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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북쪽 나라에서 온 소녀> [No.168]

글 |김한내 연출가 사진 |Manuel Harlan 2017-09-25 3,740

밥 딜런의 주크박스 뮤지컬      

<북쪽 나라에서 온 소녀>

GIRL FROM THE NORTH  COUNTRY





그저 흔한 이야기가 주는 위로


1963년에 발표된 동명의 노래를 제목으로 한 <북쪽 나라에서 온 소녀>에는 이렇다 할 스토리 라인이 없다. 중심이 되는 사건도 없고, 주인공이라 꼬집을 만한 인물도 없다. 작품은 1934년 겨울, 미국 미네소타주(州) 덜루스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펼쳐지는 삶의 풍경들을 스냅사진처럼 담아내고 있을 뿐이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해 운영하며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닉의 생활은 팍팍하기만 하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부인 엘리자베스를 건사하기도 벅찬데, 작가지망생 아들 진은 제대로 된 일자리 없이 매일 술독에 빠져 지내고, 열아홉의 수양딸 마리안느는 하룻밤의 불장난으로 배가 불러 있다. 흑인이 미혼모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녹록지 않은 시대 상황에 닉은 안정된 기반을 가진 60대의 이웃 노인 페리에게 마리안느를 시집 보내려 애쓰지만, 노인의 구식 구애는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소녀를 움직이지 못한다. 그나마 닉의 일상에 작은 즐거움을 주는 건 게스트하우스의 손님인 과부 닐슨 부인과의 밀애이다. 활달한 성격의 닐슨 부인은 곧 받게 될 남편의 유산으로 함께 근사한 호텔을 경영하자고 제안하지만, 닉은 쉽사리 아내를 떠나지 못하고 주저한다. 그러던 중, 퍼붓는 빗속에 묵어갈 곳을 찾던 두 이방인, 흑인 청년 조와 성경책 외판원 제임스가 찾아들면서 이 공간엔 작은 파문들이 더해진다. 그들이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조와 마리안느는 첫눈에 서로 호감을 느끼지만 , 곧 시카고로 떠나야 하는 이방인과의 인연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한편, 제임스는 이곳에 묵고 있던 또 다른 손님 버크와 마주친다. 정신지체아 아들인 일리아스와 아내와 함께 장기 투숙중인 버크는 사업 부도로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은 일리아스가 이웃 소녀를 해쳤다는 혐의를 받아 도피 중이었다. 옛 이웃이었던 제임스는 이를 빌미로 버크에게서 돈을 뜯어내려고 한다.


구르는 돌처럼 험난한 이들의 삶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잠시나마 숨을 돌리는 듯하지만, 흥겨운 음악 사이로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는 여전히 자갈길을 달린다. 페리는 마리안느를 주는 대가로 자신에게서 2천 달러를 받아가고도 결혼을 성사시키지 못하는 닉을 닦달하고, 엘리자베스는 닉의 불륜을 비난하고, 닐슨 부인은 남편의 유산을 한푼도 받지 못하게 된 사실을 닉에게 고백한다. 페리는 노년의 외로움과 비참함까지 토로하며 마리안느에게 다시 청혼하지만, 마리안느는 단호히 거절한다. 파티의 열기가 달아오르며 술에 취한 버크가 사업가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모두 잃고 장애아의 아버지로 삶에 갇혀버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동안, 버크의 부인은 사라져버린 일리아스를 찾아 돌아다닌다. 그리고 마침내 버크의 입을 통해 일리아스의 죽음이 폭로된다. 함께 산책을 나갔다가 물가에서 잠든 일리아스가 사고로 파도에 휩쓸렸다고 하지만, 진실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다음 날, 버크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데 실패한 제임스는 엘리자베스의 돈 상자를 훔치려다 쫓겨나고, 더 이상 도망다닐 이유가 없어진 버크 부부도 떠난다. 닐슨 부인도 닉의 아이를 품은 채 오클라호마행 기차를 탄다. 마리안느도 고심 끝에 조의 제안에 따라 시카고행 배를 탄다. 저당 잡힌 집을 비워달라는 은행의 통보를 받은 닉은 아들 진에게 남은 전 재산 22달러를 주어 내보내고 아내와 함께 동반 자살을 계획한다. 하지만 ‘젊은 시절 품었던 꿈과 사랑과 기대가 모두 깨어졌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하기에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자신을 가졌으니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라는 엘리자베스의 설득에 닉은 권총을 내려놓는다. 




코너 맥퍼슨 스타일의 작품


공연은 닉의 네 식구가 단란하게 식사를 하는 꿈같은 모습을 배경으로 작품 전반에 걸쳐 내레이터의 역할을 했던 동네 의사 닥터 워커가 그들의 후일담을 전하며 막을 내린다. 전언에 따르면 닉은 미주리주로 내려가 아내를 끝까지 보살피다 아내의 임종 후에 어딘가로 떠나 소식을 알지 못하며, 지방 신문사에 기사를 쓰게 된 진은 더 큰 꿈을 품고 뉴욕으로 떠났으나 2차 대전이 발발한 후 해군에 입대하여 오키나와에서 작전 중 실종되었고, 마리안느는 조와 함께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시카고에서 삶을 이어갔다고 한다.


<북쪽 나라에서 온 소녀>가 보여준 풍경은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대표작 <갈매기>, <벚꽃 동산>, <세 자매> 등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중심 서사가 없다는 점도 그러하지만, 정치 사회적으로 큰 변화의 시기에 처한 개인들의 질곡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100년의 간극을 둔 두 작가의 작품은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체호프의 대표작들이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가 몰락하면서 귀족 사회가 붕괴되고 농노들이 해방되며 구체제를 벗어나는 불안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 속에서 갈팡질팡하던 인물들을 그려냈다면, <북쪽 나라에서 온 소녀>는 1929년 미국을 강타한 대공황이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으로 극복될지도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이 싹트던 시기, 절망 속에 안주할 것인가 실낱 같은 희망에 자신을 걸어볼 것인가’라는 기로에서 우왕좌왕하던 군상들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두 작품의 공통적인 아름다움은, 정제된 한마디 한마디의 대사와 그 행간에 숨은 정서들이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그들 자신들의 삶의 역사와 만나 반향을 일으키며 그 의미가 증폭된다는 점이다. 작가 코너 맥퍼슨은 인터뷰에서 밥 딜런의 레코드사로부터 작품 의뢰를 받고 수 주간의 고민 끝에 작품의 무대를 가수 자신의 고향인 미네소타주 덜루스로, 그것도 가수가 태어나기 불과 몇 년 전의 상황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건 가수의 노래들이 품은 내용이나 정서를 담아내기 용이해서가 아니라, 동시대와의 관련성에서 노래들을 풀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해방됨으로써 시대에 구애받지 않는 명곡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작가의 이런 생각은, 특정한 시대, 특수한 상황을 깊이 있게 탐구한 체호프의 작품들이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가지고 백 년 뒤의 관객들에게도 울림을 주고 있다는 사실과 상통한다.



밥 딜런의 노래를 극작 안에 녹여내는 방식도 이러한 맥락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날들>이나 <비처럼 음악처럼> 같은 한국에서도 이미 발표된 대중가요를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데, 이러한 작품의 대본을 쓰는 작업에는 색다른 어려움이 따른다. 작가는 대중들에게 각인된 노래의 이미지로부터 자유롭기 어렵고, 명곡을 망쳐놨다는 비난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선곡된 곡의 가사가 담고 있는 내용이 표면적인 의미에 구속당해 억지로 이야기를 짜맞추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될 위험이 작가를 위협한다. 코너 맥퍼슨의 해법은 명쾌했다. “이 작품은 히트곡 선집도 아니고, 넘버들이 플롯을 이끌어가는 고전적인 웨스트엔드 뮤지컬도 아닙니다. 이 작품은 오히려 노래와 스토리 사이의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대본 단계에서 이미 어느 부분에서 언더스코어가 시작되고 끝나야 하는지, 어떤 노래들의 어떤 부분이 어느 지점에 어떻게 삽입되어야 하는지 세세하게 밝혀놓았다. 덕분에, ‘Went to See the Gypsy’(1970)나 ‘Hurricane’(1976)처럼 스토리와 관련 없는 구체적인 상황 묘사가 강한 곡들조차 스토리와 충돌하기는커녕 오히려 서로의 함의를 확장시킨다. 마치 두 거장이 나누는 선문답 같다. 같은 공연을 굳이 세 번씩이나 관람한 것도 이 대화의 화학작용을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싶어서였다.


이런 대화를 가능하게 한 또 하나의 요소는 코너 맥퍼슨의 독특한 극작 스타일일 것이다. 코너 맥퍼슨은 한국에서도 2002년 초연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극단 차이무의 <거기>의 원작자이다. 원작인 는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공연되며 큰 히트를 쳤지만, 놀랍게도 이 작품의 내용은 아일랜드 촌 동네의 펍에 둘러앉은 다섯 사람이 각자가 겪은 귀신 얘기(혹은 초현실적인 경험)를 돌아가며 하는 것이 전부다. <거기>를 공연한 이상우 연출가도 “희곡을 읽고, 이런 게 연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라는 감상을 밝힐 정도로 탈드라마적이면서 신비주의적인 색채를 띠는 것이 코너 맥퍼슨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작가는 귀신 얘기만큼이나 설명될 수 없는 게 인간사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북쪽 나라에서 온 소녀>에서도 작가는 사건이나 상황이 논리적으로 어떻게 구축되고 해소되는가를 설명하는 데엔 관심이 없다. 그저 순간순간 인간사에 찾아드는 알 수 없는 힘들을 그저 그려낼 뿐이다. 이러한 작가의 작법은 밥 딜런의 시적인 가사와 절묘한 궁합을 이룬다.


그 때문에, <북쪽 나라에서 온 소녀>가 올드 빅 극장에서 상연되기로 결정되었을 때 예술감독 매튜 워처스는 이 작품은 반드시 코너 맥퍼슨이 연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 대본만이 지닌 그 무언가가 대중의 기호를 고려한 다른 연출에 의해 ‘예쁘게 다림질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실은, 대본 단계에서 이미 코너 맥퍼슨은 연출로서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기도 했다. 코너 맥퍼슨은 40장에 달하는 밥 딜런의 앨범 중에서 황금기의 것들이 아닌 80년대, 밥 딜런이 방탕한 생활을 접고 소위 크리스천으로 다시 태어난 시기의 곡들부터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 이는 당시의 콘서트 영상에서 가스펠 배우들의 코러스와 함께하는 역동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곡 단계에서, 작가는 각각의 노래가 스토리 라인에 얼마나 봉사하는가보다는, 배우들이 노래 안에서 정서적인 무언가를 찾아내고 음악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곡들을 찾았다고 한다.  실제로 일관된 스토리 라인 없이 삶의 파편들을 콜라주처럼 모아놓은 듯한 이 작품에서 배우들이 인물의 순간순간의 진실에 몰입하는 힘을 만들어준 것은 코너 맥퍼슨이 섬세하게 고르고 배치해 둔 노래들 덕분이었다.





유서 깊은 극장의 선택


<북쪽 나라에서 온 소녀>가 상연된 올드 빅 극장은 영국의 공연 예술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런던의 가장 유서 깊은 극장 중 하나이다. 걸어서 3분 거리에 위치한 영빅 극장과 더불어 1963년부터 1976년까지 14년간 국립극단의 보금자리 역할을 한 탓에 런던의 오랜 연극 팬들에겐 여전히 ‘내 마음속의 국립극장’으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1818년에 지어진 올드빅 극장은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런던의 비영리 극장들 중에선 드물게 고풍스런 외관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레퍼토리에서는 연극부터 뮤지컬, 오페라, 음악 공연까지 장르를 불문한 과감한 시도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2003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의 배우 케빈 스페이시가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미국 공연예술가들과의 교류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영국을 대표하는 극장에서 아일랜드 극작가가 미국을 배경으로 미국 국민가수의 노래들을 풀어낸 뮤지컬인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한 <북쪽 나라에서 온 소녀>가 수많은 관객들을 뒤흔들어 놓은 건, 오랜 시간 극장과 노래와 수많은 인간들 속을 오갔던 알 수 없는 무언가들의 대화 덕분은 아니었을까? 공연이 끝난 극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성이게 되는 밤이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8호 2017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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