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SPECIAL] 뮤지컬 가사 쓰기 [No.151]

글 |이나오(뮤지컬 작곡가) 2016-05-12 8,817

뮤지컬 대본 작업에서 작가들이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바로 가사 쓰기다. 뮤지컬 가사는 작품에서 어떻게 쓰이고, 어떤 기능을 하고 있을까? 구체적이고 짜임새 있는 가사를 중심으로 뮤지컬 가사 쓰기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야기의 전체 플롯 구성이 어느 정도 구축된 이후, 본격적인 뮤지컬 대본 작업에서 작가가 가장 중점을 두는 파트는 가사 작업이다. 뮤지컬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대다수 넘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훌륭한 뮤지컬 넘버의 예를 들 때, ‘캐릭터 송’이라는 용어를 쓰곤 한다. 뮤지컬 넘버는 ‘인물이 보여야 한다’라는 의미, 다른 말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라는 의미다. 이런 구체화를 거치기 전과 후의 단계에서 작가는 전체 구성과 디테일적 구성을 구조화하는 관문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디테일과 전체 그림의 밸런스를 구축하게 된다. 이는 사실 매우 복잡한 작업 과정을 요한다. 우선, 작가는 즇 작품 속 인물들을 속속들이 파악하여야 한다. 흥미롭고 입체감 있는 인물이 구축된 후에는, 그가 부를 만한 즊 ‘뻔하지만(자연스러운) 동시에 펀(fun)한’ 송모먼트가 구축되어야 한다. 작품 속 모든 송모먼트 안에서는 즋 매 송모먼트가 마치 하나의 잘 짜여진 ‘미니 극’인 것처럼, 그 안에서의 기승전결이 섬세하게 구축되어야 한다. 다시 정리해 보자면, 뮤지컬 텍스트 구축에서 관건은 첫째가 구체화, 둘째가 구조화다. 우선 ‘구체화’에 대해 이야기하면, 앞서 언급한 1번에 해당되는 부분이 인물이 구체적으로 잘 드러나는 가사를 구축하는 직접적인 통로이다.



구체적인 가사(인물이 보이는 가사)란 무엇일까?
우선 구체적으로 ‘이미지가 묘사’되는 가사를 들 수 있다. 묘사되는 이미지가 인물을 드러내주는 간접적이지만 효과적인 도구가 되는 것이다. <빨래>에서 나영이 부르는 ‘빨래’ 넘버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나영은 홀어머니를 시골에 두고 홀로 서울로 상경하여 어렵게 생활해 나가는 당찬 아가씨다. 그녀가 부르는 ‘빨래’의 도입부 가사는 그녀의 빨래 더미를 하나씩 묘사한다.



(ㄱ)
둘둘 말린 스타킹 아홉 켤레
구겨진 바지, 주름 간 치마,
담배 냄새 벤 티셔츠,
떡볶이 국물 튄 하얀 블라우스,
발꼬락내 나는 운동화 밑창,
머리 냄새 묻은 베개 홑청,
손때 묻은 손수건.


(ㄱ)에서 그려지는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는 나영이가 스타킹을 주로 입는 일을 하며, 냄새가 베일 정도로 운동화를 오래 신고 있고, 베개 홑청은 갈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으며,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날에도 끼니를 떡볶이로 때우기도 하는 어딘지 소소해 보이는 일상을 그려볼 수 있다. 동시에 나영의 털털한 성격을 은연중에 느끼게 된다. 즉 이 구절에서 나영의 빨래 더미가 구체적으로 묘사됨으로써 그녀의 삶이 압축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구구절절 나영 스스로의 가쁜 삶을 ‘설명’하듯 이야기하기보다, 돌려서 표현하고 있지만, 더 확실한 정서를 갖고 핵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 가사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인물의 언어’로 가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즉, 넘버를 부르는 인물에게 어울리는 언어로 가사가 표현되어야 한다.


(ㄴ)
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ㄴ)을 보자. ‘얼룩과 먼지로 뒤덮인’ 어제와 오늘이, 그리고 당장은 막막하게만 보이는 ‘주름진’ 내일이 나영의 삶을 채우고 있다 해도, 언젠간 ‘잘 다려질’ 내일을 꿈꾼다는 나영의 표현 방식은 희망을 잃지 않는 그녀의 낙천성을 아름답고 간결하게 잘 그려준다. 뿐만 아니라 작가를 꿈꾸는 그녀에게 충분히 어울리는 언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작가를 꿈꾸는 그녀에겐 은유와 비유의 사고 체계가 진정성 있는 언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은유와 비유가 인물이 처한 상황을 재치 있게 표현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는데, 그 예로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의 ‘아들레이드의 탄식’(ㄷ)을 들 수 있다. 




(ㄷ) 

(의학서적을 보며) 여기서 말하길:
‘보통 미혼 여성은
긴 시간 동안
쌓인 답답함과 불안함에
견뎌내기 버거운
심리적 증상이
상단 호흡기에 나타난다.’

다시 말해, 금가락지 하나 손가락에 끼우려다
감기에 걸린다는 얘기.

아무리 주사 맞고 약 먹고 해도 소용없지.
여기저기 나도는 박테리아를 피할 순 없지.
호텔 체크-인 할 때마다 눈치 보는 여자는
감기에 걸린다는 얘기. 


*본 한글 가사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직역이 아닌 운율감을 살리는 방향으로 필자가 의역한 버전입니다


이 넘버에서 아들레이드는 결혼할 생각이 없는 약혼자 네이단을 향한 자신의 심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감기라는 증상에 빗대어 말한다. 상황은 우울하기 짝이 없지만, 우울함을 억누르려 하는 아들레이드의 심리를 재치 있게 그렸다. 뮤지컬에서 대체로 주인공들이 부르는 송모먼트는 일종의 고백과도 같다. 그 고백의 기저에 깔린 진심은 대체로 음악이 싣고 가며, 가사는 간혹 전략을 쓰기도 한다. 그 전략 중 하나로 들 수 있는 ‘감정의 절제(혹은 돌려 말하기)’는 인물에게 능동성을 부여한다. 예컨대 자신의 슬픔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물보다, 슬픔을 극복하려고 무엇이든 하려고 하는 인물이 비교적 더 능동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ㄷ)의 예도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이런 전략을 통해 인물에게 점차 쌓여가던 감정이 극 중 어느 적절한 포인트에서는 더 효과적으로 분출, 승화된다. 즉, 극 전체 송모먼트의 구조화를 통해 인물을 감싸는 여러 레이어들을 한 겹씩 벗겨내는 과정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뮤지컬 가사의 구조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선 송 폼(song form)의 기본 형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송 폼의 기본 형태라 함은 AABA 형식과 VC(Verse-Chorus) 형식으로 크게 구분 지을 수 있다. 그리고 극의 필요에 따라, 송 폼을 적절한 방식으로 응용, 혹은 변형할 수 있다.(AABABA, AABC, ABAC 등) AABA에서 주된 음악적, 가사적 아이디어는 A에, VC에서는 코러스에 표현되는데, 이러한 특성의 차이가 각 송모먼트의 송 폼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장면에 따라 인물이 노래를 시작하는 포인트에서 본론(넘버의 주된 아이디어)부터 시작할 경우 AABA를, 본론에 다다르기 전의 대사가 노래될 경우 VC를 택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전체 극의 흐름이 한쪽으로 기울거나, 평이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창작자는 송모먼트 마다 송 폼의 적절한 배치 또한 고려해야 한다. 결국 송 폼은 각 송모먼트 안에서 기승전결의 구조화와 연관이 있을 뿐 아니라, 극 전체의 송모먼트들의 흐름과도 연관되어 있다. 우선 넘버 안에서 기승전결이 섬세하게 구축된 예로 <컴퍼니>의 ‘Being Alive’를 살펴보자. 



(ㄹ)
* 본 한글 가사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직역이 아닌 운율감을 살리는 방향으로 필자가  의역한 버전입니다


A
날 끌어 안을 사람,
깊은 상처 줄 사람,
나의 자리에 앉아
잠 깨울 사람.

내가 필요한 사람,
나를 잘 아는 사람,
나를 멈춰 세우고
시험 할 사람.

마음 보여 줄 사람,
마음 아껴 줄 사람,
내 삶의 일부 혹은
내 삶의 전부
다 원할 사람.

사랑 채워 줄 사람,
애정 강요 할 사람,
어두운 시간 모두
함께 할 사람,
두려운 마음
함께 나누며
사는 인생.
함께 하며
사는 인생!


* 본 한글 가사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직역이 아닌 운율감을 살리는 방향으로 필자가  의역한 버전입니다


주인공 로버트는 깊은 관계를 회피해 온 인물이다. ‘Being Alive’에서 그는 그런 자신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결심하게 된다. 이 넘버는 큰 맥락으로 볼 때 AA(B)A의  송 폼으로 구성되었다. (ㄹ)-(ㅂ)의 예시는 AA(B)A 파트로 나누어 본 것이다. 이는 넘버를 부르는 로버트라는 인물의 감정적 기승전결 구도에 따른 것이다. 사실 여기서 (ㄹ) 첫 번째 A는 네 개의 작은 A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Being Alive’라는 넘버의 메인 아이디어 (후크)는 그 작은 A들 중 네 번째에서 비로소 소개된다. 그 전까지 작은 A들은 로버트의 머릿속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나열되어 맞추어져가듯 전개된다.



(ㅁ)

A
나를 끌어 안아줘.
깊은 상처를 내줘.
나의 자리에 앉아
잠을 깨워줘.
깨닫게 해줘.
함께 나누며
사는 인생.

내가 필요하다고,
날 너무 잘 안다고,
가던 길 멈추라고
내게 말해줘.
날 시험해줘.
도와줘, 내가…
함께 하며
살 수 있게…


B
혼란을 줘,
날 속여줘,
이용해줘.
변화를 줘.
외로운
인생을
사느니…


* 본 한글 가사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직역이 아닌 운율감을 살리는 방향으로 필자가  의역한 버전입니다


(ㄹ)의 A에서 로버트가 막연히 나열해가는 ‘날 끌어 안을 사람, 깊은 상처 줄 사람…’과 ‘내가 필요한 사람, 나를 잘 아는 사람…’은 (ㅁ)의 A에서 ‘나를 끌어 안아줘, 깊은 상처를 내줘’로, ‘내가 필요하다고, 날 너무 잘 안다고, (…) 내게 말해줘…’로  변형되며, 로버트가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격으로 발전한다. 넘버가 진행되는 동안 닫혀 있던 로버트의 마음이 서서히 열리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린 작지만 핵심적인 디테일의 변화가 가사의 기승전결 구도를 구축하는 데 큰 영향을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한 넘버에 여러 좋은 아이디어들을 모두 섞는 것보다, 한 가지 좋은 아이디어를 점차 변형, 혹은 확장하는 것이 섬세한 구조화를 이룬다.



(ㅂ)

A
사랑으로 채워줘.
애정을 강요해줘.
어두운 시간 모두
곁에 있을게.
두려운 마음
함께 나누며,
사는 인생.
함께 하며
사는 인생!


* 본 한글 가사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직역이 아닌 운율감을 살리는 방향으로 필자가  의역한 버전입니다


(ㅂ)의 마지막 A에 다다르면, 로버트는 상대가 자신에게 다가오길 바라며 호소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상대의 곁을 지켜주겠다는 약속까지 건넨다. (‘어두운 시간 모두/ 곁에 있을게’) 비로소 수동적이던 로버트에게 확실한 능동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또한 (ㄹ)의 마지막 A 부분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언급되고, 넘버의 마지막 A 부분인 (ㅂ)에서도 ‘사랑’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데, (ㅂ)에서는 더 풍성한 반주와 함께 불릴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격으로 바뀐다. ((ㄹ)‘사랑 채워 줄 사람’-(ㅂ)‘사랑으로 채워줘’) 대칭과 대조의 적절한 조합을 통해 넘버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선의 기승전결을 구축, 구조화한 것이다. 이처럼 짜임새 있게 구조화된 구체적인 가사와, 자연스럽고도 신선한 송모먼트들의 드라마적 구성이 함께 만나고, 더 나아가 작품의 주요 넘버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컨셉과도 연결고리를 형성할 때 우리는 좋은 작품을 기대해 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1호 2016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