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유라시아를 위한 첫걸음
국내 최대 복합문화시설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2005년 첫 삽을 뜬 지 10년 만에 지난달 4일 문을 열었다. 총 5개원 중 문화정보원·문화창조원·예술극장·어린이문화원이 시민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특히 예술극장에서는 이날 아시아 각국 작가들의 흥미로운 작품들로 구성된 개관 페스티벌을 열어 눈길을 끌었다. 광주 시민을 비롯한 국내 방문객과 아시아와 유럽의 관계자들에게 공개된 이곳의 모습을 예술극장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아시아 문화 예술의 중심을 꿈꾸는 공간
‘국내 최대 규모’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는 엄청난 규모였다. 옛 전남도청 일대에 지상 4층, 지하 4층으로 지어진 아시아문화전당은 연면적이 16만 1237㎡로 국내 문화 시설 중 가장 컸던 국립중앙박물관(13만 7255㎡)이나 예술의전당(12만 8000㎡)을 넘어서는 위용을 과시했다. 지하 25m에 주요 시설의 90%를 지었지만, 어두운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70여 개에 달하는 천창(채광창)이 옥상 곳곳에 설치돼 건물 내에서는 빛이 쏟아지고 바깥에서는 빛을 내뿜었다. 재미교포 건축가 우규승이 설계한 ‘빛의 숲’이라는 건축 컨셉이 납득되는 외양이었다. 게다가 전당 전체를 덮는 지붕이 없고 지상에 조성된 녹지 공원으로 바로 연결되는 구조는 이곳을 전체적으로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다. 전당이 들어선 광주 동구가 이 도시에서 가장 녹지가 부족한 곳이라는 데서 착안해 건축가가 넓직한 광장과 푸른 공원을 조성한 결과다.
아시아문화전당은 이날 광주 시민을 비롯해 전국에서 온 관광객과 문화 예술인들에게 각 시설의 일부를 처음 공개했다.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를 알리고 공유하는 문화정보원은 아시아 문화에 대한 상호 이해와 담론 생산 기능을 맡게 된다. 아시아의 공연과 전시, 콘텐츠 산업을 주도하는 곳은 문화창조원과 예술극장이다. 문화창조원이 주로 창작과 전시 공간으로 활용된다면, 예술극장은 1,120석 규모의 대극장(극장1)과 512석 규모의 중극장(극장2)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극장1은 극장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격납고 같은 느낌을 줬다. 특히 한쪽 문을 열어 극장 밖 광장으로 개방되게 만든 설계와 객석을 16가지 방식으로 배치할 수 있는 ‘가변형’ 컨셉은 차후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가능해 보였다.
한편 어린이들의 꿈과 상상력을 키워주는 어린이문화원도 이날 선을 보여 가족 단위 방문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5개원 중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민주평화교류원은 11월 말까지 옛 전남도청 건물을 재단장해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아시아문화전당의 공식 개관도 이에 맞춰 11월 말이나 12월 초로 예정돼 있다. 방선규 아시아문화전당장 직무 대리는 “국내 최대 규모라는 지위에 걸맞게 국가 브랜드 문화 시설로 키워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페스티벌로 시작된 ‘진짜 아시아’의 탐구
공개된 4개원이 모두 저마다의 특색을 뽐냈지만 문화 예술 관계자들에게 가장 흥미를 자아낸 공간은 역시 예술극장이었다. 개관을 맞아 3주간의 페스티벌을 마련한 예술극장에서는 개관작 <당나라 승려>를 비롯한 33편의 작품을 마련해 전국의 문화 예술인과 일반 관객을 맞았다. 이 가운데는 예술극장이 제작 또는 공동 제작한 12편의 아시아 작품들도 포함됐다. 개관 후 며칠간 <당나라 승려> 연출가인 대만의 차이밍량 감독 등 다양한 국내외 작가들이 관계자 및 관객과 만났다.
페스티벌 개막 후 이틀간 펼쳐진 공연에서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태국)의 <열병의 방>을 비롯해 사카구치 교헤(일본)의 <제로 리:퍼블릭>, 마크 테(말레이시아)의 <발링회담> 등 동시대 아시아를 집중 조명한 작품들이 관객과 만났다. 뿐만 아니라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봄의 제전>이나 리카르도 바르티스의 <바보기계> 등 유럽이나 남미의 작품들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시아의 조명’이 핵심 컨셉인 페스티벌에서 이처럼 아시아와 그 바깥의 작품들을 함께 배치한 것은, 예술극장이 바라본 ‘아시아’가 외부와 끊임없이 상호 연동하는 열린 개념이기 때문이다. 즉 아시아 예술극장이지만 ‘아시아’라는 지리적 경계에 갇히기보다는 유럽 등 세계 공연 예술계와 소통하며 새로운 아시아를 정의하겠다는 의도다. 그런 점에서 예술극장의 프로그램 성격은 ‘아시아적’이라기보다 ‘유라시아적’인 것에 가까워 보인다.
페스티벌 개막 후 주요 언론에서 작품들이 난해하다는 평가가 이어지는 것도 이들 작품들이 기존의 ‘공연’이라는 형식에 갇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위라세타쿤의 <열병의 방>이 대표적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태국 군부를 비판하는 이 작품은 내용보다 형식에서 파격적이다. 영화 상영으로 시작하는 이 공연에는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 무대와 객석도 맞바뀌었다. 영상이 투영됐던 스크린이 걷히면 뒤에 있던 객석은 프로젝터 빔과 연기가 어우러지는 공간이 된다. 관객들은 무대 바닥에 착석해 이 광경을 지켜보게 된다. 이는 영화감독인 위라세타쿤의 무대에 대한 시각을 충실히 반영한 결과다. 예술극장으로부터 작품을 제안받고 무대라는 공간을 고민하기 시작한 그는 ‘무대에서 보이는 객석’의 느낌에 치중했다고 밝혔다.
예술극장의 개관 공연들은 어렵다기보다는 낯설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오히려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다. 예술극장의 프로그램들을 즐기기 위해서는 관객이 ‘아시아’와 ‘동시대 예술’에 대해 어떤 기대와 준비를 하고 가느냐가 중요하다. <당나라 승려>는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느림의 미학을 견뎌내야만 그 참맛을 깨달을 수 있고, <열병의 방>은 공허하게 반복되는 이국의 풍경을 거쳐야 강렬한 퍼포먼스와 만날 수 있다. 예술극장 속 아시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사전 공부와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이 페스티벌은 연간 예술극장의 제작 활동 중 최고의 작품을 선정해 앞으로 매해 9월에 집중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시간을 멈춘 연극, 기계가 추는 춤 <당나라 승려>와 <봄의 제전>
상업 영화 시스템을 거부하는 ‘은퇴’ 선언을 한 후 차이밍량은 <행자(Walker)> 시리즈를 이어갔다. 자신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배우 리캉성에게 승려 복장을 입히고 거리에서 천천히 걷게 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공통된 컨셉이다. 멈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는 리캉성의 모습에서 카메라가 포착한 것은 ‘시간’이다. 승려를 제외한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움직여서 승려의 느린 걸음은 상대적으로 멈춰진 것처럼 보인다. 가속도를 지향하는 현대사회에서 이 같은 느림의 미학이 지시하는 바는 분명하다. 우리들은 과연 그런 속도의 관성이 아니라 자신만의 속도로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두 사람이 선택한 다음 행선지인 광주에서도 이 질문은 그대로 이어졌다. 정중동의 극치를 보여주는 리캉성의 슬로 모션과 작품의 슬로 텔링은 관객도 승려의 구도에 동행하게 했다. 무대로 설정된 드넓은 흰 종이 위에 적삼을 걸친 승려는 미동도 없이 누워 있다. 잠시 후 목탄을 든 화가가 등장해 광활한 무대에 거미들을 그리고 종이 전체를 목탄으로 새까맣게 칠한다. 이 번거롭고 지루한 작업이 끝나고 나서야 승려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면도를 하고 식사를 한다. 그리고 화가와 스태프들이 그린 선 위를 천천히 걷는다. 이게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공연 내용이다. 제목인 ‘당나라 승려’는 19년에 걸쳐 혈혈단신으로 중국에서 인도까지 걸어서 경전을 가져온 현장을 가리킨다. 차이밍량은 현장의 고행을 매개로 삼아 자신의 속도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또 한 번 묻는다. 이 점에서 그는 여전히 자신의 영화를 이어간다고 할 수 있다. 단지 그 매체가 스크린에서 무대로 옮겨졌을 뿐이다.
한편 로메오 카스텔루치는 발레 뤼스의 <봄의 제전>을 과격하지만 흥미롭게 재해석했다. 이는 마치 100여 년 전 기존의 발레 문법을 해체하며 큰 파장을 일으킨 고전 <봄의 제전>의 태도와 흡사하다. 다양한 장르에서 리메이크될 정도로 강렬한 에너지를 지닌 이 작품을, 카스텔루치는 한층 더 기괴하고 매력적인 퍼포먼스로 재창조했다. 그 중심에는 인간을 대체한 기계와 정체불명의 가루가 있다. 공연 전 무대 위를 지키는 것은 무용수가 아니라 천장에 매달려 있는 기계 장치들이다. 스트라빈스키의 웅장한 음악에 맞춰 장치는 수직과 수평, 회전 등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운용 방식에 따라 끊임없이 분사되는 가루들은 놀랍게도 도축된 소의 뼛가루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거대 종들처럼 좌우 운동을 하다가도 비보잉처럼 회전하며 흩날리는 뼛가루의 궤적은 괴이한 감상을 야기한다.
카스텔루치의 <봄의 제전>은 다른 공연과 달리 관객의 시선을 시종일관 위쪽으로 향하게 한다. 무용수의 몸과 움직임을 대신하는 것이 바로 이 기계 장치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평행 분사의 맥락이 익숙해질 때쯤 장치들은 무대 바닥 쪽으로 하강하며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순간 기계는 커다란 뼈다귀를 울컥 토해내고, 이어서 마치 분노하듯 객석을 향해 가루들을 거세게 흩뿌린다. 분진으로부터 관객의 눈과 호흡기를 보호하기 위해 무대 끝에 설치된 투명 커튼은 거친 파열음과 함께 기계 장치의 절규를 만들어낸다. 현대사회에서 신이자 괴물이 된 기계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그 옛날 <봄의 제전>이 논란을 빚었던 것은 그것이 예술의 진보와 야만 사이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구시대의 종말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카스텔루치의 이 작품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인간을 대체하게 된 기계의 위용과 그로부터 쏟아지는 유기물의 흔적은 진화라는 명목 아래 인간성을 잃어가는 현대문명의 단면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의 창’ 역할 본격 시동
지난달 페스티벌을 마무리한 아시아 예술극장은 이제 시즌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김성희 예술감독이 기획한 예술극장의 콘텐츠는 크게 페스티벌과 시즌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시즌 프로그램은 예술극장의 장기 전략을 반영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10~11월, 다음 해 3~5월 총 5개월 동안 진행된다. 이번 달부터 시작하는 예술극장의 시즌 프로그램은 ‘아워 마스터(Our Masters)’와 ‘아시아 윈도우(Asia Window)’이다. ‘아워 마스터’는 20세기의 공연 예술사에서 예술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킨 거장들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이다. 20세기 공연 예술의 국제적 담론화에 큰 기여를 한 큐레이터를 초청해 그가 거장과 작품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아워 마스터의 첫 번째 큐레이터는 비엔나 페스티벌의 전 예술감독이자 세계 공연 예술의 대모로 불리는 프리 라이젠이다. 그가 선정한 거장들은 로버트 윌슨과 필립 글래스, 팀 에첼스, 크리스토프 마탈러, 윌리엄 켄트리지, 히지카타 다쓰미다. 이들의 공통점은 세계 연극과 무용의 지평을 혁신적으로 확장하고 변화시켰다는 데 있다. 프리 라이젠은 이들의 대표작을 소개하며 공연 예술사에서 큰 파장을 일으킨 혁명적 순간들을 오늘의 광주에 초대한다.
이번 달에 소개되는 아워 마스터의 첫 번째 작품은 로버트 윌슨과 필립 글래스의 <해변의 아인슈타인>(10월 23~25일)이다. 뉴욕타임스가 ‘20세기 최고의 작품’으로 꼽기도 했던 이 작품은 언어를 해체하고 거부하던 윌슨의 초기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별다른 스토리 없이 우주선이나 수학 공식 같은 이미지와 반복되는 음악으로 표현되는 게 특징이다. 2012년부터 세계 투어를 했지만 이번 공연을 끝으로 세트가 폐기되기 때문에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아시아 윈도우’는 아시아의 5인의 기획자들이 각자 선정한 사회적, 예술적 주제들을 담론화하는 프로그램이다. 자카르타의 헬리 미나르티를 비롯해 중국의 요우미, 필리핀의 라야 마틴, 이집트의 타렉 아부 엘 페투, 한국의 장영규 등 각 기획자는 공연, 전시, 심포지엄, 출판 등의 입체적인 형태로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이슈들을 제시한다. 그래서 이는 ‘서구적 시선에 의해 타자화된 아시아 보기’가 아니라 김성희 예술감독이 주장하는 ‘아시아가 아시아를 바라보기’의 효과적인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각국의 다양한 시각과 생각이 공유될 이 과정은 동시대 아시아의 생생한 공연 예술 지도를 그리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축제와 시즌 기간이 아닐 때 예술극장은 작품 제작과 레지던시에 집중할 계획이다. 물론 여기서도 핵심은 ‘아시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예술극장은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작 레지던시’와 ‘담론 레지던시’, ‘서머/윈터스쿨’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시도한다. 광주 지역의 예술성도 예술극장의 관심 대상이다. 예술극장은 광주 지역 작가들의 참신한 관점을 발굴하기 위해 공모를 하는 한편, 신작 제작도 지원하며 동시대의 ‘광주 예술’에 대한 고민을 지속할 예정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5호 2015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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