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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주크박스 뮤지컬의 세계 [No.154]

글 |박병성 2016-08-04 8,157


7월에는 문화 대통령이라고 불리며 대중음악을 넘어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쳤던 서태지의 음악으로 만든 뮤지컬 <페스트>가 올라간다. 가객 김광석의 노래는 이미 세 편의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우리 추억 속에 강렬한 선율로 각인된 음악들을 종종 뮤지컬에서 만난다. 기존 가요나 팝으로 만드는 뮤지컬을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하는데, 이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주요한 흐름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주크박스 뮤지컬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번 호에서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역사 및 유형, 곡의 저작권을 획득하는 방법 등 다양한 관점에서 주크박스 뮤지컬의 세계를 살펴보았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역사와 유형




주크박스 뮤지컬의 출발

1999년 웨스트엔드에서 아바의 노래로 만든 <맘마미아!>가 대대적인 히트를 기록하면서 주크박스 뮤지컬은 지금까지도 뮤지컬계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맘마미아!>, 포 시즌스의 <저지 보이스>, 캐롤 킹의 노래로 만든 <뷰티풀>은 여전히 순항 중이며, 한 해 한두 편의 신작 주크박스 뮤지컬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주크박스 뮤지컬이 2000년대 이후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는데 그 역사는 길다.


흔히 주크박스 뮤지컬의 초기 흥행작으로 1952년 진 켈리가 출연한 뮤지컬 영화 <싱잉 인 더 레인>을 언급한다. 영화 제목과 동명인 ‘Singing In The Rain’은 1929년 할리우드의 레뷔에 사용되었던 곡이고, ‘You Are My Lucky Star’ 역시 1935년 영화 <브로드웨이 멜로디>에 삽입된 노래였다. <싱잉 인 더 레인>에 사용된 상당 곡들이 이미 인기를 끌던 노래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적으로 따진다면 이보다 앞서 1930년에 소개된 <걸 크레이지>야말로 조지 거슈윈과 아이라 거슈윈 형제의 노래를 모아 만든 전형적인 주크박스 뮤지컬이었다. 그러나 <걸 크레이지>가 주크박스 뮤지컬의 효시로 보기엔 그 이전부터 이와 유사한 형태의 작품들이 많았다. 19세기 북 뮤지컬 이전, 대본과 상관없이 공장식으로 곡을 만들어내며 악보를 출판하던 틴 팬 앨리(Tin Pan Alley) 시절에는 같은 곡이 서로 다른 작품에 쓰이는 일이 허다했다. 기존의 노래를 사용하는 방식의 기원은 이보다도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뮤지컬이 태동하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여겨지는 1728년 작 <거지 오페라>는 당시 유행하던 오페라 곡들을 가사만 바꿔 불렀다. 그중에는 당시 오페라계에서 가장 인기를 끌던 헨델의 아리아도 있었다. 이러한 설정이 오페라를 즐기던 상류층을 풍자하기 위한 목적이었겠지만 기본적인 형식에서 주크박스 뮤지컬과 다르지 않다. 기존 유행 음악을 재사용하는 것은 뮤지컬 장르가 만들어질 때부터 쓰인 오래된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뮤지컬이 등장하기 이전 유행했던 대중극 형식인 악극에서는 당대 유행가를 사용했다. 대중들에게 친숙한 노래의 사용은 대중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스토리에 적합한 노래를 작곡하는 북 뮤지컬이 정착되면서 이러한 형식이 점차 사라지게 된다.




<맘마미아!> 이전 주목할 만한 주크박스 작품

<맘마미아!>로 본격적으로 주크박스 뮤지컬이 트렌드가 되기 전에도 기존 노래로 만든 뮤지컬들이 생산됐다. 1970년대부터 특별한 스토리 없이 한 가수의 노래를 모아 만든 콘서트 형식의 뮤지컬 레뷔가 유행한다. 1920-30년대 할렘가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팻츠 월러의 곡으로 만든 <방황하지 않아요(Ain’t Misbehavin’)>나, 재즈계 거장 듀크 엘링턴의 노래로 만든 <세련된 숙녀들(Sophisticated Ladies)>이 그것이다. 1995년 작 <스모키 조스 카페>는 ‘스탠 바이 미’나 ‘하운드 독’ 등 올드 팝을 만든 작사가 제리 라이버와 작곡가 마이클 스톨러 콤비의 노래 40여 곡을 모아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00년 국내 무대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러한 뮤지컬 레뷔가 1990년대까지도 인기를 끌면서 2000년대 주크박스 뮤지컬이 트렌드가 되는 단초가 되었다.


콘서트 형식에 가까운 레뷔보다 지금의 주크박스 뮤지컬에 가까운 작품들도 드문드문 등장했다. 1968년 프랑스에서 활동한 가수이자, 작가이며, 배우이기도 한 자크 브렐의 노래로 만든 <자크 브렐은 파리에서 잘 살고 있네(Jacques Brel Is Alive And Well And Living In Paris)>를 본격적인 주크박스 뮤지컬로 보기도 한다. 이 공연은 초연 이후 여러 차례 공연되었고, 최근에는 2006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리바이벌되는 등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1974년에는 비틀스의 후기 명반으로 꼽히는 「페퍼상사(원제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와 「애비 로드」 곡으로 만든 <페퍼상사의 론리 하트 밴드 기행기(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On The Road)>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올라갔다. 이 작품의 연출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초연 연출을 맡은 톰 호오건이 맡았다. 록커인 빌이 상업적인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세계에서 순수성을 지켜 나가며 겪는 갈등을 다룬다. 빌 역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예수 역을 맡은 테드 닐리가 맡았다. 1975년에는 미국의 포크 가수 해리 채핀의 곡으로 만든 <미국이 유명해진 밤(The Night That Made America Famous)>이 올라간다. 이 작품에는 해리 채핀의 노래 이외에도 뮤지컬을 위해 새롭게 만든 곡이 함께 사용되었다. 작품의 제목은 해리 채핀의 히트곡 제목이기도 하다.


1980년대로 넘어오면 1960년대 두왑 장르로 큰 인기를 누렸던 엘리 그리니치의 노래로 꾸며진 <리더 오브 더 팩(Leader Of The Pack)>(1984)이 만들어진다. 브루클린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의 삶과 음악을 되돌아보는 내용이다. 1989년 웨스트엔드에서 올라간 <버디-버디 홀리 이야기> 역시 같은 방식으로 아티스트의 생애를 극화한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찰스 하딘 홀리는 1950년대 큰 인기를 누리다가 20대 초반 갑작스런 비행기 사고로 죽음을 맞은 비운의 가수이다. 그의 짧지만 빛나는 생애를 무대 위에 담아냈다. 1989년 올라간 <금지된 행성으로의 귀환(Return To The Forbidden Planet)>은 한 가수의 노래가 아닌, 1950-60년대 히트곡들을 모아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SF영화 <금지된 행성(Forbidden Planet)>은 셰익스피어의 <태풍>을 미래 우주 공간으로 옮겨 각색한 작품인데 이를 다시 뮤지컬로 옮기면서 기존 히트곡을 넣은 것이다.


영상물에서도 주크박스 뮤지컬 형식의 작품이 등장한다. 앞서 말한 <싱잉 인 더 레인>에서는 기존 곡들을 차용하였고, 1968년 비틀스의 노래에서 영감을 받은 애니메이션 <노란 잠수함>이나, 앞서 언급한 비틀스의 주크박스 뮤지컬 <페퍼상사의 론리 하트 밴드 기행기>를 토대로 1978년 뮤지컬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비틀스의 「페퍼상사」 같은 컨셉 앨범은 종종 그 노래들을 활용해 주크박스 방식의 영화나 뮤지컬로 만들어진다. 1969년 록 오페라의 효시로 평가되는 더 후의 「토미」는 영화를 거쳐 1993년 뮤지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역으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뮤지컬에 앞서 컨셉 앨범이 먼저 발매되기도 했다. 2000년대에도 이런 경향이 이어져 그린 데이의 컨셉 앨범 「아메리칸 이디엇」을 동명의 뮤지컬로 만들기도 했다. <라이온 킹>을 만든 줄리 테이머는 2007년 비틀스의 노래를 이용해 주크박스 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내놓았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유형

주크박스 뮤지컬은 기존의 곡들로 만든 뮤지컬을 말한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가능하다. 한 가수의 노래만 사용하는 것, 아니면 다양한 가수의 곡들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한 가수의 곡만 사용하는 뮤지컬은 ‘헌정’의 의미를 담아 ‘트리뷰트(Tribute) 뮤지컬’이라고 한다. 반면 여러 가수의 곡을 모아놓은 뮤지컬은 ‘컴필레이션(Compilation) 뮤지컬’이라고 부른다. 특정한 컨셉으로 다양한 가수의 곡들을 모아놓은 음반을 컴필레이션 음반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따온 명칭이다. 트리뷰트 뮤지컬에는 한 가수뿐만 아니라 한  작곡가의 노래로 만든 작품까지도 포함된다.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로 만든 <광화문연가> 역시 트리뷰트 뮤지컬에 속한다.


어떤 방식을 취하든 장단점은 있다. 이미 검증되고 대중들에게 친숙한 노래를 사용한다는 것이 주크박스 뮤지컬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작품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그것이 가장 큰 난관이 된다. 이미 정해진 가사와 노래를 뮤지컬 넘버로 사용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한 가수의 노래로 만들 경우 가수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노래가 한정되어 있다. 반면, 컴필레이션 뮤지컬은 다양한 가수의 노래를 사용할 수 있지만, 이를 묶어줄 컨셉이 필요하다. 1970-80년대 히트곡만으로 노래를 한정한 <달고나>는 당시의 추억을 환기하는 내용으로 그때의 히트 가요를 뮤지컬 넘버로 사용한 경우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 만들어진 주크박스 뮤지컬은 트리뷰트 뮤지컬 형식이 압도적으로 많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붐을 일으킨 <맘마미아!>의 영향으로 볼 수도 있으나, 그렇게 설명하기에는 그 이전부터도 트리뷰트 뮤지컬이 많았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주요 관객층은 중장년이다 보니, 그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가수들을 내세운 작품들이 인기를 끈 것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다양한 가수의 곡들을 엮어 만든 컴필레이션 뮤지컬 형태가 더 많이 제작되었다. 국내에서 2012년까지 제작된 주크박스 뮤지컬 중 63%가 컴필레이션 뮤지컬인 반면, 37%가 트리뷰트 뮤지컬이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등장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은 점차 트리뷰트 뮤지컬의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특정 시대의 음악으로 만드는 것보다 특정 가수의 음악으로 만드는 주크박스 뮤지컬이 늘고 있다.




컴필레이션 뮤지컬

1989년 런던에서 초연한 <금지된 행성으로의 귀환>은 대표적인 컴필레이션 뮤지컬이다. 1950-60년대 인기를 끌었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셰이크 래틀 앤드 롤’, 비치 보이스의 ‘굿 바이브레이션’, 버즈의 ‘미스터 스페이스맨’ 등 20여 곡의 히트곡을 사용했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후기작인 <템페스트>를 미래 버전으로 각색한 영화를 다시 뮤지컬로 옮긴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대사들을 비튼 시도가 큰 인기를 얻어 1989년 <미스 사이공>을 제치고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받았다.


이처럼 컴필레이션 뮤지컬은 종종 기존 영화나 연극에서 이야기를 가져오기도 한다. 2004년 국내에서 주크박스 뮤지컬의 물꼬를 튼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 역시 동명의 영화를 기본 스토리로 하고, 여기에 기존의 가요와 심지어 팝송까지 끌어들인 작품이다. <진짜진짜 좋아해>는 1970년대 등장한 하이틴 로맨스물 <진짜진짜 좋아해>, <진짜진짜 미안해> 등 ‘진짜진짜’ 시리즈 영화에 당시 유행하던 가요를 접목한 컴필레이션 뮤지컬이이다. 향수를 자극한 작품은 2008년 초연 당시 중장년층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에 힘입어 같은 해 1970-90년대를 아우르는 노래로 만든 <돌아온 고교 얄개>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역시 당시 유행했던 얄개 시리즈를 차용한 것이다. 앞선 뮤지컬들은 주로 1970-80년대 젊은 시절을 보냈던 관객들을 대상으로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국내 뮤지컬 팬 층은 70% 이상이 20-30대이다. 사용되는 노래와 뮤지컬을 즐겨 보는 관객층이 다르다. 그래서 세대를 낮춘 작품이 등장했다. 강동원, 조한성 주연의 하이틴 로맨스 영화 <늑대의 유혹>을 동명의 뮤지컬로 각색하고 최신 아이돌 노래를 사용했다. 동방신기의 ‘오정반합’, 소녀시대의 ‘런 데빌 런’, 샤이니의 ‘누난 너무 예뻐’, 카라의 ‘미스터’ 등 인기를 얻었던 K-POP 그룹의 대표곡을 뮤지컬 넘버로 사용했다. 당시 한창 뜨겁던 K-POP의 열기를 이용해 해외 진출까지 의도했으나 실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새로운 스토리를 창작하고 추억을 환기하는 컨셉의 컴필레이션 뮤지컬도 하나의 흐름을 만들었다. 1970-80년대 가요로 만든 <달고나>가 대표적이다. 홈쇼핑 작가가 된 세우의 기억을 따라 추억 여행을 따라가는 구성으로 레뷔에 가까운 형식을 띠고 있다. 전체를 아우르는 스토리는 있지만 이야기 구성이 헐겁다. 작품의 핵심은 추억을 환기하는 에피소드와 노래들이다. <젊음의 행진> 역시 과거의 인기 가요 프로그램을 모티프로 하고 90년대 큰 사랑을 받은 만화 『영심이』를 토대로 한 작품이다. 기존 스토리에 영향을 받았지만 간단한 구성만 가져왔을 뿐 극의 중심은 추억의 노래에 집중하는 레뷔 형식을 띤다. 원작이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달고나> 스타일과 같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글램 메탈 록을 뮤지컬 넘버로 하는 <록 오브 에이지>는 새로운 스토리를 꾸민 작품이다. 1980년대 LA 록 밴드의 산실이었던 록 클럽 선셋 스트립을 배경으로 록커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와, 이곳을 지키려는 음악인들의 투쟁기를 엮었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30여 곡의 메탈 록들이 단순한 이야기에 힘을 실어준다. 익스트림의 ‘More Than Words’, 트위스티드 시스터의 ‘I Wanna Rock’, REO 스피드웨건의 ‘Can't Fight This Feeling’ 등 익숙한 곡들을 절묘하게 스토리에 어울러 놓았다. 가상의 스토리이긴 하지만 클럽 선셋 스트립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으는 음악인들의 이야기에는 글램 메탈 록을 지켜 나간 아티스트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뮤지컬 <친정엄마>는 수필집을 영화로 각색한 작품을 다시 주크박스 뮤지컬로 만든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다양한 기존 곡들이 사용되는데, 익숙한 멜로디만 유지할 뿐, 가사는 상황에 맞게 대부분 개사했다. 주크박스 뮤지컬에서 가장 먼 방식을 취한 작품이다.




전기형 트리뷰트 뮤지컬

한 명의 아티스트 노래로 만드는 트리뷰트 뮤지컬은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곡 수가 많지 않다. 한 명의 아티스트 노래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스토리는 아티스트의 전기이다. 버디 홀리의 삶을 담아낸 뮤지컬 <버디-버디 홀리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주로 콘서트 장면 위주로 구성되어 마치 모창 가수 쇼를 보는 느낌이지만, 작가의 전기 속에 그의 노래들을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저지 보이스>는 아티스트의 자전적 스토리를 담아낸 주크박스 뮤지컬로 가장 성공한 작품일 것이다. 프랭크 밸리와 포 시즌스 그룹이 결성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각각의 멤버들이 내레이터가 되어 들려준다. 처음 팀이 구성되고 팀원들의 불화로 해체되는 과정이 그들의 노래로 표현된다.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그룹 내 갈등과 노래에 대한 비화가 흥미를 준다. 네 명의 멤버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Four Seasons)을 대표하는 구성은 그룹의 흥망성쇠를 담아낸 스토리와 잘 맞아떨어졌다.


존 레논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아홉 명의 레논이 등장해 보여준 <레논> 역시 전기형 뮤지컬이다. 존 레논의 육성과 다큐 영상까지 삽입해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많다. 그의 아내인 오노 요코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돼 두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되고, 밴드 비틀스나 비틀스의 다른 멤버들이 소외되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로 만든 <광화문연가> 역시 전기형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엄밀히 작품의 내용이 이영훈 작곡가의 전기는 아니지만, 작품 속에 이영훈을 연상시키는 작곡가 한상훈이 등장하고, 1980년대에 서정적인 노래를 작곡하던 한 아티스트의 고뇌와 사랑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상훈을 통해 이영훈의 노래들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술회하는 방식이다. 이영훈의 실제 경험과는 다르겠지만, 그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연출됐다.


양희은이 직접 출연해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는 <어디만큼 왔니>는 전기형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기보다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드라마가 있는 콘서트로 풀어낸 공연에 가깝다. 양희은과 그녀의 동생 양희경이 출연해 그들 가족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체적으로는 드라마가 있는 콘서트에 가깝지만 넓은 관점에서 이 작품 역시 전기형 주크박스 뮤지컬에 포함될 수 있다.




아티스트의 향기를 담은 트리뷰트 뮤지컬

스토리는 해당 가수의 전기와는 상관없지만 작품에서 가수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는 트리뷰트 뮤지컬이 있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 혹은 기존 이야기를 끌어왔지만, 그 중심에는 노래의 주인인 가수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뮤지컬들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로 만든 <올 슉 업>이다. 작품의 주인공 채드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음악을 전파하고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죄로 수감된다. 기타를 둘러맨 채 포마드 기름으로 머리를 올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하는 채드에게서, 1950년대 다리를 건들거리며 골반을 돌리는 동작으로 보수적인 기성층을 기겁하게 만들었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국내 공연에서는 채드 캐릭터를 엘비스라는 이름으로 바꾸기도 했다. 퀸의 노래로 만든 <위 윌 록 유>의 주인공 갈릴레이 역시 같은 유의 캐릭터다. 음악 창작이 금지된 미래 세계에서 전설의 기타를 찾아내 록 음악의 선구자가 되는 갈릴레오 피가로는 퀸를 떠올리게 한다. 국내 뮤지컬 중 DJ DOC의 음악으로 엮은 <스트릿 라이프>(초연 이후 <런 투 유>)도 같은 유형의 작품이다. DJ DOC의 젊은 시절이 연상되는 주인공 셋이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꿈이 인기가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러한 내용은 자연스럽게 자유로운 영혼인 DJ DOC를 연상하게 한다.


대표적인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미아!> 역시 이 부류에 속하는 작품이다. 흔히 이 작품은 완전히 새롭게 창작된 이야기로 알려졌지만, 실제는 영화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1968년 발표된 영화 <보나세라, 미세스 캠벨>은 이탈리아의 젊은 여인 캠벨이 아주 짧은 기간 세 명의 미군과 사귀면서 벌어지는 코미디이다. <맘마미아!>는 바로 이 영화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이야기에 아바의 흔적이 담겨 있진 않다. 단지 도나를 비롯한 친구들이 젊은 시절 결성한 아마추어 그룹 의상이 아바의 의상을 떠올리게 하는 정도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아바의 노래를 거의 훼손하지 않고 원곡을 그대로 재현했다. 심지어 1970년대 녹음했던 음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오리지널 음반을 작업할 때 썼던 스튜디오 악기의 소리를 미디의 샘플로 이용했다. 이처럼 아바의 음악을 철저히 복원하고 있어 스토리에서는 덜하지만 가장 중요한 음악에서 아바의 향기를 짙게 느낄 수 있다. 커튼콜에서는 주요 등장인물들이 하늘거리는 소매가 넓고 광택이 나는 아바의 의상을 입고 나와 ‘워털루’를 부른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아바가 우승할 때 부른 아바의 대표곡으로, 공연에 사용된 노래는 아니지만 헌정하는 의미로 부르는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한 아티스트의 노래를 담아내는 주크박스 뮤지컬에서 그 가수의 흔적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기존 노래와 드라마의 유기적인 결합을 강화하기 위해 노래를 부른 아티스트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작품이 등장하기도 한다. 김광석의 노래로 만든 <그날들>에서는 김광석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원곡들이 전혀 엉뚱하게 사용되거나, 노래 분위기가 바뀌어 오히려 김광석 팬들은 <그날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날들>은 청와대에서 10년 전 벌어진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형식을 띤다. 등장인물을 청와대 경호원으로 설정해 무술 장면을 넣는 등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역동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과거의 실종 사건을 쫓아가는 미스터리한 구조로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팬들에게는 새로운 스타일의 김광석 노래로 관심을 유발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 구조로 극에 몰입하게 한다.


빌리 조엘의 노래로 만든 <무빙아웃> 역시 가수의 아우라를 넘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다섯 명의 친구들. 베트남 전쟁에서 한 명이 목숨을 잃게 되고 나머지 넷은 심적 고통에 시달리다 사랑의 힘으로 살아갈 의지를 갖게 된다. 이야기 자체는 매우 단순하지만 이 작품은 스토리보다 그것을 전달하는 형식이 주목받았다. 작품에서 연출과 안무를 맡은 현대무용가 트와일라 타프는 무대 한쪽에서 빌리 조엘의 노래를 들려주고, 세련되면서도 관능적인 춤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겨냥한 주크박스 뮤지컬은 원작 가수 이외에 관객들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가 필요하다. <그날들>은 미스터리 구조에서, <무빙아웃>은 현대무용과 콘서트 방식을 접목한 방식에서 그것을 찾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4호 2016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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