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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레베카> 신영숙, 무대, 생의 한가운데서 [No.113]

글 |나윤정 사진 |김호근 2013-02-13 5,171

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가운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 아이의 눈을 보자 100퍼센트의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배우 신영숙과의 인터뷰 내내 이 말이 계속 떠올랐다. 100퍼센트의 인생! 어제는 <황태자 루돌프>의 라리쉬 부인으로, 오늘은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으로 무대 위에서 자신을 100퍼센트 발현하는 배우 신영숙. “진실은 약해 보이나 언제나 강하다”라며 무대 위 진실의 힘을 믿는 그녀의 눈은 맑고 투명했다.

 

                               

 

 

매력적인 전환점


<레베카>를 보고 댄버스 부인은 배우 신영숙에게 꼭 맞는 옷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작품은 신영숙에게 배우로서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 같은데요?
네. 요즘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세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고요. 무엇보다 <레베카>란 작품이 참 잘 만들어졌어요. 잔잔하고 고급스러우면서도 그 안에 담긴 반전이나 메시지들이 무척 맘에 들어요. 맘에 드는 최고의 작품에서 멋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운이에요?(웃음) 더 완벽한 댄버스 부인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무대 위 댄버스 부인이 뿜어내는 존재감이 대단해요. 어디서 그런 카리스마가 나오는 거죠?
모르겠어요.(웃음) 10년 넘게 무대에서 쌓은 연륜의 카리스마도 있고, 댄버스 부인 자체가 갖는 카리스마도 있을 거예요. 댄버스 부인이 뭐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파고드는 사람이니깐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특유의 에너지가 있잖아요. 내면에서 나오는 그로테스크하고 스산한 분위기가 그녀의 아우라를 만드는 것 같아요.


처음 댄버스 부인이란 인물을 접했을 때 느낌이 궁금해요.
3년 전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가 제게 목소리가 딱 댄버스 부인 역할이란 말을 했어요. 그래서 음원을 찾아 듣게 됐는데 정말 음색이 저랑 비슷했어요. 흥미로웠죠. 그래서 이 역할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작품이 저랑 잘 맞았기 때문에 연습 과정도 재밌었죠 . 


특히 작품의 어떤 부분이 나와 잘 맞는다고 느꼈나요?
음색, 그리고 작품의 방향이요. 사실 오스트리아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이 그로테스크하게 설정된 면이 있어요. 반면에 로버트 요한슨 연출은 댄버스 부인이 시종일관 그로테스크하기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면모가 가미되길 원했어요. 댄버스 부인이 레베카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다는 이유를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런 부분들이 저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제가 한 사람을 집착할 정도로 사랑한 경험은 없지만 사람에 대한 의리나 신념이 강하거든요. 그런 면들을 확장시키고 이끌어내서 역할과 접목시키다 보니 댄버스 부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죠.


댄버스 부인의 넘버 ‘레베카’가 무척 인상적이에요. 섬뜩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지는데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교차되어 있는 듯한 노래인데 실제로 부를 때 어떠세요?
많은 감정들이 교차하죠. 우선 레베카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야 돼요. 댄버스 부인이 그렇게 된 건 레베카에 대한 사랑 때문이거든요. 한편으론 레베카를 보면서 어떻게 저런 여자가 있을까? 속으로 일말의 질투심도 있었겠죠. 내 자식 같은 마음도 있었고, 애인 같은 마음도 있었을 듯해요. 레베카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다 보니 그 모든 감정들이 ‘레베카’ 넘버에 표현되는 거죠. 작품에서 이 노래가 네 번 반복돼요. 첫 번째는 그리움의 레베카, 두 번째는 승리의 레베카, 세 번째는 위협의 레베카, 네 번째는 배신의 레베카. 같은 멜로디로 조금씩 변형한 노래인데도 그 안에 품고 있는 의미들이 다 다르죠. 그래서 반복이 돼도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큰 힘이 되기 위한 노력


<레베카> 프로그램 북을 보면 옥주현 씨가 “공연 중에도 대기실에서 늘 헤드폰을 끼고 악보를 보며 공부하는 영숙 언니!”라고 쓴 구절이 있어요. 노력파 배우의 면모가 느껴지는데요?
작품을 시작하면 일단 열심히 해요. 전 열심히 안 하면 못하는 배우거든요. 끼만 가지곤 안 되는 배우라 열심히 해야만 해요. 후배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면 서슴지 않아요. 혹여 연습실에서 추한 모습을 보여도 무대에서 베스트를 보이기 위함이니 부끄럽지 않죠. 관객 앞에 최선의 모습으로 서기 위해 연습 과정에서 더 많은 공부를 하려고 노력해요.


<황태자 루돌프>에서 <레베카>로 쉼 없이 공연을 이어가고 있어요. 게다가 라리쉬 부인과 댄버스 부인은 극과 극의 인물인데요. 연이어 두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나요?

쉽지 않은 일이죠. 작품을 시작하면 일단 거기에 몰두해서 다른 일이 잘 안 되잖아요. 그래서 두 개의 에너지, 두 번의 반복 연습이 필요해요. 라리쉬 부인을 연기해야 할 때는 공연 세 시간 전부터 기분을 업시켜서 계속 라리쉬 부인의 모습으로 살아요. 그리고 댄버스 부인으로 무대에 올라야 할 땐 그 전부터 나의 어두운 면을 끌어내고요. 그만큼 2배의 노력이 필요했어요.


어느덧 14년 차 배우에요. 유학 준비를 하던 중 우연히 참가한 <명성왕후> 오디션이 지금의 신영숙을 있게 했는데요. 우연에서 운명을 느낀 가장 큰 계기가 궁금해요.
처음에는 그냥 해볼까 하고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딱 뮤지컬 무대에 섰는데 ‘이거구나!’ 싶었죠. 직접 해보니깐 느껴지는 거예요. 내가 해야 할 일이 뮤지컬이구나! 운명적이었던 것 같아요. 제 자신에게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뮤지컬 배우로 산다는 것. 제겐 큰 축복이죠.


매번 인상적인 무대를 선보였지만, 특히 <모차르트!>의 발트슈타텐 남작 부인이 기억에 남아요. ‘황금별’이 대중에게 배우 신영숙의 존재를 깊이 각인시켜 준 넘버잖아요.
‘황금별’은 힐링 음악 같아서 관객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멜로디와 가사,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용기를 북돋아 주잖아요. 이런 노래를 부른다는 건 큰 축복이죠. ‘황금별’은 영원히 부를 거예요. 언제라도 누군가 지쳐있을 때 그들 한 명 한 명 앞에서 최선을 다해 불러주고 싶은 노래에요. 나중에 ‘황금별’처럼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힐링 음악이 담긴 음반도 내고 싶어요. 전 항상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인생을 꿈꾸거든요. 그러려면 제가 더 강해져야 되겠죠? (웃음)

 


 

느려도 오래갈 수 있도록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 감각을 타고나신 것 같아요. 악기도 잘 다루신다고요?
잘 다루진 못하고(웃음) 악기를 좋아해요. 악기마다 품고 있는 매력들이 좋아요. 고등학교 때부터 통기타를 쳤고, 아코디언도 배웠어요. 그리고 초등학교 땐 피아노를 정말 사랑했죠. 또 어린 마음에 피아노 치며 노는 것이 재밌으니깐 학교에 가서도 만날 나서서 노래를 불렀어요. 그러다가 학교 노래자랑 대회에 참가하게 됐는데, 그때 선생님이 저에게 배로 노래 부르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죠. 그리고 다음 날 상을 타게 됐어요. 그 계기로 음악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됐어요. 지금도 피아노는 잘 쳐요. 악보를 보면 바로 익히니깐 피아노를 배워둔 게 지금 배우로서, 또 교수로서 제게 큰 도움이 돼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시죠.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기본이 확실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깨끗해야 한다는 것. 목소리를 쥐어짜면 노래를 잘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어도 가짜 발성이기 때문에 오래 가지 못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항상 빨리 가려고 하지 말라고 당부하죠. 느리게 가더라도 깨끗하고 오래 갈 수 있는 기본을 배워야 하거든요. 나쁜 버릇이 없는 깨끗한 발성을 항상 중요하게 강조해요.


느리게 가더라도 오래 갈 수 있는 기본을 배우라는 것. 이 말은 신영숙 씨의 배우관과도 연결될 것 같은데요?
“거짓은 강해 보이나 언제나 약하다. 그러나 진실은 약해 보이나 언제나 강하다.” 전 이 말이 참 인상적이에요. 그래서 강한 진실이 되고자 노력해요.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기보다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작고 느리지만 강한 진실을 찾고 싶어요. 그래서 배우로서도 늘 제가 가고 싶은 길을 가려고 해요. 사람들이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내가 이것을 통해 배우로서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다면 그대로 가는 거죠.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떳떳함을 찾기 위해 느리게 가기도 하고, 엉뚱하게 가기도 해요. 그래서 가끔 지치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게 제 배우 인생인 거 같아요.


<셜록홈즈> 같은 경우 직접 정보를 찾아서 오디션에 참가했다고 들었어요. 창작뮤지컬에도 관심이 많으시죠?
네. 많아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배우에겐 이미지가 중요하다. 신영숙이란 배우가 어떤 이미지를 쌓고 가느냐는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제가 그런 면에 좀 둔감한 거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있어요. 제가 엄청난 성공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창작뮤지컬 같은 경우 여러 가지 위험 부담이 있죠. 내가 어떤 캐릭터를 갖게 될지 모르는 거고, 작품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죠. 하지만 위험 부담이 있다고 안 하면 누가 할 건가요. 그 작품에서 내 이미지가 나빠질지언정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되면 또 달려들 거예요. 창작뮤지컬에 대해 항상 마음을 열고 있어요.


10년 후의 신영숙은 어떤 모습일까요?
10년 후에도 배우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배우로서의 삶만 있지만, 가정을 꾸려서 일과 가정 둘 다 조화롭게 병행하고도 싶고요. 저는 대스타를 꿈꾸기보단 그 자리에서 빛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후배들에게 계속 꿈을 줄 수 있게요. 나이를 먹을수록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많아지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맘마미아!>도 해보고 싶어요. 어렸을 때 오디션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한 외국 음악감독이 “지금은 어리지만, 넌 언젠가 도나를 하게 될 것이다”라고 칭찬해 주었어요. 힘이 많이 됐죠. 제가 이 작품을 참 좋아하거든요. 언젠가 도나 역을 맡고 싶어요. 무엇보다 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좋아요. 10년 후에도 지금처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제 일에 행복해 하면서 배움을 멈추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는 끝까지 배워야 하니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3호 2013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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