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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뮤지컬 제목 비화 [NO.171]

글 |안세영 2018-01-02 5,810

너의 이름은?


작품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짓는 요소로 제목만 한 게 있을까? 입에 붙고 눈에 띄는, 그러면서도 작품의 핵심을 꿰뚫는 제목은 흥미 유발은 물론, 공연을 기억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수많은 뮤지컬 창작자와 제작자가 좋은 제목을 짓기 위해 고심한다. 뮤지컬 제목은 어떻게 결정되는지, 최근 공연작을 중심으로 제목에 얽힌 궁금증을 풀어보았다.





라이선스 뮤지컬 제목, 바꿔도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답은 YES. 라이선스 뮤지컬의 경우, 국내 관객이 한눈에 이해하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원제와 다른 제목을 사용하기도 한다. 주로 국내에 이름이 덜 알려진 작품들이 오리지널 프로덕션과 협의하에 이러한 전략을 취한다.


다양한 러브 스토리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은 <아이 러브 유>는 사실 <아이 러브 유, 유아 퍼펙트, 나우 체인지(I Love You, You're Perfect, Now Change)>라는 긴 원제를 갖고 있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가 완벽해 보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이별하거나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된다는 의미의 제목이다. 에필로그 넘버에도 원제와 같은 가사가 나오는데, 한국에서는 이 부분이 ‘사랑해, 그대는 완벽해, 그래도 난 아쉬워’로 번역되었다. 하지만 이 문장을 그대로 한국 공연 제목으로 삼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첫째, 원제든 번역한 제목이든 그 길이가 너무 길고, 둘째, 원제든 번역한 제목이든 그 의미가 단번에 이해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2004년 한국 초연 제작사였던 설앤컴퍼니는 고민 끝에 작품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은 <아이 러브 유>를 제목으로 정했다.


가수 닐 세다카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오! 캐롤>도 한국에서 제목이 바뀐 작품이다. 이 작품의 원제는 <브레이킹 업 이즈 하드 투 두(Breaking Up Is Hard To Do)>. 번역하면 ‘이별은 너무 힘들어’라는 뜻으로, 닐 세다카의 노래 제목 중 하나를 차용했다. 하지만 국내 제작사인 쇼미디어그룹은 닐 세다카를 추억하는 중장년층은 물론 그의 이름조차 모르는 젊은 세대도 듣는 순간 ‘아, 이 노래!’ 하고 떠올릴 수 있는 곡을 제목으로 삼고 싶어 했다. 그 결과 ‘브레이킹 업 이즈 하드 투 두’보다 국내에 더 잘 알려진 히트곡 ‘오! 캐롤(Oh! Carol)’이 한국 공연 제목으로 선택되었다. 이 곡은 닐 세다카가 연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캐롤 킹에게 쓴 러브송으로, 절절한 사랑의 감정을 흥겨운 멜로디에 담았다는 점에서 여러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뮤지컬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한번 정한 제목, 왜 바꿀까?


공연을 거듭하면서 오랫동안 써온 제목을 새롭게 바꾸는 작품도 있다. 올해 <더 라스트 키스>로 제목을 바꾼 <황태자 루돌프>가 바로 그 예다. 이 작품은 1889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루돌프가 연인 마리 베체라와 마이얼링 별장에서 동반 자살한 사건을 소재로 한다. 2006년 헝가리에서 <비엔나: 마이얼링 어페어(Vienna: The Mayerling Affair)>라는 제목으로 초연했으며, 이후 <루돌프(Rudolf)>로 제목을 바꾸었다. 국내 제작사인 EMK뮤지컬컴퍼니는 2012년 한국 초연 당시 국내 관객에게 생소할 수 있는 루돌프라는 인물에 중점을 둬 작품명을 <황태자 루돌프>로 정했다. 2014년 재연에서도 같은 제목을 사용했다. 하지만 올해는 무대 세트와 의상을 한층 업그레이드하면서, 제목에서부터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고자 했다. 새 제목인 <더 라스트 키스>는 뮤지컬의 원작 소설 『너버스 스플렌더(A Nervous Splendor)』의 한국 번역서 제목 『황태자의 마지막 키스』에서 따온 것으로, 두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1926년 김우진과 윤심덕의 현해탄 동반 자살을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 <사의찬미>도 처음에는 <글루미데이>라는 제목으로 공연했다. <글루미데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유는 작가 성종완이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글루미 선데이>는 1933년 헝가리에서 발표되어 수많은 사람을 자살로 이끈 노래 ‘글루미 선데이’의 실화를 모티프로 한 영화다. 이와 비슷한 소재를 찾아 헤매던 작가 성종완은 소프라노 윤심덕이 자살 직전 녹음해, 그의 죽음 이후 레코드가 불티나게 팔려 나간 노래 ‘사의 찬미’를 모티프로 뮤지컬을 만들었다. 완성된 뮤지컬에는 ‘일요일(Sunday)’과 관련된 내용이 없었기에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대신 <글루미데이(Gloomy Day)>라는 제목이 붙었다. 작품은 2013년, 2014년 <글루미데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되었다. 하지만 2015년 공연을 앞두고 ‘글루미(Gloomy)’라는 단어가 우울한 분위기를 연상시켜 작품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준다고 판단, 뮤지컬의 핵심 소재에 맞춰 <사의찬미>로 제목을 바꾸었다.


 


원제 뒤에 부제, 왜 붙을까?


뮤지컬의 부제는 작품을 동명의 다른 작품과 구별 짓거나, 작품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붙는다. 지난 11월 개막한 창작뮤지컬 <햄릿: 얼라이브>는 작가 성종완과 작곡가 김경육이 2006년 중앙대학교에서 공연한 <라비다>를 개작한 작품이다. <라비다>와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을 원작으로 한 점만 같을 뿐, 극본·음악·연출에서 대폭적인 수정을 거쳤다. 이처럼 새로운 작품임을 강조하기 위해 ‘삶’을 뜻하는 스페인어 단어에서 따온 기존 제목 <라비다(La vida)>를 버리고 ‘살아 있음’을 뜻하는 영어 단어를 집어넣어 <햄릿: 얼라이브(Alive)>라는 제목을 붙였다. ‘얼라이브’라는 부제는 『햄릿』이 고전이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살아 숨쉬는’ 질문을 던지며, 또한 죽음을 통해 역설적으로 ‘삶’의 에너지에 대해 얘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십 대 게이 커플을 주인공으로 한 <베어 더 뮤지컬>은 한국에 들어오면서 원제인 ‘베어(Bare)’ 뒤에 ‘더 뮤지컬’이라는 꼬리가 붙었다. 왜 뮤지컬이라는 장르명을 제목에까지 명시한 걸까? 제작사인 쇼플레이는 한글로 ‘베어’라고만 표기할 경우 ‘헐벗은(Bare)’이라는 원래 의미 대신 ‘곰(Bear)’을 연상시키기 쉽다고 판단, ‘더 뮤지컬’을 함께 표기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에서는 2012년 공연한 이 작품의 또 다른 버전이 2000년 초연한 오리지널 공연 <베어: 팝 오페라(Bare: A Pop Opera)>와 구별하기 위해 <베어 더 뮤지컬(Bare the musical)>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공연과 2012년 미국 공연은 제목만 같을 뿐 무관하다는 게 제작사의 설명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1호 2017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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