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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INSIDE THEATER] <민중의 적> [No.152]

글 |나윤정 사진제공 |Arno Declair 2016-05-13 4,837

진짜 적은 누구인가 <민중의 적>


유럽의 촉망받는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가 내한해, 2012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화제작 <민중의 적>을 선보인다. 오스터마이어는 1882년 발표한 입센의 사회문제극 『민중의 적』을 21세기 베를린의 이야기로 옮겨와, 묵직한 질문과 현대적인 감각이 어우러진 신선한 무대를 전한다.





비판에 대한 비판       

        

『민중의 적』은 『인형의 집』, 『유령』, 『사회의 기둥들』과 더불어 입센의 대표적인 사회문제극으로 손꼽힌다. 세계적인 극작가 반열에 오른 입센은 보통 2년 주기로 신작을 발표했는데, 이례적으로 『민중의 적』은 『유령』이 발표된 후 1년 만에 소개돼 이목을 끌었다. 사실 입센이 『민중의 적』을 서둘러 집필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가 앞서 발표한 『유령』이 근친상간, 안락사, 성병 등을 소재로 다뤄, 보수파들에게 부도덕한 작품이라는 격렬한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에 맞서 입센은 『민중의 적』을 통해, 자신을 비난하는 평단을 가차 없이 비판했다. 특히, 입센은 이 작품의 주인공 스토크만 박사를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고 그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분출했으며, 『유령』에 혹평을 보낸 자유주의 매체에 대한 비난도 서슴없이 했다.


『민중의 적』은 발표된 이듬해인 1884년 노르웨이 크리스티아니아 극장에서 초연했는데, 공연을 이어갈 때마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초연 후 1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작품은 여전히 높은 시의성을 지닌다. 2012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연출의 <민중의 적> 역시 작품의 본질을 꿰뚫으며, 이 시대를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다수는 항상 옳은가?”

독일 실험 연극의 산실인 샤우뷔네 베를린이 제작하고, 유럽의 스타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가 연출한 <민중의 적>. 이 작품은 초연 후 런던 바비칸 센터, 미국 BAM 등의 무대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토마스 오스터마이어는 베를린 도이체스 테아터의 소극장 바라커의 예술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후 독일 연극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서른한 살의 나이로 독일 실험 연극의 중심지인 샤우뷔네 베를린 예술감독으로 발탁되며 유럽의 스타 연출가로 입지를 굳혔다. 17년째 샤우뷔네 베를린을 이끌고 있는 그는 입센, 셰익스피어 등 고전을 비롯해 현대극을 오가며 동시대의 고민을 담은 스타일리시한 무대로 젊은 세대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5년 <인형의집-노라>로 첫 내한해, 노라가 남편을 총으로 쏴 죽이는 파격적인 결말을 선보였는데, 그의 파격성은 입센의 또 다른 작품 <민중의 적>을 통해서도 강렬히 드러난다.





힙스터 문화를 더한 설전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연출의 <민중의 적>은 작품의 배경을 19세기 말 노르웨이에서 21세기 독일 베를린으로 옮겨와, 힙스터 문화를 담은 감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그에 따라 주인공인 스토크만 박사에게 힙스터 세대라는 설정이 더해지며, 스토크만 박사는 신문기자들과 함께 인디 밴드 멤버로도 활약하는 30대의 젊은 힙스터로 변모한다. 오스터마이어는 이러한 설정에 대해 “베를린에는 매우 지적이고 정치적으로 깨우친 젊은이들이 많다. 그러나 사회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행동을 한다거나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상황에선 매우 유약한 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바로 그런 젊은이들을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물론 이는 독일의 젊은이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청년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는 것이 오스터마이어의 생각이다.


이야기는 토마스 스토크만 박사가 한 공장 폐수의 유입으로 도시의 온천수가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시작된다. 그는 즉각 신문사에 이 사실을 알리고, 시의회에 수도관의 길을 변경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스토크만 박사의 형인 시의원 피터 스토크만은 이 사실이 밝혀지면 도시의 경제가 위협당할 것이라 판단하고, 동생의 발언을 사사건건 저지한다. 처음에는 스토크만 박사를 지지하기로 했던 지역 신문기자들도, 스토크만 시의원의 협박과 회유에 온천수 오염과 관련된 기사를 철회해 버린다. 궁지에 몰려 분노한 스토크만 박사는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며, 무지한 다수의 횡포, 그리고 부를 위해 진실이 희생되고 마는 현실을 대중 앞에 격렬히 비판한다. 그럼에도 그는 점차 ‘민중의 적’으로 내몰리고,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로 손꼽히는 장면은 ‘스토크만 박사가 시청에서 군중을 모아두고 벌이는 연설’이다. 진실을 외면하는 현실 앞에 스토크만 박사는 직업과 집 그리고 미래를 송두리째 잃게 될 절박한 위기에 처한다. 그 순간 스토크만 박사는 큰 소리로 외친다. “진실의 최악의 적은 침묵하는 다수다. 이익을 위해 침묵하는 다수, 진실을 외치는 소수, 누가 민중의 적인가!” 그리고 이 외침이 향하는 곳은 바로 객석이다. 오스터마이어 연출은 이 장면에 관객들을 토론자로 끌어들임으로써, 배우와 관객의 설전을 과감하게 작품 속에 배치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작품 속 이슈를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정치, 경제적 상황으로 확장시키며, ‘내가 스토크만 박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자문하게 되는 특별한 연극적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설정은 영국, 프랑스, 미국 등에서 이루어진 투어 공연에서 늘 화제가 되었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화가 난 관객들이 배우와 30여 분간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오스터마이어 연출은 이러한 장치에 대해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런 연극적 경험을 통해 현실에서도 ‘노(No)’를 외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일상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더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희망 사항을 담은 것”이란 의도를 전했다.



한편, 무대의 경우 화려함을 과감히 걷어내고 심플하지만 독특한 세트를 앞세워 눈길을 끈다. 이를 통해 작품의 본질에 더욱 집중하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그에 따라 검정색 거대한 칠판을 벽으로 사용해, 그 위에 화가들이 매일매일 새로 그림을 그려 넣는 방식을 택하였다. 젊은 부부들이 살고 있는 집 등을 칠판에 그려 넣어 무대 배경으로 만든다는 컨셉이다.  더불어 이번 무대는 라이브 연주를 통한 청각적인 즐거움도 더해진다. 배우들은 공연 중 데이비드 보위의 ‘Change’, 더 클래시의 ‘Guns of Brixton’, 잭슨 브라운의 ‘These Days’ 등을 직접 연주하며, 이를 통해 무대에 더욱 드라마틱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5월 26~28일      LG아트센터        02-2005-0114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2호 2016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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