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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주크박스 뮤지컬의 제작 과정 [No.154]

글 |배경희 2016-08-04 6,745

주크박스 뮤지컬의 정의라고 하면 쉽게 나오는 대답은 유명 노래로 만든 뮤지컬일 것이다. 그렇다면 유명한 인기곡을 모두 주크박스 뮤지컬로 만들 수 있을까? 기존에 나와 있는 음악을 한데 엮어 한 편의 뮤지컬로 만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주크박스 뮤지컬은 어떻게 나오는지 제작 과정을 살펴봤다.




당신이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가수의 노래로 뮤지컬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고 가정해 보자.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친한 친구에게 물건을 빌릴 때 가장 먼저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특정 가수의 노래를 이용하는 것 역시 그의 동의를 구하는 게 우선이다. 정확히 말하면, 노래를 창작한 사람, 즉 저작권자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저작권 확보가 반드시 주크박스 뮤지컬 제작 과정의 첫걸음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대본을 완성해 공연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고 나서 저작자의 허락을 구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실제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저작자에게 공연권을 승인받아야 한다.


사실상 저작권 획득에 주크박스 뮤지컬 제작의 성사 여부가 달려 있기 때문에, 주크박스 뮤지컬은 아티스트의 자발적인 의지로 공연화가 이뤄지거나 저작권자와의 인연에서 작품이 시작되는 사례가 많다. 특히 특정 가수나 작곡가 한 사람의 음악을 사용해 만드는 트리뷰트 뮤지컬(A Tribute Musical)의 경우가 그렇다. 2013년에 초연된 <아름다운 것들>은 양희은이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콘서트로 인연을 맺어온 제작사 인사이트에 주크박스 뮤지컬 제작을 제안하면서 탄생했다. 그해 나란히 무대에 올라 김광석 열풍을 일으킨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과 <디셈버>는 저작권자와의 인연으로 시작됐다. ‘변해가네’, ‘부치지 않은 편지’, ‘먼지가 되어’ 등 김광석이 부른 노래로 만든 <그날들>은 김광석의 매니저 출신인 제작사 대표와 김광석과 관련 있는 작곡가들의 각별한 인연으로 공연이 이루어졌다는 게 제작사의 설명이다. 초연 당시 1990년대를 풍미한 가수 김광석의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지만, 엄밀히 말해 김광석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날들>은 다른 작곡가가 쓰고 김광석이 부른 노래에 대한 저작권을 승인받은 것이지, 김광석이 쓴 곡에 대한 저작권이나 초상권과 성명권을 양도받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작품 포스터에서 김광석의 이름이나 사진과 같은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이유였다. 홍보 문구 또한 ‘김광석이 부른 노래로 만든’이라는 정확한 설명이 붙었다. 반면 김광석을 전면에 내세운 <디셈버>는 영화 배급사 뉴가 선보인 첫 번째 뮤지컬이었다. 영화사 뉴가 많은 제작사들이 욕심냈던 김광석의 노래로 주크박스 뮤지컬을 제작할 수 있었던 데는 음반 유통 사업을 통해 맺어진 위드삼삼뮤직과의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고 김광석의 부인이 직접 그와 관계된 모든 저작권을 관리하고 있는 위드삼삼뮤직으로부터 각종 권리를 양도받아 작품 제작에 들어갔기 때문에 작품 곳곳에서 김광석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던 것.



앞선 사례와 달리 저작자와 직접 협의를 하지 않고 저작권위탁관리업자를 통해 이용 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다. 저작권들의 권리를 보호, 관리하기 위해 1964년에 설립된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음악 저작물 관리 단체로, 국내 음악 저작물 이용 계약 대부분은 여기서 관리되고 있다. 2016년 기준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보유하고 있는 한국 저작물은 519,198건 이상이다. <늑대의 유혹>이나 <젊음의 행진>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다양한 가수(또는 작곡가)의 음악을 사용해 주크박스 뮤지컬을 제작하는 경우 보통 한국음악저작권협회를 거쳐 저작권 문제를 해결한다. 외국곡 저작물 사용 협의 또한 한국음악저작권협회를 통해 진행할 수 있는데, 협회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곡은 유니버설 뮤직 퍼플리싱이나 소니 ATV 뮤직 퍼블리싱 코리아 등 해외 음악 저작권 회사의 한국 지사를 거쳐 원작자에게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단,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사용 허락에는 개작에 대한 허락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국내·외 음악 저작물을 원곡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저작자의 동의를 따로 얻어야 하는데, 주크박스 뮤지컬은 사실상 편곡이 불가피해서(리듬이나 화성, 악기 편성을 바꾸는 것 외에 곡의 길이를 수정하거나 노래 1절, 2절을 잘라 사용하는 것 역시 편곡에 해당한다) 저작자와의 협의는 거의 필수로 거쳐야 한다.


저작물의 사용료는 경우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지만,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방침에 따르면 무대 공연인 뮤지컬에는 통상적으로 매출액 2퍼센트의 사용료가 징수된다. 가령 한 작품에 저작권자가 각각 다른 열 개의 곡이 사용됐다면, 공연 제작사에게 징수한 사용료를 10으로 나눠 배분된다. 한 곡에 2인 이상이 참여한 공동 저작물의 경우 다시 그에 따른 배분이 이뤄진다. 사용료 책정은 음악의 기여도에 따른 것으로 노래가 공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콘서트는 보통 3퍼센트의 사용료가 징수된다.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아티스트들이 음악의 사용권을 허가하는 데 금전적인 가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원곡, 또 아티스트로서의 이미지 훼손 문제이다. 오는 7월 개막을 앞두고 있는 서태지 주크박스 뮤지컬 <페스트> 역시 저작권을 직접 관리하고 있는 서태지가 제작사가 소재로 찾은 고전 소설 『페스트』를 마음에 들어 하면서 작업이 가시화되기 시작했으며, 작품에 적합한 편곡자를 찾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다.


물론 유명 인기곡의 저작권만 있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이 되는 건 아니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음악의 멜로디가 대중에게 친숙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미 많은 사랑을 받은 원곡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점에서 숙제도 있다. 또한 대부분 사랑과 이별을 다루는 가요로 가사를 변형하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최근 국내 주크박스 뮤지컬의 고무적인 면은 해당 아티스트의 이미지나 향수를 자극하는 시대에 기댔던 과거와 달리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김광석 가창곡으로 독립적인 이야기를 창작한 <그날들>이나 서태지 음악에 고전 소설을 접목한 <페스트>가 새로운 움직임을 넘어서 성공 사례가 되어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가 활발히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4호 2016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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