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댄스>, 80년대 댄스 무비 뮤지컬의 막내
뮤지컬 영화의 인기가 사그라든 1980년대, 이를 대신할 댄스 영화의 시대가 찾아왔다. 1983년 개봉한 <플래시댄스>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뮤지컬 영화는 경제 대공황 무렵인 192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오랜 호황을 누렸지만 현 시점에서 본다면 이미 오래전에 주류에서 밀려난 장르다. 전성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은 1968년 개봉한 <올리버!>로, 당시 <퍼니 걸>, <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쟁쟁한 경쟁작을 물리치고 오스카 작품상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뮤지컬 영화의 씨가 마를 줄은 상상도 못했을 터. 하지만 베트남 전쟁과 민권 운동이 세상을 휩쓸고 맨발에 꽃을 꽂고 자유를 외치던 시대에 감미로운 노래로 사랑을 속삭이는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는 진부한 클리셰로 급격하게 대세로부터 밀려났다. 1970년대에는 그나마 <지붕 위의 바이올린>, <카바레>, <올 댓 재즈> 등이 드문드문 후보에 올랐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면 뮤지컬은 아예 작품상 후보군에도 오르지 못한다. 이 시기에 뮤지컬 영화는 거의 제작되지 않았다. 록 그룹 ‘퀸’이 라디오의 시대가 끝난 것을 애도한 MTV 시대, 즉 1980~1990년대를 지나고 난 2003년에야 뮤지컬 영화 <시카고>가 오스카 작품상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뮤지컬 영화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디즈니도 1992년 <뉴시즈>를 대차게 말아먹은 후, 2014년 <인투 더 우즈>를 내놓기까지 실사 뮤지컬 영화에 다시 도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뮤지컬 영화의 여파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소위 ‘댄스 무비’라는 장르로 형태를 바꾸어 암약했다.
이전까지의 뮤지컬 영화가 ‘나 영화 찍고 있소’ 하는 과장된 연기와 알록달록한 컬러감을 살린 환상의 세계였다면, 1980년 개봉한 댄스 영화 <페임>은 뉴욕의 문제아들이 예술 고등학교에서 자신의 소질을 발견하거나 좌절해 가는 모습을 생생한 언어와 현지 촬영으로 담아내 큰 인기를 끌었다. 인기에 힘입어 TV 시리즈가 제작됐고, 마이클 잭슨의 동생 자넷 잭슨도 여기에 출연하였다. 이 TV 시리즈는 예술 고등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글리> 등의 원조가 됐다. 1988년 제작된 동명 뮤지컬은 1980년대의 댄스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가운데 가장 크게 히트했다. <페임>은 뮤지컬 영화인 듯 뮤지컬 영화 아닌 댄스 영화였다. 음악이 끊이지 않고 나오지만 등장인물이 고전 뮤지컬처럼 자신의 감정을 직접 노래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주인공이 가수가 되고 싶어 노래를 하거나, 작곡가가 되고 싶어 노래를 만들고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식이다. <페임>의 히트는 뮤지컬 영화에 대한 수요가 어딘가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페임> 이후 1980년대에 걸쳐 댄스 영화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는 과거 뮤지컬 영화에 대한 향수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린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쏟아져 나온 댄스 영화 가운데 많은 작품이 무대 뮤지컬로 옮겨졌다. 뮤지컬로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 관객의 사랑을 받은 이 작품들은 대부분 한국에서도 공연되었다.
1980년대 댄스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의 가장 큰 장점은 영화를 통해 이미 잘 알려진 히트곡이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플롯이 다소 헐거워도 히트곡이 그 틈새를 메운다. 1984년 개봉한 댄스 영화 <풋루즈>는 음악이 금지된 마을에 이사 온 소년이 마을의 진실을 파헤치고 즐거움을 되찾아 온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케니 로긴스가 부르는 ‘풋루즈’와 함께 젊은 시절의 풋풋한 케빈 베이컨이 춤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1998년 브로드웨이에 올라와 나름의 인기를 모았다. 1980년 개봉한 영화 <어반 카우보이>는 얼뜨기 같은 남자들이 여자를 사이에 두고 사랑싸움을 하는 내용이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어쩐 일인지 컬트 팬들 사이에서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뮤지컬 <그리스>로 유명한 존 트라볼타가 주연을 맡아 컨트리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2003년 브로드웨이에 올라와 그 시즌 최악의 작품으로 선정되어 프리뷰가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막을 내렸다. 이 비운의 작품을 작곡한 이는 훗날 <넥스트 투 노멀>로 토니상을 받은 톰 킷이다. 존 워터스 감독의 1988년 개봉작 <헤어스프레이>는 2002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하여 빅히트를 치고 한국에서도 공연되었다.
작품의 시대 배경인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의 인기곡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이 모든 작품이 빚을 진 하나의 작품이 있으니 바로 비지스의 디스코 음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다. 존 트라볼타의 출세작으로 1978년에 개봉했다. 디스코가 세상을 휩쓴 시기 춤에 인생을 건 남자의 밑바닥 탈출기다. 이 작품은 <풋루즈>와 함께 1998년 뮤지컬로 올라왔고 한국에서도 개막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뮤지컬 <플래시댄스>는 1980년대 댄스 영화 가운데 가장 늦게 무대화된 사례다. 원작 시나리오를 쓴 톰 해들리가 뮤지컬에서도 대본을 맡았다. 2008년 영국에서 투어 버전으로 먼저 제작되어 2010년 웨스트엔드에서 공연했지만 흥행에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다섯 달 만에 막을 내렸다. 브로드웨이 공연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는다. <플래시댄스>는 런던과 뉴욕 양대 뮤지컬계에서는 환영받지 못했지만 특이하게도투어 버전은 꽤 인기를 모아서 영국에서 2년, 미국에서 2년의 투어를 통해 흑자를 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작품 제목인 ‘플래시댄스’는 스트립 댄서들이 추는 춤을 의미한다. 원작 영화에서 주인공 알렉스는 낮에는 용접공으로 일하고 밤에는 스트립 클럽에서 춤추며 댄서의 꿈을 키운다. 그러다가 부자인 남자와 사랑에 빠져 그 남자의 인맥으로 오디션 기회를 얻고 캐스팅이 된다.
영화는 지나치게 단순한 내용과 여자 주인공의 몸을 노골적으로 훑어 내리는 카메라 워킹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와는 별개로 평단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뮤지컬 역시 비슷한 반응을 얻고 있는데, 원작에 대한 향수와 ‘What A Feeling’ 등의 히트곡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투어 공연 관객에게는 사랑을 받았다. 뮤지컬은 원작의 배경인 스트립 클럽을 일반 클럽으로 변경하고 주인공 알렉스를 좀 더 힘찬 캐릭터로 만들었다. 또한 마약상 캐릭터를 없애고, 원작에 없던 알렉스의 어머니 서사를 만들고, 어머니를 대신하는 한나를 등장시켜 덜 선정적이고 착한 뮤지컬로 만들었다. 하지만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는 플래시댄스 장면은 그대로 남겨 제목의 의미를 살렸다. 1980년대 댄스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가운데 가장 막내격인 이 작품이 한국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5호 2019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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