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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국내 대표 영상디자이너 시리즈-조수현 [NO.169]

글 |안세영 사진제공 |조수현 2017-11-03 7,810

<헤드윅>  조수현
영상이 무대를 리드하는 날까지


서울예대 무대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무대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미국 칼아츠 대학원으로 떠나 영상 디자인을 공부했다. 공연 영상디자이너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건 2015년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의 한국 공연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영상의 비중이 큰 이 작품에서 영국 오리지널 공연과 다른 새로운 영상 디자인으로 주목받은 그는 이후 뮤지컬 <알타 보이즈>의 5면 LED 영상, <곤 투모로우>의 누아르풍 영상,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하늘 영상, <헤드윅>의 스톱모션 영상 등 과감하고 다양한 스타일의 영상을 선보였다. 현재 그래픽디자이너, 모션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으로 이뤄진 영상 디자인 그룹 ‘익스터널’을 이끌고 있다.



<헤드윅> 영상 디자인  CONCEPT!


3면 홀로스크린
이번 시즌 새로 합류한 내게 프로덕션 측에서 요구한 과제는 바로 단조롭지 않은 스크린. 현재와 같은 홀로그램 스크린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신축성 있고 반사율 높은 스크린이 필요했는데, 기존 제품 중에 원하는 재질을 찾을 수 없어 아예 홀로스크린 전문 제작 업체와 손잡고 신제품을 개발했다. 3면 스크린을 사용한 이유는 몰입감 있는 이머시브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특히 ‘Origin of Love’는 관객이 영상 속 이야기에 쏙 빠져들어야 하는 장면이기 때문에 평면보다 무대를 감싸는 3면 스크린이 어울리리라 판단했다.


콜라주
기존 영상이 헤드윅이 어릴 적 그린 그림을 컨셉으로 삼는다면, 이번 시즌 영상은 헤드윅이 어릴 적 잡지에서 오린 모델과 옷으로 인형 놀이를 하고 놀았다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원하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재료를 덧붙이고 덧붙이는 콜라주 기법은 욕망을 쫓아 화려한 옷과 가발, 메이크업으로 치장한 헤드윅의 캐릭터와도 맞닿아 있다. ‘Origin Of Love’에 나오는 종이 인형 역시 콜라주 컨셉을 이어가기 위해 책 위에 그림을 그리고 오려 붙여 만들었다. 이때 쓰인 책은 다름 아닌 『향연』.



스톱모션
컨셉을 콜라주로 정하면서 스톱모션 촬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3D 편집으로 스톱모션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도 있었지만, 헤드윅이 손으로 종이를 찢어 붙였다는 설정상 CG를 배제하고 아날로그 느낌을 살리기로 했다. 칼아츠 동문인 김경주 애니메이션 감독이 이 스톱모션 촬영을 담당했는데, 3장의 유리판을 겹쳐놓고 그 위에서 캐릭터를 조금씩 움직이며 촬영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촬영해야 평균 5~7초의 영상이 나왔다.


오프닝
‘Tear Me Down’에서는 수술 도구와 베를린 장벽, 성(性)과 사회에 관한 온갖 이슈를 콜라주한 이미지로 포문을 열고자 했다. 이번 공연을 어떤 재료로 채울지 미리 보여주는 영상이다. 그런데 리허설을 해보니 영상이 너무 강렬해 헤드윅 역 배우에게 시선이 가지 않더라. 그래서 오프닝 부분의 영상은 덜어내고 2절부터 영상을 집어넣게 되었다.




INERVIEW



영상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떤 공부가 필요한가?
영상디자이너는 기본적으로 원화, 2D, 3D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지시를 내리는 위치에 있다. 때문에 한 분야만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그 모든 분야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는 게 좋다. 영상 편집 소프트웨어도 두루 알아야 한다. 내 경우 칼아츠에서 공연 영상 디자인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수업을 함께 들으며 3D 프로그램을 더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나아가 인터랙티브 기술을 활용하고 싶다면 프로그래밍 언어도 알아야 한다. 시스템 설계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철저한 공부가 필요하다. 프로젝터를 몇 대나 쓸지, 해상도와 밝기는 어떻게 할지, 스크린을 어디에 설치할지 등을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영상디자이너의 몫이다. 공연 영상디자이너라면 극에 대한 해석 능력 또한 필수다.


공연 영상을 디자인할 때 자신만의 룰이 있나?
기본적인 룰은 ‘다이제틱 영상(인물이 서 있는 물리적인 공간 등 극 중 인물과 관객 모두 볼 수 있는 영상)’과 ‘논-다이제틱 영상(인물의 내면 풍경 등 극 중 인물은 볼 수 없고 관객만 볼 수 있는 영상)’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 룰을 벗어나는 순간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는 정체불명의 영상이 되고 만다. 무대·조명디자이너에게도 각 장면의 영상이 다이제틱인지 논-다이제틱인지 분명히 전달해 혼란을 방지한다. 또 하나는 ‘포문을 여는 영상’이다. 이 영상은 관객에게 앞으로 해당 공연에서 영상이 무슨 역할을 할지 제시해 주는 장치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에서는 흰 선이 비현실적으로 무대를 가로지르는 영상을 통해 크리스토퍼의 내면세계가 연출될 것이라 암시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도 오프닝에 프란체스카의 회상을 담은 기차 영상을 넣어 앞으로 그녀가 회상에 잠길 때마다 영상이 활용되리란 걸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영향을 받거나 롤모델로 삼고 있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일본의 사운드 아티스트 겸 미디어 아티스트 료지 이케다를 좋아한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에서 크리스토퍼의 정신이 위태로울 때마다 노이즈가 일어나는 장면은 료지 이케다의 를 오마주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언어 없이 영상만으로 어마어마하게 복합적인 감정을 전달한다. 나 역시 향후 그와 같은 미디어 아티스트의 길로 나아가고 싶다. 공연 영상 디자인은 주어진 작품에 담긴 주제를 따라가는 일인데, 언젠가는 나만의 주제 의식이 담긴 미디어 작품도 선보이고 싶다.



현재 가장 관심 있는 영상 기술은 무엇인가?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에 흥미가 있지만, 공연에 적용하기는 어려운 기술이다. 공연에서는 경험의 공유가 중요한데, VR은 혼자만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VR 체험을 하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면 헤드셋을 끼고 허우적대는 모습만 보일 뿐 그가 보는 가상현실은 공유되지 않는다. 런던에서 올라간 연극 은 VR 헤드셋을 낀 배우가 보는 가상현실을 그대로 무대에 맵핑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기술적으로 여럿이 동시에 같은 가상현실을 경험할 수 있게 되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이런 식의 접근만 가능하다.


영상 디자인을 맡아보고 싶은 뮤지컬이 있나?
브로드웨이 최신 히트작인 <디어 에반 한센>이 한국에 들어온다면 영상을 맡고 싶다. 유학 중에 테마파크 콘텐츠 제작 업체인 ‘THINKWELL’의 인터랙티브 부서에서 인턴으로 일했는데, 그때 우리 부서에서 ‘구글 브랜드랩’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입구에 놓인 컴퓨터에 브랜드명을 입력하면 구글에서 그 브랜드명으로 검색된 각종 이미지가 벽면을 채우는 기술이다. <디어 에반 한센>은 소셜 미디어를 소재로 한 작품이니, 이 기술을 활용해 실제 소셜 미디어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무대 곳곳에 불러들인다면 우리가 얼마나 소셜 미디어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지 실감나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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