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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무대 위의 음식 [NO.165]

글 |안세영 사진제공 |프레인글로벌, 달컴퍼니, 오픈런컴퍼니, EMK뮤지컬컴퍼니 2017-07-11 3,926

배우가 무대 위에서 직접 요리를 하고 먹기까지 한다? 한때 소극장 연극에서 이벤트로나 등장하곤 했던 진짜 음식이 중대극장 뮤지컬에까지 고개를 내밀었다. 진짜 음식에서 퍼지는 맛있는 냄새와 소리는 공연이 갖는 현장성을 극대화하고, 관객의 오감을 자극하는 색다른 재미 요소로 환영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디테일로 관객의 눈을 홀리는 가짜 음식도 있다. 무대 위에 오르는 진짜 혹은 가짜 음식의 세계로!




냄새 솔솔 진짜 음식                     

지난 4월 개막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대극장 뮤지컬로는 이례적으로 무대 위에서 실제 요리를 만드는 시도를 보여줬다. 주인공 프란체스카는 손님인 로버트를 위해 야채 스튜를 만드는데, 배우가 각종 야채를 잘라 냄비에 넣고 끓이면 실제로 맛있는 냄새가 극장 안에 퍼져 나간다. 여기에는 음식 만드는 소리와 냄새를 관객과 공유함으로써, 프란체스카가 요리를 하며 느끼는 설렘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요리와 식사 장면에 사용되는 식재료는 샐러리, 양상추, 당근, 사과 그리고 식빵과 초코 빵. 야채는 신선도를 고려해 매일 새로 준비하며, 공연이 끝나면 남은 식재료는 원하는 배우나 스태프가 가져간다. 하지만 진짜로 이 모든 재료가 스튜 냄새를 내는 데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맛있는 스튜 냄새를 내기 위해 필요한 핵심 재료는 버터와 다진 마늘, 양파 2개, 옥수수 스프와 크림 스프다. 특히 최대한 뜨겁게 달군 냄비에 차갑게 냉동해 둔 버터를 넣는 게 포인트. 이렇게 해야 버터가 녹는 소리와 함께 극장 전체에 버터의 향이 가득 퍼질 수 있다. 풍부하고 맛있는 향을 내기 위해 버터 외에 다진 마늘과 양파 사용을 제안한 것은 다름 아닌 프란체스카 역의 배우 옥주현이다. 옥주현은 스스로 음식 재료를 만들어 올 만큼 요리 장면에 열의를 쏟았고, 매 공연 레시피를 바꿔가며 가장 효과적인 레시피를 찾기 위해 고민했다고 한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앞서 중극장 뮤지컬 <심야식당>도 무대 위 요리를 시도한 바 있다. <심야식당>은 심야에만 문을 여는 한 식당에서 음식을 통해 위로받는 사람들 이야기다. 마스터가 주문받은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면, 치지직 기름 볶는 소리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풍기며, 관객 또한 음식과 관련된 추억에 잠기게 한다. 마스터 역의 배우가 직접 만드는 요리로는 비엔나 소시지, 계란말이, 고양이 맘마, 오차즈케가 있다. 비엔나 소시지는 100% 무대에서 볶지만, 계란말이는 약간의 요령이 필요하다. 배우가 팬에 계란을 굽기는 하되, 실제 관객 앞에 내놓는 계란말이는 공연 전에 미리 만들어둔 것을 사용한다. 대사를 하면서 예쁘게 계란을 말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프리셋 되는 요리는 하우스 오픈 직전에 만들어, 관객이 객석에 들어섰을 때부터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했다. 청각적 자극을 극대화하기 위한 비법도 있다. 소시지와 계란말이를 만들 때,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재료와 함께 약간의 물을 투하하는 것. 이렇게 하면 달궈진 기름에 물이 닿아 튀면서 자글자글 먹음직스러운 소리가 난다. 밥 위에 버터와 가쓰오부시를 올린 ‘고양이 맘마’는 완성하자마자 배우가 직접 먹기도 했다. 반면 ‘오차즈케’의 경우, 밥은 진짜지만 올라가는 고명이 모형이라 실제로 먹을 순 없었다. 초연 당시 마스터를 연기한 배우 박지일은 마지막 공연에서 직접 준비한 진짜 고명으로 오차즈케를 만들어 다른 배우들을 울컥하게 만들기도 했다.



소극장 뮤지컬 <오디션>에는 배우들이 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이 나온다. 밴드 멤버들이 새로운 보컬을 환영하며 연습실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는 장면이다. 무대 가운데 놓인 상에는 실제 삼겹살 반 근과 상추, 깻잎, 버섯, 쌈장이 올라간다. 다만 장면의 길이를 고려해 고기는 살짝 초벌구이를 해둔다.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울려 퍼지는 뮤지컬 넘버 ‘고기 예찬’은 관객의 식욕을 자극하며 남다른 생동감을 선사한다. 실제로 이 공연을 본 뒤 삼겹살을 먹으러 가는 관객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아예 무대 위에서 배우와 관객이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공연도 있다. 낚시터에서 만난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소극장 뮤지컬 <락시터>는 공연 막바지에 야외 취사 시 사용하는 휴대용 코펠과 가스버너로 라면을 끓인다. 배우들은 라면이 익는 동안 무대 위로 관객 한 명을 초대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다 익은 라면과 소주를 종이컵에 나눠 먹으며, 관객의 사연을 바탕으로 한 막간 즉흥극을 펼쳐 보인다.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를 통해 관객 역시 낯선 이와의 소통을 그린 이 공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가까운 소극장 공연의 특색을 살린 특별한 장면이다.




진짜 같은 가짜 음식                     

굳이 실제 음식이 필요치 않은 대부분의 공연에서는 소품디자이너가 제작한 모형 음식을 사용한다. 뮤지컬 <팬텀>에는 카를로타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할 때, 커다란 삼단 케이크와 컵케이크, 마카롱, 과일 등이 올라간 파티 테이블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이 삼단 케이크는 스티로폼 위에 광택이 나는 흰 공단을 씌워 제작했다. 파티용 케이크인 만큼 진주와 큐빅, 스팽글 원단, 꽃으로 장식해 화려함을 더했다. 사과, 포도 등 흔히 볼 수 있는 과일은 시중에 판매되는 모형을 구매해 사용한다. 제품의 색감이 다른 소품과 너무 동떨어질 경우 색만 다시 칠하기도 한다. <팬텀>의 조윤형 소품디자이너는 과일 위에 큐빅이나 스팽글로 포인트를 주어 조명을 받았을 때 물방울이 맺힌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었다. 그 밖의 음식 모형은 주로 클레이로 제작되는데, <팬텀>의 오페라 장면, 피크닉 장면에 등장하는 다과 역시 대부분 이렇게 제작되었다. 다양한 컬러의 클레이에 흰색 클레이를 섞어 원하는 색을 표현하고, 점토가 굳기 전에 다른 오브제를 붙여 장식한다.


음료의 경우는 어떨까? <팬텀>에 등장하는 투명한 샴페인 잔은 사실 깨질 염려가 없는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었다. 잔 안에 원하는 색감의 액체를 넣고, 내용물이 흘러넘치지 않도록 입구까지 플라스틱으로 막아 마감했다. 에폭시를 사용해 아예 고정된 액체 모형을 만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배우가 잔을 들고 움직일 때 액체가 흔들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사실성이 떨어진다.


원단을 이용해 썩은 음식을 표현하기도 한다. 두툼한 원단에 라텍스를 먹이거나 본드 처리를 해서 원하는 모양을 잡고, 그 위에 색을 입히는 방법이다. 뮤지컬 <꽃보다 남자>에는 여고생 츠쿠시가 다른 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다가 음식물 쓰레기를 뒤집어쓰는 장면이 있다. 별 것 아닌 쓰레기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작품 안에서 가장 제작비가 많이 든 소품이라는 사실! 쓰레기통에 버려진 과일 껍질, 베이컨 쪼가리, 썩은 햄버거 등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려면 정교한 수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귤껍질의 경우, 껍질 바깥쪽의 질감을 표현할 수 있는 귤 색깔의 인조 가죽과 껍질 안쪽의 질감을 표현할 수 있는 흰색 타올을 맞붙여 리얼하게 표현했다.


소품디자이너가 직접 모형을 만드는 대신 모형 음식 전문 제작 업체에 의뢰하기도 한다. 식당 앞에 흔히 전시되어 있는 모형 음식을 떠올리면 된다. 뮤지컬 <궁>에는 주인공 채경의 부모님이 황태자 이신을 위해 거한 저녁상을 내오는 장면이 있다. 이때 배우들이 싸 먹는 상추는 진짜지만, 테이블에 놓여 있는 나머지 음식은 모두 모형. 모형 음식 제작 업체에도 한식 전문, 중식 전문이 따로 있어 음식별로 맛집(?)을 찾아 주문했다는 비화가 있다.



예측 불가 반전 음식                               

극 중 설정과는 다른 엉뚱한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도 있다. <스위니 토드>에 등장하는 인육 파이가 대표적이다. 인육으로 만든 파이라니 상상만 해도 섬뜩하지만, 실제 배우들이 먹은 파이는 달콤한 체리 필링으로 채워졌다. 2016년 공연 당시 수제 파이 전문점 ‘타르틴’에서 제작을 맡아, 공연 기간에 매장에서 동일한 파이를 판매하기도 했다. 극 중 배우들이 칭송하는 풍부한 육즙 대신 피처럼 새빨간 체리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주연 배우가 먹는 파이 3개를 제외하면 나머지 파이는 모두 모형이라는 것도 또 하나의 반전. 쫀득쫀득한 라텍스 위에 노릇노릇한 색을 입힌 모형 파이는 언뜻 봐서는 진짜와 구분이 어렵다.


<빌리 엘리어트>에도 반전 음식이 등장한다. 아침부터 빌리네 집에 들이닥친 광산 노동조합원들. 그중 배가 고팠던 조합원 한 명이 홀딱 탄 달걀프라이와 베이컨을 끼워둔 빵을 우걱우걱 먹어 치운다. 이때 사용하는 달걀프라이와 베이컨은 진짜 탄 것이 아니라 탄 것처럼 보이도록 까만 계핏가루를 뿌려놓은 것. 2009년 공연 당시 회당 12~13장의 빵과 1개의 달걀, 4조각의 베이컨을 사용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5호 2017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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