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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서편제> 박영수의 동호[NO.169]

글 |박보라 사진제공 |로네뜨 2017-10-26 4,312

태양과 달의 이야기


국악과의 협업으로 국내외에서 호평받고 있는 스프링 보이즈 출신의 동호. 이번 그의 앨범에서 판소리를 부른 주인공이 동호의 누나, 송화라고 밝혀지면서 많은 화제를 낳았는데요. 작곡가로, 가수로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동호가 이번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와 누나 그리고 자신의 삶을 풀어냈습니다.


※ 이 글은 동호 역을 맡은 박영수와의 대화를 토대로 작성한 가상 인터뷰이며, 작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송화 누나를 처음 만났을 때는 어땠어요?
송화 누나는 달 같은 사람이었어요.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는 그늘이라고도 느꼈죠. 제게 아버지는 강렬한 태양이었거든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가 절 내팽개쳤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 제게 손을 내밀던 송화 누나를 올려다봤는데, 그늘 같다고 느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의 관계가 상당히 안 좋았더라고요.
어렸을 때, 제게 아버지는 엄마를 죽인 사람이었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후 함께 살면서도 ‘아버지가 제게 해를 입히지 않을까’하는 두려움과 미움이 있었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 아버지가 오시기 전까지 엄마랑만 살았으니까요. 거칠고 괴팍한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 무서웠고,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전 아버지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아버지를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어느 순간엔 ‘내가 이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같이 존재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래서 아버지를 떠났어요.


아버지의 어떤 점이 그렇게 두려웠나요?
굉장히 폭력적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가부장적인 평범한 아버지였죠. 본인이 생각한 길을 걸어갈 땐, 강압적이었어요. 제가 조금이라도 다른 뜻을 품으면, 바로 몽둥이를 들었죠. 마치 아버지는 동물의 우두머리같았어요. 함부로 대적할 수 없고 수긍해야만 하는 존재요. 그래서 늘 두려웠죠.


어렸을 때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전 호기심이 정말 많은 아이였어요. 아버지, 송화 누나와 전국팔도를 돌아다녔는데, 제가 장 구경에 정신이 팔려 그들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어요. 이리저리 구경하느라 누나의 손을 놓친 것도 몰랐죠. 아버지는 그 많은 사람 틈에서 절 찾아다니다가 포기했지만, 누나가 절 찾아야만 한다고 난리를 쳤대요. 오후 내내 아버지와 누나가 절 찾으러 장바닥을 돌아다녔고 마침내 만난 다음에는 아버지의 매서운 호통이 들려왔죠.



당신은 판소리를 배우다가 현대적인 음악에 눈을 떴잖아요. 어땠나요?
아버지가 제게 ‘네 놈의 소리를 한 적이 있냐. 그놈의 양키 음악이 네 놈의 소리냐’고 소리를 친 적이 있어요. 그때 큰 충격을 받았죠. 직접 노래 부르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 소리를 듣고 나서는 저만의 음악과 스타일을 찾으려고 발악했어요. 아버지와 누나에게 배운 음악이 아닌, 저만의 예술을 찾고 싶었죠.


결국 당신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 가족을 떠났다고 들었어요.
아버지와 송화 누나를 떠난 이후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찾았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어요. 가족에 대한 결핍이 너무 강했고, 어렸을 때부터 소리에 대한 열망이 너무 강했으니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누나는 절 피하고…, 이런 시간 속에서 내 음악 세계를 명확하게 찾았다고는 말을 못하겠어요. 그런데 이렇게 누나와 다시 만나 소리를 하니, 이제야 조금씩 제가 원하는 음악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당신은 스프링 보이즈로 정말 바쁘게 살았잖아요. 정신없이 음악 활동을 하는 순간에도 아버지와 누나를 생각한 적이 있나요?
그럼요, 항상 생각했죠.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있지만, 아버지와 누나를 떠나서도 음악을 하고 있잖아요. 솔직히 트라우마가 있었어요. 한국적인 소리를 박차고 나왔기 때문에, ‘나는 뭘 해도 한국적이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죠. 그래서 강박관념처럼 한국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 같아요.


송화 누나가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알고 어떤 기분이 들었어요?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실감나지 않았어요. 평소와 다름없이, 그러니까 우리가 전에 함께 지냈던 것처럼 송화 누나를 만나러 갔어요. 누나 앞으로 갔는데 절 쳐다보지도 않더라고요. 누군가가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쳐다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누나는 머리를 만지고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는 거예요. 그때, ‘정말이구나. 정말로 송화 누나가 앞이 안 보이는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분명 누나의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고, 함께 무언가를 바라봤는데 그걸…, 이젠 할 수 없는 거죠. 믿겨지지 않아서 눈물이 났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나중에 들었다고요.
네, 아버지의 소식에 분노와 한이 몰려왔어요. 제 인생에서 숨겨왔던 커다란 목표가 없어진 셈이니까요. 저는 늘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당신 없이도 내 길을 잘 가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후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아버지의 생각이 틀렸다고 인정하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런 존재가 사라진 거잖아요. 아버지로부터 도망쳐 왔지만, 소리로 아버지를 이겨보고 싶었어요. 그걸 위해 온 힘으로 발버둥을 쳤는데 홀연히 사라진 거죠. 제겐 송화 누나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과는 또 다른 충격이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송화 누나도 사라졌다고 들었어요.
처음에는 송화 누나가 절 피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아주 나중에야 그걸 알았죠. 처음엔 누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모든 걸 놓고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누나가 절 만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어렴풋이 느꼈고, 그 후엔 누나의 소식이라도 듣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것조차도 힘들더라고요. 정말 답답했죠.


마침내 송화 누나를 만났을 때, 많은 감정이 몰려왔을 것 같아요.
누나는 제가 언젠가는 자신을 찾을 걸 알고 있었을 거예요. 많은 세월이 흘러 마침내 누나를 봤는데 ‘여전하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나는 항상 이렇게 살아왔을 것 같았거든요. 북을 치면서 오랜만에 누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누나가 살아왔던 인생이 확 심장으로 다가왔어요.


아버지와 누나와 함께한 유년 시절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 같나요?
기억은 편집하기 나름이잖아요.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라 생각해요. 지금은 모든 것이 다 그리워요. 아버지, 누나와 전국을 돌아다니던 길, 복작거리는 시장의 분위기, 누나에게 엿을 사달라고 떼를 쓰던 추억, 아버지에게 맞았던 아픔. 모든 과거가 아름다운 추억이 됐어요.


지금, 송화 누나와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
송화 누나와 행복하게 음악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제 곡과 누나의 소리가 어우러지니, 독특하더라고요. 그리고 누나의 소리는 매번 들을 때마다 놀라워요. 얼마 전에 누나에게 ‘득음이 뭐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누나가 어떠한 신체적 상황이 되어도 똑같은 소리를 매일 아름답게 낼 수 있는 상태라고 하더라고요. 그 후에 누나의 소리를 들었는데, 누나는 득음의 경지에 오른 것 같아요. 앞으로도 누나와 함께 오래도록 음악을 하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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