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뮤지컬이 뽑은올해의
좋았던 혹은 아쉬웠던 작품
*작품 선정 기준 2016년 12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서울 소재 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가운데 초연, 또는 대본·음악·연출에 큰 변화가 있었던 재연.
<로미오와 줄리엣> 2016년 12월 16일 ~ 3월 5일
셰익스피어의 힘은 미래에서도 통했다. 핵전쟁 이후 어느 미래를 배경으로, 핵폐기물에 노출되어 뱀파이어가 된 돌연변이와 인간의 갈등을 그린 이야기. 솔직히 처음 작품의 설정을 들었을 때는 큰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원작의 기승전결을 대입하고 나니 마주한 무대는 꽤 흥미롭게 느껴졌다. 카풀렛 역에서 살고 있는 인간 줄리엣과 돌연변이 몽타퀘의 로미오. 이들은 미래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독특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지만, 그 사랑의 크기만은 변함이 없었다. 강렬한 록 비트에 맞춰 춤추는 좀비 분장의 몽타궤들, 2층 무대를 속도감 있게 뛰어다니는 캐릭터들은 더욱 리드미컬한 무대를 만들어주었다. - 나윤정
<어쩌면 해피엔딩> 2016년 12월 20일 ~ 3월 5일
사랑에 빠진 로봇 이야기. 솔직히 <어쩌면 해피엔딩>의 소재 자체가 신선하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다소 평범한 이야기로 누군가를 향해 열렬한 감정을 품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면 그만한 성공이 또 있을까. 올리버와 클레어가 첫 여행 날 같은 스티커를 나눠 붙인 여행 가방을 나란히 가지고 나올 때, 마음이 고장난 듯 한없이 사랑에 빠지는 제 모습에 당황스러워할 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서로의 기억을 없애려 하지만 기억은 지워져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 우리 또한 기꺼이 다시 한 번 사랑에 속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완성도 높은 음악을 들려줬으며, 세트와 조명, 모든 요소가 두 주인공의 사랑스러움을 뒷받침해 줬다. - 배경희
<레드북> 1월 10 ~ 22일
올해의 가장 시의성 있는 뮤지컬. 사회를 휩쓴 여성 혐오 이슈와 더불어 주체적인 여주인공에 대한 갈증이 커진 뮤지컬계에서 ‘난 나쁜 여자야’를 외치는 안나의 등장은 실로 반가운 사건이었다. 여성이 목소리를 내기조차 힘들었던 빅토리아 시대에 19금 소설 작가로 나선 안나의 이야기를 그린 <레드북>은 짧은 기간 공연되었음에도 큰 사랑을 받았다. 일상적인 성차별을 꼬집은 장면과 거기서 터져 나오는 안나의 사이다 발언은 관객의 공감을 사기 충분했다. 또한 안나가 성소수자 로렐라이와 연대하고 작가 의식을 확립해 가는 과정, 보수적인 신사 브라운이 안나를 통해 변화해 가는 과정이 음악과 맞물려 매끄럽게 전개됐다. 흥행작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낳은 한정석·이선영 콤비의 저력을 재확인한 작품. - 안세영
<광염소나타> 2월 14 ~ 26일
김동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광염소나타>는 살인을 통해 천상의 멜로디를 얻는다는 짜릿한 소재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뚜껑을 연 작품은 너무 도덕적이라 당황스러울 정도. 소설이 ‘예술과 도덕의 대결에서 꼭 도덕의 손을 들어줘야만 하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면, 뮤지컬은 친절한 내레이션까지 덧붙여 도덕의 손을 들어준다. 선악으로 나뉜 인물 구도며, ‘광염(狂炎)’과는 동떨어진 고운 선율도 김새는 요소. 살인과 작곡이 반복되는 단순한 줄거리를 보강하기 위해 J와 S의 관계에 방점을 찍었으나, 이는 익숙한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구도를 브로맨스로 변주했을 뿐. 뮤지컬이 보여주고픈 것이 예술과 도덕의 대결인지 삼각관계 치정극인지 아리송하다. - 안세영
<더 데빌> 2월 14일 ~ 4월 30일
<더 데빌>은 파우스트를 모티프로 유혹과 욕망의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초연에는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는 존재인 X가 등장하는데, 재연에서는 악을 상징하는 X-블랙과 선을 상징하는 X-화이트로 나누었다. <더 데빌>의 매력이라면 아름다운 넘버들과 X의 모호성에 있었다. 그런데 X를 명확하게 둘로 나누면서 하나의 매력을 잃었다. 기본적으로 <더 데빌>은 내러티브의 약점이 있는 작품이다. <파우스트>를 모티프로 했다고 하지만 존이라는 캐릭터는 평생을 진리와 선을 추구해 왔던 파우스트와 비교하기에 너무나 급이 떨어지는 인물이다. 부와 욕망을 좇는 주식 브로커 존을 파우스트 위치에 둔 것 자체가 난센스다. - 박병성
<꽃보다 남자 The Musical> 2월 24일 ~ 5월 7일
만화적 상상력을 무대에 고스란히 옮겼다. 원작 만화는 아시아 각국에서 드라마와 영화로 재탄생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렸고, 한국에서도 드라마로 제작돼 큰 사랑을 받았다. 원작을 충실하게 따른 뮤지컬은 허세 가득하지만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드라마와는 또 다른 매력을 전한다. 무엇보다도 젊은 배우들이 전하는 활기차고 밝은 에너지가 강점. 낯부끄럽고 오글거리는 대사와 행동이 주는 재미도 빠질 수 없다. 서툴지만 매력적이고, 오글거리지만 사랑스러운 작품. - 박보라
<오! 캐롤> 2월 28일 ~ 5월 7일
<오! 캐롤>의 줄거리는 한적한 리조트에서 벌어지는 <한여름 밤의 꿈>이라고 압축할 수 있다. 결혼식 당일 신랑이 나타나지 않자 신혼여행으로 잡아두었던 리조트로 신부와 그의 친구가 온다. 그 리조트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코믹극이다. 이야기의 개연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작품은 시종 밝고 명량하고 유쾌하고 경쾌해서 기분을 업시킨다. 발랄한 내용에 맞는 단순하고 경쾌한 안무 역시 분위기를 밝게 하는 데 한몫한다. 무엇보다도 닐 세다카의 신나는 노래 ‘스튜피드 큐피드’, ‘원 웨이 티켓’ 등의 노래들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관객들을 무장 해제시킨다. - 박병성
<미스터 마우스> 3월 9일 ~ 5월 14일
원작이 그러하듯 드라마의 감성은 따뜻했다. 인후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분명했다. 하지만 10년 만의 재연에 너무 기대를 한 탓일까? 무대 세트와 연출적인 측면에서는 새로움을 찾기가 힘들었다. 기존 뮤지컬 문법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무대 전개가 아쉬울 따름. 배우들이 블록 모양의 소품들을 직접 옮기며 만드는 무대 전환 또한 오히려 극의 몰입에 방해가 되는 요소였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코믹 설정들도 극에 올드한 느낌을 더해 주었다. 인후의 변화나 심리 상태를 더욱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세련된 장치가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 나윤정
<머더 포 투> 3월 14일 ~ 5월 28일
작품은 여러 가지 인격이 등장하는 음악 살인 미스터리 코믹 2인극이다. 그러나 인격이 변하는 과정과 다양한 인격의 표현에 집중한 탓에 오히려 작품이 진지하게만 보였고, 추리의 재미 대신 지루한 시간이 이어졌다. 작품이 내세운 알쏭달쏭한 메시지도 아쉽다. 무대 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던 두 명의 배우만이 작품을 끌고 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던 것이 사실. 한국 뮤지컬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시도엔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이 전부다. 극장을 나오는 내내 ‘조금만 더 힘을 뺐다면’이라는 아쉬움이 들었던 작품. - 박보라
<스모크> 3월 18일 ~ 5월 28일
시인 이상의 작품들은 시대를 초월하였고, 그 해석의 여지 또한 활짝 열려있다. 그런 만큼 그의 이야기를 무대에서 만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스모크>는 이상을 다루되, 직접적으로 그를 등장시키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상반된 성격의 두 남자 해와 초, 그리고 그들에게 납치된 여인 홍을 통해 새롭게 이야기를 꾸렸다. 그런데 이들에게 숨겨진 반전은 허무했다. 이상의 작품처럼 난해하고 모호함을 전하는 것이 창작자의 의도라고 할지라도, 무대는 관객과 소통할 때 더욱 의미가 있는 법. 공연을 보는 내내 머릿속 물음표를 지우기가 어려웠다. - 나윤정
<판> 3월 24일 ~ 4월 15일
19세기 말 조선을 배경으로 이야기꾼 ‘전기수’를 소재로 삼았다. 배경이 옛것이라고 풀어가는 방식도 그럴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통 가락과 서양 음악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극을 이끈다. <판>이 가져온 전통 연희 형식은 자연스럽게 풍자와 해학으로 이어진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라 했던가. 극 중 사또의 패악질과 백성이 겪는 아픔은 국정농단으로 뜨거웠던 지난겨울의 광장부터 현재 진행형인 지금까지 고스란히 겹쳐진다. 뮤지컬에서 자주 만나기 힘든 우리 고유의 새로운 소재를 발굴했다는 점도 박수쳐줄 만하다. 창작 지원의 좋은 예로 손색없다. - 안시은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4월 14일 ~ 5월 14일
‘현장성’이란 무대의 매력을 몸소 느낄 수 있었던 공연. 제목 그대로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이란 독특한 컨셉이 이 작품을 빛나게 만들었다.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관객들의 대답으로 하나씩 하나씩 공연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관극 체험이 되었다. 객석에서 황당한 요청이 쏟아져 나와도 순발력 있게 꿋꿋이 극을 이끌어 나갔던 배우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렇게 만들어진 드라마가 다소 엉뚱하면 어떤가. 배우들이 당황해하는 모습마저도 그저 큰 웃음을 주었던 유쾌한 공연인 것을! - 나윤정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4월 15일 ~ 6월 18일
사회적 불륜을 다룰 때 해결해야 하는 큰 과제는 사람들로 하여금 두 사람의 사랑이 불륜이라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것 아닐까. 가족에게 헌신해 온 프란체스카와 자유로운 영혼 로버트의 한여름 밤의 꿈같은 사랑을 그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바로 그 점에서 실패했다. 두 사람의 사랑에는 오직 ‘나’와 ‘그’만 존재하는 법이 없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저녁을 함께하며 강렬한 끌림을 느끼는 장면에선 로버트의 전처가 무대에 등장하며,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는 프란체스카의 가족이 무대에 나타난다. 둘의 관계가 불륜이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하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말이다. 그 결과, 프란체스카가 끝내 자신의 행복이 아닌 가정에 대한 책임감을 택할 때 가슴이 저미는 대신 ‘옳다’와 ‘그르다’로 쉽게 구분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간단히 결론짓게 된다. “불륜은 부정이다.” - 배경희
<밀사> 5월 19일 ~ 6월 11일
서울시뮤지컬단의 신작 <밀사>는 헤이그 특사 중 비교적 덜 알려진 이위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암살>이나 <밀정> 등 항일 투쟁기를 담은 콘텐츠들이 인기를 끄는 것과 맥을 같이할 뿐만 아니라, 당시 7개 국어를 하고 러시아인과 결혼을 했으며, 러시아군의 장교로 활약한 이위종의 이력이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흥미는 기획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이위종의 삶을 쫓고는 있지만 인물에 대한 이해 없이 건성건성 나열하고 있다. 왜 이위종을 이야기하는지 이유는 실종되고, 초반부터 반복되었던 ‘반짝거리는’이라는 노래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여러 번 반복된다. 사고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지만 안타깝게도 사고는 아니었다. - 박병성
<찌질의 역사> 6월 3일 ~ 8월 27일
과거 작가 자신의 지질함을 풀어낸 이야기로 인기를 끈 웹툰 『찌질의 역사』가 주크박스 뮤지컬로 새롭게 탄생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잘못을 모른다지만, <찌질의 역사> 주인공들은 자신을 반성하며 최악은 면했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구남친이 내게 했던 지질한 과거사를 동네방네 소문낸다면? 당장이라도 찾아가 “쪽팔린 줄 알라”며 등짝을 시원하게 발로 차주고 싶을 것. 공연을 보는 내내 시대를 역행하는 이야기에 고구마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 차오른다. 귀에 익숙한 가요들로 꾸며졌지만 의외로 인상적인 넘버가 없는 것도 아쉽다. 방대한 원작의 스토리를 짧게 줄이려다, 애매하게 드러난 친구들의 사랑 이야기도 산만하게 느껴진다. - 박보라
<마타하리> 6월 16일 ~ 8월 6일
스티븐 레인의 연출로 돌아온 <마타하리>는 초연에서 지적받은 마타 하리의 수동성을 개선하려 한 흔적이 엿보였다. 하지만 성과는 글쎄. 마타 하리가 라두의 스파이 제안을 좀 더 시크한 태도로 받아들이고, 아르망이 접근한 목적을 알았을 때 굳은 얼굴로 돌아선다 해서 능동적으로 변했다고 말하기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쇼의 화려함보다 전쟁의 황폐함을 강조한 연출은 외려 이 작품의 무기를 놓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쇼와 전쟁의 극적 대비를 잃은 잿빛 무대는 그저 밋밋했고, 이제 춤 한번 직접 추지 않는 마타 하리는 극중 인물들이 격찬하는 그 치명적 매력을 관객 앞에서 증명하지 못했다. 무대 위의 마타 하리는 팜므파탈로서도, 스파이로서도, 무희로서도 무능했다. - 안세영
<이블데드> 6월 24일 ~ 9월 17일
두 편의 컬트 뮤지컬 <록키호러쇼>와 <이블데드>가 비슷한 시기에 대학로에서 재연한 올해. 그중에서도 좀 더 B급다웠던 공연으로 <이블데드>를 꼽고 싶다. ‘조낸 퐝당한’ 매력을 찰지게 살려낸 개성 만점 배우들은 물론이요, 최근 유행한 영화 <라라랜드>와 드라마 <도깨비>를 패러디하며 지금 여기의 관객과 소통하려 한 연출이 눈에 띄었다. 작품의 백미, 좀비들이 춤을 추다 객석에 내려와 피를 뿌리는 ‘네크로노미콘’ 장면에서는 현란한 EDM 편곡의 음악이 흘러나와, 할로윈 클럽 파티에라도 온 듯한 광란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빨간 피 대신 초록 피를 뿌리거나 배우가 역할을 바꿔 출연하는 스페셜 무대 역시 자유롭고 황당무계한 <이블데드>만의 특색을 잘 살린 이벤트였다. - 안세영
<시라노> 7월 7일 ~ 10월 8일
완벽주의자로 통하는 배우 류정한이 프로듀서로서 과연 어떤 결과물을 보여줄 것인가. 그의 첫 프로듀싱 작품 <시라노>의 완성도에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름 선방했다는 데 한 표. <지킬 앤 하이드> 성공 이후 국내에 쏟아진 프랭크 와일드혼의 근래 작품 가운데 음악이 가장 좋았으며,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무대 미장센은 라이선스 뮤지컬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만 했으니까. 비록 <레 미제라블>이나 <맨 오브 라만차>, <몬테크리스토> 같은 작품에서 레퍼런스를 가져왔다는 게 눈에 보이긴 했어도 말이다. 단, 여성 인권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요즘 같은 때 시라노를 사로잡는 록산이 눈치와 고민이라곤 없는 그저 예쁜 여자로 그려진 것은 말할 수 없이 아쉽다. - 배경희
<시라노> 7월 7일 ~ 10월 8일
배우들은 열연했고, 사랑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한 남자의 순수한 사랑은 대단했다. 하지만 블록버스터와 저예산 영화에서 기대하는 게 각기 다르듯, 대극장 뮤지컬이라면 최소한 왜 이 작품이 대극장에서 또, 뮤지컬로 공연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답을 주어야 한다. 대극장은 주역만큼이나 앙상블이 제 몫을 다할 때 더 빛이 나는데, <시라노>는 배우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했다. 희곡을 뮤지컬로 만들어내면서 음악은 유기적이지 못했고, 서사와 연출의 긴장감은 떨어졌다. 원작의 힘과 배우들에 너무 기댔다. - 안시은
<나폴레옹> 7월 13일 ~ 10월 22일
실존 인물을 다루는 작품에서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일대기 또는 삶의 특정한 부분을 재해석한 드라마지만, <나폴레옹>은 두 개의 갈림길에서 완전히 길을 잃었다. 전 유럽을 지배한 영웅 나폴레옹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건지, 사랑 앞에서만큼은 작아지는 인간 나폴레옹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이야기의 일관성을 찾아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무대 미학이다. 60억의 제작비를 들였다는 대대적인 광고가 민망해질 정도로 초라한 무대였다. - 배경희
<벤허> 8월 24일 ~ 10월 29일
<프랑켄슈타인>으로 한국 대형 창작뮤지컬의 성공을 이끈 왕용범 연출과 이성준 음악감독의 작품 <벤허>. 루 월러스의 소설 『벤허: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만들었지만, 기독교적인 색채는 거의 드러나지 않아 누구나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절망 속에서 발견하는 희망이라는 메시지는, 벤허의 고뇌와 그 주위를 둘러싼 인물들의 갈등에서 드러난다. 특히 타이틀롤인 벤허뿐 아니라 설득력 넘치는 악역 메셀라는 상당히 매력적이고 멋있다. 또한 다양하고 화려한 영상을 통해 작품의 몰입도를 높여 큰 인상을 줬다. - 박보라
<서편제> 8월 30일 ~ 11월 5일
초연 이래 주요 캐릭터인 송화, 동호, 유봉을 균형감 있게 다루기 위한 시도는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특히 동호 캐릭터가 그랬는데, 2012년과 2014년 공연을 거쳐 이번 공연에서 이는 완성되기에 이른다. 군더더기 같던 설명이 사라지고, 세 인물 간 갈등과 관계에 집중하면서 각각의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설명된다. 이 선택의 필연적인 결과겠지만 <서편제> 하면 소리하는 송화가 절로 떠올랐기에, 초연처럼 송화의 드라마를 기대하고 보면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 생겼다. 그럼에도 엔딩 장면인 ‘심청가’의 여운은 여전히 길고도 깊었다. - 안시은
<배쓰맨> 9월 9일 ~ 11월 26일
색다른 소재가 눈길을 끈 작품. 소극장 창작뮤지컬치고 만듦새도 괜찮았다. 일정한 톤으로 극의 분위기를 만들어준 넘버, 소극장 무대의 한계를 적절한 동선 활용으로 잘 극복한 점은 좋았다. 또 안무가 정도영의 첫 연출작답게 안무를 활용한 장면 연출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너무 무난한 스토리가 마음에 걸렸던 걸까. 갑작스러운 주인공의 아우팅이라니. 당황스러움도 잠시, 성 소수자라는 민감한 소재를 피상적으로 다루는 태도에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누구나 평등한 공간’이라는 목욕탕에서 타인의 편견에 갇힌 사람들을 끌어안고 싶었던 건 알겠다. 그렇다면 더 진심과 진정을 다해 고민해야 했다. 그저 구색을 갖추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 최영현
<꾿빠이, 이상> 9월 21 ~ 30일
김연수의 동명 소설을 모티프로, 이상의 데드마스크로 시작해 그의 정체성 찾기로 나간다. 관객들에게 가면을 쓰고 작품에 직접 개입하는 이머시브 공연으로 홍보했으나, 이머시브라고 보기에는 참여가 덜하다. 그렇다고 작품의 가치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이 작품은 사람들에게 서로 다르게 기억되는 이상이라는 존재를 세 명의 이상을 통해 관객에게 각자의 이상을 찾도록 유도한다. 타이핑 소리를 음악으로 활용하거나 이야기 파편들로 서사를 무너뜨리지만 대중들이 쫓아가지 못할 정도의 실험은 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 작품의 미덕이자 한계이다. - 박병성
<서른즈음에> 10월 20일 ~ 12월 2일
주크박스 뮤지컬은 대부분 추억으로 관객과 교감한다. <서른즈음에>도 추억을 떠올릴 만한 코드를 모두 가져왔다. 시간 여행 장치를 쓴 설정도 흥미롭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작품이 내세운 트렌디와 감성은 온데간데없다. 생각만으로 쓴 듯한 드라마와 클리셰로 점철된 안일한 연출은 숱한 뮤지컬이 다 선보이고 지나간 지금, 왜 이 작품을 봐야 하는지 이유를 만들지 못했다. IMF 이후 취업난이 심각해진 지금도 아닌 1997년 봄에 스물아홉 살이 여태 대학생인 설정도 당시와 너무 동떨어졌다. 영상으로만 가득 채운 너른 공간에 울린 아재 개그는 공허했다. 다만 감미로운 노래를 들려준 배우들의 가창력만큼은 발군이었다. - 안시은
<칠서> 11월 10 ~ 17일
차별과 함께 태어난 사람, 서자. 제대로 꿈꿀 수도, 뜻을 펼칠 수도 없는 그들에게 지금 젊은이들의 모습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비록 실패로 끝날 것을 알지만 홍길동처럼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할 그들의 통쾌한 활극을 기다렸다. 그런데 웬걸. 자기소개와 신세 한탄에 이어 2막에서야 겨우 행동하는 칠서에게 도무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서자의 울분과 설움을 공감하기에 대사 몇 마디는 너무 부족했고, 아무리 팩션이라지만 환상 속 연인의 등장은 개연성과 설득력을 떨어뜨렸다. 오히려 자신의 위치를 불안해하고, 이기적이지만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애쓰는 광해에게 마음이 쓰이니 주객전도랄까. 덧붙여 서울예술단 작품은 어떤 것이건 춤과 퍼포먼스를 기대하게 하는데, 칠서는 그 기대마저 저버렸다. - 최영현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1호 2017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