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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INTERVIEW] <날보러와요> 권해효·김뢰하·유연수·이대연 [No.149]

글 |나윤정 사진 |심주호 2016-03-04 5,668

자연스럽게, 완숙하게


연극 <날보러와요>가 올해로 초연 20주년을 맞았다. OB 팀과 YB 팀으로 나눠 공연되는 이번 무대에서 OB 팀을 당당히 이끌어가는 형사 군단을 만났다. 김 반장 역의 이대연, 김 형사 역의 권해효, 박 형사 역의 유연수, 조 형사 역의 김뢰하가 그들. (1996년 초연에서 이대연은 김우철, 유연수는 박 형사, 김뢰하는 김 형사를 맡았고, 같은 해 9월 재연에서 김뢰하가 조 형사로 역할을 바꾸고, 권해효가 김 형사로 새롭게 합류해 공연을 이어갔다.) 초연 멤버로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는 이들의 만남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주었다. 그들과의 인터뷰로 재구성한 <날보러와요> 초연 멤버들의 생생한 작품 이야기.





작품의 시작
이대연  1992년이었을 거야. 내가 처음 김광림 선생님과 연을 맺은 게 김지숙, 박동과 선배가 출연했던 <당신의 침묵>에서 조연출을 할 때였어. 지금은 <쉬리>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이)동준이가 같이 참여했는데, 걔가 되게 엉뚱했잖아. 그때 외계인 이야기를 하다가, 동준이가 이런 말을 했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도 그런 놈들이 아닐까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작품이 출발한 거야. 또, 내 얼굴이 억울하게 생겼다고, 범인이 이런 모습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고.
권해효  당시가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직후였잖아. 이 사건을 극으로 쓰자는 말이 나오고, 극단 연우무대 식구들이 함께 현장 답사에 나섰던 게 기억나. 당시 연우무대라는 동인 시스템 안에서 갓 무대에 올랐던 신인 배우들이 주축이 되었기에 이런 작업이 가능했던 것 같아. 연수나 뢰하도 그땐 기껏해야 삼사 년 차 배우였으니까.
유연수  대부분 서른 한두 살이었지. 선생님이 1장을 써오시면, 배우들이 같이 연습해서 보여드리고, 또 2장을 써오시면 연습해서 보여드리곤 했지. 그러면서 공연을 만들어 나갔지.
이대연  맞아. 극단 식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구석이 많았어. 그런 작업까지 따져 보면 정말 오리지널 멤버는 유연수랑 김뢰하네!



화성 취재기
이대연  김광림 선생님의 지인을 통해서 그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를 만나게 됐잖아. 그분이 말을 진짜 재밌게 했어. 실제로 목욕탕이나 점집 에피소드는 그 형사가 직접 말해 준 걸 받아 적은 거고. 그래서 박 형사의 모티프가 되었지.
김뢰하  그때, 화성은 이미 많이 변하고 있었어. 현장 반장님의 인솔하에 사건 현장 몇 군데를 들렀는데, 벌써 산이 깎이고 있더라고.
권해효  서해안 고속도로가 뚫리기 직전이었잖아. 여기저기 공사를 많이 하고 있었지.
김뢰하  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뭔가 독특하거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너무나 평범한 시골 동네인 거야. 넓은 논바닥만 있고. 이런 데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게 맞나? 지금도 그 일상적인 풍경들이 인상에서 지워지지 않아. 결국 살인 사건이란 게 일상처럼 그냥 일어나버릴 수 있다는 거였어.
이대연  보통 그런 사건이 일어날 때, 습관적으로 경찰의 무능함을 탓하잖아.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아무리 전문가라도 막막하겠다 싶더라. 조금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지. 얼마나 막막했을까?
유연수  실제 경찰들은 이 사건에 큰 상처를 갖고 있었어.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랄까.
이대연  그래, 본질적인 이야기는 끝까지 안 했어. 마지막에 이런 말은 했어. 극 중의 정인규처럼 99.9퍼센트 범인이라고 확신이 든 용의자가 있었대. 그런데 그때 우리나라에선 DNA 검사를 못한 거야. 그래서 일본으로 보냈는데, 불일치라고 나온 거지. 결국 풀어줄 수밖에 없었지만, 그 형사는 여전히 그가 범인이라 믿고 있더라. 하지만 물증이 없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런 이야기도 다 우리 작품에 반영되어 있네. 분명히 그놈인데, DNA 결과는 다르게 나오는 부분!
유연수  범인은 용의자로 심문받은 사람 중에 하나였을 거야. 그 안에 있었을 가능성이 커. 그런데 워낙 수사 기술이 낙후되어 있으니까 못 잡은 거라고. 이 사건 때문에 국과수가 제대로 자리 잡게 된 거잖아.
이대연  그래서 작품 제목을 ‘날보러와요’로 지은 거잖아. 범인이 있다면 분명히 이 작품을 보러 올 거라고!
김뢰하  최소한 반인륜적인 사건에 대해선 공소시효란 게 없어져야 돼. 공소시효라는 게 편의주의거든. 우리 대사에도 나오듯이, 책상 물림들이야. 수십 년간 같은 사건 쫓기 싫다는 거지. 말이 안 돼. 이 연극을 하면서 마음이 무거운 게 이 때문이야.





권해효  난 <날보러와요>가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초연 시작한 지 며칠 안 됐을 때 보러 갔거든. 공연 시간이 꽤 길었어. 두 시간 십여 분 정도. 그런데 굉장히 재밌게 봤어. 끝까지 키득키득 웃게 만들었는데, 그럼에도 공연 전체에 긴장감이 꽉 차 있는 느낌이랄까. 예를 들어 (대연) 형이 김우철 역을 맡아서 딱 나왔을 때, 모자를 벗는 순간 웃음이 팍 터졌거든. 근데 한편으론 저놈이 범인일 수도 있겠다 싶은 거야. 그런 긴장감이 계속 미스터리하게 깔려 있었지.
이대연  초연 무렵 김광림 선생님이 고백하신 것도 기억이 나. <뜨거운 바다>를 보고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셨지. 역할들이 다 돌출적이었잖아.
권해효  그래, <뜨거운 바다>가 1980년대 한국 연극에 어마어마한 쇼크를 줬지. 그런데 배우 입장에서는 공연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앞뒤 전환을 다 따지게 되잖아. 김 형사 같은 경우에는 등퇴장이 특별한 동기가 없는 거야. 갑자기 뛰어들었다가 나가기도 하고. 처음엔 그런 문제가 고민이기도 했어.
이대연  초연을 준비할 땐, 사실 이렇게까지 관객들이 재밌어할 거란 생각은 못했어. 그치?
유연수  형은 이 작품으로 그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받았잖아. 김우철이 등장하는 장면이 한 10분 되나?
권해효  맞아. 한 10분 돼. 지금은 범인들을 한 배우가 도맡지만, 그땐 각각의 범인을 배우들이 나눠 맡았지.
김뢰하  그런데 두 시간 10분 연극에서, 10분 나온 사람이 <날보러와요>로 그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받은 거잖아. 좀 심한 거 아냐? (웃음)
이대연  아니야. 그게 연수가 받았어야 했는데, 내가 짬밥이 더 많아서 그래.(웃음) 안 그래도 그때 심사를 하셨던 차범석 선생님께 새배를 하러 가서 그 이야기를 했어. 어떻게 이런 작은 역할을 맡았는데 상을 주셨느냐고 물으니, ‘네가 그동안 해온 게 있으니까’라고 하시더라. 연극계에도 누적 마일리지 같은 게 있어요.(웃음)
김뢰하  아, 마일리지로 받은 거야? (웃음)
이대연  연극계 신인상을 20대에 받는 거 봤어? (웃음) 드물어.
권해효  하지만 그 초연 당시에 형이 예비군 모자를 벗었을 때의 비주얼은 정말 역대급이었지. 모자를 꽉 눌렀다가 벗을 때의 그 머리 모양하며!
이대연  허허허. 그거 재연하기 힘들어. 공연 한 시간 전부터 미리 세팅을 해놨지. 끈을 조여서 바짝 묶어 놓는 거야. 10분밖에 안 나오니까.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별짓 다 해본 거지.



지난 20년의 추억
이대연  아무래도 가장 큰 사건은 ‘권해효 충돌 사건’ 아니야?
김뢰하  아! 코뼈 부러진 거? 그게 언제 적이야, 대체? 지금 얘 코가 이상한 게 그때의 흔적이잖아.(웃음)
권해효  오래됐어. 20년 전이야. 1996년 겨울에 바탕골소극장에서 장기 공연할 때였어. 마지막 장면에서 (류)태호 형 머리랑 부딪혔어. 암전 속에서 쾅 하고 충돌했지.
유연수  그리고 초연 10주년 공연 때 공교롭게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났잖아.
권해효  때문에 2006년까지도 이 공연을 하는 배우들이 실제 사건의 파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그 무게감을 늘 갖고 있었던 거지.
김뢰하  음… 또 추억이라면, 지금 고인이 되신 김용만 선생님 생각도 난다. 늘 연수야 연수야 부르셨잖아. 
권해효  벌써 이 작품 함께하다가 떠난 사람이 두 분이야. 김용만, 박광정….
김뢰하  한 작품을 오래 하다 보니 이런 상황도 벌어지네. 벌써 두 분이나 앞서 보내다니….





OB 팀의 재회
권해효  지난여름 김광림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어. OB, YB 팀으로 나눠 20주년 기념 공연을 하시겠대. 그래서 내가 웃었어. ‘선생님, 그땐 제가 서른둘이었지만, 지금은 쉰둘이에요. 제가 지금 김 형사를 연기한다는 게 말이 돼요?’ 출발은 이랬는데, 막상 연습실로 와 대본을 읽으니 놀라웠어. 우리가 나이를 먹었단 사실을 떠나서 이 연극 자체가 늙었으면 어떡하나 사실 걱정했거든. 그런데 되려 2016년도인데도 이 작품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거야. 사실 배우가 무대에서 기댈 건 작품밖에 없거든. 작품에 대한 신뢰가 생기니까 기분이 좋았어. 그리고 머리를 자르고 나서 다들 젊어 보인다고 해서 자신감도 좀 생겼어. 하하하.
이대연  배우들 대부분이 재연보단 신작을 선호하잖아. 세상에 없는 무엇을 같이 만드는 과정이 참 재밌거든. 난 이번에 선생님이 김 반장 역을 제안하시길래, 그럼 YB 팀에서 하고 싶다고 했어. 새 배역을 새로운 사람들과 하면, 나한텐 신작이잖아. 물론 지금 OB 팀에 있지만.(웃음) 또 역할과의 나이 차에 대해선 김광림 선생님이 이렇게 설득하셨지. 러시아에서는 60대 할머니가 아직도 10대 소녀를 연기한다고. 무대라는 공간이 그렇잖아. 매직!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을 했는데, 연습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 동료 배우들이 나이를 참 잘들 먹고 있구나! 내가 굉장히 매력적인 배우들과 작업하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어.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동료 배우에 대한 신뢰가 생기더라.
유연수  초연 당시 우리는 거의 신인들이었지. 극단에 들어온 지도 얼마 안 되었으니까. 그만큼 이번 공연을 준비하니 감회가 새로워. 이 작품이 데뷔작이나 마찬가지니까.
권해효  데뷔작이자 출세작이지.(웃음)
이대연  정말 ‘대학로에 유연수 있소이다’를 딱 보여준 작품이었어.
권해효  맞아. 박 형사만큼은 정말 대체 불가야. 마음만 먹으면 향후 20년 동안 박 형사를 전담할 수 있을 거야.
이대연  대체 불가! 송해 선생급이야. (웃음)



OB 팀 vs YB 팀
김뢰하  어제 YB 팀 런스루를 봤는데, 재밌던데.
이대연  궁금하네. 느낌이 뭐가 제일 달라?
김뢰하  결이 많이 달라. 진중하면서도 다른 재미가 있더라고.
이대연  걔들도 여기서나 YB지. 애들이 아니야. (웃음)
김뢰하  진중했어. 쉽게 흥분하고 쉽게 흘러가지 않고, 느릿느릿 중심을 잡고 가. 묘한 느낌이 있더라고. 
이대연  우리 초연 때 느낌하고 비슷할 수 있겠다.
김뢰하  맞아. 그런 느낌이야.
권해효  우리는 오랫동안 공연을 했으니 웃긴 대목들을 너무 잘 알고 있잖아. 거기에 자꾸 포커스가 되니까 극 전체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 같아.
김뢰하  그래서 되려 YB 팀 공연이 신선하게 다가온 것 같아. 어제 본 느낌은 이거야. YB 팀은 정극을 하고 있고, OB 팀은 버라이어티를 하고 있구나!
이대연  근데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물론 배우로서 내 창의력 부족을 탓해야겠지. 다들 이전에 맡았던 역이지만, 나만 김 반장으로 역할이 바뀌었잖아. 정말 어려운 것 같아. 새로운 역할인 만큼, 창의적인 걸 찾아야 하는데, 이미 이전 무대에 익숙한 거야. 머릿속엔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이미 몸이 예전에 봐온 것들을 고대로 따르고 있어. 허허.
김뢰하  형 DNA에 이미 박혀 있는 거야. 이 대사들이 다!





다시 만난 작품의 매력 
김뢰하  실제 사건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무엇보다 연극적 문법으로 잘 쓰인 희곡이잖아. 배우에게 그 이상 매력 있는 작품이 어디 있겠어. 국내 창작극 중에서 정말 만나기 힘든 수작이잖아. 작품도 한 번에 쭉 읽히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배우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작품이 아닐까?
유연수  맞아. 처음 대본을 봤을 때부터 잘 쓴 작품이란 느낌이 들었지.
이대연  시대를 뛰어넘는 리얼리티가 분명히 있어. 그게 가장 큰 매력이야.
권해효  특정 시기에 특정 사건을 담아낸 이야기는 여차하면 그 시간이 지났을 때 쉽게 잊히잖아. 그런데 이 작품은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하지만, 때로는 사랑에 관한 연극이기도 해. 일그러진 사랑의 형태인 참혹한 살인, 거래와 같이 이루어지는 사랑. 그리고 무엇이 진실이고 누가 범인인지 모르는 상황의 혼란스러움. 이런 것들을 담고 있기에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연극이야. 이젠 이 작품을 한국 현대 연극의 고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9호 2016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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