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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INSIDE THEATER] <로베르토 쥬코> [No.157]

글 |배경희 사진제공 |국립극단 2016-10-11 4,885


잠재된 폭력에 대한 은유

<로베르토 쥬코>



1990년 베를린에서 초연돼 지난 2002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로베르토 쥬코>가 그동안 현대 고전 시리즈를 꾸준히 선보여 온 국립극단의 지휘 아래 다시 무대에 오른다. <로베르토 쥬코>는 마흔한 살의 나이에 요절한 프랑스 대표 극작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의 유작. 실제 살인 사건의 주인공을 모델로 해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국립극단은 ‘폭력이 평화를 압도하는 불행의 시대’에 시의적절한 작품이라며 제작 의도를 밝혔다. 이번 공연은 유럽에서 배우 겸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장 랑베르-빌드와 로랑조 말라게라의 공동 연출로 무대에 오른다.


“난 떠납니다. 지금 당장 떠나야 돼요. 이 좆같은 동네는 너무 더워요. 눈 내리는 아프리카에 가고 싶어요. 떠나야 합니다. 죽을 거예요. 어쨌든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요. 남자는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는 남자가 필요하죠. 하지만, 사랑? 사랑은 없어요. 여자들? 나 걔네가 불쌍해서 꼴리는 거예요. 난 개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지금처럼 불행하지 않게.” - <로베르토 쥬코> 8장 ‘죽기 직전’ 쥬코의 대사 中 


1981년 4월 9일,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서 중년 부부가 살해되는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로베트로 수코(Roberto Succo)라는 이름의 십 대 고교생. 살해된 부부의 아들이었다. 수코는 부모를 잔인하게 칼로 찔러 죽이고 욕조에 시체를 숨긴 후 달아났다 이틀 뒤 경찰에 체포되는데, 피해망상적인 조현병 환자로 판명돼 정신 병동 감옥에 수감된다. 부모가 지나치게 고압적이었으며, 차를 빌려주지 않는다는 게 살인의 동기였다. 10년 형을 받은 수코는 단조로운 수감 생활에 금세 실증을 느껴 감옥에서 고교 과정을 마친 후 정치학 학위를 따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 하지만 진찰을 받기 위해 임시로 풀려난 사이 프랑스 도주에 성공하면서, 다시 살인 행각을 벌이기 시작한다. 수감 생활 5년 만에 탈옥한 수코는 유럽 4개국을 떠돌며, 절도와 강간, 살인을 저질러 급기야 유럽 내 위험 인물로 떠오른다. 수코의 범행은 나이와 성별, 직업에 상관없이 무차별 살인을 저지른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더욱 공포에 떨게 했는데, 경찰 심문에서 그는 직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 직업은 킬러다. 난 사람들을 죽인다.” 2년간의 도피 생활 끝에 경찰에 붙잡힌 수코는 재수감된 지 하루 만에 다시 지붕으로 올라가 탈출을 시도한다. 수코의 재탈옥 시도는 그가 건물 아래로 추락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그의 탈옥 난동이 TV 전파를 타고 세상에 알려진다. 매스컴의 관심 속에 수코는 다시 감옥에 갇히지만, 영원한 탈출을 위해 스물여섯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연극 <로베트로 쥬코(Roberto Zucco)>의 탄생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가 우연히 수코의 탈옥 난동 중계방송을 보면서 시작된다. 지하철역에 붙은 현상 수배 몽타주를 통해 수코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던 콜테스는 방송을 보고 그에게 강한 호기심을 느껴 수코를 주인공으로 작품을 쓰기로 한다(수코의 현상 수배 글에는 네 개의 몽타주가 있었는데, 각각의 몽타주 속 인물이 다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사진마다 인상이 달랐다고 한다). 당시 에이즈 환자였던 콜테스는 『로베르토 쥬코』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는 것을 직감하고,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쥬코의 이야기를 장면마다 다른 분위기를 띠는 개별적 열다섯 개의 장면으로 만들어낸다.


“아마 나는, 평상시처럼 다시 불빛이 켜지고, 첫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걸 거야. 하지만 아주 걱정되네. 내가 이런 정신 나간 모험을 한 뒤에 어떻게 다시 아침을 맞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이 역은 이제 예전 같아 보이지 않을 거고, 난 이전엔 있는지조차 몰랐던 작은 흰색 불빛들에 꽤나 신경 쓰겠지. 게다가 밤을 새운다는 것이 인생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알 수 없지. 이제껏 한 번도 밤을 새워 본 적이 없었거든. 모든 게 뒤죽박죽되겠지. 예전에는 밤이 지나면 낮이 오는 게 당연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겠지.” - 6장 ‘지하철’ 나이 든 신사의 대사 中




<로베르토 쥬코>는 부친을 살해한 존속 살인범 쥬코가 건물 지붕으로 올라가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수코의 실화에서 이야기의 기본 틀을 가져왔고, 수코의 육성 녹음테이프 내용이 쥬코의 내면이 비치는 두서없는 독백, 8장 ‘죽기 직전’에 차용됐지만, 쥬코는 수코를 모델로 한 허구적 인물에 가깝다. 콜테스가 만들어낸 쥬코의 핵심은 자신의 부모와 형사, 아이 한 명을 차례로 죽이는 연쇄 살인범인 그가 단순히 광기 어린 범죄자가 아닌 모호하고 복잡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쥬코는 눈에 띄는 행동을 한 적이 없는 정상적인 인물인 동시에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는 비정상적인 인물이며, 폭력의 가해자이면서 때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작품 끝까지 그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밝혀지지 않는데, 살인범에 대한 어떠한 도덕적인 판단 역시 내리지 않는다. 다만, 우연히 열차를 놓침으로써 난생처음 밖에서 밤을 지새우게 된 나이 든 점잖은 신사를 통해 모범적인 일상에 생긴 작은 균열이 삶을 어떻게 변모시키는지 은유하는 것으로 쥬코의 탈선에 대한 힌트를 준다. 의미를 상실한 채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다른 등장인물은 모두 ‘여자 아이’, ‘나이 든 신사’, ‘우아한 부인’, ‘우울한 형사’ 같은 익명의 존재로 등장하는 반면,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 지붕에서 추락하지만 자신의 신화적 세계관에 맞게 최후를 맞는 쥬코만이 유일하게 이름이 있는 존재라는 점 또한 우리에게 생각해 볼 거리를 던진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7호 2016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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