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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ODD NOTE] 경성 문인들의 사교 모임 구인회 [No.157]

글 |배경희 사진 |- 2016-10-31 5,874

 

오는 10월에 개막하는 창작뮤지컬 <팬레터>는 일제강점기 젊은 문인들의 모임 ‘구인회’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이다. 1933년 여름에 결성된 구인회는 이종명과 김유영이 사회주의 문학 단체인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카프(KAPF)에 대항해 순수 예술을 지향하는 친목 모임을 만들자는 데 뜻을 모으면서 탄생했다. 발회식에 참석한 사람이 모두 아홉 명이어서 구인회라 이름 지었는데, 이종명, 김유영, 이효석, 이무영, 유치진, 이태준, 조용만, 김기림, 정지용이 그들이다. 창립 이후 해체까지 3년의 활동 기간에 빈번한 회원 변화가 있었는데, 박태원과 이상도 구인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특정한 지향점 없이 출범한 구인회는 회원들 스스로 ‘순연한 연구적 입장에서 상호의 작품을 비판하며 다독 다작’하는 사교 클럽이라고 모임의 성격을 규정지었지만, 문학적 개성이 뚜렷했던 쟁쟁한 삼십 대 젊은 문인들의 사교 모임은 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예술파’, ‘순수문학’, ‘모더니즘’ 단체로 정의되는 구인회의 주요 활동을 되짚어본다.

 

 

 

 첫 단체 칼럼 연재  ‘격! 흉금을 열어 선배에게 일탄을 날림’
‘격! 흉금을 열어 선배에게 일탄을 날림’은 1934년 6월 17일부터 29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칼럼이다. 제목 그대로 선배 문인에게 순수문학의 현장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는 비판적인 내용의 칼럼으로, 열한 차례로 나눠 실린 여섯 편의 글 모두 ‘○○씨에게’라는 동일한 형식의 제목이 붙어 있다. 연재에 참여한 총 여섯 명(임린, 이무영, 이종명, 박태원, 조용만, 김기림)의 필자 가운데 첫 회 연재를 맡은 임린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 모두 구인회 회원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구인회의 연재 칼럼으로 여겨진다. 구인회의 첫 번째 연재 글은 이무영이 이광수에게 쓴 것으로, 신문사를 그만두고 소설가로 돌아올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다. 두 번째 연재 주자 이종명 또한 집필 대신 생업에 몰두하는 현진건을 지목해 단편 작가로 활약해 달라고 촉구하는 글을 썼다. 박태원과 조용만은 각각 신문의 통속 연재소설 작가로 전락한 김동인, 염상섭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작가로서 자존심을 되찾아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될 것을 당부하는 수위 높은 글을 실었다. 마지막 연재는 김기림이 장식했는데, 그는 ‘GW생(生)’이라는 필명으로 시인 주요한의 창작 활동 부진을 비판하며 다시 진정한 시인으로 돌아오라는 글로 연재를 마무리 지었다. 저널리즘을 이용한 구인회의 첫 집단행동은 문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는데, 출범 이후 특정한 방향성 없이 활동했던 구인회가 문학적 지향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공개 문학 강연회 개최 ‘시와 소설의 밤’, ‘조선신문예강좌’       

릴레이 칼럼 연재로 집단행동에 나선 구인회는 곧바로 조선중앙일보사 학예부 후원으로 공개 문학 강연회를 여는데, 이는 구인회의 주요 활동으로 꼽힌다. 첫 번째 강연회는 1934년 6월 30일 종로 중앙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열린 ‘시와 소설의 밤’으로, 당시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강연회 광고가 게재되기도 했다. 이태준, 박태원, 김기림이 발표자로 나섰으며, 각각 ‘창작의 이론과 실제’, ‘언어와 문장’, ‘시의 근대성’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두 번째 강연회는 ‘조선신문예강좌’라는 이름으로 1935년 2월 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청진동 경성 보육 대강당에서 열렸다. 2차 강연은 규모가 커져 구인회 회원뿐 아니라 이광수와 김동인 같은 선배 문인들까지 연사로 무대에 올랐다. ‘시의 형태(이상)’, ‘시의 음향미(김기림)’, ‘시의 감상(정지용)’, ‘소설과 기교(박태원)’ 등의 강연이 펼쳐졌으며, 구체적인 강연 내용에 대해선 전해지지 않지만 모더니즘을 지향하는 단체임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인회의 유일한 동인지 <시와 소설>        

 

“전부터 몇 번 궁리가 있었으나 여의치 못해 그럭저럭 해 오든 일이 이번에 이렇게 탁방이 나서 회원들은 모두 기뻐한다. 위선 화우 구본웅 씨에게 마음으로 치사해야 한다. 쓰고 싶은 것을 써라 책을랑 내 만들어 주마해서 세상에 흔이 있는 별별 글탄 하나 격지 않고 깨끗이 탄생했다. 일후도 딴 걱정 없을 것은 물론이다. 깨끗하다니 말이지 겉표지에서 뒷표지까지 예서 더 할 수 있으랴 보면 알게다.” - <시와 소설> 이상의 편집 후기

 

<시와 소설>은 1936년 3월 13일에 창간된 구인회의 문예 동인지다. 이상과 친했던 화가 구본웅이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아 부친이 운영하는 출판사 창문사를 통해 발간했다. 편집은 이상이 직접 맡았다. 모두 열세 편의 글이 수록돼 있는 60쪽 내외의 얇은 책이지만, 구인회가 발행한 처음이자 마지막 동인지라는 점에서 문학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내용은 1부 평론, 2부 수필, 3부 소설, 4부 시로 구성돼 있으며, 김기림의 평론 「걸작에 대하여」, 이태준의 수필 「설중방란기」, 김유정의 소설  「두꺼비」, 정지용의 시 「유선형」 등이 수록돼 있다. 구인회 작가들의 작품 외에 당대에 인기를 끌었던 백석의 시도 두 편 실려 있다. 책의 첫머리에는 회원들의 경구를 담았는데, 박태원은 “노력도 천품(天稟)이다”고 썼고, 이상은 “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는 말을, 정지용은 “언어 미술이 존속하는 이상 그 민족은 열렬하리라”는 말을 남겼다. 말머리에 실린 편집 후기에는 차차 페이지를 늘려갈 당찬 포부가 담겨 있지만, 편집을 담당한 이상이 그해 가을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구인회 활동 자체가 흐지부지되면서 2호는 발행되지 않았다. 잡지 폐간 즈음 이상이 김기림에게 보낸 편지에는 회원들의 게으름 때문에 <시와 소설>이 폐간됐다고 분개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다른 멤버 조용만의 회고에 따르면 십 전이란 싼 가격에도 잘 팔리지 않아 2호를 발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참고논문    현순영 『구민회의 활동과 성격 구축 과정』
                    (<국어인문학> 67집, 한국언어문학회 2008)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7호 2016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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