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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드래그 퀸의 분장 세계 [No.156]

글 |나윤정 2016-10-04 7,532

2014년 <프리실라> 국내 초연을 앞두고, 재밌는 이벤트가 열렸다. 화려한 가발과 컬러풀한 메이크업이 눈에 띄는 9명의 드래그 퀸. 사진만 보고 캐스팅된 배우 이름과 그들이 맡은 역할을 맞추는 이벤트였다. 뮤지컬 관객들에게 익숙한 배우들조차, 드래그 퀸이 되니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과연 이들은 누굴까? 이것이 가능했던 건,  바로 분장의 힘이다. 배우가 드래그 퀸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에서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놀라운 변화로 관객들을 매혹시키는 드래그 퀸의 분장. 그 마법 같은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변신을 위한 준비

드래그 퀸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메이크업? 가발 쓰기? 드래그 퀸을 돋보이게 하는 화려한 작업들이 떠오르지만, 정답은 의외로 고통이 따르는 은밀한 작업이다. 바로 제모다. 드래그 퀸에게 수염과 털은 어울리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배우들은 분장에 앞서 온몸의 털을 없애는 과정을 거친다. 가슴이 파인 옷이나 미니스커트를 입어야 하니 겨드랑이와 다리, 심지어 은밀한 곳까지, 제모는 필수 작업이다. 배우들의 왁싱은 대부분 제작사 측에서 주기적으로 관리해 준다. 문제는 남자들의 털이 여자들보다 굵다보니, 왁싱할 때 느끼는 고통도 크다고 한다. 그래서 10년 넘게 공연한 <헤드윅>의 경우, 배우들끼리 아프지 않게 왁싱하는 법을 공유하며, 직접 왁싱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얼굴의 제모 관리도 중요한데, 특히 수염과 코털을 자주 깎아줘야 한다. 남자들은 메이크업 도중에도 수염이 금방 자라는 경우가 있다 보니, 얼굴의 털은 세심하게 관리해야 할 부분이다.



과장되고 입체적인 화장

드래그 퀸 메이크업은 일반 여성들의 메이크업 과정과 큰 차이는 없다. 사용하는 도구도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게 두 가지 차이점이 발견된다. 화려한 눈 화장, 그리고 짙고 과장된 화장 덕분에 많은 양의 화장품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드래그 퀸의 메이크업은 일반 메이크업처럼 파운데이션, 볼터치, 하이라이트, 섀딩의 과정을 거친다. 단, 일반 메이크업보다 더 많은 양이 사용된다. 파운데이션의 경우, 남자 피부는 여자와 달리 모공이 넓고 가려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두 배 정도의 양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맥, 메이크업포에버 등 일반적인 제품보다, 커버력이 강한 크레오란 등의 분장용 제품을 주로 쓴다. 하이라이트와 섀딩 등 또한 진하게 표현한다. 실제 얼굴보다 3~5배 정도의 입체감이 들게끔 말이다. 그래야 멀리서 봤을 때도 드레그 퀸 메이크업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립스틱을 바를 때도 원래 입술 라인보다 더 크게 그려 과장된 메이크업을 강조한다.




강렬한 눈썹 그리기

일반 메이크업에는 없지만, 드래그 퀸 메이크업에만 있는 과정이 하나 있다. 바로 본래의 눈썹을 가리는 섬세한 작업이다. 드래그 퀸 메이크업의 특징 중 하나가 화려하고 진한 눈 화장이기 때문이다. 남성적인 느낌을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눈썹 모양과 눈매를 바꿔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때 화려한 눈 화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과장된 눈썹이다. 눈썹을 과장되게 그릴수록, 본연의 모습을 지우고 색다른 드래그 퀸으로 변신할 수 있다. 남자들의 눈썹은 숱이 많고 두껍다 보니 파운데이션만으로는 완전히 가릴 수가 없다. 그래서 특수 분장 재료인 더마왁스, 수염 등 붙일 수 있는 접착제 스프리트검을 이용한다. 이 재료들을 사용해 본래의 눈썹을 완전하게 가려준다. 그러면 모나리자처럼 눈썹이 없는 상태가 된다. 이런 밑바탕 작업을 끝낸 다음, 그 위에 (대부분 아치형의 얇은) 눈썹을 새롭게 그려 드래그 퀸의 강한 인상을 만든다.



mini interview

<킹키부츠> 가발분장팀 이모용 팀장


드래그 퀸이 출연하는 다른 작품과 비교했을 때 <킹키부츠> 분장만의 특징이 있다면?
드래그 퀸이 출연하는 작품은 조금 우울한 게 많은데, <킹키부츠>는 굉장히 밝다. 드래그 퀸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아픔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그런 만큼 밝고 다채로운 컬러를 사용한다. 그야말로 블링블링하다.


<킹키부츠>의 오리지널 프로덕션이 드래그 퀸 분장에 대해 특별히 요구한 사항이 있나?
오리지널 팀에서 바이블을 줬지만, 꼭 이대로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서양인과 동양인은 피부 톤이나 얼굴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그 특성에 맞게 분장을 하는 게 더 좋다고 본 거다. 다만, 분장이 과장돼 보여야 하는 것, 한 얼굴에 다양한 컬러를 쓸 것, 이 두 가지를 요청했다. 국내 초연 당시, 처음에는 드래그 퀸 분장을 무조건 예쁘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리지널 스태프들이 거부 반응을 보이더라. 드래그 퀸은 예쁜 게 아니라 과장되고 화려해 보이는 거라고. 그래서 분장을 그에 맞게 수정했다. 이번 시즌에는 좀 더 예쁜 분장으로 바꿔 변화를 주고 싶다.


드래그 퀸 메이크업의 컬러는 어떻게 선정되나? 
무대에서는 의상 컬러와 메이크업 컬러를 맞춘다. 엔젤도 각각 의상에 따라 보라, 파랑, 핑크 계열의 화장을 한다. 물론 롤라는 무조건 레드다. 특히 <킹키부츠>를 상징하는 컬러가 레드다 보니, 역할마다 특징적인 컬러가 있지만 그 안에 레드를 꼭 포함한다. 그래서 립스틱 색깔은 다 레드다.


드래그 퀸 분장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눈썹 그리는 게 제일 중요하고 어렵다. 아무리 여자처럼 분장을 해도, 자칫하면 눈썹 때문에 남자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아치형으로 그리는데, 그게 가장 여성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원래 눈썹을 특수 분장으로 덮은 상태에서 새로 그리다 보니 쉬운 작업이 아니다. 두 눈썹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어렵다.


드래그 퀸 분장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공연 도중 한 배우의 인조 속눈썹 하나가 떨어진 적이 있다. 계속 찾았는데 나중에 보니 가슴 위에 붙어있어서 다들 한참 웃었다. 엄청 긴 인조 속눈썹이 거기 딱 붙어있으니 말이다. 사실 남자들은 속눈썹 붙일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여자들에 비해 붙이기가 쉽지 않다. 격한 안무를 할 때 잘못하면 떨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하고, 또 속눈썹이 시야를 가리면 안 되니 잘 붙여야 한다.


드래그 퀸 분장을 할 때 느끼는 매력은 무엇인가?
일단은 재밌다. 과장된 메이크업을 맘껏 할 수 있으니까. 원색의 화장은 보통 여배우들에게 하지 못한다. 반면 드래그 퀸에게는 다양한 컬러를 쓸 수 있으니까 흥미롭다.





화려한 눈 화장

드래그 퀸의 메이크업은 눈 화장이 생명이다. 화려한 눈 화장을 위해서는, 먼저 아이홀(눈 두덩이의 움푹 팬 부위)을 크게 잡아야 한다. 그래야 눈이 더 커 보이고, 더욱 과장된 눈 화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래 눈썹을 없애고 새로 그리는 것 또한 아이홀을 크게 잡기 위함이다. 아이홀이 커짐으로써 아이라인도 훨씬 두껍게 그릴 수 있다. 아이라인을 높고 길게 그린 후 그 위에 아이섀도우와 글리터로 화려하게 아이 메이크업을 완성한다. 아이섀도는 비비드한 원색 계열에 발색력이 높은 제품을 사용한다. 글리터의 종류도 십여 가지가 넘는다. 드래그 퀸 메이크업은 쇼 분장인 만큼, 섬세하게 표현하기보다는 멀리서도 잘 보이게끔 과장되게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인조 속눈썹도 일반 여성 메이크업에서 쓰는 것보다 두 배 정도 긴 것을 붙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짝이게

드래그 퀸 분장은 얼굴 메이크업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네일 아트, 쇄골 화장, 가슴 라인 만들기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성스럽게 단장하는 작업이 더해진다. 네일 아트는 배우들이 일상생활에도 무리가 없다 생각한다면 직접 전문 숍에 가서 받고, 평소에 하고 다니기 힘들 경우 공연 전 분장 팀에게 받는다. 하지만 네일 아트가 꼭 필수 사항은 아니다. <킹키부츠> 팀에서 롤라는 엔젤들과 달리 드래그 퀸 분장을 하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있어 네일 아트를 따로 하지 않는다. 의상을 입기 전, 분장으로 가슴 라인을 만들어주는 작업도 이루어진다. 얼굴 섀딩용 제품을 이용해 가슴골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S라인의 드래그 퀸이 완성될 수 있다. 쇄골에 펄 반짝이를 발라, 더욱 매력적인 드래그 퀸을 만들기도 한다.



드래그 퀸의 매력을 살리는 가발

드래그 퀸은 다채로운 색과 모양의 가발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한다. 그런 만큼 무대에서 드래그 퀸의 다양한 가발을 볼 수 있다. 특히 <프리실라>의 경우 60여 개의 가발이 사용돼 형형색색의 향연을 펼쳤다. <킹키부츠>도 캐릭터당 4~5개의 가발이 있고, <헤드윅>도 시즌마다 다양한 가발을 디자인해 헤드윅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각각 캐릭터의 특성과 배우들의 얼굴에 맞게 제작된 가발이다. 가발은 제작 과정이 한두 달 정도 걸리기 때문에, 메이크업보다 먼저 컨셉을 잡는다. <라카지>의 앨빈처럼 드래그 퀸 분장이 좀 자연스러운 경우 인모 가발이 어울리지만, <헤드윅>처럼 쇼적인 느낌이 강할 경우 인조 가발이 더 어울린다고. 가발은 메이크업이 끝난 후 착용하게 되는데, 그 전에 핀컬이란 작업이 먼저 이루어진다. 그냥 가발을 쓰면 벗겨지기가 쉽기 때문에 핀컬을 통해 가발을 고정시킬 수 있는 버팀목을 만드는 것이다. <킹키부츠>의 엔젤들은 강렬한 안무가 많아 가발을 특히 더 단단히 고정시켜야 한다.



mini interview

<라카지>, <프리실라>, <헤드윅> 채송화 분장디자이너


드래그 퀸 분장 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면?
드래그 퀸이 등장하는 작품은 분장 자체가 극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런 만큼 분장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컨셉 회의, 가발 제작, 분장 테스트 등 사전 준비 작업은 물론이고, 분장 자체에 소요되는 시간도 길다. 일반 남자 배우들의 분장이 30여 분인 반면, 드래그 퀸은 적어도 그 두 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헤드윅>의 경우 헤드윅 배역의 분장 시간이 한 시간 넘게 걸린다. 


드래그 퀸 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무대에서 드래그 퀸은 드라마의 한 캐릭터다. 캐릭터를 만드는 분장이기 때문에 대본 안의 인물 설정과 잘 맞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일반적인 드래그 퀸과는 조금 다르다. 드라마 장면에 맞는 분장과 의상이 준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카지>, <프리실라>, <헤드윅>, 모두 드래그 퀸이 등장하지만, 각기 다른 특징이 있을 것 같다.
<헤드윅>은 작품의 특성상 관객들의 시선이 거의 헤드윅에 가 있다. 그런 만큼 헤드윅의 드라마가 살아날 수 있게 더 오랜 시간을 투자해 섬세한 분장을 한다. 반면, <라카지>와 <프리실라>는 드래그 퀸들의 쇼를 많이 보여준다. 그런 점을 부각하는 동시에 <라카지>의 앨빈은 캐릭터의 특성에 맞게 우아하면서 마음 좋은 옆집 아줌마의 느낌을 주려고 애썼다. 한편 <프리실라>는 현란한 쇼가 이어져, 퀵체인지가 굉장히 많았다. 그런데 오리지널 팀에서 배우의 얼굴에 맞춰 석고로 본을 뜨고 진공 판금 마스크를 활용해 아이 마스크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다. 이 아이 마스크에 에어 브러쉬로 눈 화장을 다 해놓고, 퀵체인지 때 이것을 쓰고 벗으며 메이크업 변신을 하는 거다. 드래그 퀸 한 명당 4~8개의 아이 마스크를 준비해 두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메이크업 퀵체인지가 가능해진 것이다.


드래그 퀸 분장을 할 때 고민은 무엇인가?
배우 역시 공연 컨셉과 분장을 소화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서 드래그 퀸 분장을 하게 되는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했다. 배우가 드래그 퀸 분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준비하는 과정도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드래그 퀸 공연이 많아지면서, 최근에는 배우들이 먼저 더 강한 컨셉을 제시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드래그 퀸 분장만의 매력이 있다면?
나는 드래그 퀸 분장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다. 이는 배우가 연기하면서 느끼는 매력과 비슷하다. 배우는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매력을 느끼지 않나. 나 또한 배우에게 다양한 분장을 하면서 재미를 느낀다. 드래그 퀸은 분장을 통해 캐릭터를 더욱 극대화해 보여줄 수 있어 매력적이다. 신기하게도 분장을 마치는 순간 대부분의 배우들이 이미 여성이 되어 있다. 말투와 행동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관객들도 이들을 보며 어느 순간 동화돼 가는 것이 느껴진다. <라카지>의 앨빈을 통해 모성애를 느끼듯 말이다. 이때 마법 같은 분장의 힘이 느껴져 뿌듯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6호 2016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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