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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국내 대표 영상디자이너 시리즈-송승규 [NO.169]

2017-11-03 5,628

<벤허> 송승규
강렬한 스트라이크



송승규 영상디자이너는 대학 재학 당시 NGO 활동의 일환으로 참여한 <청년 장준하>로 공연 영상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모차르트!>, <햄릿>, <레베카>, <프랑켄슈타인>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영상디자이너로서 입지를 다졌다. 특히 <레베카>에서는 극 시작과 마지막에 영상을 더해 스크린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어 큰 인상을 남겼다. 올해 초연한 <벤허>에서는 다양한 영상 기법을 사용해, 벤허의 스펙터클한 일생과 감정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영상으로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는 평을 듣는 송승규 디자이너. 일이 재미가 없어지면 망설임 없이 그만둘 것이라는 호탕한 웃음 속에서 그가 지닌 열정이 묻어나왔다.




<벤허> 영상 디자인  PICK! 


‘희망은 어디에’
이 장면은 처음부터 영상을 활용하려고 했다. 오프닝이라 무대에 실제 배우가 올라오는데, 영상을 이용해서 같이 스토리텔링을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헤롯왕을 별자리로 만들고, 솔로몬이나 다윗의 모습을 별로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계획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너무 지저분해지더라. 그래서 유대인의 핍박 장면을 그림자로 보여주게 됐다. 벽화와 헤롯왕이 보이는 부분은 실제 벽화 그림을 참고해 그래픽으로 움직이게 만든 거였다. 또 피가 뿌려지고 나서 붉은 그림자들이 지나가고 유대인을 핍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영상은 직접 촬영을 했다. 크로마키 스튜디오에서 실제 앙상블들이 촬영했고, 그래픽을 이용해 라인 형식으로 후반 작업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막 앞에서 벤허가 과거를 노래하고 있고 막 뒤에서는 배우들이 안무와 연기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에 영상이 더해져 완성됐다고 생각한다.


‘로마의 갤리선’ 중 물에 빠진 퀀터스를 구하는 벤허
사실 이 장면은 대본상 네 줄 정도로 나와 있다. 이와 비슷한 장면을 <몬테크리스토>에서 해본 적이 있는데, 이땐 배우가 직접 와이어를 타고 내려와 영상이 겹쳐 입체적인 효과를 냈다. 그런데 퀀터스 역의 배우들이 직접 와이어를 탈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수중 촬영을 결정했다. 수중 촬영이라도 퀀터스 역의 배우가 직접 촬영하려고 했지만, 수심 10m가 되는 촬영장에 일반인들이 들어가면 귀에 무리가 간다고 하더라. 그래서 수중 촬영이 가능하면서도 퀀터스, 벤허와 비슷한 체형의 배우를 구해 촬영했다. 왕용범 연출은 극의 연계성을 이유로 해당 장면이 꼭 필요하다고 했고, 제작사의 과감한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죽음의 질주’
처음에는 삽화처럼 라인으로만 작업하려고 했다. 전체 경기장을 3D 모델링을 해서 만들었고, 그 안에서 카메라가 돌아가면서 촬영을 했다. 이게 전차 장면의 배경이 된다. 관객이 느낄 수 있는 어느 정도의 박진감과 스릴감을 위해 예상한 속도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카메라를 돌게 만드는 턴테이블의 속도가 부족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무대 위에서 달리는 말이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를 넘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배경으로 영상 작업하고, 메셀라나 벤허가 노래를 부를 때 포인트를 주는 걸로 계획을 세웠다. 배우가 노래부를 땐 슬로모션으로 경기장을 삽화처럼 형상화해 보여줬다. 작업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이 영상과 무대가 보여줄 방향성이었다. 영상 작업은 미리 모델링을 해놨지만, 어떤 순간에 어떤 방향으로 전차가 돌아갈지는 런스루 때에야 정해졌다. 영상 렌더링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전차의 방향과 영상을 정확하게 맞춰볼 수 있었던 일정은 촉박하게 진행된 편이었다.





INTERVIEW


뮤지컬에서 영상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정된 표현 공간을 확장해 주는 게 뮤지컬 영상이라고 본다. 과거엔 뒤에 막으로 대체되던 것이 영상을 통해 실감나게 표현되는 거다. 예를 들어 하늘이 움직이는 걸 직접 볼 수 있고, 높고 낮음, 멀고 가까움 그런 것들을 구현하는 거다. 영상은 관객이 조금 더 극 속에 몰입하게 해준다.


다른 분야의 영상 작업과 뮤지컬 영상 작업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영화, 방송, 그래픽은 영상에 집중할 수 있지만, 공연은 규격화된 프로시니엄(무대와 객석이 구분된 액자형 무대) 극장에서 하므로 한정된 공간 내에서 관객이 착시를 일으키거나 감각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래서 영상 자체로만 봤을 때 별로일 수도 있다. 공연 영상은 무대 위에 어떤 세트를 배경으로 어떤 조명이 비치는지 계산을 하고 배우의 동선도 확인해서 계획해야 한다. 이렇게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 가장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영상을 사용하는 방법은 어떤가.
영상은 크게 발광과 투광으로 나뉜다. 발광은 우리가 흔히 콘서트장이나 음악 프로그램에서 보는 스스로 빛을 내는 LED 같은 거다. 투광은 말 그대로 빛을 던지는 방법이다. 조명처럼 프로젝션을 이용하는 것과 아예 필름을 만들어 뒤에서 빛을 비추는 판을 제작하는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판의 경우는 필름을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요즘은 거의 쓰지 않는다. 최근엔 프로젝터랑 LED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막에 영상을 투과했을 때, 신기하게도 배우나 세트의 그림자가 안 생기더라.
그것도 미리 계획해 놓는다. 배우들의 동선이나 세트를 확인해서 그림자가 안 생기도록 각도를 계산하고 아랫부분을 마스킹한다거나 프로젝터의 위치를 조정한다.



영상 디자인 작업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
대부분 디자이너가 비슷할 거다. 일단 대본과 음악을 먼저 접한다. 그 후에 스태프와 모여 프로덕션 회의를 진행한다. 나의 경우는 맨 처음 톤 작업을 먼저 한다. <벤허>는 ‘통곡의 벽’이라고 해서 앞쪽에 있는 벽과 뒤쪽에 있는 벽에 영상을 주로 쓸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벽화를 중심으로 가고 싶었다. 노예 시장이 나오는 장면에서 그 당시의 벽화를 이용한 게 이런 이유다. 이렇게 전체적인 영상의 톤을 잡고, 영상이 필요한 장면의 시안 스케치를 제작한다. 이후 장면마다 움직임이나 스틸이 구현되는 방식을 정한다. 연습실에서 런스루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더하기도 한다. 톤 작업이 끝나고 동영상(그래픽) 작업, 손으로 직접 그리는 작화, 직접 촬영 등의 종류를 계획한다. 제작 도면이 나오면 캐드 작업을 통해 적정한 곳에 프로젝터를 설치해야 한다. 영상 렌즈 종류에 따라 영상이 나갈 수 있는 각도가 있기 때문이다. 공연장에 무대가 설치되면 작업한 영상의 포커싱을 맞춘다. 세트에 랩핑을 한다면 이에 따른 준비를 해 그 위에 영상을 입히는 과정도 여기서 이뤄진다. 조명과 영상의 밸런스도 맞추고, 어느 순간에 영상 작업을 해야 할지 큐를 정리한다.


영상 디자인 작업에 영감을 받는 요소가 있나.
작품마다 다르다. 음악이나 대사 혹은 카피라이터 문구에서 받기도 한다. <벤허>의 경우는 왕용범 연출에게 맨 처음 받았던 ‘전차 경주는 끝나지 않았다’라는 카피라이터 문구였다. 그렇게 무언가 ‘꽂히는’ 하나가 있으면 그걸 시작점으로 확장하면서 작업한다. <레베카>는 로버트 요한슨 연출이 작품을 설명하면서 ‘미스터리’라고 말을 했는데, 그 단어에서 오는 감정이 강렬했다. 또 올겨울에 개막할 <라스트 키스>는 개인적으로 음악이 좋아서 작업하는 내내 음악을 들었다.


본인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나.
영상이 영상처럼 안 보이는 것. 이런 걸 잘 못 느꼈다가 올해 1월 일본 토호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 참여했다. 그때 작업하며 느꼈던 것이 내가 영상으로 세트 터치를 많이 한다는 거다. 조명이 해야 할 일일 수도 있지만, 영상을 통해 세트의 윤곽이 더 드러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렇게 작업한 건, 티도 잘 안 날뿐더러 영상인 줄 모르는 분들이 많다. (웃음) <벤허>의 집 장면에서도 세트 터치가 많이 들어간 편이다. 무대의 기본 그림, 작화는 있지만 그 위에 영상을 더해 깊이감을 더하거나 섬세한 부분을 디자인했다. 


앞으로 영상 디자인의 미래는 어떻다고 생각하나.
<레베카>를 할 당시에도 같은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는 뮤지컬에서 영상이 가장 먼저 없어질 거라고 그랬다. 그러니까, 영상이 빠지면 관객의 상상을 더 불러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앞으로 영상은 더 많이 쓰일 거다. 무대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 중에서,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는 확장성이 높다고 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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