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니아들은 올 한 해 뮤지컬계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마니아들이 말하는 ‘올해 최고의 순간’을 바탕으로 2015년 뮤지컬계를 돌아본다.
설문방법 |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주관식 설문 조사 실시
설문기간 | 11월 11~16일
응답자 | 92명
최고의 순간
<데스노트>의 성공적 초연
관객이 뽑은 올해의 작품의 영광은 한일 합작 뮤지컬 <데스노트>에 돌아갔다. 주관식 설문의 특성상 각양각색의 답변이 나온 가운데, 올해 기억할 만한 사건으로 <데스노트> 초연을 꼽는 공통된 의견이 가장 많이 나온 것. 높은 득표를 얻은 데는 주연 배우 김준수의 막강한 팬덤이 한몫 거들었을 것이지만, 쟁쟁한 출연진의 원 캐스트 공연 역시 관객들의 마음을 얻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 역할에 서너 명의 배우가 캐스팅되는 멀티 캐스팅 풍조 속에서 국내 정상급 배우들이 두 달간 원 캐스트로 공연을 펼친 것은 이례적인 일. <데스노트>를 이어 관객들이 기억하는 올해 작품으로는 <맨 오브 라만차> 10주년 기념 공연과 초연 창작뮤지컬 <아리랑>이 꼽혔다.
“57회가 전석 매진된 <데스노트>가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은 게 올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홍광호, 김준수, 박혜나, 정선아, 강홍석 같은 쟁쟁한 배우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요. 대형 뮤지컬에서 원 캐스트 공연은 쉽지 않은 결정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컸던 것 같습니다.”
작품 속 이야기가 현실에서
팬들이 기억하는 올해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지난 6월 <팬텀> 공연에서 김지유가 주인공 크리스틴 다에로 무대에 오른 것이다. 김지유는 <팬텀>에 앙상블로 출연하며 크리스틴 역의 언더스터디를 겸하고 있던 배우. 멀티 캐스팅이 이뤄지는 우리나라 공연계에서 언더스터디가 주연 대신 무대에 서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마니아들은 이 순간을 특별하게 기억했다. 특히 주연 배우의 건강 문제로 우연히 무대에 오르게 된 김지유의 사연이 극장에서 의상 보조로 일하던 크리스틴이 프리마돈나를 대신해 무대에 서는 극 중 상황과 맞아떨어져 팬들에게 더 큰 감동을 안겼다.
“6월 28일 <팬텀> 공연에서 언더스터디 김지유 배우가 크리스틴으로 무대에 선 게 기억에 남습니다. 우연히 주연으로 무대에 선 사연 때문에 극 중 팬텀과 크리스틴의 레슨 신에서 ‘당신은 이미 훌륭해. 자신을 믿으세요’라는 대사가 더욱 감동스러웠어요.”
축제의 장 <더 뉴 뮤지컬 콘서트>
올해 열린 각종 뮤지컬 행사 중 기억에 남는 뮤지컬 축제로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더 뉴 뮤지컬 콘서트>다. 지난 7월 13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열린 <더 뉴 뮤지컬 콘서트>는 <더뮤지컬>이 창간 15주년을 기념해 ‘뮤지컬 관객이 즐길 수 있는 뮤지컬 콘서트’라는 모토로 마련한 자리. 강필석, 마이클 리, 정상윤 같은 베테랑 배우들과 백형훈, 이재균, 정욱진 등 뜨겁게 떠오르고 있는 젊은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사실만으로도 뮤지컬 팬들은 흥분했고, 팬덤 뮤지컬의 뮤지컬 넘버로 꽉 채워진 세 시간여의 프로그램은 팬들의 마음을 황홀하게 물들였다. 특히 호응이 뜨거웠던 국내 1대 빌리들의 축하 공연이나 젊은 배우들이 꾸민 <스프링 어웨이크닝> 메들리, ‘헤드윅’으로 완벽히 변신한 마이클 리의 커튼콜은 <더 뉴 뮤지컬 콘서트>의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았다.
“<더뮤지컬> 콘서트는 모든 뮤지컬 갈라 콘서트 중 단연 최고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반가운 얼굴과 그리웠던 공연까지 모두 함께 추억할 수 있어 꿈같았습니다.”
팬덤 뮤지컬의 귀환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작품이 다시 무대에 오르는 것은 언제나 반갑다. 특히 팬덤 뮤지컬의 재공연은 마니아들에게 무척이나 기쁜 소식이기에 올해 최고의 순간으로 특정 작품의 재공연을 뽑는 응답자가 많았다. 답변에서 주로 언급된 작품은 <넥스트 투 노멀>과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씨 왓 아이 워너 씨>. 대부분의 응답자가 귀환이 반가운 애정작으로 세 작품을 동시에 언급했다. 7년여 만에 재공연이 성사된 <씨 왓 아이 워너 씨>는 2008년 초연 당시 독특한 구성으로 팬덤이 형성됐지만, 좀체 재공연 소식이 없어 마니아들의 애간장을 태웠던 작품. 지난 10월에 개막한 이번 재공연은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 회 매진되면서 <씨 왓 아이 워너 씨>를 기다려온 팬들이 많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올해의 의미 있는 순간이라면, 7년 만에 올라온 <씨 왓 아이 워너 씨>를 극장에서 본 날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봐도 굉장히 낯선 작품이었지만, 무얼 보고 무얼 믿을 건지 진실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을 해볼 수 있는 작품이어서 기다린 보람을 느꼈습니다.”
박용호 프로듀서의 컴백
2014년 뮤지컬계에 파장을 일으킨 사건 중 하나는 중견 제작사 뮤지컬해븐이 재정난으로 법정 관리를 신청한 것이다. 대학로의 팬덤 문화를 탄생시킨 제작사이자, 혁신적이고 작품성 강한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온 뮤지컬해븐의 폐업 소식은 특히 마니아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최근 뮤지컬해븐을 이끌었던 박용호 프로듀서가 신흥 제작사 에이리스트코퍼레이션의 공연 사업 부문 대표로 영입돼 마니아들의 기분을 들뜨게 했다. 에이리스트코퍼레이션이 처음 선보이는 작품은 뮤지컬해븐의 대표 공연 중 하나인 <넥스트 투 노멀>. 마니아들은 이를 두고 ‘덕후 아버지의 부활’이라고 명명하며 박용호 프로듀서의 컴백을 반기고 있다.
“앞으로 영영 못 볼 줄 알았던 뮤지컬해븐의 작품들을 다른 제작사에서 새로 올리는 것이 아닌, 박용호 프로듀서가 예전에 올렸던 공연 그대로 다시 보게 돼서 기쁩니다. 뮤지컬해븐의 대표작 <쓰릴 미>를 시작으로 <씨 왓 아이 워너 씨>, <넥스트 투 노멀>이 무대에 올랐으니 관객들의 마음에 소중한 기억으로 남은 다른 작품들도 곧 돌아올 거라 기대합니다.”
아찔하고 안타까운 사건사고
<그날들> 낙하 사고
지난 4월 <그날들> 대구 공연 중 무영 역의 지창욱이 발을 헛디뎌 오케스트라 피트석으로 떨어진 사고. 다행히 지창욱은 크게 다치지 않았고, 재빨리 무대로 올라오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해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안내마네’ 사태
지난 6월 21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하이라이트인 ‘겟세마네’ 장면에서 공연 안내 멘트가 나오는 음향 사고가 발생했다. 뮤지컬 팬덤에서 ‘안내마네’라는 별명이 붙은 이 사건은 공연 종료 후 관람객들에게 초대권 증정 또는 30퍼센트 환불 조취를 취하는 프로덕션의 발 빠른 대응으로 일단락됐다.
<뮤지컬 이야기 쇼 이석준과 함께> 중단
배우 이석준이 MC를 맡아 이끌어온 장수 뮤지컬 토크쇼 <이야기 쇼 이석준과 함께>가 지난여름 81회 공연을 끝으로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2004년 시작된 <이야기 쇼 이석준과 함께>는 오랜 기간 마니아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줬던 뮤지컬 번외 프로그램이기에 많은 팬들이 ‘이야기 쇼’의 중단을 안타까워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7호 2015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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