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새해가 밝았다. 2017년 뮤지컬 시장은 어떻게 전개될까?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겠지만,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미래 예측이 필요하다. 뮤지컬계 전문가 4인에게 여섯 개의 공통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들었다. 정답이 있을 수 없지만 2017년 뮤지컬 시장을 가늠하는 참고 자료는 되지 않을까.
참여자 |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박병성 <더뮤지컬> 편집장
인형근 EMK뮤지컬컴퍼니 이사 조용신 CJ Creative Minds 예술감독
2016년을 상징할 만한 사건을 하나 꼽는다면?
고희경
1. <마타하리>, <도리안 그레이>, <페스트> 제작. 글로벌한 주제로 만든 대형 창작뮤지컬이 올라갔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남았다. 앞으로 대극장 창작뮤지컬 시장이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후유증도 염려되는 한 해였다.
2. <록키> 공연 취소. 대극장 라이선스 뮤지컬의 일정한 흥행 보장, 투자 보장이 어려운 현실에 대한 염려가 사건으로 드러났다. 뮤지컬 시장 성장에 대한 적신호.
박병성
<록키> 공연 취소. 과열된 뮤지컬 시장에서 수익을 내기 힘든 제작 환경, 스타 캐스팅의 지나친 의존도, 돌려막기의 폐해 등등 우리 뮤지컬 시장의 문제들이 표면화된 사건이다. 문제는 <록키>의 사건은 마침표가 아니라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뮤지컬 제작의 열악한 환경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인형근
사회적인 이슈로는 최순실 사태가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공연계에서는 셋업을 앞두고 공연이 취소된 <록키>, 이와 함께 2017년 공연 준비 중이었던 <아더왕> 등 다수 작품의 공연 취소 사태가 공연계의 현실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생각한다.
조용신
최순실-차은택 국정농단 사건을 통해 본 뮤지컬의 위상. 박근혜 정부는 뮤지컬을 5대 킬러 콘텐츠로 선정했다. 이로 인해 정부의 뮤지컬 지원이 늘어났고 특히 문체부 산하 콘텐츠진흥원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창작 개발 지원이 이루어져 업계에서는 이를 고무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에서도 뮤지컬계는 거의 영향이 없었다. 하지만 2014년 국정농단의 주역 중 한 사람인 차은택이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시연한 공연이 바로 뮤지컬이었다. <원데이> 쇼케이스 공연은 사실 주류 뮤지컬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주목받은 적도 없으며 차은택 감독이 뮤지컬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뮤지컬이 여러 경로로 각광받으면서 공공 지원금을 쉽게 타내는 창구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뮤지컬의 애초부터 열려있는 형식으로서의 모호함이 비선 실세들의 문화 예술계 침투의 약한 고리가 되었다. 이로 인해 기존에 실시되었던 지원 제도들이 오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문화융성의 기치 하에 뮤지컬이 청년 실업을 구제한다든지 황금알을 낳는 벤처기업이라는 등 불분명하고 말만 번지르르한 표현은 사라져야 한다. 뮤지컬이 2016년 대한민국에서 과연 어떤 문화상품이며 그 미래가 어떠할지 논의해볼 과제를 던진 사건이었다.
2017년 뮤지컬 시장은 성장할까? 그렇지 않을까?
고희경
매출은 적은 규모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데 시장이 성장한다고 보기 어려울 듯하다. 대표적인 대형 제작사들이 신작 제작을 포기하고 라이선스도 아닌 투어 팀 공연에 집중하고 있어 제작 환경 전체를 볼 때 한국 뮤지컬 시장은 위축될 것이다.
박병성
2017년 뮤지컬 시장은 하락할 것이다. 외적으로는 최순실 농단사건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고, 탄핵 국면에 따라 빨라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대선이 있는 해이다. 수출뿐만 아니라 내수 시장 역시 침체기에 빠져 있고, 내년 경기 전망도 어둡다. 공연 시장은 경제 상황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데 외부적인 상황이 너무 안 좋다. 뮤지컬 내부적으로도 과열된 시장의 열악한 환경을 헤쳐 나갈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고 하지만 사드 문제로 중국과의 교류가 경직된 상황이다. 2017년 시장은 하락하더라도 내부적인 환경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인형근
뮤지컬 시장 규모는 정체 또는 소폭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 직접적인 경기 하락 여파와 내년 대선, 2018년 초에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 등 사회적인 빅 이슈가 너무 많다. 몇 년간 계속되는 경기 하락은 이젠 어느 시기에 상승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저성장 기조에 맞추어 사전에 매출 목표 등을 하향 조정하는 등의 공연 준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조용신
매출 면에서 후퇴하지는 않을 것이다. 뮤지컬이 공연 상품 중에서 여전히 경쟁 장르가 별로 없는 독점력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매출 성장은 조금씩 이루어지지만 그만큼 종사자들이 늘었기 때문에 만족도는 떨어진다는 점이다. 온 국민이 치킨을 즐기는 것과 동네 치킨집이 다 잘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만약 뮤지컬계 종사자의 1인당 매출액을 산정하는 방법이 가능하다면 분명 떨어지거나 정체될 것이다. 따라서 성장이나 후퇴냐의 문제로 업계 시장을 진단하는 것은 성장 위주의 신자본주의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업계 종사자들의 행복 추구와 만족도를 함께 보아야 한다.
2017년 뮤지컬계에서 눈여겨봐야 할 일이 있다면?
고희경
1. 투어 팀의 증가. 제작비에서 개런티 러닝 코스트 비중이 너무 상승하고 있는데 이제는 정상화될 때가 되었다. 라이선스가 아닌 투어 공연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외국 배우를 초청하는 비용보다 국내 제작이 더 비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프로듀서들이 제작을 포기하는 신호가 아닌지 우려된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2. 대극장 창작뮤지컬 재공연 러시. 2년차, 3년차 작품들이 공공극장(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등)에 대거 진출하면서 앞으로의 지속 가능성을 타진하게 될 터인데 이 작품들의 성공을 소망한다. 3. 공연예술티켓전산망 가동. 공연 시장 투명화를 위한 인프라. 제대로 출범되어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박병성
EMK뮤지컬컴퍼니의 <마타하리> 재공연, CJ E&M의 대형 창작뮤지컬 <광화문연가>와 <햄릿> 등 대형 제작사에서 선보이는 창작뮤지컬의 성패가 이후 뮤지컬 시장에 영향을 줄 것이다. 라이선스 위주의 시장에서 창작뮤지컬이 어느 정도 점유율을 높여가야 한다는 것은 이제 당위이다. 이 작품들의 성패가 그러한 상태가 이루어지는 시간을 앞당기거나 늦출 것이다. 시장의 침체에도 가장 왕성한 한 해가 될 EMK뮤지컬컴퍼니의 성적은 그 다음해 뮤지컬 시장 환경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인형근
첫 번째는 뮤지컬 시장의 구조 개편이다. 몇 년간 누적된 공급 과잉으로 발생한 나눠먹기로 인한 매출 하락, 제작비의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제작사는 많은 내상을 입은 상태다. 이제는 시장이 주도적으로 뮤지컬 시장 구조를 개편해야 하는 마지막 코너에 몰려 있다. 작품 제작 편수를 줄이고 일부 과도한 인건비를 조정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제작 구조로 개편하는 것만이 뮤지컬 시장의 장기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해외 내한 공연의 흥행 성적이다. 올해에는 <지킬 앤 하이드>를 시작으로 <캣츠>, <드림걸즈>, 태양의서커스, <시카고> 등 예년과 비교할 때 투어 공연 숫자가 많다. 국내 제작 여건의 악화로 인한 현상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내한 공연의 흥행 성과가 앞으로 뮤지컬 시장의 성장 방향성을 점쳐볼 수 있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조용신
창작뮤지컬 레퍼토리들이 시장에서 소멸하지 말고 자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좀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티켓 파워가 있는 무대와 스크린과 TV를 넘나드는 주연급 배우들의 발굴이 필요하다.
2017년 뮤지컬계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을 든다면?
고희경
1. <더 데빌>, <곤 투모로우>, <서편제> 등 이지나 연출의 재공연들. 2017년 재공연의 성과가 킬러 콘텐츠로서 대극장 창작뮤지컬의 가능성을 담보할 것으로 기대한다. 2.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남자 주인공 다수가 나오는 그로테스크한 고딕 소설 스타일의 라이선스가 아닌 순수 멜로, 중년 멜로가 성공한다면 뮤지컬 관객층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듯. 3. <빌리 엘리어트>. 재공연이 성공하면 관객을 확대하는 좋은 기회가 될 듯.
박병성
<마타하리>, <햄릿>, <광화문연가> 대형 창작뮤지컬 중 <프랑켄슈타인>의 상업적 흥행을 이어갈 작품이 등장할지 주목된다. <지킬 앤 하이드>, <캣츠>, <드림걸즈>, <시카고> 등 올해 유독 해외 투어 공연이 많다. 국내 톱 뮤지컬 배우의 개런티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내한 공연의 증가가 지나치게 상승한 배우들의 개런티에 영향을 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인형근
2017년은 라이선스나 창작에 비해 해외 내한 공연의 비중이 상당히 늘어났고 재연이 많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 가는 작품을 찾긴 어렵다. 하나를 꼽자면 LG아트센터에서 7월 공연 예정인 <시라노>를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꼽을 수 있을 거 같다. 데뷔 20주년을 맞는 류정한 배우가 프로듀서로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작품으로 출연도 겸하기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와 흥행성에서 가장 기대되는 작품이다.
조용신
1. <레드북>. <여신님이 보고 계셔> 창작자들의 후속작으로 중소형 창작뮤지컬의 개발 과정을 거친 또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되길. 2.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뛰어난 음악에도 불구하고 비운의 작품이 되었기에 한국에서의 부활을 기대. 3. <빌리 엘리어트>. 초연 당시에 비해 작품 인지도가 상승하여 재연의 성공 기대. 4.<광화문연가>. 고선웅 작가가 참여한 새로운 버전의 <광화문연가>.
2017년 뮤지컬계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나 집단이 있다면?
고희경
유희성 신임 뮤지컬협회 이사장. 유희성 이사장은 배우 출신 연출가로서 지금까지 프로듀서 중심의 협회 운영이 크게 변화될 것으로 보이며 활동이 기대된다.
박병성
CJ E&M의 창작뮤지컬 도전. 주로 중소극장 위주로 신작 창작뮤지컬을 선보인 CJ E&M이 올해 대형 창작뮤지컬을 두 편 선보인다. 기존 제작사와의 파트너십으로 한국 뮤지컬 시장의 성장에 일조한 CJ E&M이 창작을 위주로 한 작품 제작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자본력과 마케팅력을 갖춘 CJ E&M의 앞으로의 행보와 성과를 기대한다.
인형근
2017년은 대부분의 제작사가 내실을 다지며 쉬어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여러 외부 환경이 좋지 못하고 공연장도 연이은 대관 공백으로 작품 메우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적극적으로 펼치기보다는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소극적인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특별히 주목할 만한 내용은 없다.
조용신
한예종이나 중앙대 등 여러 학교 안에서 많은 뮤지컬을 만들고 있다. 완성도가 높지는 않다. 하지만 이들은 뮤지컬이 활성화된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른바 뮤지컬 키드이다. 이들의 손에서 뭐가 나오더라도 나올 것이다. 영화 <스위니 토드>가 상영되었을 때 주인공이 노래하는 것을 보고 영화관을 나갔던 세대가 아니다. <라라랜드>를 보고 뮤지컬적 상상력에 환호를 보내는 이들이다. 이들은 관객의 마인드를 지닌 젊은 공연인이다. 이들을 어리고 잘 모른다고 무시하지 말고, 이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게 세대 교체를 준비해야 한다. 뮤지컬이란 장르는 고무공 같아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 브로드웨이 쇼, 유럽 코스튬 뮤지컬 시대를 거쳐 앞으로 뮤지컬 시장의 취향을 어떻게 바뀔지는 이들 ‘관객-공연인’이 합체된 젊은 세대에 달려있다.
한국 뮤지컬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 개선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고희경
제작 시스템의 선진화. 투자자(기업이든 정부든)는 프로듀서를 믿고 제작할 수 있도록 자본을 지원하고 작품을 기다려 주고, 프로듀서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복합성(다양한 분야의 결합)을 고려한 제작에 집중하는 것. 과거 극장 대관이 투자의 기본이었다면 이제 유명 배우 캐스팅이 투자의 전부라는 자조적인 푸념이 더 이상 들리지 않도록 제작 환경이 갖추어지기 바란다.
박병성
뮤지컬 작가, 작곡가, 연출가 등 핵심 창작자들이 주도하는 시장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한국의 앤드루 로이드 웨버, 팀 라이스, 해롤드 프린스가 나와서 창작자를 믿고 작품을 보는 시대로 접어들어야 한다. 젊은 뮤지컬 창작자를 위한 지원에서 그들이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인형근
한마디로 요약하면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표한할 수 있겠다. 현재의 뮤지컬 시장 구조는 상당히 비합리적이다. 지속적으로 높아져만 가는 제작비, 뮤지컬 시장의 정체, 공급과잉으로 인한 매출 저하 등 산업의 관점으로 볼 때 뮤지컬 시장은 매력적인 구조의 시장이라고 판단할 근거가 너무 부족하다. 2017년 투자 시장은 더욱 움추려들고 만성 적자를 감당하기에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일부 왜곡된 구조의 시장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해야만 지속 가능하고 성장의 비전이 있는 산업으로 정착될 것이다.
조용신
뮤지컬 창작자들이 다른 여타의 콘텐츠 장르, 예를 들어 영화나 TV 드라마 창작자에 비해 아주 뚜렷하게 우월한 능력을 가졌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오히려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쿠스틱한 정서를 가지고 끈기 있게 준비해가는 성실성이 필요하다. 워크숍 단계에서 아쉬운 부분을 재빨리 수정하고 개발할 수 있는 마인드를 지닌 창작자가 필요하다. 다른 장르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서 공연을 하려는 의도는 잘못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을 평가하는 평단이나 매체 기자들도 책임이 있다. 평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웰메이드 작품이 적고 무대의 특성상 작품의 완성도도 배우의 역량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정작 평가하는 사람들도 무대나 작품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쉽게 의견을 낼 수 있다. 마니아층이 두텁고 전문가의 숫자도 훨씬 많은 영화계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겸손함을 가지고 공부를 많이 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0호 2017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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