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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TAFF] 무대는 세상에 대한 은유다, <아이다> 무대,의상디자이너 밥 크로울리 [No.90]

글 |김유리 사진 |신시컴퍼니 2011-03-07 7,059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흰 공간, 그 사이를 걸어 다니는 흰 옷의 현대인들, 나일 강을 둘러싼 대지와 그 위를 걷는 누비아 여인들의 실루엣, 엇갈린 마음과 피라미드를 상징하는 에메랄드 빛 삼각형, 현대의 런웨이를 재현한 듯 알록달록 화려한 공주의 드레스룸까지… 한창 공연 중인 <아이다>는 그 어떤 공연보다도 이미지의 여운이 강하게 남는 무대를 관객에게 선보이고 있다. 이 화려하고도 상징적인 이미지의 향연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30여 년간 의상과 무대 디자인을 병행해 온 다재다능한 디자이너 밥 크로울리의 작품이다. 이미 영국에서 연극, 오페라, 발레, 뮤지컬 등 장르를 넘나들며 최면을 거는 듯한 미니멀한 무대로 명성이 높은 그에게 브로드웨이의 러브콜은 아마도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카루셀>(1994), <아이다>(2000), <히스토리 보이즈>(2006), <코스트 오브 유토피아>(2007), <메리 포핀스>(2007)까지 다섯 작품으로 토니 어워즈의 죖최우수 무대디자인 상’을 다섯 번 휩쓴 이 거장은 우리 나이로 56세인 현재까지도 여전히 좋은 대본을 받아, 어떻게 무대화할 것인지 온전히 자신이 채워야 하는 ‘타블라 라사(Tabula Rasa)’의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로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이다>가 국내 초연된 지 5년 만에 다시 공연되고 있는 지금, 2000년 디즈니가 유일하게 애니메이션으로 작업하지 않았던 뮤지컬이자 본인에게는 두 번째 토니상을 안겨줬던 <아이다>에 대해 서면을 통해 이야기했다.

 


 

무대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어린 시절이었던 1960년대, 가족들과 오페라 하우스나 지역 아마추어 드라마 공연을 하는 극장을 자주 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일랜드 투어 중이었던 <올리버!>를 봤지요. 같은 아일랜드 출신의 무대디자이너 션 케니(Sean Kenny)가 작업한 그 무대는 모든 장치를 없애고, 극장의 벽과 조명 장치를 드러낸 독특한 형태였어요. 문득 무대 디자인이 흥미로운 일이라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무대디자이너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 전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요.

 

당신은 30년 동안, 영국 국립극단(National Theatre)과 스무 편 이상,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와 스물다섯 편 이상의 연극 무대 디자인 작업을 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페라, 발레, 뮤지컬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각 장르별 무대 작업의 차이가 있나요? 그리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나요?

오페라, 연극, 발레, 뮤지컬 작업을 하는 것은 각 장르가 매우 다르지만 또 같은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일단 작품에 들어가게 되면, 꼼꼼히 주제를 찾아 그간 제 눈을 통해 보아온 특별한 세상을 상상하기 시작합니다. 무대는 세상에 대한 가장 좋은 은유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무대 디자인과 의상 디자인을 함께 진행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작업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잉글랜드의 연극 학교에서, 두 가지를 함께 작업하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디자이너가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할 수 없다면, 관객들은 공연에 대한 한 가지 시각을 가질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관객들이 당신의 무대를 본 것은 <아이다>가 유일합니다. 유튜브 영상을 통해 본 <메리 포핀스>, <타잔> 등의 무대는 색감이 뚜렷하고, 단순하고도 상징적이었습니다. <러브 네버 다이즈>는 몽환적이기도 했고요.
앞서 말씀하신 세 작품 모두 디즈니 작품이지만, 디즈니를 위해 저만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바꾸지는 않습니다. 저는 심플하면서 생생하고 직접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 무대 영상을 좋아하고, 사실 그대로를 묘사하는 자연주의 방식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시각적으로 시적이고 추상적인 무대를 보여주고 싶어요. 관객들이 보면서 상상할 수 있는 무대가 좋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다>의 무대와 의상 또한, 고증보다는 상징적인 면이 부각된 현대화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때때로 현대적인 것을 무대 디자인과 의상에 반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관객은 스토리를 위해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내지요. 제가 다큐멘터리를 디자인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라다메스와 군인들, 아이다의 연보랏빛 드레스나 누더기 망토 등 ‘선’을 강조한 동양적인 느낌이 드는 의상, 색감과 실루엣이 강조된 무대 표현에 조명까지 더해져 시각적 시너지를 발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의상과 무대 구성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있나요?
의상은 일본식 디자인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동양의 디자인을 좋아해요. 복잡하고도 단순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죠. 시각적 표현에서는 그간 다수의 셰익스피어 연극의 무대 작업을 해왔던 것이 <아이다>에 반영된 것 같습니다. 그러한 표현들은 시각적인 스토리텔링이죠. 여기에 나타샤 캣츠(Natasha Katz)라는 아주 훌륭한 조명디자이너의 능력까지 더해져 공연 전체가 아주 아름답고 절묘하게 빛났다고 생각합니다. 

 

1막에는 더할 수 없이 화려한 색감의 무대와 의상을 선보였다면, 2막에는 암네리스의 붉은 드레스 외엔 캐릭터 대부분의 의상이 무채색에 가까웠습니다.
<아이다>에선 비극이 진행됨에 따라 무대와 의상의 색감이 점점 더 또렷해집니다. 밝은 색으로 시작해,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점점 더 진해져간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아이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과 의상이 있나요? 가장 어렵게 작업한 장면은 무엇입니까?
‘가장 마음에 드는’ 의상이나 디자인은 없습니다. 하지만 나일 강과 시장, 그리고 텐트를 만들어내기 위해 큰 실크 천을 사용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요. 세 장면이 하나의 천에 의해 만들어졌어요.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마지막 ‘무덤 장면’인데,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죠. 과정은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로 그 장면에서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친밀한 분위기를 잘 살릴 수 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당신은 토니 어워즈 ‘최우수 무대 디자인 상’에 10번 노미네이트되었고, <아이다>를 비롯한 다섯 작품의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대단한 성취인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요?
<카루셀>로 처음 토니 상을 받았을 때는 그저 놀랍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상을 받은 공연뿐 아니라 저의 다른 모든 공연 또한 사랑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물론 한번 받기도 힘든 토니상을 여러 번 받은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죠.

 

2009년 영국의 ‘인디펜던트’ 지와의 인터뷰에서 ‘무대는 내가 가장 행복하게 느끼는 곳이며, 원하는 어느 곳이든 당신을 데려다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무대’라 말했습니다. 무대는 어떤 의미에서 당신을 행복하게 하나요? 앞으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무대는 무엇입니까?
공연에는 경계가 없고, 무대 위에선 가장 단순한 수단으로 ‘어떤 것이든’ 보여줄 수 있지요. 이를 통해 관객은 충분히 모든 세상을 스스로의 머릿속에 잘 그릴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좋은 공연, 좋은 작업의 일부분이 되는 것은 매우 행복한 경험입니다.


현재 작업하고 있는 작품은 무엇입니까.
영국왕립발레단(The British Royal Ballet)의 새로운 작품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험(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의 무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3월 2일에 오픈할 예정인데, 매우 흥미롭고도 으스스한 작품이죠!


한국에는 당신의 무대를 보고 무대디자이너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보는 모든 것에 대해 궁금해 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시각적인 관점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당신들의 눈으로 본 세상으로 우리를 놀라게 해달라 말하고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 뮤지컬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진 못했지만, <타잔>, <메리 포핀스>, <러브 네버 다이즈> 등이 한국에서 상연되는 것을 꼭 보고 싶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0호 2011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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