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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YORK] <지붕 위의 바이올린> [No.151]

글 |여지현(뉴욕 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16-05-04 6,111

전통, 변화, 그리고 그 균형에 대한 이야기




호평 속에 개막한 <지붕 위의 바이올린>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고전을 다시 올리는 것은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한편, 시대 변화에 맞게 달라진 관객들의 취향에 어필할 수 있도록 전작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다. 그러나 매년 높아지는 제작비와 신작에 투자를 유치하는 어려움을 고려할 때, 프로듀서의 입장에서는 성패를 조금 더 쉽게 가늠할 수 있는 과거의 인기작을 다시 소개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의 창작진이 믿음직하다면, 그 선택은 당연히 더 쉬워진다.


지난해 12월 브로드웨이의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52가의 극장에 올라간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그런 경우이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지난 1964년에 초연된 이후 52년 동안 무려 다섯 번이나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명작 중의 명작.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가장 최근에 브로드웨이에 올라간 것은 2004년이었는데, 당시 알프레드 몰리나(연극 <레드> 브로드웨이 공연에서 마크 로스코의 역할을 맡았던 배우)와 그의 뒤를 이어 하비 피어스타인(<헤어 스프레이>의 에드나 역할을 맡았던 배우)이 주인공 테비에 역할로 출연해 관심을 끌었다. 유대인의 정서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은 있었지만, 2년 동안 성공적으로 공연한 끝에 막을 내렸다. 이번 공연은 과거에 <남태평양>과 <킹 앤 아이> 리바이벌 프로덕션 공연으로 토니상 최우수 리바이벌 상을 두 번이나 거머쥔 베테랑 바틀렛 셔가 연출을 맡았을 뿐 아니라, 오리지널 공연의 작사가 쉘든 하닉(구순을 넘긴 쉘든 하닉은 원작자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인물이다)이 공연에 참여해 프리뷰 내내 긍정적인 입소문을 타고 현재 호평 속에 순항 중이다.


이번 시즌의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호평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전통적인 부분을 버리지 않은 채 관객들과 잘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 있는 유대인 가족, 그리고 공동체의 얘기를 들려주는 작품인 만큼 유대인이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 브로드웨에서 공연이 자주 올라갈 수 있었고 그만큼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이야기의 전체 구조는 물론 디테일에서 오리지널 공연과 큰 차이가 없다. 딸만 다섯인 테비에는 전통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전형적인 유대인 가정의 가장으로 유대인 마을에 살고 있다. 여자는 여자로서, 남자는 남자로서, 그리고 랍비로서,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딸과 아들로서의 역할이 한 세대에서 그다음 세대로 정확하게 전해지는 이 마을에, 그리고 테비에의 집에도 점점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작품은 테비에가 그의 다섯 딸 가운데 세 딸이 중매라는 전통을 따르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짝을 결정하는 것을 각각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마을에 찾아오는 변화에 유대인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유머러스하고 따뜻하게 보여준다. 다섯 딸을 몹시 사랑하는 테비에와 그의 부인, 그리고 그의 다섯 딸이 각자의 방식으로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선택하고 행동하는 얘기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꼭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어떤 민족이든 전통이 있고, 세대가 달라지면 사회적으로 그 전통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미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는 공권력에 대한 비판이나, 젠트리피케이션(상권 발달로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으로 인한 가난한 공동체들의 이주 문제가 테비에 가족들과 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교묘하게 닮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공연을 보면서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에 빠지지 않고 현실적인 공감을 얻는다.




2016년 현재의 관객들에게 들리는 유대인 가족의 이야기

앞서 얘기했듯이,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재공연이지만 과거의 공연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 여러 부분에 변화를 준 것은 아니지만, 이번 공연의 가장 도드라진 변화는 공연을 액자식 구성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처음과 끝의 대사는 오리지널 공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공연 역시 테비에가 관객들에게 혼잣말(혹은 하나님에게)을 하며 지붕 위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악사에 대한 얘기와 함께 전통과 변화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털어놓으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다른 점은, 테비에가 유대인들의 전통 복장인 야물커를 쓰고 않고, 낚시용 우비처럼 보이는 빨간색 재킷을 입고, 손에 책 같은 걸 들고 있다는 것이다. 테비에는 대사를 하면서 재킷을 벗고, 야물커를 쓰면서 첫 곡인 ‘Tradition(전통)’을 부른다. 마지막도 이야기가 다 끝나고 나면 테비에가 혼자 빨간색 재킷을 입고 일기장, 혹은 책 같은 것을 들고 나와 마지막 장을 넘기고 책을 덮으면 음악이 들리고,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막이 내린다. 사실 그 변화를 모두가 맘에 들어 했던 것은 아니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에 따르면 원작자인 쉘든 하닉 역시 그러한 액자식 구성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데, 프리뷰 동안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그 변화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관객이 많아서 결국 바틀렛 셔의 비전대로 액자식 구성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액자식 구성은 공연의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미술적인 부분이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완성하는 힘

테비에가 책을 펼치면서 공연이 시작되고 책을 덮으며 공연이 막을 내리는 설정에 맞게 무대는 마치 아이들의 3D 입체 동화책 같은 느낌을 준다. 기본적인 무대는 굉장히 미니멀하다. 테비에가 혼자 무대로 올라설 때는 위에 걸려 있는 아나테프카라는 푯말(기차역에서 보일 법한)이 무대 소품의 전부이다. 그러다가 바이올린 선율이 들리면, 바닥에서부터 바이올리니스트가 등장하는데, 그는 하네스(천장에 무언가를 매달 때 쓰는 전문 안전 장비)로 천장에 연결된 평면적인 집 구조물의 지붕쯤에 올라가 있다. 테비에가 얘기하는 동안 그 집은 천천히 무대의 빈 공간을 가로질러 천장으로 서서히 끌려 들어간다. 그리고 집 외의 다른 건물들도 일반적으로 천장에서 내려오는 하네스에 걸린 평면의 판넬로 표현된다. 어떻게 보면 조악해 보일 수 있지만, 판넬들은 미니멀한 세트와 어울려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팝업북처럼 보인다. 이야기를 그림책처럼 만든 전략은 작품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효과적으로 유지하며 현재의 관객들에게 테비에 가족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미니멀한 무대는 절제된 조명과 뛰어난 연출을 통해 그 장점을 부각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마지막에 유대인 마을 사람들이 러시아에 의해 고향에서 쫓겨나는 때이다. 조명이 베이지 톤의 무채색 배경 앞에 선 사람들을 비추고 그들의 그림자 실루엣이 무대 뒤 가림막에 비쳐 판화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일러스트 같은 느낌을 준 이 마지막 장면은 테비에가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것과 연결되어 머릿속에 오래도록 잔상을 남긴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인정을 받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이야기를 몸과 마음으로 충실하게 전하는 배우들의 힘이다. 제로 모스텔이라는 걸출한 배우를 탄생시킨 테비에 역할은 브로드웨이의 베테랑인 대니 버스타인이 맡았는데, 여러 가지 집안의 문제를 짊어지고 있는 가장이자, 때때로 잔소리하는 부인에게 구박받는 남편, 그리고 아이들의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진실하게 잘 표현했다. 노래가 뛰어나거나 춤이 뛰어난 배우는 아니지만, 인물의 진정성을 제대로 담아냈고, 작품이 유머와 진지함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대니 버스타인의 테비에는 유대인의 전통 춤을 출 때 가장 빛을 발하는데, 어딘지 곰돌이 인형 같은 느낌을 주는 이 배우가 ‘내가 부유했더라면’을 부르며 팔과 허리를 따로따로 흔드는 모습은 인물에 사랑스러움을 한층 더했다. 테비에의 첫딸과 결혼하는 재단사 역할은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의 주인공으로 가창력과 연기력을 인정받았던 아담 캔터가 맡아서 마음은 여리지만 순수하고 성실한 인물을 잘 연기해 냈고, 역시 브로드웨이 베테랑인 제시카 헥트는 잔소리의 대가이지만 딱딱하고 억척스러운 이면에 따뜻함을 지닌 엄마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결국은 연출의 힘

공연에 존재하는 이 모든 인적, 물적 요소들을 어우르는 것은 무엇보다도 연출과 안무이다. 기본적으로는 미니멀한 이 작품에 간결함을 잃지 않은 채 깊이를 더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텐데, 무대의 시각적인 부분과 배우들의 동선과 템포 등을 적절하게 조율해 그가 한 인터뷰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작품의 기본적인 의미와 유대인들이 간직한 전통을 해치지 않고 현재의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기존 <지붕 위의 바이올린> 프로덕션에서 많이 달라진 부분은 안무였는데, 과거 공연들이 초연 안무자인 제롬 로빈스의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반면 이번 공연에서는 호페쉬 쉑터라는 신인이 제롬 로빈스의 안무를 바탕으로 조금 더 현대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유대인의 전통 춤과 움직임은 그대로 남았지만, 스테이징과 전반적인 분위기는 확실히 좀 더 모던하고 세련돼졌고, 연출의 전반적인 의도와 적절하게 맞물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번 리뷰 공연에서 느낀 것은 아무리 각각의 요소가 좋아도, 그 요소들을 조화롭게 섞고 적절하게 배치할 수 있는 전체 지휘자의 역량이 부족하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이 종종 간과되고, 특히 연출의 의도는 좋아도 실행이 부족한 경우가 생각보다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번 <지붕 위의 바이올린>처럼 기본을 지키며 새로운 것을 추가하는 작품은 관객의 입장에서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아직 공연이 시작된 지 몇 달 안 된 시점에서 조금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겠지만, 이번 시즌에 재공연으로 올라왔던 작품들 중에 이만큼의 관심을 끈 작품이 없었다는 점에서 올해 토니상에서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1호 2016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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