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옷이 어울리는
두 여인
노래를 부르지 않는 뮤지컬로 화제를 모았던 댄스 뮤지컬 <컨택트>가 국내 초연 7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작품이지만 작품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세 번째 에피소드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이다. 국내 초연 당시 스타 발레리나 김주원이 이 역할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이번 공연에서도 김주원이 다시 노란 옷을 입은 여인으로 출연한다. 김주원과 더불어 배우 김규리가 같은 역에 더블 캐스팅 되었다. 김규리는 서바이벌 댄스 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해 우승을 차지하는 등 춤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이다. 당시 김주원은 이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심사위원과 참가자에서 같은 배역을 맡은 김주원과 김규리를 만났다.
설레는 도전
2010년 초연 무대에 서고 7년 만에 같은 배역으로 무대에 서는 건데요. 7년 전에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요?
김주원 저랑 친한 친구인 홍세정이 <컨택트> 협력 안무로 참여할 때 우연히 이 작품의 영상을 보게 됐어요. 작품이 너무 멋있더라고요. 세정이가 안무가인 수잔 스트로만에 대해 설명해 주는데 먼저 안무가에게 반했어요. 노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발레를 기본으로 한 사람이 맡으면 예쁜 춤이 나올 것 같더라고요. 세정 말로는 일본이나 호주 공연에서도 프리마 발레리나가 이 역을 맡았대요. 그 말을 듣고 작품에 욕심이 생겨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고 먼저 제안했죠.
김규리 씨는 이번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김규리 (주원) 언니를 통해 이 작품 영상을 보게 됐어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제가 춤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잖아요. 이렇게 빨리 공연이 올라갈지 몰랐어요. 연습 기간이 너무 짧아서 못할 상황인데, 언니가 하니까 많이 배울 수 있겠구나 싶어서 하게 됐어요.
많이 도와주시나요?
김주원 많이 도와주진 못해요. 제가 배우 김규리를 아는데 많이 연습하고 쉬지 않고 연구하고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지 아는 배우예요. 춤에 임하는 자세도 똑같더라고요. 연습하고 반복해서 고민하고 해보고 모르는 것은 자신 있게 물어요.
김규리 언니가 춤추는 걸 보고 영감을 받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돼요. 언니는 굉장히 가벼운데 어떻게 저렇게 가벼워지지, 턴을 저렇게 도니까 쉽게 도네, 이런 동작은 정말 우아하다, 이렇게 해보라고 가르쳐주는 것도 있는데 언니가 하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돼요.
<컨택트>는 춤 위주이긴 하지만 드라마가 있는 공연이잖아요. 김주원 씨는 워낙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능하고, 김규리 씨는 오래 연기를 해왔으니까 각자의 장점이 있을 것 같아요.
김규리 저도 그럴 줄 알았거든요. 근데 연습에 들어가니까 생각 같지 않은 거예요. 춤이 안 되면 감정을 표현한다거나 연기를 할 수 없어요. 제가 연습하는 걸 영상으로 찍었는데 손을 덜렁대는 거예요. 지금은 팔을 신경 쓰면 스텝이 안 되고 스텝을 신경 쓰면 연기가 안 되는 상황이에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거라 걱정이 많아요. 하겠다고 결정한 순간부터 저와의 싸움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적은 저 자신이고,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제 몸인 것 같아요. (웃음) 다리가 안 올라가요.
<컨택트>에서는 발레 이외의 춤을 추어야 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나요?
김주원 오리지널 노란 드레스의 여인은 유명한 로켓걸이었대요. <컨택트>는 스윙, 자이브, 탭도 춰야 해요. 탭 댄스는 발끝에 힘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발레리나랑 완전 상극이에요. 초연 때 고생을 했죠. 제가 언제 (시범을 보이며) 웨이브를 해봤겠어요. 제가 웨이브를 하는 게 상상이 되세요. 게다가 작품 내에서 시종 남자들을 유혹해야 하는데 제가 평상시에는 남자 같은 면이 있어서 그런 것과 거리가 있거든요. 춤이나 캐릭터에 익숙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죠.
초연 무대에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김주원 당시에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아쉽지는 않았어요. 단지 지금 보면 여기서 이런 걸 더 했으면 좋았을걸 하는 점은 있죠. 그런 것들이 느껴지는 걸 보면 그동안 제가 발전하긴 했나 봐요.
김규리 씨의 춤 실력이 알려진 건 <댄싱 위드 더 스타>였는데요. 원래 춤을 잘 췄나요?
김규리 사람들은 제가 춤을 잘 춘다고 생각하는데 <댄싱 위드 더 스타> 이전의 저는 일반인이었어요. 둘째 언니가 안무를 했어요. 어려서부터 언니가 춤추는 걸 옆에서 봤고 안무 짤 때 막춤을 추면서 영감을 주기도 했죠. (웃음) 대신 좋은 무용을 많이 봐서 어떤 동작이 예쁘다는 것을 아는 거죠. 좋은 동작이 뭔지 아니까 연습해서 그걸 해내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댄싱 위드 더 스타>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요?
김규리 작품이 있어서 스케줄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춤과 노래를 워낙 좋아하니까 욕심을 부리고 싶더라고요. 생방송이고 서바이벌이라는 게 너무 무서웠는데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참여했어요. 안 되면 중간에 떨어지면 되는 거고. 일주일마다 새로운 과제를 선보여야 하는데 실제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4일밖에 주어지지 않았어요. 처음 밟아보는 스텝인데 시간이 부족해서 거의 국가대표처럼 석 달을 보낸 거예요. 발에 굳은살이 떨어지고 물집이 생겨서 걷기도 힘든데 노래만 나오면 춤을 추고 있는 기적을 경험했죠.
몸은 힘들었겠지만 배운 것도 많겠어요.
김규리 말이든 행동이든 글이든 제 마음을 곡해하고 왜곡시키는 일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몸으로 표현하는 춤은 온전히 받아주시더라고요. 거기서 많은 위로를 느꼈어요. 그동안 항상 상대를 의식하면서 살았거든요. <댄싱 위드 더 스타>는 유일하게 나만 생각해서 선택한 일이고, 무대에서도 오로지 나만 생각하면서 연기하고 춤을 췄어요. 근데 이런 이기적인 모습을 사랑해 주시는 거예요.
노란 옷의 여인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을 어떤 인물로 표현할 건가요?
김주원 수잔 스트로만이 이 작품을 만든 가장 큰 이유가 컨택트(Contact) 소통 때문이잖아요. 작품의 세 에피소드가 모두 관계의 소통에 대한 것이고요. 노란 옷을 입은 여인 안에는 그 장면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이 들어 있어요. 상대인 마이클 와일리 역시 마찬가지고요. 초연 때는 전체적인 컨셉을 파악할 여유가 없었는데 지금은 같이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를 내 속에 담아내려고 해요.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철학적이고, 아주 확실하고 명료하게 예술적으로 던져주는 이야기가 있다는 거예요. 클래식 <지젤>이나 <로미오와 줄리엣>만큼 사랑하는 작품이에요.
김규리 씨는 춤에 대한 부담 때문에 인물에 대한 탐구는 후순위이겠어요.
김규리 그렇지 않아요. 드라마가 없으면 움직이는 계기가 없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이해가 명확해야 해요. 아직 구체적인 인물에 대한 연구나 계획은 안 섰지만 제가 움직일 수 있는 동기는 신비로움인 것 같아요.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은 그녀가 누군지 모르지만 모두가 춤을 추고 싶어 하는 인물이잖아요. 신비로운 매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 같아요.
이번 무대에서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은 7년 전에 비해 어떤 점이 다를까요?
김주원 나이가 들었어요. (웃음) 연륜이 쌓일수록 더 매력적인 인물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삶에서 얻은 경험들이 무대에서 다 표현되거든요. 제 춤을 보면 저를 가장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잘 표현하는 게 제 몸이고, 몸으로 표현하는 게 익숙하니까 제 춤을 보면 김주원이 가장 잘 보이는 거죠.
두 분이 표현하는 노란 옷의 여인은 어떻게 다를까요?
김주원 저희가 생긴 게 다르듯이 제가 연기하는 노란 옷의 여인과 규리의 그것은 굉장히 다를 거예요. 그래서 재밌어요. 규리는 걸으면서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 왜 이 장면에서는 나보다 더 천천히 걷는 느낌이 들지. 저렇게 담배를 잡으니까 섹시하네. 남자를 쳐다볼 때 고개를 돌리는 타이밍이나 시선을 주는 것도 달라요. 김규리만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이 탄생할 거예요.
김규리 자나 깨나 안무만 생각하고 있어요. 연기할 때 베이스는 결국은 대사거든요.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은 베이스가 춤이에요. 춤이 완성되어야 연기나 다른 것도 잘돼요. 무리 중에서 가장 춤을 잘 추고 분위기를 압도하는 인물이에요. 마이클 와일리는 죽으려다가 그 여자 때문에 살고 싶다는 희망을 갖게 되죠. 그런데 제가 무대에서 안무를 틀리고 헤매고 있으면 죽고 싶을 거예요. 무조건 완벽하게 춤을 습득해야 해요.
7년 사이 국립발레단에서 나오고, 뮤지컬 <팬텀>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이번 <컨택트>에 영향을 줄까요?
김주원 음악이나 책, 다른 장르의 예술에 관심이 많아요.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새로운 기획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들이 다 몸의 언어를 깊이 있게 하는 공부예요. 그런 작업을 거치면 확실히 제 춤의 깊이가 달라져요. 예전에는 해금을 여자 악기라고 생각했는데 남자 연주자가 연주하니까 감정선이 다르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안숙선 선생님과 걸으면서 소리를 들으면 또 느낌이 다르거든요. 그런 느낌들이 몸속에 들어와 있으면 손끝 하나, 머리카락 하나라도 더 감정을 실을 수 있어요. 그래서 이번 <컨택트>는 저번보다 더 깊어져 있을 거예요.
오랫동안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는데요. 이제는 그 수식어에서 벗어났습니다. 현재 그리고 앞으로 어떤 수식어를 듣고 싶나요?
김주원 아티스트. 예술가라는 단어는 굉장히 성스러운 단어라고 생각해요. 예술적 표현이 다른 이들에게 감동이나 자극을 주어서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잖아요. 예술가 김주원으로 남았으면 해요.
<컨택트>가 개인이나 배우 인생에서 어떤 경험으로 남길 바라나요?
김규리 저도 적은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새로운 것을 경험하거나 배울 일은 줄어들 거예요. 그동안 많은 일에 용기를 내서 도전하고 시도해 왔어요. 아직 무대에만 서지 않았는데요. 이번 <컨택트>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면 제 인생이 더 넓어지는 거잖아요. <컨택트>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요.
<컨택트>에 참여해서 가장 행복한 점이 무엇인가요?
김규리 언니의 3분의 1도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언니랑 더블로 같이 선다는 게 큰 영광이에요. 친한 사람으로 언니가 추는 춤을 보고, 무대를 준비하는 자세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지켜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요. 언니가 무대를 준비하는 태도나 자세가 저에게 큰 자극이 돼요. 몸은 고통스럽긴 한데 이렇게 춤을 배울 수 있고, 새로운 계기를 만나 기뻐요. 주원 언니가 준비하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에요.
김주원 (줄리엣 비노쉬가 아크람 칸과 무용 공연에 섰는데) 배우들은 오랫동안 연기에 대해 고민해서 드라마적인 눈빛이나 느낌이 달라요. 규리의 노란 옷의 여인에는 지금껏 김규리가 연기해 온 것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엄청난 내공을 보여줄 거예요. 저와는 다른 관점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을 보게 될 거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5호 2017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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