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김태영 무대디자이너와 이우형 조명디자이너 콤비는 10년이 넘는 오랜 시간 꾸준히 파트너십을 유지해오고 있다. 국내 뮤지컬계에 크고 작은 이슈를 불러 모았던 화제작 <헤드윅>, <벽을 뚫는 남자>, <조로> 등이 두 사람의 합작으로 탄생한 작품. 공연계의 ‘톰과 제리’로 불린다는 두 파트너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해 솔직히 들려준 이야기를 기록했다.
뉴욕에서 시작된 인연
두 분은 뉴욕 유학 시절 학교에서 처음 만나셨다죠? 1990년대 당시에 무대예술 전공 유학생은 많지 않았을 텐데, 좀 특별한 인연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우형 한국에서 10년 동안 조명디자이너로 활동하고, 경력 11년 차에 뉴욕에 갔어요. 뮤지컬 본고장에서 테크닉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일을 그만두고 유학을 갔던 거죠. 그때 동양인 학생은 나 혼자였어요. 학교에 들어간 지 2년쯤 됐을 때, 선생님이 “너하고 똑같이 생긴 애가 올 거다” 그래요. 동양 애가 오나보다 생각했는데, 그게 이 친구였죠. 나중에 족보를 따져보니 제 초등학교 후배더라고요. 인연이죠.
김태영 “너 술 잘 먹어?” 이게 형의 첫 질문이었어요. “네, 잘 마십니다” 그랬더니 “그래? 난 잘 못 마시는데” 그래요. 이상한 사람이죠.(웃음) 한국에서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무대 공부를 하겠다고 바로 유학을 갔던 터라, 무대에 대해 잘 몰랐어요. 형은 저보다 레벨이 한참 위였으니까, 항상 배운다는 마음으로 졸졸 따라다녔죠.(웃음)
이우형 이 친구가 저한테 아부를 떨었어요. 난 형만 믿어, 그러면서. 웬수죠. 태영이가 무대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포트폴리오를 봤을 때 가능성 있겠다 싶었어요.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독특했고, 직관력도 있었죠.
김태영 형이 첫날 해줬던 말 중 하나가 항상 노트하는 습관을 가지라는 거였어요. 꿈에서도 아이디어가 떠오를지 모르니 머리맡에 펜과 노트를 두고 자라고 했죠. 그때부터 노트하는 습관을 들였어요. 형이 오프브로드웨이 작업할 때, 트럭을 몰고 조명기 렌탈하러 다니던 생각이 나네요. 예산이 적다보니 발로 뛰어다녔던 건데, 작업을 하다보면 결국엔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았죠. 새벽 네다섯 시까지 셋업하다 학교 가서 공부하고, 수업 끝나면 또 작업하고. 그때 진짜 고생 많이 했어요.
긴 시간 같이 고생하면서 전우애 같은 게 생겼겠어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창작 파트너로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두 분의 첫 작업이 그해의 화제작 <헤드윅>(2005)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김태영 형하고 처음 작업했던 건, 무용 공연 <유리조각>이에요. 창무회의 25주년 기념 공연을 같이하자고 형이 연락을 주셨죠. 그러고 나서 무용을 한두 편 더 했고요. 뮤지컬을 같이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어요. 삼 년 정도 걸렸나? 어쨌든 뮤지컬 첫 작품이 <헤드윅>이에요. 프로듀서가 전작 <페퍼민트> 조명을 좋아해서 형은 콜을 받았고, 저는 프로듀서와의 다른 인연으로 합류하게 됐죠. 운 좋게 첫 작품이 잘됐어요.
이우형 <헤드윅>은 작업 과정도 순조로웠고, 결과도 대박이었죠. 흔히들 열정이 중요하다고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열정을 품고 작업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별로 없어요. 하지만 <헤드윅>은 작품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다 열정적이었어요. 이 친구는 사비를 들여 미국으로 답사도 다녀왔는데, 그럼 말 다한 거죠. 그건 진짜 열정이에요, 열정.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보통 정도로 준비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죠.
김태영 제 욕심에 자료 조사를 하러 미국에 갔던 거예요. 게이 바도 가보고, 지문에 나온 장소들도 다 가보고, 직접 둘러보면서 리서치 했죠. 그때 경비로 디자인료보다 더 많은 돈을 썼어요.(웃음) <헤드윅>을 하면서 하나 놀랐던 건, 형은 작품 공부를 진짜 많이 해 온다는 점이에요. 대본에 너무 많은 노트가 돼있어서 연출이 두려워할 정도였죠.(웃음) 그때 저희가 색감이나 질감에 대한 회의를 진짜 많이 했는데…, 사실 세트를 얼마나 살리느냐는 조명디자이너에게 달려있어요. 빛을 어느 각도에서 어떻게 비추느냐에 따라서 세트를 살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헤드윅>은 원세트 무대니까 조명의 역할이 더 중요했죠.
<헤드윅>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으세요?
이우형 공연 후반 ‘Hedwig`s Lament’ 신이 끝나면, 무대가 암전되는 동시에 한 줄기 하얀 빛이 무대를 가로질렀던 적이 있어요. 빛으로 헤드윅의 내적 갈등과 외적 상황을 연결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셋업 때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린 거죠. 그걸 일명 ‘빨랫줄’ 조명이라고 불렀는데, 스태프들이 그 장면에서 탄성을 질렀어요. 세트가 나한테 귀한 아이디어를 준 거죠. <헤드윅>이 지금까지 우리가 한 작품 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오리지널 공연의 세트하고 전혀 다른 스타일로 갔으니까. <벽을 뚫는 남자>(이하 <벽뚫남>)도 잘했고.
김태영 형이 색을 표현하는 능력은 타고났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다들 빛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겠죠. 이왕 순위를 매긴 거 한 작품 더 뽑으라면, <이블데드>도 괜찮았던 것 같아요.
이우형 그럼 <이블데드>를 동메달로 하자고. 금메달 <헤드윅>, 은메달 <벽뚫남>, 동메달 <이블데드>, 이거 괜찮네.(웃음) 우리의 넘버 쓰리 <이블데드>를 할 때, 이 친구 저한테 삐쳤었어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다 의견이 안 맞으니까 확 가버리더라고. 물론 제가 심하게 큰 소리를 내긴 했어요.(웃음) 개성 뚜렷한 사람들끼리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 주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간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에요. 특히 디자이너끼리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부딪치게 되는 일이 많단 말이죠. 디자이너가 자존심이 없으면 멋이 없지만, 어떤 때는 공연을 위해서 양보가 필요해요. 이 친구하고는 자존심 문제가 금방 해결돼요. 그래서 같이하면 좋죠.
<헤드윅>은 초연부터 지금까지 쭉 맡아 오셨다는 점에서 더욱 애착이 가는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요.
김태영 재공연은 고통스러워요. 지난 시즌에서 이미 아이디어를 다 쏟아냈는데, 새 시즌이 시작되면 비주얼적으로 달라졌다는 느낌을 줘야 하니까, 힘들죠. 형하고 <헤드윅>할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대본을 가지고 회의를 많이 해요.
이우형 나도 재공연 작업할 때가 제일 고통스러워요. 먹고살아야 하니 안 할 수 없어서 하는 거지. 10년 동안 <헤드윅>을 하면서 연출이 두 번 바뀌었어요. 그런데 연출마다 고유의 언어가 있기 때문에 다들 요구하는 게 달라요. 새로 온 연출이 새롭게 바꿔주십시오 하면, 똑같은 재료로 뭔가 변화를 줘야 하는 거예요. 아이디어를 쥐어짜 내야 하죠. 근데 그렇게 해냈을 때의 성취감은 다른 무엇과도 못 바꿔요. <헤드윅>이 올해 1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있는데, 그 작업이 또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헤드윅>은 마니아가 정말 많은 작품이잖아요. 나는 진짜 긴장하고 있어요.
서로 힘을 보태서 앞으로 나아가는 법
앞서 잠깐 언급하셨지만, 두 번째 작품인 <벽뚫남>은 동화적인 색채의 무대세트로 많이 회자됐죠.
김태영 <벽뚫남> 초연을 준비하면서 스태프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오리지널 공연대로 하면 안 된다’였어요. 프랑스 오리지널 공연을 그대로 올리면, 우리 정서하고 안 맞겠다 싶었죠. 또 디자이너로서 내 스타일대로 작업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이우형 초연 때 우리가 애 많이 먹었어요. 이건 비하인드스토리지만, 제작소에서 예산이 안 맞으니까, 디자이너가 요구한 대로 작업을 안 했어요. 셋업 때 세트에 조명을 비춰보니까 애초의 계획대로 안 됐다는 걸 대번에 알겠더라고요. 저렴한 페인트를 쓰면 빛이 잘 안 먹거든요. 근데 그들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제작소를 탓할 순 없죠. 비용을 무리하게 깎으려고 한 우리가 문제지. 대극장 공연이었다면 무대하고 객석 사이에 거리가 있으니까 그나마 괜찮지만, 소극장 공연에서는 디테일한 부분까지 잘 보이거든요. 이거 문제가 심각하다, 당황했죠. 최대한 빛이 살 수 있도록 해서 공연은 올라갔지만, 나나 이 친구나 컬러 감각이 있는 사람들인데, 초연 때는 그 시너지 효과가 안 났어요. 그런데 공연 하는 사람들은 성취감이 없으면 살 수가 없거든요. 이 일을 해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언젠가 재공연이 분명히 올라갈 테니 그때 두고 보자 생각했죠. 그다음 시즌 공연에서 제작사 대표한테 선전포고를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조명기를 다 준비했어요.
공연계의 현주소에서는 적은 예산으로 아이디어 싸움을 해야 하는 게, 작업의 큰 어려움 중 하나일 것 같아요.
이우형 조명은 그래도 좀 괜찮은데 무대 세트는 사실 다 돈이에요. 뮤지컬은 상업 엔터테인먼트이기 때문에, 아무리 상상력이니 뭐니 해도 예산이 없으면 예술을 할 수가 없어요. 디자이너들은 당연히 프로듀서에게 예술적으로 가고 싶으니 제작비를 늘려 달라고 이야기하죠. 그런데 제작비를 운용하는 프로듀서 입장은 우리하고 다를 수밖에 없어요. 프로듀서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래서 제작비로 만날 싸우는 거죠. 내가 원하는 만큼 예산을 쓸 수 있는 날은 아마 안 올 거예요. 그래도 최대한 싸워야죠. 그래야 다음 세대가 좀 더 편하게 작업할 수 있을 테니까.
두 분의 최고 흥행작은 2011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조로> 아닐까요. 라이선스 프로덕션에서 무대를 활강하는 조로의 줄타기 장면이 실현된 건 국내가 유일했다고요.
김태영 웨스트엔드 오리지널 공연에 조로가 27미터 높이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이 있어요. 다른 나라에선 그 장면을 구현 못했어요. 고층 높이에서 활강하는 배우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앵커 볼트를 벽에 심으려면 큰 손상이 가거든요. 저희 <조로>는 개관작이었기 때문에 사전에 극장 측을 설득해서 앵커 볼트를 쓸 수 있는 기둥을 만들 수 있었죠. 그 점에선 유리했지만, 반대로 개관작이었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도 있었어요. 극장이 완공됐을 때 예상과 다른 부분들이 있다 보니, 그에 맞게 수정해야 했죠. 세트가 워낙 커서 제작이 늦어지는 바람에 약간의 우여곡절도 있었고요.(웃음)
이우형 셋업 때 이 친구는 날 피해서 도망 다녔어요. 정해진 날짜에 세트가 안 들어왔거든요. 하루 이틀 늦어지는 건 내가 참고 기다리마, 그랬는데 며칠이 지나도 세트가 올 생각을 안 해요. 조명 작업은 무대 셋업이 돼야 할 수 있단 말이죠. 그런데 세트가 극장에 도착하질 않으니, 제 작업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이 친구는 날 피해서 도망 다니는 거죠. 왜 나만 고통스러워 하냐고, 너도 고통스러우라고 막 괴롭혔어요. 사실 이 친구가 무슨 죄겠어요.
김태영 형이 아니었으면 제때 공연이 못 올라갔을 거예요. 모든 파트들이 밤새운다고 할 때, 형은 다른 사람들이 실수한 것 때문에 왜 당신 몸이 힘들어야 하냐고 밤 안 새우겠다고 그러셨어요. 그러곤 밤도 안 새우고 일주일 만에 다 작업하셨어요. 대단하시죠.
이우형 너 죽고 나 죽자고 하는 거죠. 미국에선 내 경력쯤 되면, 조명디자이너가 메모리할 때 연출이 기침도 못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작업등 켜놓고 메모리를 할 때도 있단 말이죠. 작업등 빛에 조명이 안 보이는데, 그걸 끄면 세트를 세울 수가 없으니까. 예전엔 내가 한국에서 다시는 조명디자이너로 안 태어난다, 그러고 다녔어요. 너무 분하니까. 근데 산전수전을 다 겪으니 화도 안 나요. 화내면 내 시간만 없어진다는 걸 깨달았거든. 지금은 화 안 내고 벌금 받아요. 집에 가면 담배가 여섯 보루 쌓여있어요. 그거 다 벌금으로 받은 거예요.
돌발 변수가 많은 환경에서 작업하기 위해선 서로 간의 신뢰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우형 이 친구는 내 초등학교 후배라서 열 받을 때 욕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같이하는 거예요. 젠틀한 사회에서 아무한테나 그렇게 할 순 없잖아요.(일동 웃음) 작업 의뢰를 받으면, 연출과 무대디자이너가 누군지 확인하고 결정해요. 제가 신참도 아니고 30년 정도 이 일을 했는데, 고통스럽게 일하고 싶지 않아요. 아까 말한 것처럼 공연 일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공연장에서 행복을 찾고 싶어서 하는 건데, 고생할 게 불 보듯 뻔하면 안 하죠. 그래도 김태영 선생은 부지런하게 준비를 해 와요. 그 점이 괜찮죠. 그리고 이 친구하고 같이 작업하면 마음이 편해요. 마음이 편해야 엔도르핀이 돌아서 서로 파이팅할 수 있어요. 우리가 좀 아옹다옹해도, 사람들이 보기에 그 모습이 톰과 제리처럼 좋아 보이니 우리한테 일을 계속 시키는 거겠죠.
김태영 셋업 때 디자이너들끼리 내 것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작업할 때도 있어요. 무대디자이너는 세트 셋업만, 조명디자이너는 포커싱과 메모리만 신경 쓰는 거죠. 형은 제가 놓치는 부분들을 봐주세요. 저 또한 그렇고요. 주위에서 그런 걸 팀워크라고 봐주는 거죠.
언젠가 작업을 같이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있으세요?
김태영 아, 나중에 저희 둘이 공연을 한 편 올릴 거예요. 제가 무대를 하고, 형이 조명을 하고, 연기도 저희가 하는 거죠. 작업하다보면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이 참 멋있어 보이고 부럽거든요. 우리도 나중에 무대에 한번 서보자, 형하고 그런 이야기 많이 해요.
이우형 제 꿈이 원래 개그맨이었어요. 아직 그 미련을 못 버리고 있죠.(웃음) 요즘엔 뭐가 잘 안 외워진다는 게 문젠데, 무료 공연으로 <톰과 제리>를 하면 될 것 같아요.(일동 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5호 2014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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