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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에인트 투 프라우드>, 템테이션스가 남긴 유산 [No.193]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Matthew Murphy 2019-10-28 3,804

<에인트 투 프라우드>
템테이션스가 남긴 유산



 

파란만장한 밴드의 흥망성쇠

올해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비롯해 8개 부문에서 상을 받은 <하데스 타운> 다음으로 가장 많은 부문에서 후보가 된 작품은 <에인트 투 프라우드>이다. 작품은 미국 모타운 레코드사의 밴드 템테이션스의 음악과 삶을 배경으로 만든 이야기다. 후보에 오른 12개 부문 중에서 최우수 안무상만 받아서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지난 시즌에 개막했던 작품 중에서 <에인트 투 프라우드>는 나름대로 평단과 관객의 인정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90%를 훌쩍 웃도는 객석 점유율로 순항하고 있다. 한국에서 템테이션스를 동명 영화의 주제가로 쓰인 ‘마이걸’(1964)을 부른 그룹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미국에서는 꽤 전설적인 밴드 중 하나다. 일단은 1960~1970년대를 주름잡았던 전설적인 레이블 모타운 레코드의 전성기 시절 슈프림스와 함께 가장 인기 있었던 밴드로 무려 스무 번이 넘는 멤버 교체를 겪었지만, 지금까지도 템테이션스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내고 콘서트를 개최하며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R&B 그룹으로 출발했지만 사이키델릭, 펑크까지 넘나들며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미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들이 처음 활동을 시작하고도 많은 시간이 흐른 만큼 1960년에 함께했던 멤버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명을 달리했는데, 살아남은 멤버 오티스 윌리엄스가 이번 뮤지컬에 책임 프로듀서로 함께했다.

반세기가 넘도록 수많은 탈퇴와 영입을 겪으며 지켜온 그룹이니, 당연히 적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특히 템테이션스가 1960~1970년대를 거치며 한창 성공 가도를 달릴 때, 밴드의 성공이 멤버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쉽게 예상 가능하다. 그래서 템테이션스의 이야기는 누가 어떤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지에 따라 느낌이 상당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작품은 초창기 멤버 중 지금까지 가장 한결같은 멤버인 오티스의 시각으로 템테이션스의 이야기를 전한다. 덕분에 작품의 전체적인 내러티브는 다른 누구의 관점보다도 덤덤하게 진행된다. 오티스는 템테이션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한참 전부터 노래를 부르고 같이 활동할 멤버를 구한 실질적인 리더였다. 때문에 그가 주도적으로 그룹 이야기를 하는 것도 적절한 선택이다. 게다가 작품의 기본 뼈대는 오티스가 2002년 『템테이션스』라는 제목으로 저술한 자서전으로, 덕분에 뮤지컬에서도 그의 위치가 조금 더 공고해졌다. 무대 위에서 오티스의 내레이터는 관찰자적 시점이자 때로는 전지적 시점으로 템테이션스의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렇게 오티스의 시각에서 펼쳐지는 템테이션스의 이야기는 그가 디트로이트에서 힘들게 음악을 하게 된 시기부터 시작한다. 어린 나이에 6개월간 구치소 생활을 하고 나온 그는 우연히 당시 인기 그룹 캐딜락의 공연을 보고 음악이 자신에게 구원이 되어줄 것이라 믿으며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오티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밴드를 결성하지만, 멤버 네 명 중 두 명이 나가고 세 명을 다시 영입해서 엘진스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모타운 레코드의 배리 고디와 계약을 하고 이름을 바꾸라는 배리의 요구에 따라 템테이션스가 탄생한다. 그즈음 개인적인 욕심으로 밴드의 분위기를 흐리기 시작한 리드 싱어를 내보내고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면서 우리가 아는 템테이션의 클래식 파이브가 완성된다. 리더 오티스 윌리엄스, 낮은 목소리의 베이스를 맡은 멜빈 프랭클린, 안무를 담당한 폴 윌리엄스, 고음 담당 에디 켄드릭스, 그리고 리드 싱어인 데이비드 러핀. 이렇게 모인 다섯 명은 1964년 ‘마이걸’을 차트 1위에 올리며 전성기를 맡게 된다.

<에인트 투 프라우드>에서도 일대기를 다룬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토리가 펼쳐진다. 중반부를 지나면 밴드의 성공과 유명세는 조금씩 멤버들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든다. 리드 싱어인 데이비드는 아버지의 학대를 견디며 자라온 상처가 있는 인물로, 밴드의 성공과 더불어 유명세를 얻게 되자 이기적인 행동을 시작한다. 예를 들어 자기가 없으면 밴드도 존재하지 못한다고 말하거나, 마약에 취해 공연에 지각하는 등 팀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다. 결국 템테이션스는 데이비드를 퇴출하고 새로운 리드싱어를 영입한다. 이외에도 안무를 맡았던 폴 역시 무분별한 음주로 팀에서 방출되는데, 이런 결정을 주도적으로 내린 오티스에게 반발한 에디도 자발적으로 탈퇴하며 템테이션스의 클래식 파이브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린다. 마지막으로 오티스 역시 템테이션스와 함께하면서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아쉬움을 가지고 있던 와중에 스무 살을 갓 넘긴 젊은 아들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일어난다. 이것을 계기로 그는 자신이 밴드를 지키면서 잃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폴이 우울증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후 데이비드와 에디를 포함한 템테이션스 전 멤버가 참여한 콘서트를 열지만, 얼마 가지 않아 데이비드는 마약 중독으로, 에디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렇듯 템테이션스는 초기 멤버들의 빈자리가 생기고 또다시 채워졌는데, 이는 무려 24회나 되며 지금에 이르렀다. 공연은 초기 멤버들이 템테이션스를 지금의 위치에 올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리고 템테이션스가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관객들에게 다시금 상기시키며 긴 이야기의 끝을 내린다. 



 

평범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배우들

간단하게 정리한 줄거리만 보면 주크박스 뮤지컬의 새로운 역사를 쓴 <저지 보이스>를 비롯한 다른 주크박스 연대기 뮤지컬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내레이터가 존재하는 것부터 밴드의 흥망성쇠를 짧은 대사를 통해 전달하고 마치 콘서트를 보는 듯 화려한 조명과 거의 끊임없이 관객을 즐겁게 하는 음악에 이르기까지, 누군가의 표현대로 ‘흑인 저지 보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심지어 한 멤버의 아이가 비극적인 사고를 겪은 것마저도 너무나 닮아 있다. 그러나 <에인트 투 프라우드>가 <저지 보이스>를 비롯한 다른 뮤지컬과 확연하게 도드라지는 부분은 무대를 들썩이게 하는 배우들의 춤과 노래 그리고 연기였다.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리드 싱어 데이비드 러핀을 맡은 이브라임 사익스로, 몇 년 전 미국 NBC 방송국에서 라이브로 중계했던 뮤지컬 <헤어 스프레이>에서 씨위드를 맡아 업계의 눈도장을 찍은 인물이다. 이번이 두 번째 뮤지컬 출연이지만, 그는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와 매력을 뽐낸다. 물론 소울과 펑크, R&B를 넘나들었던 템테이션스의 다양한 음악도 전혀 무리 없이 소화해 낸다. 특히 앨빈 에일리 무용학교에서 배웠다는 무용 실력을 바탕으로 무대를 가로지르며 관객과 배우들의 흥을 돋우는데, 그의 연기 하나만으로 충분히 작품이 빛날 정도였다. 또한 데이비드 러핀의 뒤를 이어 리드 싱어가 된 데니스 에드워즈 역의 세인트 어빈 역시 이브라임 못지않게 에너지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또 땅 밑으로 뚫고 내려갈 것 같은 자완 잭슨의 베이스는 적재적소의 타이밍으로 관객의 웃음을 터뜨렸다. 밴드에서 고음 담당인 에디 켄드릭스는 지난 시즌 토니상 후보에 두 번 이름을 올렸던 제레미 포프가 맡았지만, 그가 다른 프로젝트를 맡아 프로덕션을 떠난 이후 언더스터디였던 젤라니 레미가 그의 뒤를 이었다. 물론 젤라니 레미의 에디 켄드릭스도 부드러운 고음과 그에 대비되는 날카로운 성격을 잘 대조시키며 무대를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오티스 역의 데릭 배스킨은 내레이션의 무게에 연기가 눌리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는 톤으로 이야기의 중심을 잘 잡아냈다.

작품이 실제 밴드의 이야기인 만큼 템테이션스를 연기한 배우들이 가장 눈에 띄긴 하지만, 그 외에도 오티스의 부인 조세핀 역을 맡은 라시드라 스캇의 보컬은 상당한 인상을 남겼는데, 그녀에게 주어진 노래가 더 있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몇 장면에서 모타운 레코드의 최고 인기 그룹이었던 슈프림스로 등장하는 배우들 역시 시청각적으로 작품을 더 화려하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배우의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 것은 조명과 의상,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무였다. 하워드 빙클리의 조명은 스포트라이트를 굉장히 적절하게 사용해서 콘서트적인 무대와 연극적인 분위기를 잘 넘나들었다. 폴 테이즈웰의 의상은 당시 템테이션스의 분위기를 잘 살려 깔끔하고 댄디한 밴드를 잘 그려냈다. 서지오 트룰리오의 안무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템테이션스가 그 당시에도 군무로(요즘 가수들의 군무와 비교하면 율동 같지만 굉장히 센스 있다) 유명했단 사실을 무대에 살려냈다. 템테이션스의 오리지널 안무에 영감을 받은 파워풀하고 뮤지컬다운 안무로 인상을 남기는 동시에 배우들을 더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브로드웨이 베테랑 해럴드 윌러의 편곡과 케니 세이무어가 지휘한 18인조 라이브 밴드의 음악은 이 작품이 뿜어내는 에너지의 근간을 잡아주는 요소였다. 



 

정체성과 뿌리를 주목하다

공연을 보고 나면 남는 것은 배우들이 무대에서 뿜어내던 에너지와 매력 그리고 템테이션스의 음악을 완벽하게 재현한 장면이었다. <저지 보이스>의 성공을 통해 연대기 주크박스 뮤지컬 장르의 아버지 격으로 여겨지게 된 연출가 데스 맥아너프는 <저지 보이스>에서 그랬듯 공연의 호흡을 짧고 빠르게 진행하면서 이야기가 아닌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론 음악을 더 듣고 싶은데 대사가 음악을 방해하는 아쉬운 경우도 좀 있고 짧은 대사가 노래로 전환되는 형식이 조금 뻔하고 지루한 순간도 있긴 하다. 그러나 두 시간 반 정도의 러닝 타임이 거의 쉼 없이 몰아치고, 공연이 끝날 쯤엔 관객이 즐거울 수 있게 그 흐름을 잘 이끌었다. 

그와 함께 작업한 극작가 도미닉 모리소는 최근 미국에서 꽤 인정받는 흑인 작가로 디트로이트에서 나고 자란 경험을 바탕으로 (2014), (2015), (2016)라는 디트로이트 3부작을 써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작년에는 명망 높은 맥아더 ‘천재’ 장학금까지 받으며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는 재목이다. 이런 그녀가 디트로이트에서 시작된 템테이션스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의 극작을 맡은 것이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모리소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들을 생각할 때, 전체적으로 진부하게 진행되는 <에인트 투 프라우드>의 구성은 원작 자서전의 논조와 시각에 묶여서 별다른 수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녀의 능력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템테이션스가 미국에서 흑백 갈등이 한창 심했던 1960~1970년대에 백인 주류에게 인정받는 밴드가 되기 위해 겪었던 사회적인 상황을 드러낼 때였다. 1968년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살해당한 사건과 남부 지역에 공연하러 간 템테이션스의 버스가 백인 인종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아 가까스로 사고를 모면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들은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템테이션스가 가지고 있는 ‘흑인’ 밴드라는 정체성이 그들의 이야기의 중요한 뼈대 중 하나로 기억될 수 있게 해주었다. 템테이션스라는 밴드가 정치적인 음악보다는 상업적인 음악 위주로 활동했던 가수라는 점을 고려할 때 모리소가 적재적소에 삽입한 흑인으로서 정체성과 그들의 뿌리 디트로이트를 향한 애정은 <에인트 투 프라우드>가 자칫 트리뷰트 콘서트로 끝나지 않고 더 큰 의미를 전달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해주었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겠지만 모타운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공연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봤다. 지난 3월 개막 이후 나온 리뷰는 반응이 좀 엇갈렸는데, 이야기는 별로지만 배우들이 잘했다는 이야기가 중론을 이뤘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야기에 집중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작품과 색다를 것 없이 그룹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자화자찬하는 이야기가 굉장히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야기가 조금 첨가된 모타운 레이블의 주크박스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꽤 즐겁지 않을까. 주크박스를 위해 콘서트가 아닌 뮤지컬을 만든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었는지에 대한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말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3호 2019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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