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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 INTERVIEW] 한국 뮤지컬 작가 워크숍 작가들 [No.176]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8-06-01 9,330
대학로에서 가장 높은 작가의 방 한뮤작당
 
하루에도 수많은 공연이 무대에 오르는 대학로, 매일 이곳에는 공연을 만드는 수많은 사람들과, 공연을 보려는 더 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들뜬 마음으로 분주히 오간다. 공연의 정취가 배어 있는 대학로에 뮤지컬 작가들의 공간이 생겼다. 대학로 뒤편 낙산공원으로 향하는 외곽의 비탈길을 오르다 보면 통나무집 느낌을 주는 건물이 있다. 대학로를 내려다보는 이곳이 뮤지컬 작가들의 공간 ‘한뮤작당’이다. 오은희 작가가 한국 뮤지컬 작가 워크숍의 후배 작가들을 위해 마련해 준 공간이다. 복층 구조에 아담한 지붕방까지 마련된 ‘한뮤작당’은 들어서는 순간 작가가 아니더라도 글을 쓰고 싶어진다.
 


 
한뮤작당 개당
 
한뮤작당의 탄생은 지난 연말 한국 뮤지컬 작가 워크숍 송년회에서 시작됐다. 지난 2년간 공식적인 워크숍은 잠시 중단 상태였는데 2018년부터는 새롭게 시작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워크숍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때 자리한 오은희 멘토가 공간은 자신이 마련해 주겠다고 돌발 발언을 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후배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다는 생각은 오은희 작가의 오랜 꿈이었다고 한다. 선의가 너무 커서 받아도 되는지 망설였지만 여러 논의 끝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재은 작가가 인터넷으로 후보지를 물색하고 성종완 작가 등 다른 멤버들이 발품을 팔아 직접 공간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멤버들 모두가 직접 나섰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한뮤작당을 찾아냈다. 

낙산공원으로 향하는 가파른 비탈길 끝자락 즈음에 위치한 한뮤작당은 3층 건물 중 2층과 3층 그리고 낮은 지붕방을 사용한다. 2층은 주방과 테이블이 있는 회의 및 워크숍 공간, 3층은 작가들이 집필을 하는 작업 공간, 허리를 숙이고 걸어야 하는 낮은 지붕방은 작가들의 휴식 공간으로 꾸며졌다. 여덟아홉 명이 모이기에 적당한 소박한 규모이지만 각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실용적이다. 2층은 긴 테이블과 오르간, 칠판이 있어 비평이 중심이 된 워크숍을 하거나 회의를 하기에 좋고, 3층은 집필 공간으로 작은 베란다가 있어 글이 막힐 때 잠시 바람을 쐬기에 안성마춤이다. 낮은 지붕방은 허리를 숙여야만 이동할 수 있지만 그만큼 아늑해서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작년에 작업실을 마련했는데 그때 경험이 있어서, 가구는 이런 게 좋지 않을까 의견을 물으려고 사진 하나 올렸다가 인테리어 담당이 되어 버렸어요.” 한뮤작당은 정준 작가를 주축으로 모든 작가들이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커튼을 설치하고 가구를 골라가며 꾸몄다. ‘한뮤작당’이란 이름도 한국 뮤지컬 작가 워크숍이라는 이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무언가 재밌는 작당을 하자는 의미로 작가들이 의견을 모아 결정한 것이다. 멤버들이 물품을 기증하고 조광화 멘토가 세간살이를 마련할 비용을, 구소영 멘토는 전자 오르간을 기증하면서 얼추 작가의 집 모양새를 갖추어가고 있다. 

지난 4월 1일 멤버들과 멘토들이 모여 조촐한 개당식을 했다. 이 자리에서 오은희 작가는 “한뮤작당이 반드시 글을 쓰지 않더라도 작가들이 쉬어가며 머리를 맞대고 도모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은희 작가가 전세를 얻어 작가들에게 무상 임대하는 형식으로 제공한 곳이지만 본인은 이곳에 안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한뮤작당의 주인은 후배 작가들이고, 후배들이 자유롭게 꾸미고 사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채정원 작가는 “한뮤작당은 대학로의 그 어떤 곳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창작 공간이다. 여기에 올라오려면 숨이 차는데 제작자들이 삼고초려하기 위해 찾아오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맞고 나서 징징댈 곳
 
한국 뮤지컬 작가 워크숍이 시작한 것은 2013년 4월이다. 1960년대에 여석기 선생님이 주도한 한국 극작 워크숍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곳을 통해 윤대성, 노경석, 오태석, 이강백 등 한국 연극계를 이끌어가는 대표 희곡 작가들이 배출됐다. 이 모임이 1990년대 이강백 작가와 한상철 평론가 주도로 다시 부활했는데, 당시 신인 작가였던 조광화, 오은희 작가가 이곳의 멤버였다. 조광화, 오은희 작가는 선배들에게 받은 것을 후배들에게 베풀고 싶다는 생각으로 2013년 한국 뮤지컬 작가 워크숍을 열었다. 조광화 작가와 오은희 작가가 주도했고 구소영 음악감독, 박병성 <더뮤지컬> 전 편집장, 김종헌 프로듀서가 멘토로 참여했으며, 신인 작가 10명이 멤버로 출발했다. 월마다 두 작가가 발표를 하고 집단 비평을 하는 방식으로 3년간 진행됐다. 

워크숍의 첫 작품은 성종완 작가의 <글루미데이>(현 <사의 찬미>)였다. 엄청난 비판을 받았지만, 쏟아지는 비판을 이겨내며 수정 보완하면서 지금의 <사의 찬미>로 발전했다. 한재은 작가의 <팬레터>도 당시에는 <섬세한 팬레터>란 이름으로 워크숍에 소개되었다. 이외에 이오진 작가의 <바람직한 청소년>, 이동규 작가의 <드가장> 등 수많은 작품이 이곳을 통해 개발되었다. 성종완 작가는 “워크숍을 통해 작품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이 생겼다”며, 작가마다 작업 방식이 다르고 관심 분야가 다르다 보니 다른 작가의 작업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비평하다 보니 비평하는 기술도 발전했다. 한재은 작가는 “처음에는 격한 비평으로 상처를 주기도 했는데 여러 번 진행하다 보니 작가의 입장에서 이런 부분을 발전시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식으로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누구보다 작가의 입장을 이해하는 애정 어린 비평이고 작가적 상상력이 풍부한 동료의 이야기이다 보니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초기에는 완성된 대본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 차원이거나 시놉시스, 트리트먼트 상태로도 발표를 해서 작품의 초기 단계부터 발전해 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대본 과정뿐만 아니라 그것이 무대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작가로서 많은 공부가 됐다. 정준 작가는 “대본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연출과 배우를 통해 무대화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대본 단계에서 어떤 것들을 녹여내서 써야 하는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은 물론 동료들의 수많은 작품들의 발전 과정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극작에 대한 세심한 고민이 늘어간 것이다. 장우성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누구에게 보여주기 쉽지 않은데, 믿고 기댈 수 있는 동료가 생겨 가장 기뻤다”고 한다. 장우성 작가 말대로 작가 일은 외로운 작업인데 그 일을 함께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옆에 있다는 것이 한국 뮤지컬 작가 워크숍이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올해 새롭게 참여하는 김명환 작가는 “이제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고 나서도 징징댈 데가 생겼다”며 참여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신입 멤버 김유정 작가도 마찬가지다. “작가들이 같이 있는 곳이라는 설명만 듣고 바로 하겠다고 대답했다. 믿을 수 있는 작품 비평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작가들이 모인 단체라는 말에 다른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작가들에게는 힘겹고 불확실한 길을 걸어가는 동료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용기를 주었다. 그동안 업계에서 상대적인 약자였던 작가는 심심치 않게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 실제 한뮤작 작가들 역시 아이디어를 도용당하거나, 불합리한 계약을 강요받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는 상의하고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들이 생겼다. 어쩌면 앞으로도 적지 않게 맞고 다니겠지만 함께 화를 내고 응원해 주는 동료가 생긴 것이다. 

뮤지컬 작가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내야 하는 동시에 상업성을 무시할 수 없다. 자신의 작품 세계가 다행히 상업적인 가능성과 맞는다면 행운이지만 만약 제작자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갈등을 피할 수 없다. 글 쓰는 일은 분명 전문 분야이지만 이야기의 아이디어는 많은 사람들이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관여하려는 이들이 많고 작품이 노출되었을 때 작가가 제일 먼저 이런저런 평가를 받는다. 상업성 때문에 또는 다른 분야의 창작자와의 협업 때문에 양보하고 맞춰주다 보면 작가의 의도에서 벗어난 극본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난까지도 작가에게 쏟아지다 보니 멘탈이 흔들리기도 한다. 이처럼 작품적인 것 이외에도 한국에서 뮤지컬 작가로 살아가면서 생기는 고민들을 이곳에서 함께 나누며 각각의 문제가 발생할 때 어떤 해법이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있다. 

 

 
신나는 작당
 
2013년 열 명의 작가로 시작한 한국 뮤지컬 작가 워크숍은 몇 명의 작가가 나가고 또 몇 명의 작가가 새롭게 참여하는 등 멤버 구성원의 변동이 있었다. 3년간 활발하게 진행하다, 지난 2년간은 휴지기를 가졌다. 원래도 새롭게 시작할 계획이 있었지만 한뮤작당이 마련되면서 한국 뮤지컬 작가 워크숍 활동이 탄력을 받았다. 이번 3기는 기존 멤버 중 성종완, 오혜원, 장우성, 정준, 채정원, 한재은 작가와 새롭게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의 김명환, <줄리 앤 폴>의 김유정,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설의 리틀 농구단>의 박해림 작가가 투입돼 새로운 한국 뮤지컬 작가 워크숍 활동을 전개한다. 

공간이 생기면서 실제 극작 작업에도 좀 더 의욕이 생겼다. 한뮤작 1기 때부터 막내이자 지금까지도 막내인 채정원 작가는 “한뮤작당의 최고 수혜자가 될 거”라며 투지를 보였다. “대학로의 분위기가 있다 보니까 이곳에 오면 좀 더 동기부여가 된다. 개당식 때 작가는 외로운 작업이라며 오은희 선생님이 감정이 복받쳐 눈시울을 붉히셨는데 이곳에 오면 선생님의 그 모습이 떠올라 나태해질 수가 없다.” 다른 멤버들 역시 한뮤작당이 한국 뮤지컬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는 정기 워크숍 이외에 작가들의 작업 공간이자 미팅이나 세미나 장소로 이용되지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2층 공간에서 작은 규모의 리딩을 한다거나, 작가들의 재능이나 전문 분야를 서로 나누는 강의를 기획하거나 꼭 작가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교류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장으로도 활용하려고 한다. 명작 중에는 우연한 만남에서 출발한 작품들이 있는데, 한뮤작당에서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작품으로 발전하는 다양한 만남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당원들은 한뮤작당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거창하게는 한국 뮤지컬의 역사적 순간들로 기억된다면 무척 좋을 것이라며 큰 포부를 드러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6호 2018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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