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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세상을 변하게 한 작은 날갯짓 [No.195]

글 |배경희, 박보라, 안세영 사진 |김현성 stylist | 천유경 hair | 김우준 make-up | 이봄 2019-12-25 7,471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세상을 변하게 한 작은 날갯짓 

 

최근 10년 동안 뮤지컬을 열심히 사랑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매해 12월 눈 내리는 날마다 저절로 이 작품을 떠올릴 것이다. 2010년 처음 관객과 만나 작은 날갯짓으로 관객들의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준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말이다. 10주년을 기념해 지금까지 이 공연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온 9명의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0주년 팀의 든든한 버팀목 

이석준 × 고영빈 × 강필석 



 

이번 시즌 출연을 결정하는 데는 10주년이란 사실이 크게 작용했을까요?

이석준_ 제 경우엔 확실히 그랬죠. 저는 뮤지컬을 안 한 지가 좀 돼서 되도록 저한테 의미 있는 작품만 하려고 하는데, 초연에 참여했던 작품이 10주년을 맞았다는 건 그 의미가 너무 커서 안 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이하 <스토리>)는 초연 때 연출님이 배우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셔서 더 애착이 커요. 드라마 대사처럼 다 같이 공연을 ‘한 땀 한 땀’ 만들어서 감히 내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품이죠. 극 중 토마스랑 앨빈이 종이를 던지는 장면도 오리지널 프로덕션 공연에 없던 걸 저희가 만든 거예요. 초연 첫날이 아직도 기억나는 데, 솔직히 공연 전에는 관객 반응이 어떨지 상상이 안 됐어요. 당시 화려한 뮤지컬이 점점 많아질 때라 아날로그적인 작품은 잘 안 됐거든요. 근데 공연이 끝나고선 이 작품은 그런 유행을 넘어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죠.

고영빈_ 저는 재연 때 이 작품에 처음 참여했는데, 미국에서 1년을 쉬고 온 상황이었거든요. 연습실에서 제 자신을 비롯해 모든 <스토리> 팀 사람들에게 완성도 있는 런스루를 보여준 적이 없어서 첫 공연 날 되게 불안해하면서 무대에 올랐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참 다행히도 관객분들이 제 토마스에서 좋은 부분을 발견해 주셔서 그다음 시즌과 그 다다음 시즌에도 계속 참여할 수 있었어요. 사실 전 세 번째 시즌 때 이 작품을 졸업하게 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10주년 공연까지 함께하게 돼서 되게 고마워요.

강필석_ 저는 두 형들에 비해 늦게 세 번째 시즌에서 <스토리>를 만났지만, 그래도 최근 5년 동안 세 번의 겨울을 이 작품과 함께해서 저한테도 의미가 남달라요. 그리고 석준 형이 하신다니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죠. 형은 이 작품에서 앨빈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같이 호흡을 맞추는 게 정말 재미있거든요. 토마스로서 뭔가 많이 하려고 하지 않아도 공연이 저절로 자연스럽게 흘러가죠. <스토리>는 토마스 시점에서 이야기가 이뤄지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토마스를 이끌어 가는 건 앨빈이잖아요. 석준 형하고 이번 시즌에 투입되는 시기가 좀 달라서 같이 많이 무대에 못 서는 게 아쉬울 뿐이에요.

 

세 분 모두 같이 참여했던 세 번째 시즌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강필석_ 저는 사실 <스토리>를 못할 뻔했어요. 그 시기에 이미 하기로 했던 작품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작품이 엎어지면서 그날 바로 신(춘수) 대표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아…, 그래? 근데 우리도 안 될 것 같은데?” 그러시더라고요. (일동 웃음) 작품이 좋다는 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저한테는 이야기 구조가 조금 낯설게 느껴져서 연습할 때 되게 힘들었어요. 일반적인 기승전결 구조가 아니다 보니 도대체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 연습실에서 석준 형이랑 영빈 형 둘이 연습하는 걸 보고 안개가 걷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이석준_ 그때 저희 팀에서 필석이가 연습이 느린 걸로 유명했는데, 느릿느릿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는 게 참 좋았어요. 공연이 세 번째 시즌까지 오면 어느 정도 틀이 잡혀서 연습할 때 큰 의심 없이 기존에 만들어 놓은 걸 하게 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데 웬 고뇌하는 청년 하나가 들어오니까 연습이 새로운 질문이 되는 거예요. 전 배우가 캐릭터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한 이유를 스스로 찾으려고 하면 그 고민의 무게는 반드시 무대에서도 드러난다고 믿어요. 또 그런 작업을 거쳐야 작품이 잘 안 흔들리고요. 그래서 저도 필석이랑 공연하는 게 좋았는데, 문제는 제가 필석이보다 크잖아요? 얘랑 공연하면 몸집이 작아 보이게 하려고 아주 많이 고생했어요. 특히 어린 시절을 연기할 때는 어깨를 확 움츠리고 거의 무릎으로 걸어 다녔어요. 

강필석_ 형, 저희가 그 정도로 차이가 나진 않아요. 과장이 너무 심하네. (일동 웃음)  

고영빈_ 저도 필석이가 연습실에서 굉장히 많이 고민했던 게 생각나는데, 그 상황에서 선배로서 도움을 줄 수 없는 제 자신이 답답하고 안타까웠어요. 저한테 <스토리>는 제 생각과 너무 비슷해서 본능적으로 이해가 됐던 작품이거든요. 연습실에서 누군가 ‘여기서 이걸 왜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문제 제기를 하면 마음으론 답을 알고 있어도 말로는 설명을 못하겠더라고요. 그 외에 세 번째 시즌의 기억이라면, 실수했던 것만 떠올라요. (웃음) 그리고 석준 형이랑 마지막 공연 때 너무 많이 울었던 것도 못 잊어요. 

 

<스토리>는 이 작품을 아끼는 팬이 많다 보니, 기억에 남은 관객 사연도 있을 것 같아요.

이석준_ 언젠가 한번 엄청 두툼한 편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편지를 이렇게 많이 쓸 수 있나 놀라울 정도였는데, 그분은 몇 년 동안 계속 우울증에 시달려서 오늘 죽을까 내일 죽을까 이 생각만 하고 살았대요. 그러다 뭐에 홀린 듯 우연히 <스토리>를 보고 나서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힘을 얻었다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저는 이 작품에 담긴 내용을 전달했을 뿐인데, 그 시간을 함께 나눈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다음날 공연부터 책임감이 훨씬 더 커지지더라고요. 그리고 <스토리>는 공연할 때마다 관객분들에게 결말 이후에 어떻게 됐을 것 같냐는 질문을 유난히 많이 받아요. 관객들이 엔딩 이후의 이야기를 궁금해한다는 건, 이 인물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고 이 작품이 끝나는 게 아쉽다는 뜻이거든요. <스토리>가 10주년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관객분들의 힘이었다고 봐요. 

강필석_ 제가 기억하는 사연은 한 관객분이 <스토리>를 보고 어렸을 때 친했던 친구를 보러 미국에 다녀왔다는 거예요. 서로 멀리 떨어져 살면서 계속 ‘우리 봐야 하는데’라는 말만 하다가 공연을 보고 나서 지금이 아니면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외에도 <스토리>를 하면 싸웠던 친구랑 화해하게 됐다는 편지 같은 걸 많이 받는데, 공연을 통해 누군가에게 이렇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죠. 

고영빈_ 저도 비슷한 경험이 많아요. <스토리>를 공연할 때는 항상 관객분들에게 힘든 시기를 극복하게 됐다는 편지를 많이 받거든요.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실제 저희 작품처럼 친구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분이 보내주신 편지예요.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친구가 무척 그리웠는데 공연을 보고 나서 많은 위로가 됐다는 사연이었죠. <스토리> 때 받은 편지는 팬레터라기보다 감사의 편지에 가까운데, 두툼한 편지들을 읽고 있으면 저 역시 관객분들에게 감사하고 힘을 얻을 때가 많아요. <스토리>는 진짜 관객과 배우가 서로 힐링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혹시 토마스랑 앨빈처럼 특별한 크리스마스 기억이 있을까요?

이석준_ 어렸을 때 저희 집 형편이 어려워서 주인집 옆에 붙어 있는 셋방에 살았던 적이 있어요. 여섯 살 때였나, 크리스마스 날 주인집 앞에 숯 눈썹을 한 눈사람이 딱 있는데, 너무 부러운 거예요. 그때 당시 눈사람 눈썹은 숯으로 하는 게 기본이었거든요. 그런데 저희 집에는 숯이 없어서 제가 그걸 부러워하니까 형이 두 배 크기의 눈사람을 만들어서 콩자반으로 눈썹을 해놨더라고요. 당연히, 형한테 화를 냈죠. 콩자반 눈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일동 웃음) 

고영빈_ 저는 크리스마스에 얽힌 기억이 거의 없어요. 집안 분위기가 워낙 단출하고 조용조용해서 기념일 그런 게 뭔지 전혀 모르고 살았거든요.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트리 한 번 안 만들어봤던 것 같아요. (이석준 영빈이는 깔끔한 애라 요란하고 번잡한 거 싫어해요. 집에다 트리를 만들라고 하면 억지로 만들긴 해도 아마 치울 때 엄청 괴로워할 거예요.) 아! <스토리> 할 때, 눈 내리던 날 눈 위에 누워 ‘눈 속의 천사’를 만들어 본 적이 있어요. 진짜 천사 모양이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서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집 앞 가로등 밑에서 혼자 조용히 해봤죠. (웃음) 아마 <스토리>를 한 배우라면 눈 오는 날 꼭 한 번씩은 해볼 거예요.

강필석_ 전 너무 추울 것 같아서 안 해봤는데, 이번에 꼭 해보겠습니다. (웃음) 저는 한 해 중 크리스마스 시즌 때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가 오면 그냥 기분이 좋아져요. 어렸을 때 성당을 열심히 다녔던 터라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매일 성당에 나가 뭔가를 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런 추억 때문인지 12월이 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다른 사람들도 왠지 기분이 좋을 것만 같아요.

 

이번 10주년 공연을 앞둔 소감은 어떤가요.

이석준_ 저는 세 번째 시즌이 저한테도 진짜 마지막 <스토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까 영빈이가 말한 대로 막공 날 그렇게 많이 울었던 거예요. 어느 날 공연하려고 거울을 봤더니, 이제 더 이상 이 공연을 못하겠다 싶었거든요. 거울 속의 저 사람이 어린 역할을 하는 걸 나도 보고 싶지 않은 기분? 그래서 이번에는 거울을 안 볼 생각이에요. (일동 웃음) 솔직히 관객분들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기억과 다를까봐 겁도 나지만, 제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무사히 잘 마쳤으면 좋겠어요.

고영빈_ 저도 석준 형이랑 같은 마음이에요. 저희의 예전 공연을 보셨던 관객분들이 기억하는 모습과 이번 공연에서 만나게 될 저희의 현실이 다를까봐 그게 너무 무서워요. 그래도 <스토리> 같은 경우에는 배우 개개인이 아닌 공연 전체를 보게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거든요. 배우가 화려한 가창력을 보여주는 작품도 아니고, 심지어는 화려한 연기력을 보여주는 작품도 아니에요. 이 작품에 담긴 모든 요소를 자연스럽게 무대에 착 펼쳐 놨을 때, 객석의 모든 관객들이 각자 뭔가를 느끼는 작품이라서 용기 내서 잘 마쳐볼 생각이에요. 

강필석_ 모든 공연은 여러 시즌을 거듭하면서 배우와 스태프에 따라 조금씩 변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공연의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이 작품이 표현해야 하는 본질을 놓치고 화려해지는 것만은 경계해야 해요. 이번에는 초창기에 이 작품을 만들었던 형님들이 오셨으니까, 신구 배우들이 만나서 좋은 시너지를 냈으면 좋겠어요.

이석준 그래도 넌 ‘신’과 ‘구’에서 중이라 부럽다! (일동 웃음)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김다현 × 송원근 × 정동화 

 

세 분은 적어도 두 번 이상 <스토리>에 출연하셨잖아요. 작품에 계속 참여하게 되는 이유는 뭔가요? 

김다현_ 지난 시즌에 공연 때마다 ‘왜 이렇게 좋은 작품을 빨리 안 했지?’라고 생각했어요. 공연이 끝난 후에도 겨울이 오면 앨빈과 토마스가 하얀 눈 위에서 뒹굴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라고요. 자꾸만 생각나고 가슴 찡한 작품을 안 할 이유가 없죠. 

송원근_ 사실 <스토리>는 연습 때 정말 힘들었어요. 어떤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끝맺음을 해야 하는데, 이 작품은 계속 다른 이야기가 시작돼서 적응하기 쉽지 않았죠. 그런데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작품이 주는 뭉클함이 확 다가오더라고요. 또 무대에 설 때마다 관객의 감정이나 반응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어요. 그 행복감이 너무 커서 다시 참여하게 됐죠. 

정동화_ 관객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은 정말 좋은 작품이잖아요? 제가 <스토리>를 하는 이유도 바로 그거에요. 저는 2011년에 이 작품과 첫 인연을 맺었는데, 지난 시즌에 오랜만에 다시 참여했더니 역시나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게다가 올해는 10주년을 맞았으니, 이번 공연에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죠. 

 

<스토리> 팬분들이 기대하는 장면 중 하나가 눈싸움이잖아요. 이번 시즌 무대에서 이기고 싶은 상대가 있나요? 

김다현_ 전 석준 형이요. 그런데 아쉽게도 이번 시즌에서는 스케줄 때문에 함께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됐어요. 그래서 요즘 연습실에서라도 한을 풀려고 하고 있죠. 꼭 한번 이겨보겠습니다. (웃음) 

정동화_ 제가 지난 시즌의 눈싸움 꼴찌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런가요? 마지막 공연 날에는 글러브를 준비해서 필석 형의 눈송이를 탁! 잡기도 했는데…. (웃음) 사실 저는 토마스가 던지는 눈송이는 다 맞고 싶어요. 밖에 나가서 놀지 않겠다던 토마스가 앨빈 때문에 밖으로 나왔으니까요.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맙고 애틋해요. 그래서 전 토마스가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확 안겨요. 이 장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원근 형의 토마스는 이때 절 정말 든든하게 받쳐줘요. 형은 정말 태평양 같은 어깨를 가지고 있어서 눈싸움을 할 때도 과감히 눈송이를 던질 수 있죠. (웃음)

송원근_ 사실 종이를 꾸겨서 만든 눈송이라 잘 던지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언제 한번은 눈송이를 피하지 않고 맞춰보라고 가만히 서 있어 봤죠. 이거야 말로 앨빈과 토마스다운 행동 아닐까 싶어서요. 요즘엔 배우들이 자기 스타일대로 눈싸움을 하는데, 저는 딱히 누군가를 이기겠다는 마음보다 각각 앨빈의 스타일에 맞게 눈싸움을 하고 싶어요. 참, 눈싸움을 끝내고 ‘Saying Good Bye part 2’를 부를 때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일동 웃음) 굉장히 여리게 불러야 하는 노래인데 눈싸움을 끝낸 직후에 부르면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스토리>는 좋은 멜로디와 가사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인데,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는 뭐예요?

김다현_ 처음에 ‘Butterfly’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앨빈의 노래가 뭉클해요. 그리고 토마스가 부르는 ‘Saying Good Bye’도 좋아요. 짧은 소절이지만 이 노래들이 왜 이렇게 와닿는지 모르겠어요. 특히 ‘Saying Good Bye part 1’은 담담하게 불러야 하는데, 얼마 전 연습하다 저도 모르게 감정이 울컥 올라오더라고요.

정동화_ 저는 ‘Butterfly’를 들을 때가 좋아요. 다현 형과 원근 형의 ‘Butterfly’는 정말 기가 막히죠.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가슴에서 무언가가 몽글몽글하게 올라와요. 

송원근_ 이 작품의 주제가 같은 ‘This Is It’. 작년 <스토리> 콘서트 때 정말 부르고 싶었는데, 필석 형이 부르고 싶다고 하셔서 양보했죠. 

김다현_ 원근이가 이렇게 마음이 넓어요. 

송원근_ 아이고, 형, 감사해요. 이런 말을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닌데. (웃음) ‘This Is It’은 누가 부르든 이 곡을 들을 수 있다는 자체가 좋아요. 저는 콘서트 때 앨빈의 ‘People Carry On’을 불러봤는데, 가사를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렸죠. 하하. 

 

곳곳에 ‘눈물 버튼’이 숨겨진 작품이잖아요. 가장 눈물을 참기 힘든 장면은 뭔가요?

김다현_ 맨 마지막, 토마스가 앨빈에게 ‘왜 그랬어? 왜 다리에서 뛰어내렸어?’라는 대사를 할 때요. 토마스와 앨빈은 이 질문에 다다르기까지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거든요. 이야기의 끝에서야 토마스는 이 질문을 꺼내놓죠. 이 장면을 연기할 때마다 슬픔을 참기 힘들어요. 

송원근_ 전 앨빈한테 ‘네 머릿속에 이야기만 몇천 개야. 이게 다야. 이게 전부야. 참 아름답지 않니’라는 말을 들을 때요. 어린 시절 정말 친했던 친구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나면 종종 함께했던 시간이 잘 기억나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어린 시절의 우정과 추억을 다시 기억해 내고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이 대사가 그 감정을 담고 있고요.  

정동화_ 재연 앙코르 공연 때는 다현 형과 원근 형처럼 뒷부분에서 코끝이 찡했거든요. 그런데 지난 시즌에서는 앨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 정말 슬프더라고요. 지금의 저는 아이가 있어서 그런지 앨빈에게 엄마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아팠어요. 눈물 포인트를 또 하나 말하자면 ‘Mrs. Remington’이 시작될 때요. 우리 작품은 정말 눈물 포인트가 많아요. 

 

토마스와 앨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김다현_ 저는 앨빈에게 미안하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앨빈한테 천사 클라렌스가 되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거든요. 

송원근_ 앨빈한테 ‘약속, 도장, 복사’ 딱 이 세 마디를 하고 싶어요. 이 약속으로 모든 것들이 비눗방울이 터지듯이 ‘퐁’ 하고 터지고 온화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 세 마디라면 앨빈에게 토마스의 마음이 다 전달되지 아닐까요. 공연 때마다 늘 이 감정을 가슴에 새기려고 해요. 

정동화_ 전 토마스에게 내 송덕문을 써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혹시 송덕문에 쓰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김다현_ 참 열심히 살았다.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노력할 거니까요. 

정동화_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이고 좋은 사람이었다. 요즘은 좋은 배우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싶어요. 

송원근_ 없어요. 아직 저의 인생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죠. (웃음) 



 

<스토리> 10주년을 기념해 이 작품에 참여한 딱 한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김다현_ 신춘수 대표님은 직접 작품 연출까지 맡으셨을 만큼 누구보다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크세요. <스토리>로 영화까지 제작하셨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대표님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할수록 새롭게 무언가를 찾을 수 있었어요. 이번 자리를 빌려, 대표님께 작품에 대한 열정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송원근_ 전 동화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어요. 요즘 이 친구가 목이 좀 아파요. 그런데도 <스토리>를 잘 해내고 싶어서 컨디션 조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거든요. 저도 예전에 건강이 안 좋았던 시기가 있어서 지금 동화의 마음을 알 수 있어요. 공연하는 동안 저나 다른 토마스들을 믿고 의지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주고 싶어요.

정동화_ 그럼 저도 원근 형에게 한마디 전할까요?  

송원근_ 그러면 우리 둘이 너무 짠 것 같잖아요. 자화자찬도 아니고 (일동 웃음) 

정동화_ 아니야. 그렇죠? 하하. 최근에 건강이 조금 안 좋아져서 그런지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좋더라고요. 원근 형이 이 팀에서 그런 존재예요. 물론 다현 형도 그렇고요. 형들의 넓은 어깨에 기대어 이번 시즌을 잘 마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합니다. 

 

 

눈빛만 봐도 아는 친구 

이창용 × 정원영 × 조성윤 



 

이창용 씨는 초연부터, 조성윤 씨는 재연부터 계속 이 공연에 참여하고 있죠. 정원영 씨도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참여했고요. 어떤 매력 때문에 계속 이 작품에 참여하는 건가요?

조성윤_ 매력을 딱 꼬집어 얘기하기는 힘든데,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따뜻함’ 때문이에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 작품만의 따뜻한 정서가 있거든요.

이창용_ 그 따뜻함이 뭔지 저도 알 것 같아요. 저는 여섯 시즌 가운데 다섯 시즌을 성윤이와 함께했는데, 저희 말고도 이렇게 꾸준히 참여하는 배우들이 있잖아요. 지난 10년 동안 평균 2년 간격으로 공연이 올라가다 보니, 그때마다 명절을 맞아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 듯 편안하고 익숙한 느낌을 받아요. 뉴 캐스트가 들어오면 새 식구가 생긴 기분이고요. 이번에 뉴 캐스트는 없지만 (김)다현 형이 오랜만에 참여해서 멀리 사는 가족이 돌아온 느낌이에요. 저에게 <스토리>는 이제 빠질 수 없는 가족 행사가 된 거죠.

정원영_ 저는 작년에 처음 참여했지만, 앞서 출연한 배우와 스태프 들이 작품을 잘 만들어 놓은 덕분에 스트레스 없이 연습하고 공연할 수 있었어요. 뮤지컬을 할 때 짧은 준비 기간 탓에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은데, 이 작품은 공연을 거듭하면서 높은 완성도를 확보했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그 완성도를 쌓아가는 데 저도 기여하고 싶어요.

 

이 작품에서 특히 좋아하는 장면을 꼽는다면요? 

조성윤_ 저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This Is It’ 장면에 대한 애착이 커져요. 앞에서 쌓아온 감정이 해소되는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고, 노래 가사도 철학적이거든요. 제 파트는 별로 없지만, 앨빈의 대사와 노래를 듣고 있으면 해마다 조금씩 느껴지는 게 달라요. 

이창용_ 앨빈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핼러윈 데이에 학교에서 토마스를 처음 만났을 때겠죠. 하지만 배우로서는 ‘Angels in The Snow’ 장면을 꼽고 싶어요. 토마스가 앨빈의 의중을 조금이나마 깨닫는 장면이라서요. 이 작품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는 노래죠.

정원영_ 저는 토마스가 ‘I Didn't See Alvin’을 부르는 장면이요. 토마스가 노래하는 동안 앨빈은 장례식장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입만 벙긋거리고 목소리는 들려주지 않아서 더 상상력을 자극해요. 과연 앨빈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장면이죠.

 

말이 나온 김에 물을게요. 장례식에서 앨빈은 아버지에 대해 어떤 얘기를 했을까요?

정원영_ 이렇게 말해야지 하고 적어둔 게 있는데 공연 때마다 매번 달라져요. ‘여러분들이 아시는 아버지 모습은 이렇겠지만 제가 아는 모습은 이렇습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어느 날은 아버지와 앨빈 사이에 과연 좋은 추억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앨빈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마음대로 산 적이 없고, 서점 일도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서 맡은 거니까. 그리고 ‘나조차도 아버지 이야기를 하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토마스한테 너무 큰 숙제를 안겨줬구나’ 싶어 문득 미안해지기도 했어요. 이 장면에서 앨빈을 어떤 모습으로 보여줘야 가장 현명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이창용_ 저도 기본적인 대사는 정해 놓은 게 있어요. ‘제 아버지 아시죠? 우리 아버지 이랬잖아요.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던 거 기억하세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그다음 부분은 공연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죠. 



 

가장 눈물을 참기 힘든 장면은 뭐예요?

조성윤_ ‘I Didn't See Alvin’을 부를 때요. 인물에 몰입해서 연기해도 힘들고, 제 개인적인 사연을 떠올리며 연기해도 힘들거든요. 감정이 너무 충만해져서 작품이 의도한 바와 다르게 표현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어요. 그 장면만 되면 늘 저와의 싸움이 시작되죠.

정원영_ 저는 지난 공연 때 ‘This Is It’ 장면에서 엄청 울었어요. 사실 앨빈은 거기서 울면 안 되는데, 단조로우면서도 가슴을 툭 치는 멜로디를 듣자마자 마음이 흔들리더라고요. ‘이게 다야’라는 말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끝맺는다는 사실이 확 다가와서 울컥했어요.

이창용_ 저는 아버지 장례식에서 토마스가 송덕문을 보여줬을 때 가장 속상해요. 앨빈도 전부터 토마스가 변했다는 걸 느끼고는 있지만, 그래도 자신을 위해 이것만큼은 해줄 거라고 믿었을 거예요. 그러다가 기대와 다른 송덕문을 마주하고 나면, 붙잡고 있던 마지막 끈을 놓친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다음 장면에서 마음을 다잡고 추도사를 하기가 쉽지 않아요. 서양에는 장례식에서 슬퍼하는 대신 웃으면서 고인에 대한 추억을 나누는 문화가 있더라고요. 앨빈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 다른 상황에 놓이다 보니 만감이 교차하는 거예요. 아버지의 죽음보다 그 실망감 때문에 감정 조절이 힘들어요. 

 

서로가 연기하는 앨빈과 토마스는 어떤 느낌인가요?

정원영_ 성윤이는 실제로도 친한 친구이다 보니 아무래도 애틋함이 남다르죠. 그리고 이 친구가 장면에 따라 분위기가 확확 바뀌거든요. 웃길 땐 웃기고, 진지할 땐 진지하고, 관객과 소통하다가도 금세 다시 극에 몰입하죠. 그런 점이 저하고 잘 맞아서 함께 공연하면 늘 새롭고 재미있어요. 죽음이라는 소재 자체가 주는 무거운 느낌이 있지만, 그냥 슬프기만 한 게 아니라 따뜻한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주는 게 이 작품의 묘미잖아요. 성윤이와 함께라면 그 묘미를 잘 살릴 수 있어요. 

이창용_ 원영이 말대로 성윤이는 웃기는 데 일가견이 있는 친구라 같이 공연하면 재미있어요. 그러다가도 정확한 타이밍에 웃음기를 거두고 몰입하죠. 굉장히 집중력이 좋은 배우예요. 사실 원영이도 만만치 않게 웃겨서 <신과 함께_저승편>에서 같은 역할을 맡았을 때 계속 웃으면서 연습했어요. 얼마 전에 둘이 <니진스키>를 공연하는 걸 보러 갔는데 솔직히 초반에는 어찌나 웃기던지. (웃음) 근데 중반 이후 극에 몰입한 둘의 모습을 보니 저도 집중해서 보게 되더라고요. 

조성윤_ 저희 셋은 모두 스무 살 무렵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이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시너지가 분명 있어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부터 다르거든요. 원영이의 매력은 두말할 것도 없이 통통 튀는 재기 발랄함이죠. 탱탱볼마냥 무대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 그런가 하면 창용이에게는 분위기를 딱 깔아주는 내면의 묵직함이 있어요. 아, 둘 다 너무 매력 있어서 이건 뭐 난형난제네.

 

공연이 10주년을 맞은 지금, 특별히 고마움을 전하고픈 사람이 있나요?

이창용_ 저는 워크숍 멤버였던 (박)은태 형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3주 동안 함께 연습했는데, 그때 은태 형이 도와준 덕분에 제가 워크숍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본 공연까지 할 수 있었거든요. 2017년 ‘12월의 선물’이라는 콘서트에서 형이랑 다시 ‘Angels in The Snow’를 부를 기회가 생겼는데, 꼭 10년 전으로 돌아간 듯 기분이 묘했어요. 

정원영_ 저는 창용이요. <스토리> 초연을 이 친구 공연으로 봤거든요. 창용이랑 저는 대학 동기로 만나 같은 시기에 제대했는데, 당시 앙상블로 활동하고 있던 저에게는 벌써 유명한 선배들과 2인극을 하고 있는 창용이가 마치 앨빈 눈에 비친 토마스처럼 대단해 보였어요. 

이창용_ 그때 원영이가 공연 보러 와서 ‘야, 잘 봤다~’ 하고 막대기 던지는 장면을 아주 어설프게 흉내 내던 게 아직도 기억나네요. 얘가 날 놀리는 건가 싶었다니까요. (웃음)

정원영_ 그랬는데 지금 이렇게 10주년 공연을 함께하고 있다는 게 저한테는 굉장히 기분 좋고 의미 있는 일이에요. 우리 앞으로도 평생 같이 배우하자!

조성윤_ 둘 다 배우를 꼽았으니 저는 스태프 중 한 명으로 오디컴퍼니의 조정만 PD를 꼽을게요. 이 형이 <스토리>를 쭉 함께하다가 지난 시즌부터 <지킬 앤 하이드> 때문에 바쁘다고 저희를 버렸어요. (일동 웃음) 어쨌든 제가 처음 합류한 시기에 동고동락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했던 형이라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훗날 자신의 송덕문에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기를 바라나요?

정원영_ 그는 밝고,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이창용_ 욕심이 많은데?

정원영_ 그렇지, 아직 안 죽었으니까. 죽기 전에 이루면 되잖아. 너는?

이창용_ 음, 완벽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다 가졌네’ 하고 부러워하잖아요.

정원영_ 그래서 ‘그는 다 가진 사람이었다’라고 써달라고? 

이창용_ 그건 다른 사람들이 보면 배 아플 수 있으니까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었다’라고 써 있으면 좋겠다.

조성윤_ 저는 송덕문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은데요? 말이 씨가 된다고 괜히 무섭잖아요.

정원영_ 제가 만약 얘 송덕문을 쓰면 이렇게 쓸 거예요. 그는 죽기 싫었다. 

이창용_ 누구보다 오래 살고 싶었다.

조성윤_ 저도 얘네들 송덕문 진짜 잘 쓸 자신 있어요. 미안한데 내가 니들보다 오래 살았다. (일동 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5호 2019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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