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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 INTERVIEW] 김문정 음악감독 [No.174]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8-03-27 17,318
바쁜 그녀를 호출하는 이유

인터뷰를 한 2월 12일은 김문정 음악감독이 참여했던 <모래시계>를 마친 다음 날이었다. 김문정 음악감독은 막 마무리한 <모래시계>를 제외하고도 공연 중인 <더 라스트 키스>, 곧 막이 오를 <명성황후>와 수년간 준비해 온 <웃는 남자>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한세대 공연예술학과 교수이자, <팬텀싱어>의 심사위원으로 공연계에서 열 일을 하는 그녀는 대형 뮤지컬을 올릴 때 제일 먼저 찾게 되는 스태프이다. 특히 대형 창작뮤지컬을 제작할 때는 그녀의 존재가 더욱 절실해진다. <영웅>, <마타하리>, <명성황후>, <아리랑> 재연, <서편제>, <모래시계>, <웃는 남자>까지 최근 대형 창작뮤지컬에 이름을 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한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김문정 음악감독를 찾는 이유를 묻자 제작사 측의 대답은 간단하다. “잘하니까.” 장면을 만들 때 하루 종일 해도 정리가 안 되던 것을 김문정 음악감독이 2시간 작업하면 정리가 된다는 것. 실력으로 늘 확인시켜 주니 그녀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많은 경험에서 얻은 지혜

제작사가 선호하는 이유가 신뢰할 수 있어서라고 하더라.
힘이 나는 이야기인데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이 겹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할 때는 정신 바짝 차리고 하자는 게 내 신조인데, 그런 마음가짐이 전달된 것 같아 기쁘기도 하다.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나.
체력은 좋다. 매일 밤 세 시간 동안 유산소 운동(지휘)을 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오히려 일을 안 할 때 몸이 뻐근하고 기운이 없다. 나에게는 지휘하는 게 보약을 먹는 일이다. 아직까지는 현장에서 일하는 게 괜찮다.

뮤지컬 지휘는 배우들의 상태나 그날 공연 상황에 따라 조율해야 할 일들이 많다. 스트레스를 받을 법도 한데, 공연장에서 보면 늘 즐거운 표정이다.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순 없다. 지휘자도 포커페이스를 할 때가 있다. 공연 전후로 동료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해야 한다. 지휘를 하다 보면 별의별 상황이 벌어진다. 연주자가 갑자기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거나, 배우들의 몸 상태 때문에 곡의 일부를 변경하기도 한다. 그날 컨디션에 따라 상황을 조율하고 정리해야 한다.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돌발 상황이다. 컨트롤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배우들의 그날그날의 연기 감정에서 약속 없이 이루어지는 돌발 상황은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경력이 많지 않았던 때 한번은 화가 너무 나서 인터미션 때 올라가 화를 낸 적이 있다. 그리고 후회했다. 2막에서 배우도 영향을 받고 나도 평정이 안 돼서 지휘하기 힘들었다. 그런 내 상태가 오케스트라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다. 공연 전에는 서로에게 신뢰를 형성하도록 노력하고 불편한 것이 있더라도 끝나고 이야기한다는 철칙을 갖게 됐다.

<모래시계> 제작 과정을 들으니 창작 과정에도 깊숙이 참여했는데, 음악감독이 보통 창작 과정에도 참여하나?
<모래시계>에는 음악슈퍼바이저로 참여해서 창작 과정에도 참여한 것이다. 음악감독은 일종의 현장감독 같은 사람이다. 모든 게 만들어진 후에 투입된다. 반면 음악슈퍼바이저는 주크박스 뮤지컬처럼 기존 노래를 재구성할 때 작곡가가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거나, 창작 과정에서 음악을 극적으로 재배치하거나 구성하는 역할이 필요할 때 참여하게 된다. 연출과 의논하면서 곡의 재배치나 드라마를 살리는 음악 구조를 만드는 일을 한다. 그래서 음악슈퍼바이저는 프로덕션이 바뀌어도 크리에이티브 팀으로서 보장을 받게 된다. <몽유도원도>, <겨울연가>, <내 마음의 풍금>, <광화문연가>, <서편제>, <모래시계> 등은 음악슈퍼바이저로 참여한 작품이다.



구체적인 음악슈퍼바이저의 작업을 예로 든다면?
<모래시계>의 경우 혜린이 부르는 ‘모래시계’나 태수의 ‘너에게 건다’는 원래 지금보다는 짧은 곡이었다. 드라마 특성상 늘릴 필요가 있어 브리지 음악을 넣어 길게 만들었다. 태수가 감옥을 탈출하는 장면도 애초 연출은 지금하고 달랐다. 그런데 음악을 들어보면 달리고 있었고 마지막에는 관객의 코앞에서 불러야 탈출의 해방감이 느껴질 것 같아 제안한 것이 지금의 연출에 반영된 것이다. 뮤지컬 음악은 그림이 보여야 하고 그것이 좋은 뮤지컬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모래시계>는 그림이 보이는 음악이었다.

그런 역할을 하면 실질적인 보상을 받나.
퍼센티지가 많지는 않아도 별도의 로열티를 받는다. 처음 음악감독 일을 했을 때는 슈퍼바이징을 했어도 그에 대한 보상을 말할 여건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런 노력을 인정받는 게 변한 점이다. 선배 음악감독으로서 후배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든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하니 조심스럽다.

아무래도 선례를 만드는 입장이니까 더욱 그럴 것 같다.
전문 뮤지컬 오케스트라를 만든 것도 하나의 선례였다. 화요일마다 오케스트라 전원이 먼저 나와 튜닝을 하는데 이것도 우리가 먼저 시작한 것이다. 월요일 공연이 없고 화요일에 한 주를 시작하니까 감각을 깨우기 위해 7시에 모여서 15분 정도 튜닝을 한다. 처음에는 객석 오픈 전에 무대 팀이 셋업 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오케스트라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는데, 이제는 먼저 챙겨주기도 한다. 브로드웨이에서도 하지 않는 일이다. <레 미제라블> 팀하고 작업할 때 별도의 페이를 받지도 않는데 오케스트라가 먼저 와서 준비를 한다는 데 놀라워하더라. 이것도 하나의 선례로 남아서 이제는 대부분 화요일 튜닝을 하는 것 같다.

소극장이나 중극장 창작뮤지컬은 어느 정도 경쟁력 있는 작품이 나오는데, 아직 대극장 창작뮤지컬의 역량은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대형 뮤지컬 경험이 많은 김문정 음악감독을 더 찾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럴 수도 있다. 근데 내 취향은 소극장이 더 맞는 것 같다. 소극장은 특정 관객을 흡수할 수 있는 구조여서 창작자가 더 자유롭고 예술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날카로운 침으로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작품이 가능하다. 대극장은 물질적인 환경이나 상업성 때문에 모든 관객의 다양한 구미를 적어도 80퍼센트 정도는 만족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필요하다. 감사하게도 대극장에서 성공한 라이선스 뮤지컬 작업을 많이 해서 대극장 뮤지컬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도 모르게 쌓인 것들이 있다. 아마 대형 창작뮤지컬을 만드는 과정에 그런 면들이 반영되지 않을까. 





섬세함이 주는 큰 차이

소극장 뮤지컬과 대극장 뮤지컬 음악 작업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대극장 음악은 전환을 많이 신경써야 하고, 앙상블 활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게 소극장에는 없는 요소다. 대극장 작업을 할 때는 앙상블이 1막과 2막에 어느 정도 나오는지 배분에도 신경써야 한다. 무대 전환할 때는 소음도 발생하고 속도도 중요하다. 또한 전환되면서 다음 신으로 이어지는 드라마의 호흡도 중요하다. 그런 것들을 각각의 상황에 맞게 음악으로 구성해 주어야 한다.

배우들이 가장 신뢰하는 음악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김문정 감독이 지휘를 하면 배우들의 호흡을 잘 살려주어서 좋다고들 이야기한다.
(나만이 아니라) 다들 그렇게 한다. 내가 계산을 하는 게 있다면 잔향이다. 대극장은 홀이 커서 잔향이 있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끝났을 때 이 소리가 3층에 갔을 것 같은 느낌의 순간이 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고 다음으로 나가려 한다. 그게 대극장 뮤지컬을 지휘할 때의 짜릿함이고 쾌감이다. 그것까지 듣고 가거나, 아니면 드라마적으로 소리를 확 자르고 들어가 주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러한 계산을 섬세하게 하려고 하는데 그게 배우들에게 느껴졌던 게 아닐까.

대형 창작뮤지컬 작업이라도 작품마다 상황이 다르다. 작년에 참여한 <아리랑>은 재연에 새롭게 투입된 경우다.
재연에 들어갈 때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들어간다. 나름 열심히 했고 성과도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초연의 향수가 있는 분들은 아쉬워하기도 했다. 재연 작업에 참여할 때는 작품에 의심이 드는 부분을 먼저 고치려 들기보다는 질문을 한다. 왜냐면 그 선택을 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 선택을 한 이유를 듣고 내 입장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그러면 ‘그것도 고민해 봤죠’ 할 때도 있고, 긍정하면서 수용할 때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해온 작업을 존중해 주는 일이다. <아리랑> 재연의 경우는 앙상블의 활용을 높인다거나 하는 몇 가지 미션이 있었다. 그런 미션에 맞게 분명 업그레이드했고 어느 정도 만족한다.

<마타하리>나 <웃는 남자>는 외국 스태프하고 같이 작업을 했다. 외국 스태프와의 작업은 어땠나?
제일 먼저 외국 스태프하고 작업한 것이 <명성황후> 때 피터 케이시와의 작업이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언제나 언어이다. 그들에게 우리의 정서를 이해시키는 일이 힘든 것이지, 나머지는 다르지 않다. <마타하리>는 굉장히 바쁜 일정으로 진행되어서 각자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했다. 단지 그런 과정을 열심히 이메일로 전하는 게 귀찮을 뿐. 여러 작품을 해오다 보니까 이제 신뢰가 쌓여서 불편하지 않다.



올해 가장 큰 대형 창작뮤지컬 <웃는 남자>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다행스러운 건 로버트 요한슨이 마지막 걸작을 남기겠다는 마음으로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허투루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주변 스태프를 너무 채근하는 바람에 피곤해 죽겠다. 요한슨 마음은 참여 스태프들이 오직 <웃는 남자>만 하길 원하는 것 같다. ‘문정 음악 체크 했어? 대본 바꿔야 하지 않을까?’ 벌써부터 생각과 걱정이 많아서 워워 하고 있는 중이다. 음악은 전곡이 다 나왔고 수정하고 있는 상태다. 로버트 요한슨이 한국 작업을 많이 해서 우리 관객들의 취향을 고려해 원작에서의 인간애와 로맨스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작업하고 있다.

창작뮤지컬에 비해 라이선스 뮤지컬은 역할이 한정될 것 같다. 실제로 어떤가?
라이선스도 레플리카와 넌레플리카가 있으니까 넌레플리카의 경우에는 슈퍼바이저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본과 음악만 가져오기 때문에 음악 편집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원작사에서는 원작의 색채 보존을 요구하지만 우리는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생기는 문화적 차이를 줄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경우라도 원작을 훼손하거나 본질을 잘못 전달하는 경우를 방지하려고 노력한다. 창작뮤지컬이나 라이선스 뮤지컬이라고 해서 음악감독의 역할이 다르다거나, 어떤 것이 더 힘들다고 말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많은 창작뮤지컬에 참여해 왔는데 모범적인 과정이라고 소개해 줄 만한 작품이 있나?
<내 마음의 풍금>(2008년) 작업을 할 때는 이희준 작가, 조광화 연출, 최주영 작곡가, 나(작곡가 겸 음악슈퍼바이저), 서병구 안무 선생님까지 참여해 테이블 회의를 굉장히 오래했다. 이희준 작가가 고생해서 써오면 회의에서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이야기를 한다. 이희준 작가는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적기만 한다. 그리고 다음 회의 때 그걸 반영해 온다. 그런데 반영하고 싶은 것만 반영한다. 우리가 하도 심하게 말해서 이 작가에게 죄송하다고 했더니, “뮤지컬 작가는 자기 대본이 찢어발겨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고 하더라. 멋있었다. 그리고 이번 대본에서 대사가 한 장 반 이상을 넘는 부분을 없게 할 거라고 했던 것이 인상에 남는다. 여러 번의 스태프 회의를 거쳐서 리딩 독해를 했다. 작곡은 나와 최주영 작곡이 같이했는데 각자 곡을 써 와서 그중에 더 어울리는 곡을 선택했다. 곡을 쓰기 전에 레퍼런스를 많이 찾아서 곡이 나왔을 때 다른 스태프들이 당황하는 일은 없었다. 김종헌 대표도 창작자들이 회의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배려  해 주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을 때 구민회관을 빌려서 동선을 밟아보는 트라이아웃을 했다. 공연 오픈을 했는데 둘째 날 이미 정상 콜을 했다. (편집자 주: 작품을 개막하면 안정되기까지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수정 사항을 반영하기 위해 배우와 스태프가 평소보다 일찍 모인다. 이후 안정되면 일정한 시간에 모이게 되는데 준비가 철저했던 <내 마음의 풍금>은 개막 다음 날부터 일상적인 시간에 모인 것이다.) 그게 2008년인데 이후 아직까지 이렇게 작업하는 작품이 없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4호 2018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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