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와 휴대폰 전원을 꺼주시기 바랍니다
재능 있는 해외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며 국내 최고의 공연장으로 자리매김한 LG아트센터. 이곳 공연에 앞서 흐르는 기분 좋은 안내 멘트는 LG아트센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가수의 콘서트 때는 제목을 엮고, 뮤지컬과 연극, 무용 등 각 공연의 특색을 반영한 안내 멘트가 나온다. 멘트를 쓰고 낭랑한 목소리로 읽는 이는 이선옥 하우스매니저다. 공연에 맞춤형 멘트를 만들지만 모든 방송의 주제는 하나. “다른 관객들과 행복한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공연 관람 에티켓을 지키자.” 그동안의 대표적인 공연의 안내 멘트를 공개한다. - 편집자
2009년 김동률 콘서트
여러분 안녕하세요? 공연장까지 오시느라 힘드셨나요? 오시는 길 힘들었지만 아이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셨을 줄 압니다. 낙엽이 가을빛으로 완연해진,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1,073명의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모두 오래도록 설레는 마음으로 이 시간 기다려 오셨을 텐데요, 나만을 위한 콘서트라는 욕심쟁이 생각을 가진 분이 있다면 함께한 모두가 내 오랜 친구들이라 생각하시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으로 휴대폰과 카메라의 전원을 과감하게 꺼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희망과 염원을 담아 이제서야 선보이는 2009 김동률 콘서트! 오늘 동률 님이 여러분께 어떤 멜로디로 프러포즈!하실지 너무 기대가 되는데요, 여러분이 동률 님을 아끼는 마음의 잔향이 무대까지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도록 뜨거운 박수와 성원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 콘서트 여행하는 마음으로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2014년 <라카지> 안내 멘트
관객 여러분께 시원한 웃음과 감동을 드릴 뮤지컬 <라카지> 함께하실 땐 소지하신 휴대폰과 카메라의 전원은 반드시 꺼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공연 내내 라카지 걸들의 성별이 긴가민가 싶더라도 옆사람과 과도한 만담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상 초월의 매력으로 여러분께 색다른 즐거움을 드릴 라카지쇼에 흠뻑 빠지신다면, 1막 공연이 끝나기 전에 여러분 자신도 미처 몰랐던 또 다른 성적 취향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자! 즐길 준비되셨다면 여러분의 열정적인 박수와 함성으로 오늘 공연 막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2010년 <맨 오브 라만차> 안내 멘트
관객 여러분! 16세기 스페인의 지하 감옥엔 휴대폰도, 카메라도 없었습니다.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여러분이 라만차의 기사이자 레이디이십니다. 지금 이 순간 나만의 욕심으로 휴대폰이나 녹음기를 켜신 분이 있다면 소지하신 카메라와 휴대폰의 전원을 꺼주시고 모험으로 가득 찬 돈키호테의 여정에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0년 <빌리 엘리어트> 안내 멘트
어린이나 학생 단체를 동반하신 보호자나 선생님께서는 공연 중에 어린이들이 숨겨진 내면의 끼를 발산하거나, 원초적 본능을 끌어내서 주위 다른 관객께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소중한 시간 함께하실 땐 똑똑한 휴대폰과 성능 좋은 카메라, MP3의 전원은 과감하게 꺼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공연 중에 극의 흐름상 반드시 필요한 장면에서 흡연을 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관객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 금연초로 대체하고 있지만 연기와 냄새로 인해 조금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이 점 관객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2012년 국립현대무용단 신작 <호시탐탐> 안내 멘트
관객 여러분 좋은 공연은 좋은 관객이 함께 만들어 갑니다. 함께하실 땐 휴대폰과 카메라의 전원은 반드시 공연 전에 끄시고 다른 관객의 소중한 관극 기회를 방해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연 중에 호시탐탐 휴대폰과 카메라를 사용할 생각을 하시면 호랑이에게 냅다 콧등을 걷어 차일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다면 함께하시는 1시간 40분만이라도 전원을 끄시고 편안하게 공연에 몰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잠시 후 갑작스럽게 공연이 시작되겠습니다.
2013년 이자람의 <억척가> 안내 멘트
관객 여러분 오늘 함께하실 <억척가>는 관객과의 호흡이 생명인 공연입니다. 생명에 지장이 없도록, 여러 사람 좌절하지 않도록 소지하신 휴대폰과 녹음기 각종 전자기기의 전원은 미련 없이 꺼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판소리 <억척가>는 여러분의 적극적인 추임새가 공연의 흥망성쇠를 결정합니다. 공연 중에 부동자세로 계시면 신체에 무리가 올 수 있사오니 억척네의 인생 파노라마 함께하시면서 흥겨울 땐 흥겨운 대로 서러울 땐 서러운 대로 어깨를 들썩이면서 소리꾼과 좋은 에너지를 주거니 받거니 해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 2부 시작 멘트-
관객 여러분 이자람의 <억척가> 앞마당 재밌게 보셨습니까? 여러분은 최첨단 서라운드 공법의 가설 객석에서 김순종, 안나킴, 억척네로 3단 변신한 한 여인의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계십니다. 깊은 진동과 진한 울림에도 안전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사오니 안심하시기 바라며, 가설 객석이기 때문에 소지품을 의자 밑에 두시면 아래로 떨어질 수 있사오니 소지품은 발 앞쪽에 안전하게 두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억척가 뒷마당을 시작합니다.
2012년 이소라 콘서트 <겨울> 안내 멘트
바람이 붑니다. 겨울. 이별이 생각나는 외롭고 쓸쓸한 계절에 운명처럼 그냥 이렇게 함께해 주신 관객 여러분 고맙습니다. 언제나 믿음으로 함께해 주시는 관객 여러분 오늘 첫사랑의 처음 느낌 그대로 마이 님프! 소라 님과 우리 다시 함께합니다. 난 행복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할 공연 중 갑작스런 휴대폰 벨소리와 액정 불빛으로 금지된 분노와 피해 의식이 들지 않도록 제발 각종 전자기기의 전원은 이제 그만 꺼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타로처럼 별처럼 아로새겨질 오늘 콘서트! 소라 님의 청혼 같기도 하고 고백 같기도 한 시시콜콜한 이야기 함께하시면서 순수의 시절을 랑데부 하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2009년 뮤지컬 <영웅> 안내 멘트
가슴 벅찬 역사의 순간을 함께하실 땐, 휴대폰과 카메라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관객 여러분! 그 시절 독립운동을 함께할 순 없지만 여러분이 주시는 뜨거운 박수와 함성은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100년 전 하얼빈역! 그날의 외침을 되새기면서 지금부터 독립군의 의로운 여정에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3년 스페인 국립 플라멩코 발레단 <플라멩코> 안내 멘트
오늘 공연 설렘으로 기다려 왔을 모든 분들이 공연 중에 휴대폰의 벨소리나 액정 화면에 상처받지 않도록 관객 여러분께서는 소지하신 모든 전자기기의 전원을 지금 바로 꺼주시기 바랍니다. 휴대폰의 진동음보다 백배 강렬하고, 카메라의 플래시보다 훨씬 더 황홀한 뜨거운 스페인의 정열을 온몸으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0호 2016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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