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모험의 화려한 세상을 담은 가족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가 지난 3월 1일 런던에서 성대하게 오픈했다. 주디 갈란드가 열연한 도로시로 잘 알려진, 1939년 뮤지컬 영화에 기초한 이번 <오즈의 마법사>는 세계적인 뮤지컬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창작자 및 제작자로서 참여한 신작이다. 그는 연출가 제레미 샘즈와 함께 뮤지컬 대본을 썼고 오랜 작사가 파트너, 팀 라이스와 함께 3곡 정도의 추가곡을 만들어 삽입하였다. 또한 이번 프로덕션은 BBC와 연계한 티브이 오디션을 통해 주인공을 물색하는 방식으로 전국적인 사전 홍보를 시도한 세 번째 케이스이기도 하다.
웨버의 또 다른 야심작
제작자인 웨버와 미디어 파트너인 BBC가 처음으로 연계하여 시도한 티브이 뮤지컬 오디션 프로그램은 <조셉 앤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의 주인공 조셉을 발탁하기 위한 `애니 드림 윌 두` Any Dream Will Do 가 그 첫 번째로서 리 메드 Lea Mead 라는 국민스타를 배출하여 성공신화를 이룬 바 있다.
이어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을 찾는 프로그램, `마리아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How Do You Solve a Problem Like Maria? 에서는 코니 피셔 Connie Fisher 가 우승을 거두었고, 그녀의 출연은 곧 매진사례를 기록하며 흥행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번 <오즈의 마법사>의 경우도, 제작을 앞두고 BBC에서 방영된 `오버 더 레인보우`를 통해 발탁된 다니엘르 호프 Danielle Hope 를 주인공 도로시로 기용하면서 티브이 시청자들의 열열한 성원을 입었고, 3월 1일 공연이 오픈하기도 전에 200억원에 달하는 예매를 기록했다.
티브이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다니엘르 호프의 출연과 함께 크게 화제를 모은 것은 슈퍼스타급의 배우 마이클 크로포드와 한나 와딩험의 출연이다. 마이클 크로포드는 <오페라의 유령>의 오리지널 프로덕션에 팬텀으로 출연했던 전설적인 배우로서, 마법사 오즈 역을 비롯하여 마블 교수 등, 1인 4역을 맡았다. 서쪽나라의 사악한 마녀 역을 맡은 한나 와딩험은 재작년 손드하임의 <소야곡> Little Night Music 영국 프로덕션에서 데지레 역을, 이어서 작년 <숲속으로>Into the Woods 에서 마녀 역을 열연하여 2년 연속 로렌스 올리비에 상 뮤지컬 최우수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스타이다.
이러한 대배우들을 조역으로 캐스팅하면서 이들의 가창력을 선보이기 위해,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작사가 팀 라이스는 원작 뮤지컬에 없는 추가곡을 삽입했다. 미스터 마블이 부르는 `원더즈 오브 더 월드` Wonders of the World 와 서쪽나라 마녀의 주제곡, `레드 슈즈 블루스`를 새로 썼다. 이외에도 도로시를 위해서는 `아무도 날 이해 못해` Nobody Understands Me 가 새로 삽입되었고, 오즈의 마법사 `마녀의 빗자루를 가져 와` Bring Me the Broomstick 는 음악만 새로 편곡했다.
도로시의 집이 폭풍에 날아가는 장면을 위한 배경음악으로 `트위스터` The Twister 라는 제목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을 새로 작곡했고, 마지막 부분에 합창곡으로 `페어웰 투 오즈` Farewell to Oz 를 삽입했다. 이러한 신곡들은 헤럴드 알렌 작곡, E.Y. 하버그 작사로 씌여진 원작영화의 명곡들, `오버 더 레인보우`, `우리는 마녀를 만나러 간다` We`re Off To See The Wizard 등의 단순하고 경쾌한 선율과 나름의 조화를 이루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마녀와 난쟁이, 그리고 에메랄드 시티
웨버의 18번째 뮤지컬인 <오즈의 마법사>는 무엇보다 스펙테클한 무대가 자랑인 공연이다. <캣츠>, <오페라의 유령>,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 등을 통해 뮤지컬 역사에 길이 남은 대형 무대를 선보여왔던 웨버 답게, 이번 공연 역시 형형색색의 의상과 무대의 화려함이 가득하다.
회전하는 원형무대를 중심으로, 무대 및 의상 디자이너 로버트 존스가 재현해낸 신기한 세상은 눈을 위한 즐거움을 한껏 제공한다. 그림책처럼 선명한 초록과 노랑, 빨강이 아기자기하게 어루어진 먼치킨랜드, 노란색 조명등으로 무대바닥을 현란하게 밝히는 `노란 벽돌길`, 회전무대가 돌아가면서 나선형 계단처럼 지하에서 올라오는, 얼굴만한 크기의 빨간 양귀비꽃이 만발한 꽃밭(포피랜드), 아름다운 초록빛의 에머랄드 시티, 그리고 같은 초록이지만 무시무시한 느낌을 주는 서쪽나라 마녀의 화려한 나선형 계단식 성 등등, 도로시가 여행하는 세상은 현란한 색채를 자랑한다.
서쪽나라의 초록마녀와 착한 마녀 글린다의 등장 역시 장관을 선사한다. 눈이 부시도록 반짝거리는 은색 드레스로 무대 전체를 뒤덮으며 공중에서 하강하는 착한 마녀 글린다의 등장은 감탄을 자아낸다. 또한 무대 바닥에서 솟아오르기도 하고, 극장 천정에서 발코니 석쪽으로 와이어를 타고 뚝 떨어져 관객들을 놀래게 하는 서쪽나라 마녀의 등장은 매 장면마다 놀라움을 선사한다. 이 밖에도 도로시를 꿈의 세상으로 데리고 가는 켄사스 폭풍 장면은 영상 아티스트 존 드리스콜의 디자인으로 멋진 프로젝션 이미지를 선보인다. 현실감 있는 회오리 바람의 이미지와 우주에서 지상으로 추락하는 시각의 영상이 오버랩되면서 인상적인 볼거리를 만들어 낸다.
이 외에도 어린 관객들이 감탄할 만한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다양하다.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사랑스러운 흰 강아지, `토토`이다. 첫 등장 부터 큰 박수와 감탄의 한숨을 불러오는 테리어 종의 강아지, 토토는 거의 공연 내내 주인공 도로시와 함께 무대에 남아 있기에, 이번 공연을 위해 4마리나 캐스팅했다고 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연습을 했는 지, 큐를 받고 무대 밖으로 뛰어나갔다 들어오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데, 매번 타이밍이 정확하다. 또한 도로시 주변을 뱅뱅 맴돌면서 다른 인물과 대화 중인 그녀의 시선을 끌려고 노력하는 강아지의 모습은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그럴 때 마다 관객들은 감탄을 자아내며 큰 박수로 강아지의 연기를 칭찬한다.
그 다음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먼치킨랜드의 아기배우들이다. 3-4세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아장아장 걸어다느는 3명의 꼬마들, 그리고 그 보다 조금 큰 초등학교 저학년생과 고학년생 등 10명의 어린이들이 앙상블로 출연한다. 총 3팀으로, 30명이 일정별로 번갈아 공연을 하는 어린이 앙상블은 도로시가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모험세상, 먼치킨랜드의 난장이들이다. 그들의 앙증맞은 춤과 노래는 극의 초반부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볼거리의 향연
도로시가 모험이 가득한 세상에서 만나게 되는 신기한 친구들, 뇌가 갖고 싶은 허수아비, 심장이 갖고 싶은 양철 나무꾼, 용기가 없는 겁쟁이 사자 등은 극적으로는 중요한 인물들이지만 시각적으로는 위에 언급한 부수적인 인물들에 비해 취약한 편이다. 성인배우들인 폴 키팅, 에드워드 베이커, 데이비드 갠리가 캐릭터 인형을 뒤집어쓴 모습으로 연기한다. 얼굴이 가려져 보이지 않기에 표정연기 보다는 온 몸을 이용하여 제스추어를 사용한 연기를 시도했다.
셋 중에 가장 돋보인 것은 겁쟁이 사자 역의 데이비드 갠리로, 탁월한 유머감각을 발휘하여 겁 많은 사자를 정이 가는 입체적인 인물로 연기해 내었다. 서쪽나라의 나쁜 마녀, 한나 와딩험 역시 코를 붙이고 초록색으로 짙게 분장하여 얼굴을 알아볼 수 없지만, 색깔있는 말투와 특색있는 웃음소리로 맛깔나는 악역을 연기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특히, 무대 천정에서 객석 쪽으로 플라이를 타고 뚝 떨어지면서, 1층 및 2층 객석 한가운데 나타나는 장면이나, 도로시가 물을 뿌리자 무대 구멍 밑으로 빠져 내려가면서 녹아내리듯 사라지는 장면은 관객들을 매료하며 큰 박수를 자아냈다.
무엇보다 한나 와딩험의 매력이 최고로 발산된 장면은 마녀의 주제곡, `레드 슈즈 블루스`를 열창하는 장면이었다. 무대장치에 있어서도, 으시시한 초록색 숲 속에 자리한, 아름답게 장식된 나선형 철제 계단 모양의 마녀의 성은 멋진 그림을 만들어 냈다. 그 계단 위에 서서 한나 와딩험이 블루스 곡을 온 몸으로 열창하는 신은 공연 중 가장 뮤지컬다운 명장면이 되었다.
많은 기대 속에 도로시 역을 연기한 다니엘라 호프(18세)는 나무랄 데 없는 연기력과 안정된 가창력을 선보였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느낌의 배우이기에, 원작 영화에서 주디 갈란드(당시 16세)가 보여주었던 귀여움과 당돌한 매력은 찾아보기 어려워,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대배우 마이클 크로포드의 경우는 출연 자체가 존경의 박수를 자아내어, 마블 교수 역으로 첫 등장을 하는 순간, 이미 객석에서 존경의 박수를 쏟아져 나왔다.
오즈의 마법사의 성의 수위 역으로 출연하는 순간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 듯 했고, 오즈의 마법사 역을 연기하는 순간에는 역시 대가다운 편안함을 자랑했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단역을 포함해 총 1인 4역을 하는 활약을 하였지만, 사실 그 모든 역할이 전체적인 스토리 면에서 미미한 정도에 불과하여, 대배우의 재능이 그런 역할을 하기에는 아깝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전체적으로 공연은 화려한 볼거리를 아낌없이 제공했으나, 시각적인 화려함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등장인물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키워가는 것을 방해하기도 했다. 달리 말하면, 무대와 의상에 가려 배우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공연이 될 위험을 가지고 있다. 물리적으로 서쪽나라 마녀, 그리고 도로시와 함께 모험을 겪으며 친구가 되는 세 인물들은 가면으로 얼굴이 가려졌거나, 알아 볼 수 없는 정도 진한 분장을 했다. 물론 이는 분장상의 선택이고, 표정연기가 제한된 상황을 과장된 몸짓으로 보완하고 있다. 그러나, 그 표현에 있어 등장인물의 유머와 재치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관객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고민과 희망사항은 상대적으로 절실하지 않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결말부분에서, 세 명의 친구들이 오즈의 마법사의 입을 통해 그들이 애타게 원하던 희망사항은 이미 다 가지고들 있는 것이라고 확인받는다. 즉, 생각하는 뇌를 원하던 허수아비는, 이미 훌륭하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거로, 그가 원하던 인공뇌 대신, `생각학` 명예 박사학위를 받고 , 양철 나무꾼은 심장대신 탁상시계를, 겁쟁이 사자는 용맹훈장을 수여받는다. 이 장면은 주제면에서 결정적인 메시지를 제공하며 감동을 자아내는 순간이어야 한다. 관객들의 입장에서, 이 순간은 이제 모든 고생을 끝내고 보상 받는 주인공들을 위해 진심어린 박수를 쳐야할 순간인 것이다. 그러나, 공연 내내 현란한 무대장치와 시각적 효과에 현혹되면서, 주인공들의 내면이나 바램보다는 볼거리와 유머나 장난기를 통한 웃음을 기대하도록 훈련된 관객들은, 정작 감동의 순간에서 감동을 경험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제레미 샘즈의 연출은 한 편으로는 유머와 재치, 시각적 표현력을 극대화한 무대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부수적인 효과를 좇다가 본질적인 부분인 등장인물들과 관객들의 공감관계를 약화시키는 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는 이미 어느 정도 성공을 약속 받은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어린이 연령층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된, 공연계의 신데렐라, 다니엘라 호프의 인기가 이를 약속한다. 지난 번 티브이 오디션을 통한 스타들이 출연했던 <조셉…>과 <사운드 오브 뮤직>이 그랬듯이, 적어도 앞으로 1-2년간, 수많은 영국관객들이 그녀의 무대를 직접 보기 위해 올 것이다. 또한 공연장을 방문한 가족관객들이 지르는 탄성과 함성이 관객의 만족도를 어느 정도 증명한다. 설사 극적 전개 상 지엽적인 부분에 해당되는 순간일 지언정, 성의와 정성을 다한 다양한 시각적 효과와 볼거리에, 특히 예기치 않은 깜짝 효과에 관객들은 기쁨의 탄성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게 화려함을 칭찬하는 박수는 계속될 것이고, 입소문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꽤 `대단한 볼거리`를 위해 극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1호 2011년 4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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