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뮤지컬계에는 어떤 일이?
2015년의 주요 경향을 살펴보면 한국 뮤지컬 시장이 배우 중심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여섯 개의 이슈를 꼽았는데 그중 절반이 배우와 관련된 것이었다.
2015년 뮤지컬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주요 이슈들과 기억할 만한 개별 사건들을 꼽아보았다.
2015년 뮤지컬 시장 침체
2014년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한 뮤지컬 시장의 위기는 2015년에도 여전히 이어졌다. 지난해에는 세월호라는 사회적 이슈로 공연 시장이 냉각되었다면 올해는 메르스가 공연 시장을 덮쳤다. 메르스로 인해 가장 많이 피해를 본 공연 시장은 감염에 취약한 어린이들과 장년층을 위한 공연들이다. 젊은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뮤지컬은 비교적 피해가 적었다. 뮤지컬 시장은 메르스보다 경기 침체와 과열된 경쟁으로 악화된 제작 상황으로 인한 피해가 더 컸다. 2015년 전체 시장 규모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뮤지컬계에서 느끼는 체감 경기는 냉랭하다. 실제 수익을 올리는 뮤지컬이 손에 꼽힐 정도이고, 대형 뮤지컬 제작사의 위기설이 풍문처럼 떠돌고 있다. 공연 중단이나, 뮤지컬 제작사의 법정관리 신청 등 지난해와 같은 상징적인 사건만 없을 뿐 시장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올해 시장 침체에 영향을 끼친 데에는 여러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투자사들이 몸을 사린 점을 중요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뮤지컬 시장의 가장 큰 제작사이자 투자사였던 CJ E&M이 투자 사업을 거둬들였다. CJ E&M은 2010년 참여한 작품들의 시장 매출액이 전체 뮤지컬 시장의 40%에 육박할 정도로 많은 제작사들과 공동 제작을 통해 뮤지컬 시장의 성장을 함께했다. 그러나 올해 CJ E&M은 대형 뮤지컬 <베르테르>와 소극장 뮤지컬 <풍월주>를 제작하는 데 그치는 등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다행히 내년에는 대형 제작사로서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창작뮤지컬 <웃는 남자>와 라이선스 초연 <보디가드>, 재공연 <킹키부츠> 등 2016년 라인업을 밝힌 상태다. 이외에도 대형 창작뮤지컬 여러 편을 동시에 개발 중이다.
메르스 여파는 공연계에 피해를 주었지만, 가장 피해가 적다고 할 수 있는 뮤지컬계가 구제 혜택은 가장 많이 받았다. 정부가 메르스로 인한 침체된 공연계를 살리기 위해 마련한 ‘1+1 티켓’의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것은 뮤지컬로 드러났다. 1차 티켓 판매에서 약 67%가 뮤지컬에 몰렸다. 열악한 상황에서 고전하던 뮤지컬 제작사로서는 단비 같은 지원이었지만, 많은 관계자들이 싼값으로 뮤지컬을 경험한 이후 다시 고가의 티켓 값을 지불하게 될지 우려하고 있다.
올해 공연된 뮤지컬 203편, 재공연 많아
올해 서울 지역에 올라간 뮤지컬은 203편(넌버벌 퍼포먼스 오픈런 공연 제외, 64p 참조)이다. 이 중 창작뮤지컬이 156편, 라이선스 뮤지컬이 36편, 그리고 투어 공연이 11편으로 조사됐다. 올해 창작뮤지컬 비중은 약 77%에 육박하는 등 예년에 비해 제작이 활발했다. 창작산실 등 지원 제도가 창작뮤지컬 제작을 독려한 것이 일차적인 영향으로 보인다. 올해 창작산실 우수작품 지원사업에 열 작품이 소개됐으며, 그중 <곤, 더 버스커>는 사업 기간에 공연한 것 이외에도 동숭아트센터, 세종M시어터에서 각각 공연하는 등 3차례 공연을 했다. 이외에도 <달빛요정과 소녀>,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 <파리넬리>가 재공연으로 이어졌다.
또한 올해 공연된 창작뮤지컬 리스트를 보면 작은 소극장에서 소규모로 진행된 작품들이 꽤 많다. 기존 연극 기획사에서 상업극인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었고, 신규 단체들의 소규모 창작뮤지컬 제작이 많았기 때문이다. 라이선스 뮤지컬 작품 수는 예년에 비해 오히려 줄었는데 올해 창작뮤지컬 작품 수가 유독 큰 증가세를 보여 전체적으로 작품 수가 예년 수준을 유지했다.
시장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재공연 비율이 많았다. 올해 시장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초연 공연 비율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안정적인 재공연작 대신 초연을 올린다는 것은 제작사들의 기대 심리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라이선스 뮤지컬은 예년에 비해 작품 수가 줄었다. 전체 제작 편수가 줄다보니 초연 작품 비율이 예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매니지먼트사의 진출
올해 뮤지컬계 가장 큰 특징은 연예 매니지먼트사들이 뮤지컬 제작에 참여한 것이다. 이미 작년부터 대형 연예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뮤지컬 제작을 전담하는 자회사인 SM C&C를 설립하고 <싱잉 인 더 레인>을 선보인 바 있다. 뮤지컬 시장이 배우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스타 배우를 다수 보유한 SM C&C가 뮤지컬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관심이 모아졌다. 지난해 <싱잉 인 더 레인>은 아이돌 스타들이 총출동한 데 비해 흥행이 좋지 않았다. 아이돌 스타가 소화하기 힘든 캐릭터이자 작품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이유였다. 올해는 라틴 음악과 힙합이 어우러진 <인 더 하이츠>로 도전했다. 음악은 젊은 세대에 호소할 수 있는 스타일이었지만, 문화적인 정서가 강한 작품이라 평가는 호불호가 갈렸다. SM C&C의 두 번째 작품 역시 뮤지컬 시장에 큰 파장을 불러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관심을 거두기엔 이르다. 삼성동 코엑스아티움을 인수하고 SM 타운 코엑스 아티움으로 개조한 SM C&C는 이를 전진기지로 다양한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 SM 타운 시어터에서 공연한 아이돌 스타의 홀로그램 뮤지컬 <스쿨오즈>가 새로운 가능성의 작은 단초를 제공해 준다. 기존 뮤지컬 중심의 콘텐츠를 벗어난 콘텐츠 개발 등 새로운 도전을 기대하게 한다.
뮤지컬계 절대적인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김준수의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그동안 김준수가 출연하는 작품에 투자하는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접 제작에 뛰어들었다.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공연계 인력을 영입해 씨제스컬쳐를 세우고, 정선아 이외에 이창용, 한선천, 강홍석 등을 소속사의 새로운 식구로 받아들여 본격적으로 뮤지컬 제작에 나섰다. 씨제스컬쳐의 이름으로 선보인 첫 작품은 <데스노트>였다. 김준수, 강홍석, 정선아가 원 캐스트로 출연한 작품은 성남 초연이라는 지리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흥행이나 작품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뮤지컬계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실하게 구축한 김무열, 옥주현 등과 관련이 있는 프레인이 올해 뮤지컬 제작에 출사표를 냈다. 프레인은 <넥스트 투 노멀>에 투자하면서 뮤지컬해븐의 박용호 대표와 협업을 통해 앞으로도 몇 작품의 제작에 참여할 예정이다.
웹툰 소재 뮤지컬 성행
그동안 소설, 영화, 기존 노래 등을 원 소스로 삼아 만든 창작뮤지컬이 일정한 트렌드를 형성했다. 이제는 웹툰이다. 대중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의 웹툰은 타 장르의 원 소스로 각광받고 있다. 영화 장르에서는 인기 웹툰 작가 강풀의 <아파트>, <바보>, <순정만화>가 영화화되었으며, 윤태호 작가의 <이끼>, <내부자들>도 영화화되었다. 이외에도 <전설의 주먹>, <은밀하게 위대하게>, <패션왕> 등도 웹툰을 토대로 한 영화들이다. 드라마 분야에서도 최근 들어 웹툰 원작의 작품들이 늘어가고 있다. 2013년 유현숙의 <이웃집 꽃미남>이 tvN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지만, 웹툰의 드라마화를 가속시킨 작품은 지난해 히트작 tvN의 <미생>이었다. 케이블 채널의 드라마가 공중파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으면서 <미생>은 문화적 트렌드로 부상하기도 했다. 이후 <호구의 사랑>, <냄새를 보는 소녀>, <오렌지 마말레이드>, <밤을 걷는 선비>, <송곳>까지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제작 붐이 일고 있다.
뮤지컬도 예외가 아니다. 2007년 <위대한 캣츠비>가 뮤지컬로 제작된 이후, 웹툰 원작의 뮤지컬이 등장하지 않았다. 천계영의 <오디션>이 뮤지컬로 제작된다는 풍문이 있긴 했지만 현실화되진 못했다. 올해에는 재공연되는 <위대한 캣츠비 RE:BOOT>를 포함해서 <도로시밴드>, <신과 함께>, <무한동력> 등 웹툰 원작 뮤지컬 네 편이 올라갔다. 완전한 창작보다 원작을 토대로 한 작품 개발이 많은 뮤지컬의 특징상, 젊고 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웹툰이 그동안 뮤지컬의 원 소스로 역할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웹툰을 원 소스로 삼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서사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소재적인 측면에서 웹툰은 뮤지컬과 매우 잘 어울리지만 주 1회 혹은 2회 단위로 연재하는 웹툰 방식은 2시간 내에 압축해야 하는 뮤지컬로 옮길 때 드라마 구성에 문제가 생긴다. 드라마 원작의 뮤지컬이 대부분 실패의 길을 걸었던 것과 같은 이유다. 게다가 웹툰은 만화 본연의 상상력이 발휘될 여지가 크다. 만화적 상상력이 판타지를 근간으로 하는 뮤지컬과 어울리지만, 연속된 그림을 통해 상상이 자유로운 웹툰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뮤지컬과는 표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무대 기술이 발달하고 영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무대에서의 표현이 한결 자유로워졌다. 저승에서 다양한 재판을 받는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신과 함께> 역시 영상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올해 불었던 웹툰 원작 뮤지컬의 붐은 이어질까? 아마도 당분간은 그럴 것이다. 서울예술단의 <신과 함께>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재공연을 기획하고 있고, 영화화되었던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뮤지컬 제작 발표가 이어졌다. 내년에는 또 어떤 웹툰 뮤지컬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된다.
배우 중심의 해외 교류 급증
2013년에는 도쿄에 한국 뮤지컬 전용관 아뮤즈 뮤지컬 시어터가 생길 정도로 한일 뮤지컬 교류가 활발했다. 올해도 <총각네 야채가게>의 일본 진출이 이루어졌고, <셜록홈즈2: 블러디 게임>은 라이선스 형태로 공연되었다. 그러나 2013년 20여 편에 가까운 한국 뮤지컬이 진출했던 것에 비하면 한일 뮤지컬 교류는 많이 줄어들었다. 대신 올해에는 한국 뮤지컬 배우들의 콘서트가 활발해졌다. 2013년을 정점으로 일본에 한국 뮤지컬이 소개된 것은 한류 붐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 관객들이 한국 뮤지컬을 찾은 주된 이유는 K-POP 스타를 보기 위한 것이지만, 이로 인해 한국 뮤지컬 배우들의 가창력이 회자되면서 공연 이외에도 한국 뮤지컬 배우들의 콘서트가 이루어졌다. 2013년 봄에는 임태경, 옥주현, 전동석, 김승대가 대형 공연장에서
콘서트뿐만 아니라 일본 프로덕션에 출연하는 한국 배우가 등장하기도 했다. 양준모는 일본 토호 극단의 <레 미제라블> 뉴 프로덕션의 주인공인 장 발장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2013년 김준현이 먼저 토호 프로덕션의 <레 미제라블> 장 발장 역으로 캐스팅된 적이 있지만, 김준현은 극단 시키 소속 배우로 일본에서 활동한 바 있다. 일본 활동이 전혀 없는 한국 배우가 대형 일본 프로덕션에 참여한 것은 양준모가 처음이다. 게다가 <레 미제라블>은 일본에서 28년째 공연하면서 마니아층이 두터운 공연이다. 양준모는 일본에서도 후한 평가를 받아 한국 뮤지컬 배우의 위상을 높였다.
한국 뮤지컬 배우들의 가창력은 일본뿐만 아니라 뮤지컬의 본산지인 웨스트엔드에서도 통했다. 지난해 <미스 사이공> 투이 역으로 활약한 홍광호는 왓츠 온 스테이지 어워즈에서 남우조연상을 받기도 했다. 홍광호가 빠진 자리는 조상웅이 바통을 이어받아 출연했다. 특히 뉴 캐스트의 킴 커버 역에는 대학생인 김수하가 캐스팅됐다. 뮤지컬 데뷔를 웨스트엔드에서 하게 된 것이다. 김수하는 앙상블과 킴 커버를 맡아 지금까지 여러 차례 킴 역으로 무대에 섰고, 내년 1월 14일, 16일 낮 공연, 2월 11일, 13일 낮 공연을 할당 받았다. 커버의 특성상 킴으로 출연하는 횟수는 늘어날 수도 있다.
TV 진출하는 뮤지컬 배우들
최근 TV 채널을 돌리다보면 낯이 익은 뮤지컬 배우들의 출연이 눈에 띈다. 뮤지컬 배우들이 브라운관에 진출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영화와 TV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엄기준, 오만석, 유준상, 주원, 조정석, 박해미는 잘 알려졌다시피 뮤지컬 배우 출신이다. 이처럼 주요 활동 무대를 뮤지컬에서 영상으로 옮긴 배우도 있지만, <장길산>의 조역으로 출연한 서범석이나 2007년 <왕과 나>의 정씨로 얼굴을 내민 김소현처럼 간간이 뮤지컬 배우들의 브라운관으로의 외도가 있어 왔다. 올해는 그러한 배우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tvN <미생>에 출연하여 완전히 TV 스타로 자리를 바꾼 강하늘 같은 경우도 있지만, <미생>에서 요르단 현지 직원으로 출연한 최재웅처럼, 조역 내지는 단역이지만 TV에 얼굴을 내민 사례가 많았다. tvN <오! 나의 귀신님>에는 최민철, 오의식, 이정은이 출연했다. 최민철은 생계를 위해 나이를 속이고 취업해 웃기지만 안쓰러운 캐릭터를 실감 나게 연기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SBS <용팔이>의 배해선 역시 무표정하고 차가운 얼굴로 감정을 숨기는 황간호사를 연기해 주목을 받았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tvN <응답하라 1988>의 최성원도 최강 노안인 어리숙한 동생 역을 맡아 얼굴을 알리고 있다. 이외에도 SBS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의 최재웅, SBS <육룡이 나르샤>의 장승조, 전성우, SBS <미세스캅>의 이재균, SBS <가면>의 김법래, JTBC <송곳>의 양소민, 백은혜 등이 브라운관을 통해 얼굴을 알린 뮤지컬 배우들이다.
이처럼 뮤지컬 배우들의 브라운관 진출이 활발해지는 이유는 종편 등 방송사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인물에 대한 갈증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연기력이 있는 새로운 인물들을 주로 연극판에서 찾았는데 이제는 대중성이 있는 뮤지컬 무대까지 확장해 배우를 찾고 있다. 게다가 최근 뮤지컬 배우들이 대부분 연예 기획사에 소속되면서 뮤지컬뿐만 아니라 방송이나 영화 등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요구들이 맞물리다 보니 최근 뮤지컬 배우의 영상 매체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7호 2015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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