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추리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성적인 사고와 심리적인 긴장감을 적절히 자극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창작자 입장에서 다수의 두뇌를 상대해야 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부담스러울 법하다. 게다가 사건을 설명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는 추리물과 뮤지컬이라는 조합은 언뜻 보면 시작부터 어려운 만남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지난 8월 개막한 <셜록홈즈>는 매끄러운 연출과 영리하고 세련된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호연으로 비교적 성공적인 합작품을 만들어냈다. 특히 긴장감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서 캐릭터와 서사에 대한 묘사까지 유려하게 해내는 최종윤의 음악은 3부작 시리즈물을 표방하며 등장한 <셜록홈즈>의 미래를 더 기대케 하는 요소다. 한국어로 작업한 첫 작품 <셜록홈즈>로 국내 뮤지컬 계에 데뷔한 최종윤 작곡가를 만났다.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는데 뉴욕으로 뮤지컬 작곡을 전공하러 간 계기가 있나요?
제대하자마자 뉴저지로 어학연수를 갔어요. 뉴욕 구경을 나갔다가 뮤지컬을 쭉 보게 됐죠. 그때가 한창 <미스 사이공>, <선셋 대로>, <오페라의 유령>, 그리고 막 <렌트>가 올라갔던 시점이었어요. 큰 감명을 받았죠. 왠지 제가 좀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무용이나 영화음악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때 ‘아, 나는 뮤지컬을 해야겠다’고 느끼게 됐죠. 그 생각대로 결국 졸업 후 같은 꿈을 가지고 다시 뉴욕으로 떠나게 됐어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의 편곡자로 뮤지컬에 입문했다고 들었어요.
2000년대 초반의 일인데, 유학 간 학교에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의 작곡가 박문희 씨가 입학을 하셨어요. 제 대학 선배란 인연도 있었고, 함께 작업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편곡자로 먼저 시작하게 되었죠.
그렇게 노우성 연출가와도 인연이 닿은 것이군요?
네, 그 작업 이후엔 한두 편 더 편곡을 한 작품이 있고, 이후엔 뉴욕의 Ars Nova, Joe`s Pub 등에서 음악감독을 하거나, 오케스트라 편곡이나 음반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귀국할 즈음해서 노우성 연출가에게 메일을 받았죠. 추리물을 하자고. 사실 그쪽은 생각을 못하고 있었어요. 처음엔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나중엔 살짝 겁이 났죠.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면 안 되는데…’ (웃음) 걱정을 많이 하면서 작업에 들어갔어요.
대본을 처음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아무래도 만감이 교차했죠. 독자의 입장에서 읽었을 때는 살인 사건과 추리를 넘어 러브 스토리 등 다양한 요소와 아이디어가 있어 좋았어요. 에릭과 아담이 교차하는 ‘진실게임’ 장면에서는 참 희비가 교차했어요. 독자로서의 즐거움과 작곡가로서의 난감함이랄까.(웃음)
작업 때 참고한 것이 있다면?
<셜록홈즈>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BBC에서 나온 미니시리즈 <셜록>을 보면서 연구를 많이 했고요. 음악 작업을 할 때는 추리 영화를 굉장히 많이 봤어요. 이번 작업은 논문을 쓰는 것과 비슷했어요. 리서치도 많이 해야 했고, 장면별로 계획을 해서 만들어 가는 작업도 많았고, 오케스트레이션 때문에 고민도 많았습니다.
가장 먼저 작업한 곡은 무엇이었나요?
솔로 곡들부터 먼저 작업했어요. 저 나름대로 캐릭터를 규정하기 위해서였어요. 홈즈와 왓슨의 솔로 곡을 쓰는 게 조금 어려웠습니다. 사실 책에서 본 홈즈는 굉장히 차가운 사람이었고, 절대로 다 보여주지 않는 사람이라 명쾌한 사건 해결과 달리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런 그가 노래를 많이 부를 것 같지 않았거든요. 왓슨 역시 노래를 부를 만한 인물로 생각되진 않았고요. 그 둘에 대해서는 마땅한 노래가 떠오르지 않아 ‘이들이 과연 이 순간에 불러야 하는 노래는 무엇일까’ 고심했어요. 그러다 ‘인간적으로 다가가자’고 생각해 ‘내가 원하는 건(All I Want)’이 나온 것이죠. 홈즈가 실제 생활에서는 어떻게 살았을까, 내가 홈즈라면 뭘 하고 살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작업을 했어요.
제일 마지막으로 쓴 곡은요?
1막 오프닝인 ‘춤추는 사람(Dancing Men)’과 2막에서 홈즈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추리 과정을 보여준 ‘추리(Inference)’요. ‘춤추는 사람’은 독립적인 오프닝으로 15분 안에 추리 소설 한 권을 풀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 시간이 걸렸고, ‘추리’는 사건의 모든 베일을 확 벗기는 장면이라 굉장히 조심스러웠죠. 사건을 재배열하면서 앞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부분을 다시 건드리고, 앞서 형성된 각자의 캐릭터에 대한 정의를 음악이 해줘야 하는 신이었습니다.
홈즈가 사건을 추리하는 부분에서 언더스코어가 설명적인 추리 과정에 긴장감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이야기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그게 컨셉입니다.(웃음) 정확하게 스윙이나 힙합으로 규정해버리면 음악의 존재감이 너무 강해져서 홈즈의 추리 과정을 설명하는 데 방해가 되더라고요.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존재감은 있되 색채감은 확 줄여야 했죠. 제가 혼자 연기를 하면서 목소리 톤하고도 연결을 많이 시켰어요. 대사를 치다가 그대로 음악으로 넘어갈 때 ‘나 음악 들어가요’ 이런 느낌이 안 들게 하기 위해서 음정 하나하나 조심해서 잡았어요. 중요한 것은 목소리 톤과 음과의 연결이었고, 특정 장르처럼 들리지 않게 영화음악적인 요소를 넣어서 스며들도록 중화시켰어요.
음악 작업하실 때 노우성 연출가가 앞에서 연기를 해보이셨다고 들었어요.
이 작품은 1초 1초가 스릴감과 연결되니까 중요한 장면의 경우, 제 앞에서 그대로 재연해 주셨어요. 그리고 집에 와서는 저 나름대로 해보는 거예요. 그리고 초를 재요. 16초 후에는 갑자기 종소리가 나오기 시작, 그로부터 15초 후에는 갑자기 조명이 꺼지고 음산한 분위기 시작, 이런 것을 표를 만들어서 작업했어요. 음악이 1초라도 잘못 나갔다가는 긴장감이 확 떨어지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거든요.
또 주의를 두었던 점이 있었다면?
스릴러니까 음악적으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리듬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어요. 이번 작품의 경우엔 노래 부를 때를 제외하고는 멜로디가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많더라고요. <셜록홈즈>를 만들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영화가 <인셉션>이었어요. 층이 있어야 하는데, 각각의 층을 만들기 위해서는 멜로디나 화음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기본적으로 깔리는 리듬으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리듬 공부를 하고 그것으로 실험을 하고, 이를 녹음해서 들으면서 연기를 해보고, 그 연기한 것까지 녹음을 했죠. ‘이게 어떻게 들릴까, 이 순간에 리듬을 바꿔주면 듣는 사람이 갑자기 긴장감을 느낄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실험해야 했어요. 과학을 한 것 같아요.(웃음)
‘진실 게임(Truth Game) 1, 2’의 경우, 같은 선율 안에 각 캐릭터의 관점에 따라 다른 이야기들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의도한 것인가요?
네. 똑같은 사건을 보는 다른 관점이니까요. 연출이나 대사가 충분히 바뀌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면 너무 새로운 장면이 될 것 같아서, 음악적인 틀은 똑같이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반적으로 고음이 많은 것 같은데, 배우들이 힘들어 하진 않았는지 제가 주로 영어로 작업을 했고, 한국어로 작업하는 게 처음이라 나중에 배우들 연습하는 걸 보면서 ‘한국어 발음을 영어 발음보다는 조금 낮게 잡아야 했구나’ 싶었어요. 전체적으로 음악이 조금 높아서 배우들이 고생했죠. 그래도 고음뿐 아니라 중·저음까지도 소화를 잘해주어서 다행이지만 미안하기도 합니다. 2편, 3편에서는 힘이 낭비되어 후반부로 갈수록 무뎌지는 것을 고려해 힘 계산을 확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높은 음도 주겠지만 힘을 비축할 만한 포인트를 잘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번은 2회 공연을 한 배우의 옷이 흠뻑 다 젖은 걸 봤는데, 연기하는 사람 입장을 생각해서 그들이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는 방향을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작곡가의 역할엔 그런 고민까지 포함되어 있군요.
효율이 중요하거든요. 음악에서 낭비되는 것 없이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를 늘 고민해요. 음이 남거나 악기가 남아도 안 되죠. 특히 이런 추리물 컨셉의 극이라면 무조건 깔끔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 궁금해 하도록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저의 의도였어요.
평소 좋아하는 작품이 궁금합니다.
<미스 사이공>을 참 좋아했어요. 유학 갈 때는 <미스 사이공> 같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머릿속에는 ‘예쁜 노래와 큰 감동’이라는 추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공부를 하면서 스티븐 손드하임의 작품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한국에서 손드하임 좋아한다고 얘기하면 지루해 한다고 누가 그러던데(웃음), 좋아하는 작곡가이긴 한데,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그 사람과 똑같지는 않으니까요. <셜록홈즈>는 어둡고 추상적인 색채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제 음악은 밝은 게 많아요.(웃음) 한국에 와서는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루나틱>, <잭 더 리퍼>를 봤어요. 한국 뮤지컬은 노래가 명확하고 예뻐서 좋더라고요. 한국식 유머도 재미있고요.
<셜록홈즈> 마지막 부분에서 2편을 예고하잖아요, 얼마나 진행이 되었나요?
작업이 들어갔고요, 아직 대본은 안 나왔어요. 대본이 나오면 음악을 구체화 시켜야겠죠.
<셜록홈즈> 시리즈물에 대한 전망은?
세 편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맥락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영화 <스타워즈>처럼 세 편이 독립적으로도 충분히 승부를 걸 수 있는 음악적인 특색, 자기만의 빛깔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1편이 제시한 색채들을 이용해서 2편, 3편이 펼쳐지는 것에 대해서는 전 만족해요. 지금 가지고 있는 게 너무 총천연색도 아니고 너무 무채색도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응용할 수 있는 소스들은 많이 있거든요. 2편 때문에 리서치를 하고 있는 것은 장르적인 부분이고요, 충분히 다양한 시도를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노우성 연출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3편까지 완성이 되면, 외국으로 진출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것까지 고려하다 보니 각 작품마다 개성이 충분히 들어가 있는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셜록홈즈> 외에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메뉴(Menu)>라고 프로듀서가 한국 음식을 접하고 매료가 되어 한국의 문화를 중심 소재로 만든 작품이에요. 동양적인 소재이기 때문에 제가 작곡가로 채택이 되었는데, 저 외에는 스태프진이 모두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 작곡은 다했는데, 이번 가을/겨울 시즌에 리딩을 진행한다고 들었어요. 잘되어서 결실을 이뤘으면 좋겠어요. 한국 식당이 이탈리아 동네에서 성공하는 기본 스토리에 주인의 환갑잔치, 조리 과정 등이 시각적으로 화려하게 무대에서 구현되는, 스케일이 굉장히 큰 작품이에요. 또 하나는 로맨틱 코미디물이고,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작사가와 제작자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7호 2011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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