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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오늘 처음 만든 뮤지컬> [No.164]

글 |배경희 사진 |표기식 2017-06-08 3,939

김태형 · 이영미 · 홍우진
즉흥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시도


매일 즉석에서 주인공과 이야기가 정해진다면 공연이 이뤄질 수 있을까. 평생 딱 한 번만 볼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에서는 가능하다. 지난 4월 개막한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관객들이 직접 장르와 공연 제목, 주인공을 정해 관객과 함께 공연을 만들어 간다. 어떻게 이런 컨셉의 공연을 구상하게 됐는지, 또 공연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연출가와 배우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즉흥 뮤지컬의 출발


즉흥 뮤지컬에 대한 구상은 어떻게 시작됐나.
김태형  작품 연습 중에 종종 해보는 것 중의 하나가 배우들에게 즉흥 연기를 시키는 거다. 연습 초반, 대사 숙지가 안 된 상태에서 장면의 핵심 키워드만 가지고 연기해 보라고 하거나 대본에 없는 상황을 던져주고 캐릭터로서 자유롭게 장면 연기를 해보란 식이다. 그랬을 때 대사의 완성도는 떨어질지 몰라도 오히려 훨씬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장면이 만들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라이브’라는 공연의 매력을 가장 극대화한 장르가 즉흥극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게 공연의 매력이라면,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들이 즉석에서 공연화됐을 때 좀 더 강렬한 체험이 되지 않을까. 예전부터 막연히 언젠가 즉흥극을 해보고 싶단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본격적인 작품 구상에 들어간 계기가 있나.
김태형  삼 년 전에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국내에 없는 스타일의 공연을 많이 찾아봤는데, 그때 즉흥극을 재밌게 봤다. 그때까진 나도 언제 즉흥극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정도였고, 작년에 다시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다녀오면서 마음을 굳히게 됐다. 2013년에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소재로 하는 <카운팅 십(Counting Sheep)>이란 즉흥 연극을 봤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 인기 즉흥 뮤지컬 <쇼스타퍼>도 굉장히 재밌게 봤다. 매일 현장에서 관객이 던진 키워드로 공연을 만들어 가는 100퍼센트 즉흥극인데, 우리 작품의 모티프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즉흥극에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일이 중요했을 것 같다. 어떤 기준으로 배우를 섭외했는지.
김태형  아무래도 즉흥극인 만큼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센스나 재치, 순발력을 중요하게 봤다. 무대에서 관객을 쥐락펴락하며 잘 놀 수 있는지도 따져 봤고.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런 형식의 작품은 나도 처음 해보는 시도라 무엇보다 열린 자세를 지닌 배우들과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습 과정에서 작품 방향이 바뀔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그런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중요했던 거다. 원래도 무대에서나 평상시에 마음이 열려 있는 배우를 좋아하는데, 지금 우리 팀 배우들 대부분이 즉흥 뮤지컬을 만들어야겠단 계획을 세웠을 때 머릿속에 번쩍 떠올랐던 사람들이다.


김태형 연출에게 처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땠나?
홍우진  재밌는 생각인데, 내가 할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학 즉흥 연기 수업에서 F는 아니지만 사실상 F나 다름없는 ‘D-’를 받은 전적이 있는 터라. (웃음) 즉흥극은 단기간 연습으로 안 되고 엄청난 훈련이 필요할 텐데, 공연 매뉴얼은커녕 시놉시스도 없는 공연이라니까 더욱 자신이 없었다. 가령 초연에 참여했던 관객 참여형 연극 <쉬어 매드니스>(관객들이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리하는 수사극)의 경우엔 예상 질문과 그에 대한 대응 매뉴얼이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으로 따로 있기 때문에 공연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 그런데 결국 김태형 연출 꼬임에 넘어갔다 시파티 때까지 연출을 원망했다. (웃음)


이영미  그 원망은 아마 쫑파티 때까지 계속될 거다. (웃음) 난 재미는 두 번째 문제고, 공연 자체가 가능할까 싶었다. 그런 공연을 본 적이 없으니까. 아마 이분(김태형 연출)하고 한 집에 살지 않았다면 안 했을 것 같다. 실제 어떤 공연이 탄생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다 보니 공연이 다가올수록 그야말로 멘붕에 빠질 때가 많았는데, 김태형 연출은 안 될 것 같은 것도 다 된다고, 자기만 믿으라고 하더라. 연습실 별명이 허경영이었다. (웃음)





지금의 공연이 완성되기까지


연습 과정에서 제일 어려웠던 점은 뭔가.
홍우진  작품의 장르뿐 아니라 시놉시스도 관객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지는 공연인데, 관객 없이 연습해야 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우리 스태프들, 연습실에 놀러온 공연계 관계자들이나 배우들이 관객 역할을 대신해 주긴 했지만, 인원수 자체가 적다 보니 얻어걸릴 만한 질문이 잘 안 나오더라. 이렇게 하면 되는 구나 감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다른 소재에 멘탈이 붕괴되면 다시 또 좌절하고. 마음이 바닥까지 내려갔던 날을 셀 수 없을 정도다. (웃음) 그리고 아마 배우별로 힘든 부분이 조금씩 달랐을 거다. 각자 다 특징이 다르니까. 예를 들어, (이)정수 같은 경우는 말은 청산유수인데 몸 쓰는 걸 어려워하고, 나는 반대로 말보다는 몸으로 표현하는 게 편하다. 즉흥극에서 자기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계속 테스트를 해봐야 하는데, 그러기엔 물리적인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작품 틀을 잡는 시간만 해도 오래 걸렸으니까. 연습하면서 각자 작품 때문에 상처 꽤 받았을 거다. (웃음)


이영미  맞다. 나도 ‘이건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나를 제일 힘들게 했다. 연습 과정에서 제일 먼저 좌절에 빠진 사람이 나인 것 같은데, 내가 왜 사서 고생해 신입생처럼 신체 훈련을 하고 있어야 하나 자괴감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웃음) 그리고 이번에 느낀 건데, 즉흥극은 궁극적으로 머리가 좋아야 하겠더라. 센스도 있어야 하고, 화술도 좋아야 하고, 유머도 있어야겠지만, 무엇보다 두뇌 회전이 빨라야 바로바로 상황을 이해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아는 것 같다.  


연습 과정에서 애초의 계획과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
김태형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 현재 공연의 가장 큰 변화는 플롯이 생겼다는 점이다. 우격다짐으로 배우들을 모아놨을 때만 해도 정해진 플롯 없이 공연할 생각이었다. 진짜 완전히 날 것의 즉흥극을 해보고자 했던 거다. 그런데 이게 도저히 한두 달 연습으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 가사 없이 곡만 나온 상태에서 어떤 소재든 어떻게 사건을 만들고 해결해 가면서 이야기를 진행시킬지 큰 틀을 정해 놓고 가는 걸로 방향을 바꿨는데, 배우들이 플롯을 짜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해 줬다. 솔로곡 가사도 각자 썼다. 특히 이영미 배우가 기본 바탕 가사를 쓰느라 상당한 고생을 했다. (웃음) 작가나 연출가한테는 익숙한 일이지만, 배우들에게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텐데 중간에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함께해 줘서 정말 고맙다. 다들 좋은 공연을 만들고 싶단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같다.   


장르가 연극이 아닌 뮤지컬이라서 더 어려운 점이 있었을까?
김태형  개인적으론 연극보다 뮤지컬이라서 더 수월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뮤지컬은 음악의 힘에 기댈 수 있으니까. 우리 공연도 좌충우돌하다가도 노래하는 동안에는 배우도, 관객도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뮤지컬 넘버의 순서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송 모먼트’를 만들어가면서 다음 장면을 향해가는 거라 그나마 덜 고생하는 것 같다. 매일 고정적으로 부르는 노래 여덟 곡에, 주인공과 악당이 상황에 맞게 부르는 노래 세 곡, 러브 듀엣곡 한 곡, 전체 뮤지컬 넘버가 열두 곡이다. 장르에 따라 러브 듀엣을 안 부르게 되면 열한 곡이 되는 거라 그땐 공연 시간이 조금 달라진다. 꼭 뮤지컬 넘버 수 때문이 아니더라도 전체 러닝 타임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타인에게 방해를 주지 않고 극에 몰입해서 공연을 보는 요즘의 관람 문화와 대척점에 있는 작품인데, 관객 참여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 
홍우진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관객 참여형 연극 중 하나가 <쉬어 매드니스>가 아닐까 싶은데, 이 작품을 해봐서 그런지 관객 반응에 대한 걱정은 안 했다. 물론 관객에 따라 그날그날 객석 분위기에 어느 정도 온도 차이는 있지만, 보통 재밌는 질문이 한두 개 나오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환해지면서 봇물 터지듯 객석 곳곳에서 질문이 쏟아진다.  


김태형  누구 한 사람만 침묵을 깨는 방아쇠를 당겨주면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 공연은 관객 참여 방식에 조금 차이가 있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를 보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까 싶을 만큼 재미있는 글들이 많지 않나. 온라인 익명성의 좋은 기능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공연도 마치 댓글 달듯 편하게 공연에 참여하도록 해보는 게 어떨까 싶었다. 특정 관객을 지목해 질문한다거나 누구 한 명만 무대에 올리는 방식은 꺼려할 관객들도 있겠지만, 자기 자신이 노출되지 않고 익명의 존재로 공연에 참여할 수 있다면 분명 많은 관객들이 좋아할 거란 확신이 있었다.


이영미  솔직히 처음에 관객 참여형 공연이란 얘기를 들었을 때, 나라면 절대 안 볼 공연이라고 생각했다. (웃음) 개인적으로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걸거나, 극에 동참시키는 관객 참여형 공연을 안 좋아한다. 배우가 아닌 관객으로서 객석에 있을 때 주목받는 건 괜히 창피하다고 해야 하나. 아마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텐데, 우리 공연은 김태형 연출의 얘기처럼 특정 몇몇이 아닌 모든 관객들이 어둠 속에서 극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주목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


개막 소감은 어떤가.
홍우진  어떤 성격의 작품인지 알고 와서 그런가, 공연 첫날부터 다들 굉장히 열린 자세로 왔더라.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그게 느껴졌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놀랐다. 객석에서 계속 웃음이 빵빵 터진다. 우리 중 누군가 순간적으로 얼음이 되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럼 상대 배우가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다시 웃음이 터진다. 웃음이 안 나올 것 같은데 웃음이 터지고, 감동이 없을 것 같은데 찡한 순간이 있더라. 그런데서 느껴지는 희열이 있다. 그래도 우리처럼 매뉴얼 없는 즉흥극은 두 번 다신 안 할 것 같지만. (웃음)



이영미  진짜 놀랐다. 그냥 재밌는 것도 아니고 ‘핵잼’이라고 하던데,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줄 몰랐다. 뜨거운 관객 반응에 힘이 솟는데, 집에 가면 다시 힘을 잃는다. 다음 공연은 또 어떡하나 싶어서. 어제가 월요일이라 공연이 쉬는 날이었지 않나. 어제 하루 쉬었다고 극장 오는 길이 얼마나 걱정되던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삼만 사만 오만이다. (웃음) 소감으로 스태프들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음악감독님, 음향감독님, 조명감독님 누구 하나 고생을 안 하는 사람이 없다. 주인공 배우가 매일 바뀌고, 그에 따라 동선도 달라지니까 스태프들도 매번 다른 공연을 하고 있는 거다. 안 보이는 데서 고군분투하는 스태프들의 힘으로 우리가 이만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김태형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도 즉흥극 같지 않나 싶다. 내가 오늘 누굴 만나게 될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삶이 완성되어 가니까. 우리 작품처럼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 불안 속에서 좌충우돌하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 그게 인생이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배우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사실 나보단 직접 무대에 올라야 하는 배우들이 준비 과정에서 무척 불안했을 텐데, 각자 자신과의 싸움을 버텨준 이들이 아니었다면 이번 공연은 불가능했을 거다. 이번 작업으로 즉흥극의 다양한 가능성을 본 만큼 앞으로도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싶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4호 2017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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