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신성록과 원미솔 음악감독을 인터뷰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타당한 근거를 들어 설명할 그럴 듯한 스토리는 없다. 그저 어느 날 밤 두 사람이 만나 이야기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을 뿐. 봄날의 오후, 아무도 없는 녹음실에서 벌어진 일들의 세세한 기록.
감독님은 이런 촬영 처음 해보시죠?
원미솔 배우하고 인터뷰하는 건 처음이죠. 신성록 진짜요? 그 처음이 나인 거야? 오, 굉장히 영광스럽군.
오늘 감독님을 처음 뵙고 느낀 건데 말투랑 화법이 독특하신 것 같아요.
신성록 그래서 천재 소리를 듣는 거예요. 특이해서. 원미솔 원래 천재랑 또라이는 백지 한 장 차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다행히 서울대를 나와서, 서울대 안 나왔으면 사람들이 또라이라 그랬을 거예요. 신성록 고급 인력이죠. 내가 뮤지컬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그랬어요. 어린 나이에 음악감독을 맡은 신동이라고. 그때가 아마 감독님이 곡도 쓰기 시작했을 때일 거예요. 첫 작품인지는 모르겠는데 <뮤직 인 마이 하트>, 그게 음악도 좋고 대박이 터졌어요. 그래서 당시에 ‘원미솔 천재다’ 이렇게 소문이 났어요. 원미솔 미치겠어. 하하.
그런 이야기 들었을 때 누군지 궁금했겠어요?
신성록 아뇨. 궁금하진… 하하하하. ‘아, 천재구나’ 그냥 그렇게 생각했어요.
감독님이 처음으로 본 신성록 씨 작품은 뭐예요?
원미솔 <드라큘라>요. 그게 몇 년이었니, 2006년? 신성록 와, 나 아직도 생각나. 그때 감독님이 공연을 보고 나서 저한테 <그리스> 하라고 그랬어요. 존 트라볼타 닮았다고.
하하. 그런데 왜 안 했어요? 그때는 <그리스>가 청춘 배우들의 통과의례 뮤지컬이었는데.
신성록 아이, 장난스럽게 한 이야기죠. 진지하게 꼭 하라고 한 게 아니라. 원미솔 근데 진짜 왜 안 한 거야? 춤 때문에? 신성록 아니, 어렸을 땐 해보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나도 모르게 <드라큘라>를 한 거야. 어려웠고, 잘 못 했지만 그래도 무겁고 다루기 힘든 감정을 경험했는데 갑자기 “야야야” 이렇게 장난치는 연기가 하고 싶지 않은 거지. 어린 마음에 그랬죠, 뭐.
<드라큘라>는 신성록이라는 배우를 알고 보신 거죠? 어땠어요?
원미솔 신인이… 잘한다? 신성록 저 원망의 눈빛. 원미솔 사실 처음에는 성숙한 이미지의 배우로 봤어요. 나이가 너무 들어 보여 가지고.(전원 웃음) 원미솔 이 친구가 지금은 여러 소리를 내지만, 옛날에는 소리가 많이 거룩했어요. (베이스 발성으로) “으어어어” 노래를 이렇게 불렀어요.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들었는데 어쩜 저렇게 거룩할까, 그런 생각을 했죠.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회식 자리에서 보니까 완전히 다른 사람인 거예요. 그게 이 친구 매력이긴 하죠.
발성법을 고쳐 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어요?
신성록 노래가 부족하다, 별로다, 데뷔 초에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걸 탈피하고자 노력했던 게 <로미오 앤 줄리엣>을 할 때죠.
<로미오 앤 줄리엣>이면 얼마 안 됐네요?
신성록 그 전까지는 뮤지컬 배우라는 자의식보다는, 뮤지컬로 시작했지만 방송도 하다 보니 ‘난 배우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노래 못하면 연기 잘하면 되지. 이런 생각도 했었고. 그런데 몇 번씩 깨지고 뮤지컬에 욕심이 생기니까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로미오 앤 줄리엣> 때부터 담배도 끊고, 정말 열심히 해봤죠. 그때 많이 좋아졌다는 말를 들으면서 노래 실력도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다 <몬테크리스토>를 만난 거고. 감독님도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어요.
<몬테크리스토>는 노래가 쉬운 작품이 아닌데….
신성록 어렵죠. 원미솔 아우, 어렵죠. 사실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연기하기엔 성록이가 좀 어리지 않나? 반신반의했어요. 성록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궁금했고,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연습 초반에 주어진 디렉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걸 보면서 이 친구한테 거는 기대가 굉장했죠. 그때 우리 사이가 제일 좋지 않았나 싶어요. 하하. 그땐 참 여기저기 네 칭찬만 하고 다녔다. 신성록 그런데 뚜껑 열었을 때 내가 그만큼 못한 거지. 원미솔 그건 성격 때문이야. 이 친구는 성격에 ‘오바’가 없어요. 연기도 성격대로 하는 거죠. 너무 과장하지도 않고, 건조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런데 대극장에서 한 사람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려면 감정을 확 터뜨려야 할 때도 있잖아요. 가슴에서 그게 안 나올 때가 있는 거예요. 우리가 항상 얘기했던 부분인데 스스로 깨우치고 있는 것 같아요. 확실히 점점 좋아져요.
감독님의 작업 스타일은 어떤 가요?
원미솔 (쫀득한 말투로) 섹시하죠. 신성록 허허, 섹시하고요. 뒤에서 받쳐줘서 위로 올라갈 수 있게끔 하는 스타일이에요. 가령 제가 내지도 못하는 성악 발성으로 소리를 내고 싶어 한다, 이렇게 길을 아예 잘못 가버리는 건 바로 잡아주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제 스타일대로 하게 하면서 중요한 것만 이야기해 주세요. 배우를 믿어주는 편이고. 예를 들어 제가 너무 안 풀려서 답답한 마음에 “감독님, 어떡해요” 그러면 “넌 그냥 돼, 하면 돼” 이러세요. 귀찮아서죠. 원미솔 하하. 진짜 귀찮아요. 저도 쉬어야죠, 안 그래요?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감독님을 붙잡고 괴롭혔나 보네요.(웃음)
원미솔 네, 정말 잘하고 싶어서. 신성록 지금은 안 그러는데, 초연 때는 연습 때나 공연 때나 나 때문에 시끄럽다고 배우들이 짜증도 많이 냈어요. 원미솔 제 분장실이 성록이 분장실하고 마주 보는 방이었거든요. 공연이 끝나고 샤워를 하면서도 계속 노래를 불러요. 공연이 끝났는데도! 그걸 우리가 다 들어야 했어요.
하하. 그때가 잘하고 싶다는 성록 씨의 마음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니까.
원미솔 어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성록이한테 <몬테크리스토>가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 작품으로 대다수의 관계자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얻게 된 것 같고요. 신성록 허허. 맞아요.
감독님은 원래 배우를 믿고 지켜보는 편이세요?
신성록 아니, 나한테만 그래요. 감독님이 다른 배우들한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얘기하는 거, 난 많이 봤거든요. 나만 내버려두는 것 같아. 원미솔 사람마다 대하는 방식은 당연히 다르죠. 이 친구는 굳이 자극하지 않아도 워낙 열심히 하는 친구라서 내가 뭐라고 할 필요가 없어요. “오늘은 그만 가, 끝!!” 이렇게 이야기를 해야 할 정도예요. 자극이 필요한 배우들은 무슨 짓을 저질러서라도 끝까지 자극하죠.
앙코르 공연 연습 때도 연습실에 꼬박꼬박 나와서 열심히 하던 가요?
원미솔 네. 이 친구가 (세 명의 캐스트 중에서) 아무리 막내라고 해도 형들의 빈자리를 항상 동생이 메운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근데 참 많이 양보해요. 그게 예뻐요. 안 그런 동생들 되게 많아요. 신성록 군대 갈 때 되니까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러면 나중에 형들이 소주라도 한 잔 사주지 않을까 싶어서.(웃음) 원미솔 형들이 진짜 예뻐해요. 엄청, 엄청!
성록 씨는 원래 늘 이렇게 열심히 했어요? 한결같이?
신성록 아뇨. 열심히 했던 적도 있고, 아닌 적도 있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호평 받았던 작품들은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데뷔 초반에 드라마도 하고 잘됐으니까 가능성을 보고 준 기회를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겉멋도 들고. 그래서 그때 이후로 하는 작품들은 다 별로였죠. 제작사에서는 제가 얼굴이 알려진 배우니까 캐스팅하지만, 관객들은 보면 알죠. 좋은 배우가 아니라는 걸요. 그게 피부로 와 닿은 거예요. 그래서 아까 말한 대로 <로미오 앤 줄리엣>을 할 때부터 좀 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웃음) 초연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나요?
원미솔 아우, 당연히 달라져야죠. 사실 초연 때는 집착이 상당했어요. 몇 개의 음과 장면들에 심하게 집착했죠. 그러다 보니 여유가 없었는데 지금은 전체를 보는 눈이 생겼어요. 신성록 내가 느끼기엔 1년 사이에 나 좀 늙은 것 같아. 원미솔 넌 원래 늙어 보였어. 신성록 그렇긴 한데 작년에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나 <틱틱붐> 같은 좋은 작품을 열심히 했더니 연기나 느낌이 좀 달라진 것 같아. 늙었어. 무술을 해도 작년 같지 않아요. 무술 신이 끝나면 막 헉헉대고. 나 팬카페에서 이런 리뷰도 봤어요. “성록 씨, 운동 좀 하셔야 할 것 같아요. 많이 힘들어 보이시더라고요.” 하하. 운동할 거예요, 내일부터.
감독님이 보시기엔 어때요? 신성록은 자기 관리 열심히 하는 배우인가요?
원미솔 네. 담배 안 피우잖아요. 연습 시간에 안 늦고, 시간 약속 잘 지키고. 자기가 연예인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하하하.
끝으로 성록 씨한테 더 해주고 싶은 말 없으세요?
원미솔 군대 잘 갔다 와.(전원 웃음) 이제는 여유를 좀 가져도 될 것 같아요. 은근히, 하나를 보면 하나만 향해 가는 친구거든요. 앞으로는 가볍고 밝은 작품도 하고, 작품의 스펙트럼을 넓혔으면 좋겠어요. 이제 그럴 때가 됐어요. 아유, 나이에 맞는 거 해야죠. 만날 늙은이만 하지 말고.(전원 웃음) 신성록 감독님이 내가 <틱틱붐> 하는 걸 봤어야 해. 내가 얼마나 ‘라이트’하게 하는지!
“사람들이 우릴 놀릴 거야.” 촬영 컨셉을 듣고 난 다음 원감독이 말했다. “어, 나만 신나나.” 신성록은 피아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사다리 위에 척 앉았다. 그러고 나서 전원에 연결도 안 된 마이크를 쥐고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른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나 언제나 함께 있어요, 그대 곁에서. 느끼나요. 그대 곁에 나를…” “사랑 아름다운 것, 높이 날아올라…” 이럴 땐 보통 노래를 부르는 시늉만 하지 않나? 두 사람의 뮤지컬 넘버 열창은 계속 됐고, 호흡은 척척 맞았다. “오케이, 좋아요!” 포토그래퍼의 추임새에 신성록이 뜬금없는 말을 던진다. “나, 아담 파스칼 같이 나올 것 같아.” 이어진 곡은 ‘One Song Glory’. 이번엔 원 감독이 먼저 말했다. “우리 가요 부를까?” “나 요즘 노래 모르는데.” “그럼 옛날 노래?” 리사이틀의 대미를 장식할 곡으로는 김범수의 ‘보고 싶다’가 당첨. 사진 촬영이 끝나자 원감독은 “왜 하필 너니? 나 너랑 동급 됐어”라며 보로통한 얼굴로 이죽거렸다. 하지만 이게 괜한 말이라는 걸, 구태여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를 보듯 그를 보다가 도 뿌듯하게 웃었다. 저 멀리에서 지켜보는 눈에는 그게 다 보였고, 그 광경이 예뻤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1호 2011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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