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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YORK] <브롱크스 테일> [No.161]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17-02-27 4,094

1960년대 브롱크스의 이야기    

<브롱크스 테일BRONX TALE>



지난 12월에 오픈해서 순항하고 있는 <브롱크스 테일>은 1989년에 초연된 연극 <브롱크스 플레이>를 원작으로 한다. <브롱크스 플레이>는 이태리계 미국인 배우 채즈 팰민테리(국내에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데이브 형사로 알려진)가 각본을 쓰고 직접 출연한 일인극으로, 1993년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직접 감독을 맡아 영화로 만든 바 있다. 뮤지컬은 영화의 내용을 꽤 충실하게 따른다. 채즈 팰민테리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이 작품이 뮤지컬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데는 2007년 뮤지컬 <시스터 액트>의 연출로 잘 알려진 제리 작스가 직접 연출과 배우를 맡아 올린 공연의 영향이 크다. 지난 2016년 초에 뉴저지의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에서 첫선을 보인 <브롱크스 테일>은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는데, 이번에 올라간 브로드웨이 공연에 대한 평가도 대체적으로 무난하다. 작품의 진부함에 대해 매우 신랄한 평을 내보낸 <버라이어티>의 리뷰만 제외하면 말이다.




이민자, 그리고 갱단의 이야기


<브롱크스 테일>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우선 작품의 배경인 브롱크스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뉴욕주 뉴욕시의 공식적인 행정 구역은 맨해튼, 브루클린, 퀸스, 스테튼아일랜드, 그리고 브롱크스 이렇게 다섯 개의 자치구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이민자들이 언제 어떻게 정착했는지에 따라 자치구별로 인종적인 색깔이 다른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브루클린은 유대인, 스테튼아일랜드는 이탈리아계 이민자들, 그리고 퀸스는 동양계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북동쪽에 자리한 브롱크스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러시아나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대다수였는데 1970년대 전후로 흑인과 히스패닉 들이 차츰 유입되어 인종 지도가 많이 달라진 구역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종 간 혹은 인종 내 폭력이 빈번했던 구역으로 맨해튼 북쪽에 위치한 할렘과 더불어 악명을 떨쳤다.


객석에 들어서면 건물의 외관이 검정색으로 스케치돼 있는 붉은색 막이 드리워져 있는데, 무대 앞쪽 중간에 벨몬트 애비뉴라는 사인이 있는 가로등이 서 있다. 막이 오르면 가로등 밑에 서 있던 네 남자가 아카펠라를 하는데(다분히 <저지 보이스>를 연상시키는 연출이었다), 그 옆에서 어른이 된 주인공 칼로제로(시실리식 이탈리아 이름)가 내레이션으로 이탈리아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소개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칼로제로는 소니를 우두머리로 모시는 이 구역의 갱단이 늘상 모여 있는 술집 근처에 사는데, 소니와 그의 무리에 대한 묘한 궁금증과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 집 앞에서 소니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목격한다. 하지만 칼로제로는 경찰의 심문에도 소니가 범인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고, 그 일을 계기로 소니의 관심을 산다. 소니와 가까워진 칼로제로는 그의 제안에 따라 이름을 씨로 바꾸고-칼로제로의 뜻은 아름다운 어른이라 꽤 부담스러운 이름이다- 소니의 비호를 받는 청년으로 자란다. 1막은 칼로제로와 소니가 점차 가까워지는 과정, 성실한 버스 기사로서 동네 사람들의 존경과 애정을 받는 칼로제로의 아빠가 아들이 소니와 가까워지는 것을 불안해하는 모습, 그리고 고등학생이 된 칼로제로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흑인 여학생 제인과 서로 좋아하게 되는 사건, 이렇게 세 가지의 굵직한 이야기로 구성된다.


2막은 벨몬트 애비뉴가 아닌 웹스터 애비뉴를 배경으로 시작하는데, 웹스터 애비뉴는 흑인들이 막 거점을 삼기 시작한 흑인 동네로, 앞으로의 인종 갈등을 예고한다. 제인과 데이트를 하기로 한 칼로제로가 소니의 차를 빌려 그녀를 데리러 가는데, 하필 그날 오후 제인의 남동생들이 흑인 세력으로부터 동네를 보호하겠다는 칼리제로의 친구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제인은 칼리제로가 동생을 공격한 사람들 중 한 명이라고 오해하고, 칼리제로가 홧김에 인종차별적인 말을 뱉어 둘의 데이트가 취소된다. 오해를 받아 화가 난 칼로제로는 동네로 돌아와 소니에게 차를 돌려주는데, 차에 폭발 장치가 부착돼 있어 그의 의심을 산다. 칼로제로는 믿고 따랐던 소니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것에 화가 나 흑인 동네에 화염병을 던지러 가는 양아치 친구들을 얼결에 따라나선다. 가는 길에 정신을 차린 칼로제로는 차에서 내리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갈등을 겪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소니가 칼로제로를 그 무리에서 끌어낸다. 동네로 돌아온 칼로제로는 소니와 오해를 풀고 자신을 찾아온 제인과도 화해한다. 그리고 얼마 후 화염병을 잔뜩 실은 차가 폭발해서 그 안에 있던 친구들이 다 죽었다는 얘기를 듣는다. 불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칼로제로는 자신을 살려준 소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술집에 갔다, 소니가 8년 전 죽였던 남자의 아들 총에 맞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소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칼로제로는 아빠와의 불편했던 관계를 회복한다. 그리고 칼로제로가 그 길로 브롱크스를 떠나 열심히 살아서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고, 이게 <브롱크스 테일>이라고 말을 마치면 막이 내린다.



스토리가 아닌 테일인 이유


공연이 끝난 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작품의 제목이 <브롱크스 스토리>가 아니라 <브롱크스 테일>이어야 했던 당위성이다. 보통 테일은 동화나 옛날이야기를 연상시키는데,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비현실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을 칭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이야기의 결말을 만들어내는 반면 테일은 그러한 방향성 없이 일어난 일들을 순차적으로 이야기하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데 그친다. 다시 말해, 스토리는 강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노를 젓는 일이라면, 테일은 강의 흐름을 따라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스토리는 듣는 사람들의 관심을 사기에 좀 더 유리한 부분이 있다. <브롱크스 테일>은 칼로제로가 어떻게 소니를 만나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흐름을 따라서 이야기해 준다. 그런 면에서 테일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이야기 구조를 보여주는데, 바로 이 구조 자체가 작품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장점은 그 당시를 살았던 많은 뮤지컬 관객들이 <브롱크스 테일>을 편안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내용 전개가 자칫 진부하고 지루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뮤지컬은 그러한 지루함을 덜어줄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브롱크스 테일>의 외적인 요소들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러닝타임이 두 시간 남짓이라 물리적으로 오랫동안 관객을 잡아두지 않았다는 점과, 그 두 시간이 늘어지지 않도록 무난하게 연출했다는 점이었다.


1993년 영화를 연출하고 칼로제로의 아빠 역을 맡았던 로버트 드니로와 2007년 브로드웨이 일인극의 연출을 맡았던 제리 작스가 함께 연출을 맡았는데, 장면 전환이 꽤 매끄러웠다. 알란 멘켄의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디즈니 뮤지컬의 대부로 여겨지는 알란 멘켄의 음악이나 글렌 슬레이터(주요작 <인어공주>, <스쿨 오브 락> 등)의 가사는 이 작품에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이탈리아계 미국인과 흑인 사이의 갈등이라든가, 주인공과 아빠, 그리고 소니의 삼각(?)관계를 생각하면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소니가 칼리제로에게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얘기해 주는 노래인 ‘니키 마키아벨리’나 2막에서 칼리제로가 분노를 못 이기며 부르는 노래인 ‘허트 썸원’은 알란 멘켄이 지금껏 작곡해 왔던 디즈니 작품들의 음악적 드라마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음악 자체는 특별하지 않았어도, 갱단의 이야기를 다루는 상황들을 낭만화할 수 있는 알란 멘켄이 아니었다면, 작품이 많이 어둡고 무거워져서 테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억을 바탕으로 한 그림책 같은 무대와 조명


무대와 조명 역시 작품이 옛날이야기로 보이는 데 효과적이었다. 브로드웨이의 굵직한 작품들을 많이 맡아온 하웰 빙클리(<해밀턴>, <애프터 미드나잇> 등)의 조명과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해 온 베오울프 보릿(<스펠링비>, <리틀 미스 선샤인> 등)의 무대는 사실주의와 표현주의를 적당히 오가며 기억 속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재현해 냈다. 무대는 사실적이었고 포인트를 잘 잡아서 간단하게 처리했다. 조명은 전체적으로 붉은빛을 많이 썼는데,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 위에 설치되어 있던 막에 검은 색으로 스케치된 건물 외벽의 배경이나 어린 칼로제로가 아빠와 함께 바닷가에서 공을 던지며 시간을 보낼 때 뒤로 보이는 바닷가의 하늘, 칼로제로가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흑인 동네로 갈 때 뒤에 보이던 배경, 전반적으로 무채색을 띠는 세트와 의상과 대조되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굳이 붉은색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작품의 시작과 끝, 무대 위 가로수 아래서 아카펠라 그룹이 노래할 때의 조명도 붉은 빛을 띠는데) 옛날이야기처럼 얘기해 주긴 해도 결과적으로는 이 이야기가 갱단과 관련되어 있는 이야기임을 감안하면 의문이 옅어진다. 또한 무대 위 가장 큰 세트는 미국식 다가구 주택으로 쓰이는 타운 하우스와 각 건물에 설치되어 있는 화재 대피용 비상계단들인데, 철근 구조물로 만들어 마치 팝업 이야기책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줬다. 의상의 대부 윌리엄 아이비 롱이 디자인해서 기대를 했던 1960년대의 시대 의상은 별로 새롭지도 흥미롭지도 않았다. 물론 1960년대 당시 옷 자체가 그랬을지 모르지만 무대 의상으로 만드는 데 등장인물의 성격이라든가 전반적인 팔레트의 구성을 고려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17년 뉴욕에서 공연되는 이유


이탈리아계 미국인 할아버지한테 옛날의 브롱크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으로 본다면 나쁘지 않은 <브롱크스 테일>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은, 그런데 왜 지금, 왜 뉴욕에서 이 공연이 올라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두 시간여 동안 딱히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뮤지컬보다 영화에 가깝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영화와 뮤지컬이 별반 다르지 않아서 그런 부분도 없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어린 칼로제로가 소니의 도박판에서 심부름을 하며 600불을 벌어 오자 아빠가 소니를 찾아가서 그 돈을 돌려주는데, 뮤지컬에서는 그 돈이 1,200불이었다는 사소한 차이나, 뮤지컬로 옮기면서 노래를 더하고 구성적인 변화를 준 것을 제외하고는 영화의 대본과 뮤지컬의 대본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2017년에 공연을 보고 있는 동양인 여자인 필자가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에게 공감하기가 어려웠다는 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브롱크스 테일>은 지나치게 이탈리아계 미국인의 이야기이고, 무엇보다도 굉장히 남성 호르몬이 넘쳐나는 이야기였다. 칼로제로의 엄마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거의 없고, 칼로제로가 좋아하는 제인이 있긴 하지만, 그녀의 존재 역시 굉장히 부수적이다. 적절한 유머와, 처지지 않는 극의 전개, 그리고 적절한 음악과 볼거리가 있긴 하지만 ‘왜’에 대한 질문에는 답을 주지 못했다.


<브롱크스 테일>의 배우들은 아직 브로드웨이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배우들의 연기는 조금 어설펐지만(특히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맡았던 허드슨 로베로의 노래가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이 느껴져 이 작품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부분이 <브롱크스 테일>의 핵심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성장담은 아직 꺼내지 않은 훨씬 더 많은 얘기들이 남아 있음을 상기시키는 나침반 같은 이야기이고, 그런 점에서 의미를 지닌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소니와 아빠의 가르침에 힘입어 브롱크스를 떠나 자기의 삶을 개척해 ‘특별한 사람(I Became Somebody)’이 된 칼로제로의 브롱크스 이야기는 더 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담을 수 있는 성장 스토리의 원형을 뮤지컬 형식으로 제공한다는 데에서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닐까. 아마도 공연이 순항하고 있는 이유는 시의성과 무관하게 다양한 원형적인 이야기로 관객의 관심을 끌었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1호 2017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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