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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YORK] <헬로, 돌리!> [No.169]

글 |여지현 뉴욕통신원 사진제공 |Julieta Cervantes 2017-10-26 4,771


미국의 전통 뮤지컬 코미디

<헬로, 돌리!>




1960년대 스타일의 뮤지컬 코미디


1885년의 뉴욕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 반짝 황금기를 맞은 듯 보였던 미국의 도금 시대(Gilded Age)의 중흥기였다. 1873년에 출간된 마크 트웨인의 소설 제목에서 유래한 이 명칭은 제목 그대로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인해 뉴욕 사회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점점 곪아가던 시기를 의미한다. 당시 뉴욕은 곳곳에 고층 빌딩들이 세워지는 호화로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상류층은 여유 있는 생활을 즐겼다. 하지만 노동자(특히 이민자)들은 사회적 보호 장치 없이 노동력을 착취당했을 뿐 아니라 점점 슬럼화되어 치안이 불안한 지역에 내몰렸다. 지난해 4월 한국에서 초연된 <뉴시스>의 신문팔이 소년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파업을 벌였던 19세기 말의 현실이 도금 시대의 문제점이 지속된 결과라 생각하면 된다.


지난 3월 프리뷰 공연을 시작으로 4월 20일에 정식 개막한 <헬로, 돌리!>의 주인공 돌리 리바이는 바로 이 도금 시대가 만들어낸 미국의 ‘오지라퍼’다. 돌리는 자신의 앞가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극 중에서는 특히 결혼을 하기 위해) 다 하는 인물인데, 쉽게 생각해 브레히트의 ‘억척어멈’을 떠올리면 된다. <헬로, 돌리!>는 미국 희곡 작가 손턴 와일더의 <용커스의 중매쟁이 소극(Farce The Merchant of Yonkers)>을 바탕으로 하는데, 제리 허먼이 작사와 작곡을, 마이클 스튜어트가 대본을 맡아 196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초연 당시 8년 동안 3천 회가량의 공연을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고, 돌리로 활약한 캐롤 채닝은 이 작품으로 이름을 알렸다(애초엔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여배우로 꼽혔던 에델 머먼을 캐스팅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출연을 고사하면서 캐롤 채닝이 돌리를 맡게 된 비하인드스토리가 있다). 1969년에는 진 켈리 감독의 뮤지컬 영화로 제작된 바 있는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주인공을 맡아 게이 남성 뮤지컬 팬들의 지지를 끌어냈을 뿐 아니라 작품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


<헬로, 돌리!>는 2막에서 돌리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Hello, Dolly!’를 비롯해 많은 히트곡을 남겼는데, ‘Put On Your Sunday Clothes’가 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곡이다. 2008년에 개봉한 그래픽 SF 애니메이션 영화 <월-E>에서 로봇 월-E가 매일 밤 혼자 뮤지컬 영화 <헬로, 돌리!>를 보며 인간의 감정을 알아가는 장면에서 ‘Put On Your Sunday Clothes’가 쓰였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작품의 매력을 살리는 배우의 존재감


서곡과 함께 막이 오르면 무대에 1885년 뉴욕이라는 사인이 보이는데, 앙상블 배우들이 바쁘게 뉴욕 거리를 오가며 돌리 리바이라는 인물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를 타고 등장한 돌리가 사람들의 소개가 부족하다는 듯 직접 자신을 설명한다. 돌리는 겉보기엔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남편과 사별한 후 남들 모르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생활을 위해 주 업무인 중매 외에 그림 그리기부터 하지정맥류 치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하며 살아가던 돌리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고객인 호러스 반더겔더와 결혼할 계획을 꾸민다. 맨해튼의 북쪽에 위치한 용커스에 사는 ‘반’백만장자 반더겔더 또한 아내와 사별한 후 재혼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대에서는 이와 동시에 두 개의 굵직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나는 화가인 앰브로스가 돌리의 도움으로 반더겔더의 열일곱 살짜리 조카인 어멘가드와 결혼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호러스의 가게 점원인 코넬리우스와 바너비가 돌리의 도움으로 호러스의 허락 없이 가게 문을 닫고 맨해튼에 놀러 가 모자 가게 사장인 아이린과 점원인 미니와 각각 커플이 되는 이야기다. 돌리 역시 그녀의 계획대로 호러스와 결혼에 골인한다. 그 과정에서 돌리가 호러스를 계속 속이는 장면이나 호러스 몰래 뉴욕 구경을 나온 코넬리우스와 바너비가 우연히 들어간 모자 가게에서 갑자기 나타난 호러스를 피하기 위해 코믹스러운 소극을 연출하는 재미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또한 돌리가 옛 남편과 살던 동네에 가서 죽은 남편에게 호러스와의 결혼을 허락해 줬으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하는 감성적인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뮤지컬 코미디의 구성을 띠지만, 개연성이 떨어져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헬로, 돌리!>에 활력을 더하는 것은 돌리 리바이라는 인물 그 자체다. 초연부터 지금까지 항상 뛰어난 역량의 배우가 돌리를 맡았던 이유도 그 어떤 작품보다 작품 전반에 주인공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리바이벌 프로덕션에는 베테랑 가수 겸 배우 베트 미들러가 출연해 토니상 최우수 여배우상을 거머쥐었는데, 베트 미들러는 패티 루폰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쉐어 등과 함께 게이들이 선망하는 여성 디바의 아이콘이자 뮤즈로 꼽히는 인물이다. 1970년, 게이 전용 목욕탕(영어식 표기법은 ‘Bath Club’인데, 한국의 목욕탕과는 다른 분위기다)인 콘티넨탈 배스에서 공연한 이후 골수 게이 팬층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1970년대 이후에는 작곡자이자 프로듀서로 행보를 넓혀 많은 세대를 아우르는 유명 인사가 돼 <헬로, 돌리!>는 베트 미들러의 명성에 힘입어 최고 흥행작 <해밀턴> 다음으로 비싼 티켓가를 기록 중이다(베트 미들러가 출연하는 날의 티켓은 우리나라 돈으로 80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에 거래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손드하임이 사랑하는 여배우 버나뎃 피터스가 내년 2월부터 공연에 합류할 계획이 알려지면서 다시 한 번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필자는 베트 미들러 티켓을 구할 수 없어 다른 캐스트인 도나 머피 공연으로 관람했는데, 개인적으로 도나 머피의 돌리 역시 충분히 매력적이었으며 어떤 의미로는 베트 미들러보다 더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베트 미들러가 전형적인 디바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면, 도나 머피는 뛰어난 배우의 느낌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도나 머피는 돌리를 매사에 당당하고 뻔뻔하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사랑스럽고 인간적인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내는데, 그 때문인지 그녀가 무대에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에너지에 큰 차이가 있었다. 토니상을 받은 개빈 크리엘이나 케이트 볼드윈 등 탄탄한 조연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도나 머피의 매력은 특히 2막 오프닝에서 빛을 발한다. 2막은 뉴욕에서 제일 비싼 음식점인 하모니아 가든에서 코넬리우스와 바너비가 아이린, 미니와 더블 데이트를 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호러스가 돌리가 가짜로 짝지어 준 여자와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고 있다. 뻔한 코미디와 안무가 조금 지루해질 즈음 도나 머피가 <헬로, 돌리!>의 대표 뮤지컬 넘버 ‘헬로, 돌리!’를 부르며 등장한다. ‘헬로, 돌리!’는 남편이 죽은 후 거의 10년 만에 고급 레스토랑을 찾은 돌리가 점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노래로, 빨간 드레스에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한 돌리가 레스토랑의 중앙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려올 때, 무대는 다시 활기를 찾는다. 까만 양복을 차려입은 열댓 명의 남자 배우들에게 둘러싸여 문자 그대로 홍일점의 모습으로 분위기를 리드하며 노래하는 도나 머피의 매력은 단숨에 관객들을 매료시키니 말이다.



디테일과 색감의 승리


<헬로, 돌리!>의 이번 리바이벌 프로덕션은 전체적으로 동화적인 분위기를 띤다. 1막 오프닝에서 막이 오르자마자 그림책에 나올 법한 2차원적인 일러스트레이션 무대가 등장하는 점이나, 등장인물들이 관객을 향해 자신의 속마음을 얘기하는 연출 또한 동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호러스의 조카인 에멘가드나 모자 가게 점원인 미니를 비롯해 많은 등장인물들이 돌고래처럼 과장된 하이톤으로 연기하는 것 또한 코믹 동화적인 성격을 만드는 데 한몫한다. 무대 회전 장치를 통해 자동으로 무대에 들어오는 호러스의 가게 세트도 디테일 면에서 공을 들인 흔적이 많이 보인다. 호러스의 가게는 3층 구조에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레고 세트 같은 느낌인데, 여성적인 터치가 전혀 없는 공간으로 1막 초반 호러스와 남자 앙상블이 함께 부르는 ‘It Takes a Woman’의 배경으로 무척 적절하다. 2막의 가장 유명한 뮤지컬 넘버 ‘Hello, Dolly!’ 역시 무대와 조명, 의상이 합을 잘 이룬 장면 중의 하나다. ‘Hello, Dolly!’는 남편이 죽은 후 10년 만에 고급 레스토랑을 찾은 돌리에게 네가 속할 곳으로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하는 노래인데, 레스토랑 내부와 색을 맞춘 의상을 통해 돌리가 그녀의 집 같은 곳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다.


의상에서 가장 돋보이는 소품은 ‘모자’다. 19세기 말 미국 상류사회의 화려한 문화 중심에는 모자 문화가 존재했는데, 당시 모자는 집 앞을 잠깐 나서더라도 꼭 써야 하는 필수품이었다. <헬로, 돌리!>는 이런 문화가 반영돼 여배우들이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항상 의상에 어울리는 모자를 쓰고 나오는데, 주인공 돌리를 포함해 모든 등장인물의 의상 디테일이 인상적이었다. 산토 로콰스가 디자인한 무대와 의상 외에 나타샤 캇츠의 조명 디자인 또한 훌륭했다. 산토 로콰스와 나타샤 캇츠의 협업은 앙상블 장면에서 특히 돋보였는데, 1막 초반에 나오는 ‘Put on Your Sunday Clothes’는 입이 저절로 벌어지는 뛰어난 비주얼을 보여준다. ‘Sunday Clothes’는 일요일 교회에 갈 때 잘 차려입는 옷을 가리키는 말인데, 극 중에서는 촌뜨기 청년 코넬리우스와 바너비가 대도시 뉴욕에 가기 위해 멋을 내고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 이 뮤지컬 넘버를 부른다. 두 사람의 노래가 시작되면 무대가 기차역으로 바뀌는데, 제법 큰 사이즈의 기차가 역으로 들어오는 연출이 꽤 인상적이다(창작뮤지컬 <영웅>의 기차 장면이 기술적 부분에서 인상적이었다면, <헬로, 돌리!>는 마치 팝업 동화책을 보는 듯 연출되는 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탄성을 자아내는 부분은 파스텔 톤의 옷에 예쁜 양산을 들고 둘씩 짝을 지은 앙상블 배우들이 무대 왼쪽에서 등장해 기차역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은은한 조명 아래 마치 뮤직 박스의 인형처럼 천천히 걸어 나오는 모습은 시각적인 행복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오락적 요소를 갖춘 엔터테인먼트 쇼


<헬로, 돌리!>의 이번 무대는 오락적인 완성도만 있다면 다소 진부하거나 시의성이 부족하더라도 관객들의 만족도를 채워줄 수 있다는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이토록 전형적인 미국식 뮤지컬 코미디가 브로드웨이에 다시 올라 매진을 기록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공연을 보기 전에 2017년 이 시점에 19세기 말을 배경으로 1960년대에 초연한 이 작품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무대 위에서 관객의 마음을 휘어잡는 돌리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작품의 매력에 빠져 두 시간 반가량의 러닝 타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 한편으로는 트럼프 집권 이후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미국의 시민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고, <헬로, 돌리!>의 성공도 어쩌면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일지 몰라 불편함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넘치는 현실을 벗어나 두 시간 반 동안 도피주의적인 즐거움에 푹 빠져서 즐겁게 웃다 나올 수 있게 해준 점은 이번 프로덕션의 가장 큰 미덕임에는 틀림이 없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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