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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TALK TALK] 창작뮤지컬 지원사업 당선작 리뷰 [No.150]

정리 | 안세영 2016-04-04 4,340

창작뮤지컬 지원사업의 풍년 속에 연초부터 다양한 신작이 무대에 올랐다.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와 ‘뮤지컬하우스 블랙 앤 블루’가 쇼케이스를 열고 ‘창작뮤지컬 육성 지원사업(창작산실)’ 작품들도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어떤 작품들이 무대에 오르고 또 어떤 매력을 선보였는지 본지 기자들과 정수연 공연평론가가 이야기를 나눴다.




인큐베이팅 작품들    




박병성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새로운 창작뮤지컬 지원사업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가 최근 당선작 쇼케이스를 열었어. 작품 개발부터 정식 공연, 해외 진출을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사업인데, 이 제도 자체가 좀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신인 창작자의 신작을 개발 단계에서 뽑아 해외로 내보내겠다니, 기존 작품 중에 우수작을 뽑아서 해외 진출을 시킨다 해도 쉽지 않을 텐데 말이야.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것도 좋고, 신인 창작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은데 이 둘을 엮은 건 무리수라고  봐.
배경희  어느 해외 제작사가 제작할지 결정된 건 없는 거지?
안세영  쇼케이스에 중국과 일본 공연 관계자를 초대해서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논의한다고 들었어. 그래서 쇼케이스 때 외국어 자막을 쓴 거고.
박병성  쇼케이스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어떻게 봤어?
안세영  <팬레터>는 마니아에게 어필할 만한 작품이라고 느꼈어. 한 남자가 히카루라는 필명으로 좋아하는 작가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그 작가가 편지를 보낸 사람을 여자로 믿고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잖아. 그러면서 히카루가 점점 독립적인 인격으로 분리되고.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미스터리한 존재가 등장하고, 남자 주인공 간의 브로맨스가 부각되는 건 최근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설정이야.
정수연  그걸 과연 경쟁력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들어. 요즘 창작 작품을 보면 다 어디서 본 것 같거든. 익숙한 것을 반복하고, 무언가를 연상시키고, 그 기시감을 즐기게 하는 거지.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만 치중해서 정작 창작자 자신이 선택한 소재가 어떤 극적인 전개와 공간의 미학을 가질지에 대한 고민은 뒷전인 것 같아 안타까워.
안세영  이 작품도 시대상과 캐릭터가 부실한 게 아쉬웠어. 경성 시대 문인들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딱히 그 시대가 아니어도 전개상 문제가 없을 것 같거든. 게다가 작가라는 인물도 어떤 신념을 갖고 어떤 글을 쓰는 작가인지가 드러나지 않아. 그러니까 주인공이 왜 이 작가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작가가 왜 히카루와 특별히 통한다고 느끼는지도 모르겠어.


박병성  작가가 편지만으로 히카루에게 목숨을 걸 만큼 빠져드는 이유를 납득시켜줄 필요가 있다는 거네. 히카루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안세영  이중인격 캐릭터는 많이 봤지만, 이렇게 남자에서 여자로 분리되는 건 색다르던데.
박병성  하지만 또 다른 인격이 추구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 분리된 인격의 대립에서 갈등이 생겨야 하는데, 이 작품은 한 사람의 인격에서 무엇과 무엇이 분리되는지가 모호해.
배경희  여자인 척 편지 쓰기를 그만두고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마음과 계속 편지를 쓰면서 좋아하는 작가와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상충할 수는 있을 것 같아. 여기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것 같지만.
정수연  그런 거라면 내적 갈등으로 풀어야지, 다른 인격을 만들어내는 건 과잉 설정이라고 봐. 한 사람이 전혀 다른 인격으로 해리되는 증상은 실제로도 존재해. 그런데 보통 이런 증상은 어린 시절 심한 학대를 당하거나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 빠져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나타나거든. 인격이 분리되려면 남자에게도 그런 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안세영  이런 설정이 있긴 했어. 남자는 글 쓰는 걸 반대하는 아버지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 출판사에서 잡일을 하며 살고 있잖아. 그런데 자기가 히카루라는 이름으로 작가에게 보낸 소설은 동인지에도 실리고 문인들에게 인정을 받아. 그러니까 히카루는 재능 있고 사랑받는 존재로 자신은 그렇지 못한 보잘것없는 존재로 나뉘는 것 같아.
박병성  남자의 글을 쓰고픈 욕망이 좌절되고, 그래서 다른 인격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발현시키는 거라면 설득력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러려면 글을 쓰고픈 욕망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게 충분히 드러나야 하는데, 여기서는 작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훨씬 부각돼서 대립각이 명확하지 못했어. 음악도 참신함이 부족해서 아쉬워.




배경희  다른 두 작품은 못 봤는데, 어땠어?
안세영  <포이즌>은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오와 유리디케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판타지 로맨스야. 그런데 이 작품은 캐릭터 구도만 놓고 보면 <팬레터>랑 꽤 비슷해.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좋아하는데, 그 남자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삼각관계야. 지옥의 신이 아름다운 노래를 요구하며 오르페오를 붙잡아 두는 것도, 히카루가 작가를 글에만 몰두하게 만들어서 죽음으로 이끄는 것과 비슷하고. 아예 이런 코드의 작품을 골라 뽑았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서사가 촘촘하게 이어지는 극이 아니라 각 장면의 멋진 분위기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 극 같아. 이야기를 따라가긴 힘들었지만 기묘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의 음악은 인상적이었지.


박병성  <거위의 꿈>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보고 온 지인의 말로는 감동적이었다고 하더라. 가난한 혼혈아의 성공담이란 게 너무 빤하긴 하지만, 그게 또 익숙한 노래랑 결합하니까 묘하게 울컥한다고 말이야. 실제 가수 인순이의 삶과 겹쳐져서 더 그럴 것 같아.
안세영  셋 중 어떤 작품이 정식 공연을 올리게 될지 궁금하네. 참, ‘뮤지컬하우스 블랙 앤 블루’도 쇼케이스를 시작했던데 본 사람 없어?
박병성  세 작품 중에 <테슬라>를 봤는데, 무대·의상·조명을 3회 공연치고 굉장히 공들여 준비한 것에 놀랐어. 신인 창작자에게는 그 과정 자체가 공부가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세 번만 공연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도 들더라. 작품 내용은 에디슨의 라이벌이었던 과학자 테슬라의 이야기야. 그의 꿈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기를 공급해서 가난한 사람도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거지. 반면 에디슨은 사업가적인 마인드를 가진 인물로 등장해. 그런 둘의 대비는 직류와 교류의 대비로도 설명되는데, 갈등 구도나 메시지가 명확해. 문제는 대비나 갈등이 명확한데도 극적이진 않다는 거야. 팩트를 따라가다 보니 드라마적인 구조가 약해진 것 같아. 또 후반부로 갈수록 너무 진지하고 무거워져. 테슬라를 과학자답게 모든 걸 치밀하게 계산하는 인물로 그렸는데, 초반에는 그가 칼로리까지 계산해서 음식을 먹거나 하는 장면이 코믹하게 펼쳐지거든. 그런데 다른 장면에서는 그런 성격이 별로 부각되지 않아서 아쉬웠어. 하지만 전반적으로 소재도 흥미롭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야.




창작산실 작품들            



박병성  창작산실 공연에 대해서도 얘기해 볼까. 다섯 작품 중에 <웰다잉>, <안녕! 유에프오>, <스페셜 딜리버리>가 공연을 올렸는데, 어떤 작품이 기억에 남아?
나윤정  난 셋 중에선 <웰다잉>의 메시지가 가장 좋았어. 소재 자체가 신선한 것은 아니었지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야 하는 문제잖아. 반면에 무대가 조금 단조로운 것 같아 아쉬웠어.
박병성  나도 나쁘지 않게 봤어. 죽음을 앞둔 세 노인이 잘 죽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인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무겁지 않고 따뜻하게 전개시킨 게 좋았어. 김경주 시인이 쓴 대사와 가사도 문학적이었고.
안세영  그래? 솔직히 나는 이 작품에 별 감흥을 못 느꼈어.
정수연  이게 세대에 따라 약간 반응이 달라. (웃음)
안세영  그런가? 일단 나는 세 노인의 이야기를 왜 지하철과 엮었는지 모르겠어. 주인공 이름을 지하철 역 이름으로 지은 이유는 뭐고,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선로 투신자살 사건을 겪은 기관사를 등장시킨 이유는 뭐지? 인생을 순환선에 빗대어 표현하는 노래가 있긴 한데, 그 내용이 이야기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
박병성  기관사 이야기는 나도 겉돈다고 느꼈어. 그 부분은 걷어내고 세 노인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면 더 좋을 것 같아. 인생을 순환선에 빗댄 건, 잘 죽는 것과 잘 사는 것이 결국 하나로 연결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처음에는 잘 죽으려고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에는 그게 좀 더 삶을 즐기는 계기가 되잖아.


안세영  그 과정도 잘 납득이 안 가. 웰다잉 여행이라고 하지만, 이들이 여행 가서 하는 일이라곤 대부분 할머니를 사이에 두고 할아버지 둘이 티격태격하는 것뿐이잖아.

정수연  나도 이 작품을 보기 전에 혹평을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어. 일단 뮤지컬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 자체에 점수를 주고 싶어. ‘웰다잉’이라는 주제를 살리려면 결국 ‘삶을 버리는 죽음’이 아닌 ‘삶의 완성으로서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시작이 좋았어. 노인들이 처음에는 삶의 구차함을 피해 자살 여행을 떠나지만, 그 과정에서 소소한 삶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잖아. 그러다 한 명이 죽자 나머지 두 사람은 남은 삶을 계속 살아가기로 마음먹고. 거기서 굳이 사랑 얘기가 나와야 하나 싶긴 하지만, 어쨌든 삶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해. 문제는 그 뒤에 ‘구차한 삶이지만 그럼에도 그 구차한 삶이 모여 아름다운 삶을 만든다’는 성찰이 와야 하는데, 그 부분이 흐지부지되어 버렸어. 그러니까 마지막에 살아남은 구파발이 가족 곁으로 돌아갈 때도 ‘저 할아버지는 이제 남은 삶을 다르게 살겠구나’ 하는 느낌이 안 들어. ‘이 할아버지는 할머니랑 결혼해서 사는 게 꿈이었는데 할머니가 죽었으니 다시 가족들한테 구박받고 치매 앓고 살겠구나’ 싶은 거지. 또 다른 문제점은 캐릭터에 일관성이 없다는 거야. 예를 들어 구파발은 여행 중에 치매 증상이 하나도 안 나타나고, 심지어 불량배도 때려눕힐 만큼 건강하잖아. 초반에 세 노인이 처한 현실에 진지하게 몰입했던 관객으로선 황당한 거지. 그러다 보니 관객층도 애매해. 젊은 층이 보기엔 너무 진부하고, 나이 든 분들이 보기에는 너무 유치한 거야. 이 작품을 수정하려면 관객층부터 확실하게 정해야 할 것 같아.
박병성  마무리가 늘어지는 것도 문제야. 느닷없이 죽은 남편의 시신이 돌아오고, 기관사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늘어지잖아. 그 부분만 잘라내도 훨씬 담백하고 주제가 분명해질 것 같아.




안세영  <안녕! 유에프오>는 어땠어?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었는데.
배경희  난 영화보다 재미있게 봤어. 완성도도 높고, 제2의 <빨래>를 연상시키는 따뜻한 작품이었어. 다만 캐릭터의 관계가 잘 설명되지 않은 게 아쉬워. 뮤지컬은 영화에 비해 조연들의 비중이 커졌잖아. 그들 모두에게 각자의 유에프오가 있다는 설정인데, 두 주인공 말고 다른 사람들의 유에프오는 무엇인지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아.
박병성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변두리에 살면서 삶을 바꿔줄 기적을 꿈꾸는 사람들이야. 그런데 두 주인공의 로맨스와 주변의 소소한 꿈 이야기가 시너지를 내지 못했어. 주변인이 부각되면 로맨스가 죽고, 로맨스가 부각되면 주변인이 죽어. 사실 이건 영화에서도 드러났던 문제점인데, 뮤지컬로 오면서 문제점이 더 두드러졌어.
정수연  둘의 로맨스가 겉도는 이유는 이들이 주변 사람들과 별로 관계를 맺질 않아서야. 동네 사람들의 일상이 둘의 이야기에 자연스레 개입되어 극의 접착제가 되기도 하고, 위기가 되기도 해야 되는데, 그런 관계 구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물을 뿌려놓기만 했어. 각자 나와서 각자 이야기만 하다 들어가는 거지.


나윤정  남자가 여자에게 왜 거짓말을 했고, 또 화해하기까지 과정이 조금 불분명했어.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들이 그 과정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포인트를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이 작품에서 유에프오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그 유에프오를 환상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외계인 할머니를 등장시켜 너무 희화화한 건 아쉬웠어. 그러다 보니 그 외계인이 남녀 주인공을 다시 연결해 준다는 설정이 크게 와 닿지 않았어.
정수연  외계인이 영리한 극적 장치였다는 생각은 들어. 이게 좋게 말하면 잔잔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잖아. 뮤지컬로 옮기면서 극에 탄력을 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든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이 캐릭터가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따로 도는 건 문제야. 우주선 재료를 집어 가는 과정에서 다른 주민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인물들이 서로 얽히는 구체적인 계기가 없어.
박병성  일단 이 외계인이 등장하면 재밌긴 했어. 외계인 역을 맡은 배우 김국희가 연기를 잘했으니까. 하지만 복덕방 아저씨와의 로맨스는 너무 멀리 간 것 같아.
정수연  로맨스를 만들 수는 있지. 다만 둘의 관계가 구축되는 과정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봐. 만약 가난한 동네의 노년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 있게 묘사했다면, 나중에 할아버지가 유에프오를 타고 떠나는 장면에서 ‘난 더 이상 여기 미련이 없다, 여길 떠나는 게 내 행복이다’라고 말하는 게 상징적인 의미로 읽힐 수 있단 말이야. 그럼 젊은이들에겐 유에프오가 사랑을 의미하지만, 노인들에겐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겠구나 생각할 텐데, 지금은 그냥 설정을 뿌려놓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느낌이라 아쉬워.
박병성  무대적 상상력도 아쉬웠어. 그 좁은 공간에 동네를 다 담아야 했는데, 사실적인 접근으로는 힘들거든. 그래서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인데, 그게 부족했어.




안세영  마지막으로 <스페셜 딜리버리>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와 원치 않는 아이를 가진 여자의 영혼이 뒤바뀌면서 결국 한 가족이 되는 이야기였지.
정수연  소재 자체는 좋았어. 대안 가족은 극단 오징어에서 계속 다루고 싶어 하는 소재야. 창작진도 <식구를 찾아서> 팀이거든. <식구를 찾아서>도 노인 두 명에 버려진 짐승들이 가족을 이루는 얘기잖아. 문제는 연출이야. 주술사가 해설자로 등장해서 장면마다 10년 전, 10년 후, 이런 식으로 설명을 덧붙이는 건 너무 촌스러운 연출이었어.
박병성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설득하기 위한 장치로 주술사 그룹을 등장시킨 것 같은데, 이들이 버려지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일종의 미션을 수행한다는 설정이 들어가다 보니 주술사의 존재가 지나치게 부각되었어. 무대는 버려진 물건들로 꾸민 거라고 하더라. 버려진 아기를 컨셉으로 그렇게 꾸몄다고 하는데, 공연을 보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정수연  그렇다면 화장실에서 영혼이 바뀌는 것도 쓰레기장의 연장선에서 배설의 공간을 선택한 걸로 이해할 수 있겠네. 하지만 그 의도가 전혀 안 드러났어.
나윤정  결정적으로 이런 영혼 바꾸기 구조의 이야기는 상반된 캐릭터의 전환에서 오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게 부족했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나이 든 가수와 원하지 않는 아이를 임신한 십 대 여고생이 주인공이지만, 두 배우가 거의 동년배처럼 보여서 영혼이 바뀌었을 때의 극적 재미가 확 살지 못했어. 여고생 역에 진짜 어린 배우를 써서 연배 차이가 확 느껴지게 한다면 애초의 컨셉이 더 잘 전달되지 않을까?
배경희  난 이 이야기 자체에 불쾌함을 느꼈어. 조건 만남으로 원치 않게 임신한 아이를 생명은 소중하니까 무조건 낳아서 기르라고 하는 거잖아. 너무 터무니없는 해피엔딩 아냐? 게다가 조건 만남을 시킨 사람들의 잘잘못을 따져 묻지도 않잖아.
정수연  이 작품이 하고자 한 이야기는 이런 것 같아. 여고생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라는 건 무책임한 일이지만, 누군가 가족이 되어 도와준다면 낫지 않겠냐는 거지. 물론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한 이야기 구축이 과연 설득력이 있었느냐는 다른 문제지만.
안세영  버려지는 생명을 구하는 주술사 캐릭터와 두 주인공을 괴롭히는 남성 캐릭터를 동일 인물로 설정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 이들이 중첩되면서 두 여성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모든 행위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라는 식으로 설명되니까 너무 불쾌했어. 임신한 아이를 받아들이기까지 과정이 주술사에 의해 조작되다보니, 그게 두 여성이 내린 결정 같지 않고 외부에서 가하는 일방적인 폭력으로 느껴져.
정수연  그렇게 느낄 수 있지. 극 중에서 두 여성이 처해 있는 상황은 매우 현실적이잖아. 그런데 여기에 주술사가 모든 상황을 조작한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끼어들면서 현실적인 이야기가 가져야 할 무게를 다 제거해 버린단 말이야.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하려면 주술사들은 완전히 환상적인 인물로 빼놔야 해. 이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하는 순간부터 이야기가 꼬이기 시작하는 거야. 리얼하게 풀려는 부분과 비현실적 설정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지 못한 게 이 작품의 큰 맹점이라고 봐.
박병성  창작산실은 <에어포트 베이비>와 <신과 함께 가라>가 남아있으니 이 작품들도 기대해 보자.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0호 2016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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