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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무대 뒤 조력자들 - 이수인 조연출 [No.177]

글 |안세영 사진 |심주호 2018-07-04 9,068
무대 뒤 전방위 커뮤니케이터
 
7년 차 조연출. 공연 관람이 취미인 평범한 회사원이었으나 열정 하나로 공연계에 뛰어들었다. 2012년 <라카지>를 시작으로 이지나 연출의 오른팔 역할을 해왔다. 뮤지컬 <광화문연가>, <더 데빌>, <곤 투모로우>, <잃어버린 얼굴 1895>,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연극 <아마데우스>, <지구를 지켜라> 등에 조연출로 참여했다. 


 
2017 <더 데빌> 
2017 <지구를 지켜라>
2017 <광화문연가>
2018 <아마데우스>

 
본명이 이지나 연출과 같다고 들었다. 
맞다. 그래서 주변에서 운명 아니냐고들 한다. (웃음) 처음에는 이지나라는 본명 그대로 활동했는데 그러다 보니 연출님께 가야 할 연락이 내게 오는 등 혼선이 생기더라. 나중에 연출로 입봉해도 이지나라는 이름은 못 쓸 것 같아 2~3년 전에 개명했다. 
 
어떻게 조연출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
이지나 연출님이 이례적으로 SNS에 조연출을 구하는 글을 올리셨다. 마침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앞날을 고민하던 차에 그 글을 보고 지원서를 냈다. 박봉에 일도 힘들 거라고 겁을 주셨지만, 공연 일이 하고 싶어 대학원 진학까지 고려했는데 조금이라도 벌면서 배울 수 있으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세컨드 조연출로 시작해 지금은 메인 조연출이 되었다. 조연출 일은 공연 관련 전공자가 지도 교수나 선배의 소개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전공자인 내 경험상 전공 지식이 필수는 아니다. 스태프들과 얘기하다 보면 낯선 전문 용어가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그때그때 물어보고 배우면서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 
 
공연 제작 단계별로 조연출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조연출은 작품이 연출님 뜻대로 잘 굴러갈 수 있게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연습 전에는 극작과 작곡 진행 상황을 확인해 연출님께 전달하고, 연출님이 각색한 대본을 다시 작가님께 넘겨 의견 교환을 돕는다.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면 스태프 회의와 연습 일정을 짜고 연습 진행 상황을 기록한다. 기록과 기억은 조연출의 제일 큰 업무다. 음악, 안무, 드라마 연습에 모두 들어가 진도를 체크하고, 연출님이 그때그때 바꾸는 동선이나 대사, 필요한 무대 효과를 정리해 배우와 스태프에게 전달한다. 테크 리허설을 할 때는 무대 효과와 큐가 연출님이 말씀하신 대로 잘 진행되는지 확인한다. 공연을 올린 후에도 정기적으로 모니터를 하며 배우들이 연출님이 잡아놓은 노선대로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한다. 
 
각색이나 연출에 조연출의 의견이 반영되기도 하나?
이지나 연출님은 조연출과 활발하게 의견을 나누시는 편이다. 종종 내 생각은 어떤지 물어보시고, 오랜 시간 함께한 지금은 내가 먼저 의견을 말씀드리기도 한다. 때로는 내가 연출님을 대신해 기본적인 대사 정리를 한다. 이지나 연출님은 자연스런 구어체를 선호하시기 때문에 배우들과 대본 리딩을 하며 말하기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고 수정한다. 수정한 대사는 연출님께 보여드린 다음 괜찮다고 하시면 확정한다. 
 
해외에서는 조연출의 업무를 무대감독이나 컴퍼니 매니저가 대신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요새는 국내에서도 업무를 세분화하는 추세다. 스태프 회의를 잡는 건 컴퍼니 매니저가, 연습 스케줄을 짜고 연습 일지를 쓰는 건 무대 팀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조연출은 그 사이에서 계속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컴퍼니 매니저에게 의상 미팅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오면, 내가 연출님 스케줄을 확인해 언제로 잡아달라고 전한다. 반대로 내가 이러이러한 미팅을 잡아달라고 컴퍼니 매니저에게 요청하기도 한다.
 
가장 많이 연락이 오가는 분들이겠다. 
그렇다. 조연출, 컴퍼니 매니저, 무대 팀이 연습실 상주 멤버다. ‘조’만 모인 단체 카톡방도 있다. 컴퍼니 매니저, 조연출, 무대조감독, 음악조감독, 조안무 등이 모여 스케줄을 정리하고 변동 사항을 체크한다. 다른 파트에 요청 사항이 있을 때 주로 조감독을 통해 연락하다 보니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우리끼리 불쌍한 ‘조’의 인생을 위로하는 회식도 한다. (웃음) 


 
조연출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페이가 적다는 점이 힘들다. 조연출은 경력에 따라 페이가 높아지지도 않는다. 현재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생계유지가 힘들 것이다. 개인 생활이 없다는 점도 힘들다. 한창 바쁠 때는 주 6일 ‘텐투텐’으로 일하기 때문에 눈 뜨자마자 연습실로 향해 돌아오면 바로 잠들기를 반복한다. 연습 진행 상황을 놓치면 안 되니 아파도 병원 갈 시간이 없다. 하지만 일이 많고 힘들수록 배우는 것도 많다. 이제는 몸이 편하면 내가 배우는 게 없는 건 아닐까, 이 프로덕션에 기여한 게 없는 건 아닐까 불안해진다. (웃음) 
 
조연출에게 필요한 자질을 꼽는다면?
일단 빠릿빠릿하면 합격점이다. 눈치 빠르고 행동 빠르고 타자도 빨라야 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주변 상황을 놓치지 않고 파악하는 멀티태스킹 능력이 중요하다. 연출의 의도를 다른 스태프와 배우에게 오해 없이 정확하게 전달하는 의사소통 능력도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배우들과 빨리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친근하게 다가갈 때 연습도 수월하고 노트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더라. 그런 점에서 사교성도 필요하다. 조연출, 조감독은 기본적으로 성격이 모나지 않아야 한다. 수많은 스태프와 배우가 잘 화합할 수 있도록 그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게 우리니까. 물론 이 모든 걸 해내려면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은 필수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쉽게 털어버리는 긍정적인 성격이 아니라면 버티기 힘들다. 아마 나는 화장하면 사리 나올 거다. (웃음) 
 
이지나 연출 외에 다른 연출가와 작업할 생각은 없나?
그럴 기회가 별로 없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연출가도 합이 맞는 조연출과 계속 일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또 조연출은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투입되어 한 작품을 완벽히 끝낸 다음 다른 작품에 들어가야 하기에 스케줄 조정이 힘들다. 하지만 기회만 되면 다른 연출가의 작업 스타일도 접해 보고 싶다.
 
조연출 경험이 연출가로 나아가는 데 어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연출님이 셰프라고 치자. 셰프가 이런 요리를 만들겠다고 말하면 그걸 위해 재료를 준비하는 파트, 식기를 준비하는 파트 등이 나뉘어 있을 것이다. 조연출은 그 모든 파트를 돌며 셰프가 필요하다고 한 게 잘 준비되어 있는지 챙기는 역할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그 모든 파트에 대해 배우게 되고, 훗날 연출을 할 때 더 명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조연출에서 연출로 입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몇 가지 경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자기 돈으로 공연을 올리는 경우. 둘째, 제작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연출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 하지만 둘 다 실현 가능성이 낮다. 그 밖에 연출님이 하시던 작품을 물려받아 작업하는 경우와 직접 대본을 써서 공모에 당선되는 경우가 있다. 조연출로 시작해 연출이 되기까지 통상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언제든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게 내실을 탄탄히 해둬야 한다. 물론 마냥 기회만 기다리고 있을 순 없다. 최근에는 나도 나만의 작품을 구상 중이다. <빨래>, <어쩌면 해피엔딩>, <키다리 아저씨>처럼 소소하지만 마음에 위안을 주는 공연을 선보이고 싶다.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조연출, 조감독은 칭찬받기 힘든 직업이다. 작품에 눈에 띄는 영향을 미치는 자리는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다들 내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구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그 숨은 노력을 생각해 프로그램 북을 펼치면 우리 이름도 한 번쯤 들여다봐 주시면 좋겠다. 익숙한 이름이 언젠가 음악감독, 안무가, 연출가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우리의 성장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더 큰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7호 2018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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