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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ODD NOTE] 금서(禁書)의 역사 [No.160]

글 |박보라 2017-01-31 4,119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여성의 성(性)과 사랑을 유쾌하게 다룬  <레드북>이 초연을 앞두고 있다. 슬플 때마다 첫사랑과의 야한 상상을 떠올리는 여주인공 안나가 세상의 편견을 딛고 소설가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에서 안나의 소설은 야하다는 이유로 출판되기까지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뮤지컬 속의 세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어렵게 우리의 곁으로 온 금서(禁書)를 살펴본다.




역사 속 금서               

금서(禁書)라고 불리는 책들은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체포가 되거나 벌을 받아 쉽게 읽을 수 없었다. 금서는 정치 질서와 사회 질서를 파괴하고 풍속을 어지럽힌다고 판단되는 책을 대상으로, 출판이나 반포가 금지된 책을 말한다. 금서의 방법은 분서(焚書), 반포 금지, 사장 금지(私藏禁止), 구래 금지(購來禁止), 판매 금지, 열람 금지 등으로 다양한데, 이 중 책을 태워 없애는 분서는 동서양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뤄졌다. 동양에서는 서기전 213년 진시황이 금서령의 일종인 협서율(挾書律)과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시서(詩書)』와 『육경(六經)』 등을 없앤 기록이 있고, 서양에서는 서기전 411년 아테네에서 프로타고라스가 지은 『제신에 관하여』라는 책이 독신죄에 해당된다고 해 불태워졌다.


대한제국 최초로 법적으로 판매 금지된 소설은 일제 시대였던 1908년 출간한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이다. 작품은 개화기에 발표된 소설 중 강력한 현실 비판을 한 것으로 유명한데, 여덟 종류의 짐승이 인간 세상의 모습을 냉철하고 맹렬하게 꼬집는다. 일본은 제국주의의 야욕과 관료들의 비굴함을 고발한다는 작품의 속뜻을 알아차리고, 출간 다음 해인 1909년에 언론출판규제법으로 『금수회의록』을 금서 조치했다.





불행한 젊은이를 향한 동경               

애끓는 젊은이의 사랑을 다룬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1775년 1월 30일 독일 작센 지방에서 인쇄, 영업, 판매를 금지 당했는데, 이유는 바로 소설이 자살을 옹호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유해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금서에 이름을 올리기 전부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자살한 사람들이 속출했는데, 이를 안 라이프치히 법정은 ‘(소설이) 재치 있고 섬세한 표현법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고 금서가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따라 각종 신문에서 소설을 향한 냉정한 서평과 판매 금지 요청을 실었지만 오히려 젊은 독자들에게는 감성적 연애소설로 평가되어 더욱 인기가 치솟았다. 때문에 불법적인 인쇄업자들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인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괴테가 계약한 라이프치히 출판사도 재판을 무릅쓰고 책을 출판했다. 마침내 작품은 독일 문학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시대와 국가를 넘어 찬반 서평, 모방작, 보충 작품, 발전 작품, 희극까지 등장했다. 유럽을 넘어 아시아까지도 퍼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집단 히스테리 현상을 만들기까지 했는데 젊은 청년들이 푸른색 연미복, 노란색 조끼, 목을 밖으로 젖힌 갈색 장화에 노란색 바지를 입고 소설의 불행한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했을 정도였다. 결국 이 작품은 1776년 빈의 금서 목록에 포함됐고 이후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등에서 금지됐다. 이후 1814년 덴마크에서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대한 금서령이 풀렸고 마침내 아무런 제재 없이 출판되어 읽을 수 있게 됐다.



외설과 예술 사이에서      

D.H. 로렌스는 1927년 여성의 성적 욕망을 표현한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발표했지만, 작품은 상당히 차가운 시선을 감당해 내야 했다. 심지어는 원고를 발행하기 위해 직접 타자를 치는 타이피스트가 해당 작품을 치는 일을 거부했고, 작품은 영어가 보편적이지 않았던 이탈리아에서 첫 출판됐다. 출판 전 미리 작품을 주문했던 서점상들은 책을 읽자마자 다시 출판사로 반송했을 정도였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유부남과 유부녀의 사랑을 다룬 소설로, 특히나 성적인 묘사를 외설적인 언어로 적나라하게 사용했다. 심지어 작품에 등장하는 몇몇 표현은 시간이 흐른 현대에서도 쉽게 사용할 수 없는 단어로 이뤄졌다. 작품은 결국 영국에서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고, 1955년까지도 책을 보관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서점 주인이 투옥됐을 정도였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 유명 출판사인 펭귄사 덕분이었다. 펭귄사는 로렌스의 타계를 기념하기 위해 그 책을 20만 부 찍어냈다. 그러나 검찰 소장은 음란저작물 금지법에 따라 펭귄사를 기소했고, 곧 열린 재판에서 많은 작가들이 피고 쪽 증인으로 출두해 작품이 건전하며 문학적이라고 강조했다. 마침내 재판에서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음란 저작물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아, 이후 무삭제판이 발간됐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 재판으로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2년 만에 30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황당하고도 색다른 금서       

금서 목록에는 우리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다. 한국에서 태어난 어린이들이라면 모두가 알 정도로 친근한 만화인 『아기공룡둘리』도 금서 목록에 오른 작품. 1980년대 YWCA의 주부 모니터 모임은 이 작품에 대한 금서 지정 기간을 10년 이상으로 요구했는데, 이유는 빙하를 타고 내려온 공룡 둘리가 버릇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룡 둘리는 심부름을 시키는 고길동에게 반말은 물론, 심지어 그의 발을 차거나 물건을 던져 가정교육 분위기를 상당히 해치기 때문에 미움을 받았다. 그래서 이렇게 자유분방했던 둘리가 공룡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면 발행물 심의 자체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믿을 수 없는 후문도 들려온다.


꿀을 좋아하는 오동통한 곰돌이 푸우가 그의 친구 크리스토퍼 로빈, 아기돼지와 올빼미, 캥거루 등이 숲 속에서 다양한 사건을 겪으며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은 『곰돌이 푸우는 아무도 못말려』도 금서 목록에 올랐다. 작품이 폴란드의 금서 목록에 오른 이유는 바로 하의가 탈의됐으며, 생식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곰돌이 푸우는 폴란드의 놀이동산에서 사라지게 됐고, 러시아에서는 지난 2009년 나치 사진으로 치장한 곰돌이 푸우의 사진이 발견되면서 그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을 감당해야만 했다.


금서의 목록에는 『위대한 마법사 오즈』도 있다. 그 뒷이야기가 뮤지컬 <위키드>로 탄생되면서 큰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회오리 바람을 통해 오즈의 나라에 도착한 도로시가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를 만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렸는데, 1928년 미국 시카고에서는 금서로 지정돼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당혹스럽게도 주인공 도로시가 여자라는 이유였는데, 당시 여자가 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이 신의 뜻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0호 2017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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