사진을 찍는 대신, 벽 한쪽에 걸린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으로 연출했다. 후렴 부분에 이르러서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조선인들이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와 노래한다. 조국의 독립을 바라는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과 열망을 화면에 고스란히 담았다. 

 

 

누가 죄인인가
안중근이 재판장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유 15가지를 설명하는 노래다. 뮤지컬에서는 조선인이 한 명도 없는 재판장에서 안중근이 이토의 죄상을 낱낱이 파헤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 일본인을 포함한 외국인 방청객이 ‘누가 죄인인가’를 외치며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의 만행에 의문을 제기한다. 영화는 재판장 안팎을 교차해 보여준다. 재판장 밖에는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와 조선인들이 모여있다. 영화는 재판장 밖의 조선인들에게 ‘누가 죄인인가’를 외치게 해 일본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1호 2023년 2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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