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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앙증맞은 악동들의 뮤지컬 <마틸다> MATILDA [No.99]

글 |정명주(런던 통신원) 사진 |Manuel Harlan 2011-12-27 6,708

25년 전, 경제 위기 속에 <레 미제라블>의 신화를 만들어 냈던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이 사반세기 만에 다시 맞은 경제난 속에서 어린이 뮤지컬 <마틸다>를 웨스트엔드에 내놓았다. 마치 경제난이 와야만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의 뮤지컬 창작에 추진력이 붙는 듯한 아이러니를 느끼면서, 다시 한번 반갑게 그들의 웨스트엔드 진출을 축하하게 된다. 2010년 11월,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랏포드 어폰 에이븐에서 첫선을 보인 후, 1년여 만에 런던 케임브리지 극장에서 개막하게 된<마틸다>는 유쾌하고 장난스러운 악동 소녀 마틸다가 주인공이다. <마틸다>는 영어권에서는 매우 유명한 아동작가 로알드 달의 동명 동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마틸다는 언뜻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주인공 제제와 프랑스의악동 ‘꼬마 니꼴라’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1930년대의 가난한 브라질 소년 제제에 비하면, 21세기의 영국 소녀 마틸다는훨씬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그늘 없고 유쾌한 슈퍼 꼬마이기는 하다. 초등학교 1학년이면서 벌써 도스트예프스키와 셰익스피어를 읽는 천재 소녀인 그녀에게 최대의 적은 무지한 어른들이다.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고 구박을 일삼는부모님과 이유 없이 공포심을 조장하며 체벌을 일삼는 교장 선생님이 그녀에겐 복수의 대상이다. 물론 꼬마 마틸다의 복수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자신을 구박하고 못살게 구는 아빠를 골탕 먹이기 위해 아빠의 헤어 컨디셔너 통에 모발 탈색제를 넣는다든지, 아빠 모자에 강력 접착제를 발라놓고 완전범죄를 행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 유리 겔라처럼 눈으로 사물을 움직이는 초능력을 갖게 되자 교장 선생님의 엉덩이에 도마뱀을 갖다 붙이기도 한다. 이렇게 못된 어른들을 상대로 복수를 행하는 악동 소녀 마틸다의 이야기는 청량제처럼 시원하고 유쾌한 코미디 무대를 선사한다.

 

 


일곱 살 여주인공의 활약
공연은 김빠지는 튜바 소리의 코믹한 전주로 시작한다. 그 소리에 맞추어 유치원 꼬마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우리 아빠가 그래요, 나는 미라클이라고, 우리 아들은 특별한 꼬마라고, 나는 왕자라고” 노래하는 오프닝 넘버 ‘미라클(Miracle)’이 신나게 막을 연다. 흥겨운 동요풍의 리듬으로 시작하는 이 첫 번째 뮤지컬 넘버는 나중에 부모들이 합세하면서 점점 요란한 합창곡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이어서 주인공 마틸다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는 연극적인 내용을 담아내면서, 다양한 스타일과 멜로디로 여러 번의 변화를 거듭하는 흥미로운 구조를 선보인다. 의사 선생님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마틸다가 태어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마추어 볼륨 댄서였던 어머니가 세계대회 준결승 출전을 앞두고 소화 불량으로 병원에 갔다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이다. 의사 선생님이 새 생명을 찬양하는 부분은 갑자기 인류의 탄생을 운운하는 과장된 가사와 함께 1980년대 팝송풍의 로맨틱 발라드 멜로디로 바뀐다. 그리고 마틸다의 부모님이 원하지 않는 둘째 아이를, 게다가 딸을 갖게 된 것을 반가워하지 않는 소리가 히스테리컬한 리듬과 멜로디로 이어진다. 그다음에 반주가 거의 사라지면서, 오프닝 넘버의 마지막 부분이 장식된다. 아주 기죽은 목소리로 “우리 엄마는요, 나더러 버러지래요, 우리 아빠는 나더러 한심하대요”라고 노래하는 여자아이, 바로 마틸다의 등장이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첫 곡이 끝날 무렵 관객들의 가슴을 짠하게 하면서 등장한 이 꼬마가 바로 이 무대의 주인공이다.


이번 프로덕션에는 무려 네 명의 마틸다가 맹활약한다. 클레오 드미트리우, 제마이마 이튼, 소피아 키엘리, 그리고 엘리노어 워팅튼 콕스가 마틸다 역으로 번갈아 출연하고 있다. 모두 일곱 살 남짓한 어린 소녀들이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 <레 미제라블>, <오즈의 마법사>, <조셉 앤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 - 각각 이름을 언급한 순서에 맞게 - 등을 통해 한 번 이상의 무대 경험이 있는 배우들이다. 원래 영국에서는 어린이들이 출연할 때 어린이 보호법에 따라 트리플캐스팅을 하는 것이 상례이기는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만 6~7세의 여자 주인공이 거의 공연 내내 어려운 대사를 소화하며 무대를 지켜야 하기에 백업으로 한 명을 더 추가한 듯하다. 마틸다를 제외한 나머지 여덟 명의 어린이 역할 역시 모두 트리플 캐스팅이니, 이번 프로덕션에는 무려 스물여덟 명의 어린이들이 교대로 출연한다. 가히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에 의한 무대라고 할 수 있다.

 


마틸다는 세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신문을 보면서 혼자 글을 깨우치고, TV만 보는 부모님 때문에 집안에 책이 한 권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으며 독서 삼매경에 빠져 사는 꼬마이다.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는 책이고,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도서관이다. 세 살 무렵부터 엄마가 그녀를 버려두고 빙고 게임을 하러 외출하면마틸다는 혼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그래서 그녀는 도서관의 사서 아줌마와 가까워진다. 그리고 마음 좋은 사서미세스 펠프스의 낙은 도서관에 놀러 온 마틸다가 지어낸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최고의 부모와 사랑 속에 태어날 아기를 상상하며 마틸다가 지어내는 것은 스턴트 묘기를 하는 젊은 커플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이 상상의 이야기는 마틸다가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지어내는 것이라, 매번 중요한 대목에서 ‘그다음은 나도 잘 몰라요, 아직 생각 안 해봤어요’라는 허탈한 대사로 끝난다.

 

 

공포의 학교를 향한 복수
마틸다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무대디자이너인 롭 하웰은 프로시니엄 주변을 온통 책으로 장식하고, 무대 곳곳에
알파벳 블록들을 배치해 놓았다. 즉, 이번 공연의 주요 화두는 글자와 책이다. 그래서 입학식 날, 첫 등교를 하는 1학년 꼬마들이 학교 앞에 도착할 때, 상급생들은 ‘스쿨 송’을 부르면서 교문에 알파벳 블록을 끼워 넣으며 아래위로 철문을 올라타고 다닌다. A부터 Z까지 알파벳에 맞춰 단어를 말하면서 그때마다 블록을 하나씩 끼워 넣고 그 위로 뛰어내려 착지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기발한 안무와 오랜 연습이 이루어낸 명장면이다. 그리고 이렇게 단어 실력을 과시하는 상급생들 앞에서, 겁을 잔뜩 집어먹은 목소리로 ‘나는 미라클’이라고 첫 곡의 가사를 반복하는 신입생 꼬마들은 더없이 사랑스럽다.


이렇게 상급생들이 군기를 잡는, 첫인상이 좋지 않은 수상한 학교에 마틸다와 여덟 명의 꼬마들이 입학하게 된다.
알고 보면 이 초등학교는 공포 교육의 현장이다. <올리버>에 나오는 무시무시한 고아원의 분위기를 닮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는 장본인은 바로 올림픽 해머던지기 선수 출신의 덩치 큰 여자 교장 선생님이다. 교육보다는 훈육을, 그리고 강제적인 질서와 원칙을 강조하는 미스 트렌치벨 교장 선생님으로 남자 배우 버티 카벨이 열연한다. 돈마웨어하우스 극장의 뮤지컬 <퍼레이드>를 비롯하여 영국의 주요 연극 무대에서 활동해온 중견 배우 버티 카벨은 이유없이 아이들을 혼내고 벌주는 이상한 여자 교장 선생님을 맛깔나게 연기한다. 뒤로 깔끔하게 틀어 올린 머리를 하고, 어깨가 떡 벌어진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깍쟁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악독한 여사감 같은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미니스커트에 가까운 체육복을 입고 나와 투포환 선수처럼 여자아이의 머리채를 잡아 공중으로 집어던지고, 남자 꼬마의 귀를 있는 대로 잡아당기는 장면은 폭소를 자아낸다. 연극성을 살린 그의 노래 실력은 대단하진 않지만 연기로 모든 것이 만회된다. 국가대표 해머던지기 선수로서의 과거를 자랑하며 원칙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노래, ‘해머(The Hammer)’는 그의 도도한 설교 투의 솔로가 아이들의 귀여운 코러스와 섞여 드는 흥미로운 곡이다. 또한 자신의 독재에 반항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훈육의 중요성을 노래하는 ‘반항의 냄새(The Smell of Rebellion)’ 역시 날카로운 목소리로 노처녀의 히스테리를 쏟아내는 연극적인 솔로 곡이다.

 


<마틸다>의 또 다른 주인공은 마틸다의 담임선생님인 미스 허니이다. 그녀는 입학 첫날부터 마틸다의 놀라운 글 읽기 실력과 산수 능력을 알아내고 그녀를 4학년으로 올려 보내려 하지만, 유난히 미스 트렌치벨 교장 선생님을 무서워해 그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힘들어 한다. 아주 어렵게 교장 선생님께 제안을 해보지만,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는 야단만 맞고 바로 교장실에서 쫓겨난다. 그래서 미스 허니는 마틸다의 집에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볼륨 댄스를 배우느라 정신없는 마틸다의 어머니는 여자애가 공부 잘해서 무엇에 쓰냐고, 외모나 가꾸는 게 낫다며 콧방귀를 뀐다.


이렇게 하는 일마다 잘되지 않는, 소심하고 연약한 담임선생님 역으로 로렌 워드가 열연한다. 가녀린 몸매에 고음의 미성을 가진 여배우 로렌 워드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를 넘나들며 활동해 온 중견으로, 런던에서는 <사운드 오브 뮤직>, <버자이너 모놀로그> 등에 출연했다. 그녀가 교장실 문 앞에서 망설이며 부르는 노래 ‘한심해(Pathetic)’를 들으면 손드하임풍의 빠른 소토보체를 잘 소화해내는 그녀의 노래 실력이 믿음직스럽다. 그리고 너무 특별한 아이 마틸다의 재능을 아까워하며 부르는 곡 ‘그 작은 아이(This Little Girl)’는 감미롭고 서정적인 선율의 솔로로 그녀의 미성이 돋보인다. 이외에도 마틸다에게 불러주는 노래 ‘마이 하우스(My House)’에서는 드디어 소심함을 벗고 대단한 열창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로렌 워드가 열연하는 미스 허니 선생님은 극 중에서 유일하게 마틸다의 편인 동시에, 마틸다로 인해 잃어버린 꿈과 재산까지 되찾게 되는 인물이다. 왜냐하면, 나중에 알고 보니 교장 선생님 미스 트렌치벨이 바로 미스 허니의 모든 것을 앗아간 나쁜 고모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마틸다가 초능력을 이용해 교장 선생님을 영원히 사라지게 해주기 때문이다.

 


악동들의 세계를 구현한 무대
이번 작품은 창작극 전문 작가로 활동해 온 작가 데니스 켈리가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과 수년에 걸친 워크숍을 통해
개발한 작품이다. 또한 영국 창작뮤지컬의 선두주자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매튜 워처스의 연출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뮤지컬 <반지의 제왕>에서 환상적인 스펙터클을 선보였고, 최근 오픈한 <사랑과 영혼>에서 일루
전 아티스트와 함께 화려한 무대를 만들어낸 그는 또 하나의 창작뮤지컬 <마틸다>를 통해 귀여움과 장난기가 가득
한 악동들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더불어 <빌리 엘리어트>의 인상적인 안무로 많은 상을 받았던 피터 달링이 다시 한 번 꼬마들을 데리고 기억에 남을 명장면들을 만들어냈다. 꼬마들이 장래 희망을 말하는 ‘내가 자라면(When I Grow Up)’에서, 천장에서 내려온 네 대의 그네에 아이들이 오르내리는 장면은 특히나 사랑스럽다. 순간적으로 아이들 대신 교복을 입은 덩치 큰 어른들이 그네를 타고 관객 앞으로 쑥 튀어나오면 객석에선 폭소가 터지기도 한다. 또한, 교장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아이들이 책상 위에 올라가 발을 구르면서 분노의 코러스를 형성하는 장면에서는 꼬마들을 데리고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닮은 이미지를 시도한 것이 인상적이다. 특히 출연진들이 어린 점을 감안하여, 복잡한 춤 동작보다는 팔다리를 쭉쭉 뻗는 체조에 가까운 단순 동작들을 이용하여 꼬마들의 춤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데서 안무가의 기지가 돋보였다. 극의 후반, 긴장감이 떨어지기 쉬운 부분에서는 꼬마들이 교장 선생님과 공포의 뜀틀
뛰어넘기를 하는 장면을 통해 박진감 넘치는 코믹 효과를 내기도 했다.


<마틸다>는 음악적으로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넘나드는 작품이다. 음악과 가사를 맡은 팀 민친은 잘 알려진 싱어송 라이터로 뮤지컬 작곡 경험은 <팝-비극적인 뮤지컬 블랙 코미디>라는 프린지 작품 하나밖에 없다. 대신 TV와 영화에서 작곡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중적인 선율을 구사하는 데 능한 그는 이번 작품에서 실로 많은 음악 스타일을 시도한다. 동요풍의 단순한 멜로디부터 손드하임 식의 대사형 노래, 팝송, 서정적인 발라드, 흑인 꼬마를 위한 소울, 마틸다의 어머니를 위한 살사풍의 댄스곡까지 그 범위가 상당히 넓다. 심지어 오프닝 넘버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 곡 안에 여러 가지 스타일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래서 팀 민친이 작곡한 <마틸다>의 뮤지컬 넘버 중에는 시작 부분만 들어서는 어떻게 끝날지 종잡을 수 없는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한 곡들이 더러 있다. 너무 다양한 시도로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지만, 주인공 마틸다가 부르는 동요풍의 곡들 중에는 극과 멜로디가 어우러지면서 가슴을 짠하게 하는 순간들이 없지는 않다. 부모의 구박에 참다못한 마틸다가 못된 아이가 되는 한이 있어도 인생을 고쳐 보겠다며 악동이 되기를 다짐하는 노래 ‘노티(Naughty)’는 천진난만한 내용의 가사와 선율이 조화를 이룬 귀여운 솔로 곡이다. 또한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 교장 선생님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진 것 같다고 부르는 마틸다의 솔로 ‘조용해(Quiet)’는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를 음향효과로 넣어 정적인 분위기를 극
대화했고, 이것이 매우 인상적인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마틸다>는 일곱 살 남짓한 주인공 마틸다와 여덟 명의 꼬마들이 열연한 대단한 작품이다. 그 많은 대사를 다 외우고 온몸을 던져 연기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한순간도 지루할 틈 없이 장난기 가득한 장면 구성과 빠른 전환 속에 아이들의 귀여움을 극대화한 연출이 힘을 발한다. 무엇보다 원작 동화의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그대로 무대 위에 잘 살아났고, 특히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마틸다 역의 꼬마 여배우가 2시간 반 내내 종횡무진 하는 데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예술성은 차치하고라도, 초등학교 교실을 무대로 마틸다와 그녀의 1학년 친구들이 온몸으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 마냥 사랑스러운 뮤지컬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9호 2011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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