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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lAL] ] 젊은 창작자 10인이 말하는 내 인생의 공연 2 [No.163]

2017-05-02 5,615

이지현 (작가)



201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전문사 동기인 황미나 작곡가와 함께 개발한 <난쟁이들>이 뮤지컬하우스 블랙앤블루 지원작으로 선정돼 데뷔식을 치렀다. ‘어른이 뮤지컬’을 표방하는 <난쟁이들>은 2015년 초연 당시 동화를 비튼 유쾌한 내용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지난해 중국의 엔터테인먼트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주요작    
2015 뮤지컬 <난쟁이들> 극작




당신이 기억하는 가장 처음 본 공연은 무엇입니까?
제대로 된 극장이라고는 문예회관밖에 없던 소도시에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보낸 덕에 대학에 와서야 제대로 된 공연을 처음 봤습니다. <캣츠>가 유명한 4대 뮤지컬이라는 이야기에 친구 두 명과 난생처음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보게 됐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드라마와 춤, 노래 등 제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가 들어 있어 굉장히 흥분하면서 봤지요. 특히 럼텀터거가 현란하게 골반을 튕길 때 마다 흥분도가 높아졌습니다. 아직도 무대 위 하늘에 반짝이던 별들이 선명하게 기억나네요.


작가를 꿈꾸게 만든 작품을 꼽는다면?
대학 영미 희곡 수업 시간에 『세일즈맨의 죽음』과『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를 두 학기에 걸쳐 공부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공연을 진지하게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대본을 읽고, 공부하면서 윌리 로먼과 블랑쉬가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깊은 연민을 느꼈고, 저와 다르지 않은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거든요. 또 그즈음, 수업 시간에 단체로 관람했던 <벚꽃 동산>도 인상적이었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벚꽃을 베어내는 소리와 함께 홀로 남겨진 늙은 하인이 독백을 할 때, 일상을 뛰어넘는 굉장히 강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질투심을 느끼게 한 공연이 있습니까?
2011년엔가, 그 학기에 쓸 작품을 찾느라 도서관을 서성이다 우연히 소설 한 권을 발견하곤 완전히 매료됐던 적이 있어요. ‘이거다!’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시놉시스를 썼는데, 이미 외국에서 뮤지컬로 제작된 작품이고 국내 제작사와 공연 계약을 마쳤다고 하더라고요. 대본 작업 중 구글에서 이 소식을 발견하고 얼마나 슬펐던지. 몇 년 후 직접 공연을 보면서 공연 내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그리고 너무 배가 아파서요. 특히 옥주현 배우가 그 유명한 뮤지컬 넘버 ‘레베카’에서 ‘레베카아아아!’ 하고 절규할 때, 제 눈물도 한꺼번에 폭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이야기에 끌립니까? 반대로 피하는 종류의 이야기가 있습니까?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라면 모두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강렬한 이미지나 감정이 있는 이야기를 특히 좋아합니다. <레베카>처럼요. 하하. 연민이 느껴지는 인물의 이야기에도 끌립니다. 자신이 처한 현실로 인해, 또는 하마르티아 같은 비극성 때문에 고통받는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그 표현 방식이 진지하면 진지한 대로, 또 우스우면 우스운 대로 인물에 애정을 갖게 돼요. 반대로 설정을 위한 설정이 많거나, 뻔한 의도가 보이는 이야기에는 쉽게 공감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특정 배우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은 공연이 있습니까?
너무너무 많지만, 실현 가능성을 배제하고 시급한 순(?)으로 이름을 써보자면 김성녀 선생님이나 이혜영 선생님. 나이 듦이 너무너무 아까운 분들의 카리스마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공연 속 캐릭터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면 누굴 만나고 싶습니까?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관찰하고 싶은 사람은 <선 셋 대로>의 노마. 따뜻한 난로 앞에서 보드카를 나눠 마시며 안아주고 싶은 사람은 <갈매기>의 뜨레쁠레프와 니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다니며 친구하고 싶은 사람은 <난쟁이들>의 왕자 1, 왕자 2, 왕자 3.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니 너무 극단적으로 자신의 눈까지 그렇게 하지는 말라고 말해 주고 싶은 사람은 <오이디푸스>의 오이디푸스.


마음에 새기고 있는 공연 속 대사나 가사가 있습니까?
“인생이란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뿐, 무대 위에 있을 땐 잠시 동안 뽐내고 떠들어대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 가련한 배우에 불과할 뿐. 인생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한, 바보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뿐.” 대학생 때 『맥베스』의 이 구절을 읽은 이후로 줄곧 가장 좋아하는 대사입니다.




오세혁 (배우, 작가 겸 연출)



2005년 창단된 극단 걸판 대표. 지난 십 년간 연극 작가 겸 연출가로 활동하다 2016년 <라흐마니노프>의 연출을 맡아 뮤지컬계로 영역을 넓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1월에 열린 제1회 한국 뮤지컬 어워즈에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연출상을 받은 바 있다.


주요작        
2016 뮤지컬 <나무 위의 고래> 연출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연출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연출
         연극 <보도지침> 작, 연출
         연극 <괴벨스 극장> 작, 연출
2014   연극 <늙은 소년들의 왕국> 작, 연출                 



당신이 기억하는 가장 처음 본 공연은 무엇입니까?
2011년, 서른 넘어 뒤늦게 서울예대에 들어갔어요. 2005년에 이미 지역 극단인 극단 걸판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좀 더 제대로 연극을 공부하러 학교에 들어갔던 거죠. 원래 공연 전공자가 아니었거든요. 입학 당시만 해도 뮤지컬은 밝고 달콤한 장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조광화 선생님 추천으로 본 뮤지컬 영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그런 편견을 깨줬어요. 뮤지컬이 가장 높고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르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죠. 그때 뮤지컬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고요. 생각해 보면, 연극 배우러 간 학교에서 뮤지컬을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질투심을 느끼게 한 공연이 있습니까?
최근에 본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창작뮤지컬 중에서 이토록 감정을 세밀하게 그리는 작품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 사라질 존재들이 서로를 필사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이후 처음으로 강렬한 질투를 느꼈습니다.


어떤 종류의 이야기에 끌립니까? 반대로 피하는 종류의 이야기가 있습니까?
인간의 부족함이 인간의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공연을 사랑합니다. 반대로 인간의 부족함이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공연을 좋아하지 않아요.


뮤지컬로 만들고 싶은, 혹은 누군가 만들어줬으면 하는 다른 장르의 작품이 있습니까?
영화 <시네마 천국>이나 <기쿠지로의 여름>. 제 생각에 뮤지컬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장르인 것 같은데,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뮤지컬을 만들기에 이 두 작품이 좋은 원작이 될 것 같아요. 사족을 붙이면, 제가 속해 있는 극단 걸판에서 소설 『빨간머리 앤』을 가족 뮤지컬로 만들었는데, 조만간 서울 공연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정 배우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은 공연이 있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주성치와 함께 작업해 보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제가 쓴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 중국판 공연의 주인공으로 모시고 싶어요.


공연 속 캐릭터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면 누굴 만나고 싶습니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백석과  <어쩌면 해피엔딩>의 클레어. 백석은 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만나고 싶고, 클레어는 그냥, 사랑스럽잖아요. 둘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클레어하고 같이 하루 종일 즐겁게 놀고 싶습니다.


국내외 창작자 중 가능하다면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기쿠지로의 여름>의 영화 음악을 쓴 히사이시 조와 함께 뮤지컬 버전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마음에 새기고 있는 공연 속 대사나 가사가 있습니까?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대사.  “사람의 마음은 넓고 깊고 복잡하니까. 그래서 아름답다.”




정민아 (작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2012년 남자 기생 풍월을 소재로 한 뮤지컬 <풍월주>를 선보이며 뮤지컬 극작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첫 작품으로 뮤지컬 팬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빠르게 이름을 알렸으며, 이후 뮤지컬과 연극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주요작      
2017 뮤지컬 <광염 소나타> 극작
 연극 <베헤모스> 각색
2015 뮤지컬 <고래고래> 극작
2014 뮤지컬 <살리에르> 극작
2013 연극 <유럽블로그> 극작
2012  뮤지컬 <풍월주> 극작                            




당신이 기억하는 가장 처음 본 공연은 무엇입니까?
극작가가 되기 전 원래 시를 썼던 터라 학창 시절 대본보다는 시집하고 더 친했어요. 극장보다는 여행을 더 좋아했고요. 그런데 스무 살에 떠난유럽 여행에서 생애 첫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어요. 사실 특별히 그 공연이 보고 싶었다기보다 명색이 웨스트엔드에 왔으니까 뮤지컬 한 편 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본 거였거든요. 근데 안개가 자욱한 무대 위로 배가 물같이 흐르는데, 와, 이런 신세계도 있구나 마냥 신기했죠.그리고 무엇보다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이 인상적이었어요. 꼭 여유로운 파티장에 온 사람들 같았죠.


당신으로 하여금 질투심을 느끼게 한 공연이 있습니까?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우연히 티저 영상을 보고 너무 궁금해서 바로 예매해서 보러 갔는데, 아, 앉아 있는 내내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요. ‘헉’ 하고 시작해서 ‘멍’ 하고 끝난 기분이었죠. 원작을 비튼 발칙한 발상으로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데, 단 한 번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 도도함에 압도당해 그날 밤 잠을 못 이뤘던 것 같아요. 사실 너무 좋으면 질투도 안 하고 그냥 인정하게 되는데, 이제 와 그 공연이 질투가 나요. 저도 누군가를 압도하는 매력적인 작품을 꼭 한 번 쓰고 싶어요.


어떤 종류의 이야기에 끌립니까? 반대로 피하는 종류의 이야기가 있습니까?
세상 모든 이야기들을 다 품고 싶고, 어떤 소재든 편식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쪽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겁이 좀 많아서 호러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때리고 싸우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서 액션물도 안 좋아하고요. 편식하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기피하는 이야기가 벌써 두 종류나 되네요. 반대로 제가 끌리는 이야기는 ‘끝에 다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말하자면 기쁨보다는 슬픔, 행복보다는 아픔에 닿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공연 속 캐릭터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면 누굴 만나고 싶습니까?
아직 발표 전인 제 차기작의 ‘엔드’ 라는 소년이요.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 아이와 악수하고 싶어요. 그리고 다 괜찮다고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미 무대에 오른 인물이라면, <맨 오브 라만차>의 늙은 신사 알론조. 함께 여행을 떠나서 고기도 사드리고, 막걸리도 사드리고, 기분 좋게 다 맞춰드린 다음에 ‘임파서블 드림’ 한 번만 불러달라고 할래요.


마음에 새기고 있는 공연 속 대사나 가사가 있나요?
<맨 오브 라만차>의 ‘임파서블 드림’.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렇게 써놓고 보면 특별한 기교 없는 쉬운
가사인데, 힘들 때마다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인 것 같아요. 아마 노래에 담긴 메시지의 힘
때문이겠죠? 저도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로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채한울 (음악감독 겸 작곡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이론 전공,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협동과정 음악극창작과 작곡 전공을 졸업했다. 뮤지컬 음악감독이자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뮤지컬 외에도 한국어 가사와 대사로 진행하는 살롱 오페라 <리타>에서 가사 번안을 맡았다.


주요작            
2016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작곡·작사
2015 뮤지컬 <무한동력> 음악감독
2015 뮤지컬 <난쟁이들> 음악감독
2015 뮤지컬 <가야십이지곡> 작곡
2014 오페라 <리타> 가사 번안       



당신이 기억하는 가장 처음 본 공연은 무엇입니까?
제 기억상 첫 뮤지컬은 아마 초등학교 3~4학년쯤 봤던 뮤지컬 <인어공주>일 겁니다. 어쩐지 노래가 디즈니 만화영화 <인어공주>에 못 미치는 것 같아서 슬펐고(그 노래가 나올 거라 기대했나 봅니다) 의상의 재질과 재봉이 몹시 나빠서 슬픔이 배가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는 대충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작곡가를 꿈꾸게 만든 작품을 꼽는다면?
2010년 봄, 경희궁에서 본 <대장금>. 당시 막 뮤지컬을 시작한 터라, 이 작품의 음악이 그때까지 본 몇 안 되는 창작뮤지컬과 좀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심히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 표현하자면 ‘뮤지컬 음악 같지 않다’고 할까요. 만약 내게 재능이 있어 이렇게 곡을 쓸 수만 있다면, 이런 음악으로 창작뮤지컬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겠구나! 그러니까 내게 재능이… 있다면… 있다면… 있다면 좋았겠지만 없어도 <인어공주> 의상을 봤을 때처럼 슬프진 않습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질투심을 느끼게 한 공연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실 저는 주로 제 생각만 하기 때문에 ‘나나 지난번보다 좀 나아졌으면’ 하고 바랍니다. 관련 전공을 한 탓도 있겠지만 주변에 친구라고 할 만한 창작자가 적지 않은 편이라 그들의 공연이 잘 나온 걸 보면 좋아서 ‘우어어엉’ 울부짖으며 두 번씩 보기도 합니다. 공연 하나가 올라가기까지 과정이 많고 힘들거든요. 동병상련을 느낍니다.


어떤 종류의 이야기에 끌립니까? 반대로 피하는 종류의 이야기가 있습니까?
청소년기 성장담을 좋아합니다. 미완의 존재가 자신과 주변을 인식해 나가고, 때로는 부수고, 불안과 떨림으로 그 시기를 견뎌, 본인과 세계를 좀 더 명확하게 그리게 되는 이야기는 항상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결국 실패한 것이든, 한 뼘 더 성장하는 것이든 말이죠. 병맛 코미디도 좋아해요. 저는 어떤 이야기든 거기에 희극성이 작은 불씨만큼이라도 있으면 기어코 살려내고 싶어 합니다. 뚜렷하게 피하는 이야기는 없지만 다음번엔 주인공이 꼭 예술가가 아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별로 쓴 게 없는데 그게 다 연속으로 만화가, 음악가, 시인… 그리고 좀 다른 논점이지만, 계속 새롭게 설정을 넣지 않으면 드라마가 진행되지 못할 정도로 설정이 많고 그에 의존한 이야기는 선호하지 않습니다.


명작으로 일컬어지지만 당신은 좋아하지 않는 공연이 있습니까?
<마틸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하고 재미있게 보기도 했는데, 다만 어린 배우들을 보는 마음이 좀 불편했습니다. 다들 너무 예쁨 받으려고 기를 쓰는 느낌이었거든요. 귀여운 쪼꼬미들이 조명 자리를 못 찾을까봐, 혹은 안무 자리가 틀릴까봐 바짝 군기 든 상태로 눈치를 보는 게 느껴져서 괜히 제가 미안해지더라고요. 아침나절 줄서서 구매한 내 할인 티켓 값으로 너희의 어린이다움을 뺏은 기분. 흑흑.


공연 속 캐릭터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면 누굴 만나고 싶습니까?
<쓰릴 미>의 바비. 얘, 비싼 차 태워 준다는 형 만나면 이 호루라기 불어.


마음에 새기고 있는 공연 속 대사나 가사가 있습니까?
사실 어떤 대사나 가사를 늘 마음에 새기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이 질문을 보자마자 처음 생각난 것은 <헤드윅>의 이 대사입니다. “사랑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뭔가를 창조한다(Love creates something that was not there before).”



한정석 (작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추계예술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 영상시나리오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2013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무인도에 표류한 남북한 군인의 우정을 그린 <여신님이 보고 계셔>로 제19회 한국뮤지컬대상시상식 극본상을 받았다.


주요작         
2017 뮤지컬 <레드북> 극작
2013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극작



작가를 꿈꾸게 만든 작품을 꼽는다면?
8~9년 전, 제가 아직 작가 지망생일 때 우연히 <조지와 함께한 일요일 공원에서>의 국내 상영회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어요. 그 전까지 뮤지컬은 쉽고 단순하고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조지와 함께한 일요일 공원에서>는 제가 본 그 어떤 공연보다 과감하고 자유롭고 우아한 작품이었어요. 집에 가는 길에 문득 ‘나도 언젠가 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과 예술성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그 마음이 제가 뮤지컬 작가를 시작하는 데 큰 힘이 된 것 같아요. 그 밖에 <빌리 엘리어트>, <넥스트 투 노멀>, <스프링 어웨이크닝> 역시 떠올릴 때마다 제게 힘과 용기를 주는 고마운 작품이에요.


어떤 종류의 이야기에 끌립니까? 반대로 피하는 종류의 이야기가 있습니까?
어떤 이야기든 만드는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잘 알고 있고, 정말 하고 싶어 하고, 그들의 보람이 느껴지는 이야기에 끌려요. 그런 이야기가 담긴 공연을 만나면 관객의 입장에서 존중받는 느낌이 들고,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반대로 피하는 이야기는 너무 상업적인 기획과 아이디어로만 조합된 이야기예요. 새로운 고민이나 매력 없이 상업적인 기획만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걸 보면 허전한 느낌이 들어요.


뮤지컬로 만들고 싶은, 혹은 누군가 만들어줬으면 하는 다른 장르의 작품이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수학자 혹은 과학자의 삶을 소재로 한 작품을 좋아해요. 학창 시절부터 그런 과목에 부진하다보니 어느 순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 <뷰티풀 마인드>, <프루프>, <박사가 사랑한 수식> 등이 뮤지컬로 만들어지는 걸 보고 싶어요. 지극히 이성적인 인물들이 부르는 노래는 어떤 느낌일까? 수학이나 과학적인 개념들이 무대에서 어떤 모습으로 표현될까? 기대되는 요소가 많아요.   


특정 배우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은 공연이 있습니까?
최성원, 김국희 배우를 주인공으로 극을 써보고 싶어요. 함께 작업하면서 두 사람 모두 엄청 밝은 코미디부터 지독한 신파까지 표현 가능한 영역이 무척 넓다고 느꼈어요. 만약 두 분을 주인공으로 한다면 ‘세상 가장 웃긴 연인의 세상 가장 슬픈 이야기’ 혹은 그 반대로 ‘세상 가장 슬픈 연인의 세상 가장 웃긴 이야기’ 같은 걸 써보고 싶어요.


공연 속 캐릭터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면 누굴 만나고 싶습니까?
쑥스러운 소리지만 <여신님의 보고 계셔>의 순호를 만나고 싶어요. 제가 쓴 첫 작품의 주인공으로서 저와 같이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같이 헤매고, 같이 신 나하고, 같이 성장하면서 작품을 완성시킨 것 같아요. 만나게 된다면 그 시절 저를 이끌어줘서 고맙다고 직접 말해 주고 싶어요. 또한 순호가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고 싶어요.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인물이니까요.


마음에 새기고 있는 공연 속 대사나 가사가 있습니까?
<조지와 함께한 일요일 공원에서>의 ‘Move On’ 가사. “나는 선택을 했고, 그래서 내 세상은 흔들렸지만, 그래서 뭐? 내 선택은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내 행위는 틀리지 않았어(I chose, and my world was shaken― So what? The choice may have been mistaken, The choosing was not).’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2호 2017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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