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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신흥무관학교>, 국방부 뮤지컬에서 진짜로 보고 싶은 것은 [No.181]

글 |정수연 뮤지컬 평론가 사진제공 |쇼노트 2018-10-10 7,595

<신흥무관학교>, 국방부 뮤지컬에서 진짜로 보고 싶은 것은



 

국방 뮤지컬의 가능성?

공연의 흥행 여부를 좌우하는 것은 배우라는 말을 부정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신흥무관학교> 때문이다. 국방부가 제작한 뮤지컬이 티켓을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매진 사례를 기록하다니 이건 평범한 일은 아니다. 솔직히 우리에게 군대라는 조직은 친밀함이나 신뢰감보다는 여러 의미에서의 거리감이 앞서는 집단이잖나. 이런 조직에서 뮤지컬을 만든다는 사실도 이질적이거니와 이 작품을 향한 관객의 뜨거운 반응 역시 낯설기는 매한가지다. 흥행의 이유는 하나다. 국방부로 잠시 소속을 바꾼 배우들,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기획의 관점에서 보자면 국방부의 감각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해마다 꼬박꼬박 입대하는 젊은 스타들을 유격훈련장에만 두지 않고 ‘민간인’ 시절의 ‘특기’를 살려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만나게 함으로써 군대를 홍보한다! 인재 활용의 성공적인 예이다. 누가 출연했는지를 떠올리다보면 지루하기만 했던 줄거리도 아슴아슴 생각나니, 관객에게 인상을 남긴 정도로만 보자면 영 실패작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의 진짜 가치는 작품 자체가 아닌 작품의 공정에 있다. 뮤지컬 제작에서 드러나는 현실적인 문제를 되비쳐주는 거울의 역할. 국방부 뮤지컬만큼 이 역할을 톡톡히 하는 작품은 어디에도 없다. 
 

한 역할에 많게는 네다섯 명의 배우가 동원되는 관례가 정석이 된 요즘에 이름난 배우가 원 캐스트로 출연한다는 사실, 신선하지 않나? 대한민국 뮤지컬계에서 가장 바쁘다는 창작진들을 죄다 모아서 대극장 규모의 작품을 만들었는데도 제작비가 이토록 ‘저렴’하다는 사실, 신기하지 않나? 천정부지로 치솟는 배우 개런티가 제작비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얼마큼인지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기에 놀랍고, 배우 개런티가 현실화될 때 제작의 규모가 어느 정도로 합리적인 선을 유지할지 가늠할 수 있기에 놀랍다. 물론 배우가 확보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개런티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국방부 뮤지컬에서만 가능한 일임은 맞다. 하지만 지금의 제작 시스템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흥무관학교>가 던지는 질문은 만만치 않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국방부에서 제작하는 뮤지컬이야말로 배우 캐스팅에 대한 걱정은 벗어버리고 작품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모른다. 주류 뮤지컬 시스템의 맹점을 오히려 자산으로 가진 셈이니 말이다. 배우가 확보되어 있고 관객도 준비되어 있다! 여기에 기획의 마인드가 따라준다면 기존의 관이 주도하는 뮤지컬과는 또 다른 성과를 일굴 가능성의 텃밭이 될 수도 있을 터다. 누가 알겠나. ‘국방 뮤지컬’이라는 독립된 장르가 만들어질지.



 

익숙한 부족함

오랜만에 본 얼굴들은 역시나 반가웠다. 지창욱, 강하늘, 성규뿐 아니라 군인 신분이지만 누가 봐도 배우인 새로운 얼굴들을 보게 된 것도 기분 좋더라. 하지만 그들의 역할을 보며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는 게 문제다. 작품의 공정이 갖는 의미를 빼고 그냥 작품만으로 봤을 때 <신흥무관학교>의 만듦새는, 이름값 있는 창작진들이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전혀 뛰어나지 않고, 국방부 주도의 뮤지컬이라고 보기에는 그리 뒤처지지 않는 그저 그런 완성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뒤처지지 않게 보이게 하는 바탕은 시각적 면모에 있다. 커다란 두 개의 구조물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공간을 만들어내는 무대 운용은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이다. 같은 디자이너가 만든 다른 공연의 화려한 세트보다 훨씬 더 공연의 무대답더라.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공연의 정감을 주도하는 영상이나 조명은 이 작품의 결을 촌스럽지 않게 다듬는 데 제 역할을 다한다. 가사의 직선적인 정감을 세련된 선율로 잡아내려는 음악적 시도는 감정의 클라이맥스를 준비하는 관객의 기대와 종종 엇갈리긴 하지만, 노골적인 감정의 선동보다는 이편이 훨씬 나아 보인다. 
 

감정의 선동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국방부 뮤지컬이 아니었다면 ‘죽어도 죽지 않는다’를 외치며 대한 독립 만세를 되뇌는 청년들의 비분강개가 지금 여기의 관객들에게 최소한의 당위를 가질 수 있었을까? 아직까지도 대한의 독립이 창작뮤지컬의 눈물 글썽이는 주제로 건재하다는 사실도 의아할뿐더러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국기가 일장기라는 사실도 짜증스럽지만, 국군의 뿌리를 살피는 역사 잇기의 일환이라는 기획 의도로 보자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 우리에게 뮤지컬의 시작은 관이 주도하는 문화 선전의 일환이었지. 
 

<신흥무관학교>는 국군의 뿌리보다 뮤지컬의 뿌리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국군의 뿌리를 살피기에 이 작품이 미흡했던 것은, 신흥무관학교라고 하지만 ‘신흥’에 방점이 주어져야 할 몫이 ‘학교’에 주어지는 바람에 이야기의 중심이 흔들려버렸기 때문이다. 신흥무관학교라는 엄중한 배경을 보면 이건 분명 시대물인데, 내용을 보면 똑똑하지만 유약한 양반 도령과 모자라지만 우직한 노비 청년이 의리로 친구가 되는 학원물에 가까운 거다.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은 유치하고 우정을 확인하는 과정은 작위적이다. 각각 다른 배경을 가진 청년들이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학교라는 공간에 모였다면, 그들이 무엇을 서로 극복해 내면서 하나의 뜻으로 이어지는지 그려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해맑게 대답하는 ‘난 독립군이 될 거예요’라거나 ‘나도 친구 생겼다’ 등등의 말이 20대 초반의 노비 청년에게 어울리는 대사인지 생각해 보면 애초에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에게 기대할 바는 별로 없음을 금세 깨닫게 된다. 

 

시대착오를 넘어서

이 작품이 ‘신흥’에 더욱 주목했어야 하는 것은 이 기획이 성공할 수 있는 열쇠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신흥무관학교가 국군의 뿌리라면 그 기원을 살펴보는 일은 단지 과거를 기억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땅의 군대가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를 묻는 현재를 향한 질문에 다름 아니다. 신흥무관학교를 통해 본 국군의 시작에는 자신의 학문과 터전을 모두 버린 지식인이 있고 막대한 재산을 모두 팔아 청년 양성에 바친 재력가가 있다. 사회의 유력한 사람들이 자기의 모든 것을 헌신함으로써 군대의 초석을 다졌으니, 군대야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으로부터 시작된 조직인 것이다. 유력한 사람치고 군대에 제대로 다녀온 사람이 거의 없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군대라는 조직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 진짜 가치를 묻기에 신흥무관학교는 더없이 좋은 소재인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서사는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교훈을 투척한다. 과거의 청년들은 목숨을 바쳐가면서 나라를 지켰다, 이것이 애국이고 이것이 청년 정신이다! 이런 교훈이 지금의 관객들에게 먹힐 리 없다. 정말 그것이 애국이고 그것이 청년 정신인가? 청년의 헌신을 요구하려면, 아무리 국가이고 군대라고 해도, 그만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 과거의 젊은이들은 나라를 빼앗겼지만, 지금 청년들이 빼앗기는 것은 최소한의 사람다운 삶이다. 목숨을 바치기도 전에 삶을 포기하게 되는 게 지금 여기 청년들의 현실인 거다. 청년들이 그렇게 나라를 지켰으면 이젠 나라가 청년들을 지켜줘야 할 때도 된 것 아닌가? 청년을 지켜주는 나라가 아닐 때 청년이 지켜야 할 나라는 없다. 현재에서 출발하는 질문이 아닐 때 국가와 애국이라는 가치는 쉽게 왜곡되거나 화석화되고 마는 법. 젊은 시절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과거의 청년들이 지금은 광화문의 태극기 부대가 되어 애국을 외치고 있다. 진짜, 애국이란 무엇일까?  
 

질문을 던져야 할 지금, 과거를 결론으로 앞세우면 시대는 착오를 일으키고 만다. <신흥무관학교>가 나름 매끈한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낡은 시대착오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게 아쉽다. 나라다운 나라, 내 삶에서의 애국이라는 커다란 이데올로기의 가치에 대해 국방 뮤지컬이 묻지 못한다면 누가 묻겠냔 말이다. 국방 뮤지컬에서 보고 싶은 것은 단지 배우들만이 아니다. 

 

*외부 필진의 리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1호 2018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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